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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에서 가장 오래된 한밭권투체육관

관장은 오늘도 꿈을 꾼다

인문쟁이 양재여

2019-07-18


2012년 개봉한 영화 <차형사>의 배경이 된 곳. 땀냄새 물씬 나고, 한쪽에선 쥐가 나타나 쪼르륵 지나가도 전혀 놀랍지 않을 뒷골목 안. 바로 그 공간을 오래도록 지켜온, 대전광역시 중구에 위치한 ‘한밭권투체육관’을 소개하려고 한다. 초대 박찬규 관장이 설립한 이곳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권투 체육관이다. 입소문을 타며 가끔 영화 촬영지로 섭외되기도 한다. 


한밭권투체육관은 대전의 중심지로 화려한 도시의 영화를 누렸던 대전 중구 은행동 번화가 뒷골목에 자리하고 있다. 지역에 대한 사전 정보가 없다면 무심코 지나갈 자리다. 1961년 설립 당시의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어 이곳에 들어서자 마치 시간이 멈춘 듯하다. 한밭 권투 체육관은 대전광역시에서 지원하는 ‘스토리투어’의 한 코스로 선정되며, 대전이 자랑하는 지역 문화유산으로 발돋움 중이다. 한밭권투체육관 이수남 관장은 필자의 갑작스런 방문에도 반갑게 맞이해 주었다. 


 한 사람 겨우 드나들 수 있는 골목길 안쪽에 위치한 한밭권투체육관. / 한밭권투체육관 226-2180 한밭 복싱체육관

▲ 한 사람 겨우 드나들 수 있는 골목길 안쪽에 위치한 한밭권투체육관 ⓒ양재여


체육관 밖 건조대에는 땀에 젖은 옷이 마르고 있다. 체육관으로 들어서면 곧장 사각 링이 보인다. 체육관 한쪽에는 오래전 경기 일정을 알리는 권투 포스터가 붙어있다. 세월의 흔적을 느낄 수 있는 검정 전화기도 반갑다. 체육관은 개관 이후의 세월을 간직하고 있다. 한자리에서 권투만을 위해 살아온 이수남 관장의 입을 통해 한밭권투체육관의 과거와 오늘에 대해 들어보았다. 


체육관 밖 풍경. 젖은 운동복을 말리기 위해 옷을 널어놓았다.  '한밭복싱훈련도장'이라 쓴 간판도 보인다.

▲ 젖은 운동복을 말리기 위해 옷을 널어놓았다.  ⓒ양재여


한밭권투체육관은 올해로 개관 58년이 되었다. 전 WBC 슈퍼밴텀급 챔피언인 염동균 선수를 비롯해 수많은 국가대표와 선수들을 배출해냈다. 한밭권투체육관을 거쳐간 선수의 수만 해도 16000여 명에 이른다고 한다. 

체육관 건물 옆엔 현재 농협이 들어서 있는데 개관 당시에는 대전시청 건물이었다. 지금의 체육관은 당시 시청의 창고 건물이었다. 대전의 원도심인 이곳, 그러니까 당시 시청 주변은 군사독재정권 체제에서 민주화를 요구하는 시민의 시위가 끊이지 않았다. 그 옆에 있던 보건소 굴뚝에선 시신 태우는 연기가 항상 올랐다고 한다. 이수남 관장은 대전의 암울했던 현대사를 목격하고 함께한 증인이기도 하다.


체육관 안쪽에는 6,70년대의 낡은 권투 포스터가 붙어있다. / 전국 중고교  복싱 선수권 대회

▲ 체육관 안쪽에는 6,70년대의 낡은 권투 포스터가 붙어있다.  ⓒ양재여


권투라 하면 흔히 ‘깡패’들, 주먹깨나 쓰는 건달이나 하는 운동이라는 인식이 많았다. 그래서 이 관장은 그 시절 대전 중앙로의 구두닦이, 껌팔이들을 데려다가 인생을 바꿔주려는 노력을 많이 했다고 한다. 권투로 성공하겠다고 찾아온 사람도 많았다. 워낙 쉽지 않은 운동이라 중도 포기하고 '주먹 생활'로 돌아서는 이들이 많았다. 늦은 밤의 전화는 주로 경찰서에서 걸려오는 전화였다. 이 관장은 수시로 경찰서를 들락거렸다. ‘사고 친’ 이들을 수습하는 일이 당시에는 다반사였다며 그 시절을 유쾌하게 회상했다.


링을 둘러 가득 쌓여 있는 권투 헬멧과 글러브들. 한밭권투체육관은 이수남 관장의 삶이자 그 자신이다.

▲ 한밭권투체육관은 이수남 관장의 삶이자 그 자신이다. ⓒ양재여


이 관장이 복싱계에 발을 들여놓게 된 사연은 무엇일까. 이 관장이 뱃속에 있을 때 아버지는 돈을 벌기 위해 만주로 가게 되었고, 어머니는 남편 없이 이 관장을 낳았다. 그리고 어머니는 이 관장이 13살 되는 해에 돌아가셨고, 그 후에 만난 아버지는 이미 다른 살림을 하고 있었다. 새어머니 품에서 살기 힘들었던 이 관장은 서울로 올라와, 끼니를 해결하기 위해 권투를 시작했다. 자신이 받은 유년 시절 상처에 대한 공감의 정서 때문일까? 이 관장은 대전소년원에서 수감자를 대상으로 8년간 무보수로 권투를 지도해왔다. 그 결과 제41회 신인왕 대회 때 종합우승도 하고, 교도행정 주무장관인 법무부 장관의 격려를 많이 받았다고 한다. 그 인연으로 법무부 보호관찰위원으로 위촉되어 1989년부터 현재까지 꾸준히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평생 자신을 뒷바라지 해준 아내 사진을 보여주는 이수남 관장

▲ 평생 자신을 뒷바라지 해준 아내의 젊은 시절 사진을 보여주는 이수남 관장 ⓒ양재여


권투가 인기를 구가할 때는 40~50명 달하는 관원으로 자리가 좁아 운동하기 힘들 때도 있었다고 한다. 지금은 관원 20명 정도라, 생활하기 어려울 수입에도 이 관장은 체육관 운영을 멈추지 않고 있다. 권투의 저변이 줄어들고 있는 현실 속에서 이 관장이 꿈꾸는 미래는 과연 무엇일까. 

“저는 1964년 도쿄올림픽 최종선발 4차전에서 조동기 선수에게 패했습니다. 안타깝게 올림픽 출전이 좌절된 거지요. 그 이루지 못한 꿈을 후배 양성으로 대신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남은 제 인생의 최종 목표는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를 배출하는 것입니다.” 

이수남 관장은 현재 양성하는 후배 중 김선홍 선수를 주목하고 있다고 했다. 20살 약관의 나이에 전국 체전 출전을 목표로 훈련에 임하고 있다며 제자에 대한 애정을 숨기지 않았다.


허옇게 빛이 바랜 권투 글러브

▲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품고 있는 한밭체육관. 대전의 명소로 자리매김 중이다. ⓒ양재여


체육관은 오후 1시부터 10시 30분까지 운영하고 있다. 인터뷰 중 21살 청년의 줄넘기 소리가 한편에서 들려왔다. 군입대를 2주 앞두고 있는 김동환 관원은 친구 소개로 이 체육관을 찾게 되었다고 한다. 허름한 원도심 뒷골목에 있는 체육관이지만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대전의 명소라며 목소리를 높인다. 다른 체육관도 많은데, 한밭 권투 체육관을 선택한 이유를 물었다. 

“제 친구 3명도 이곳에 다녔어요. 이곳은 다른 곳보다 클래식해서 좋습니다. 관장님도 잘 가르쳐 주시고요. 제대하고도 또 올 계획입니다.” 

김동환 관원은 2주밖에 남지 않은 시간을 체육관에서 보내며 젊은 날은 한 페이지를 땀으로 쓰고 있었다.


관원 한 명이 이 관장의 지도를 받으며 열정의 땀방울을 흘리고 있다.

▲ 관원 한 명이 이 관장의 지도를 받으며 열정의 땀방울을 흘리고 있다. ⓒ양재여


이 관장과의 인터뷰가 진행되는 내내 1분마다 울렸던 공(gong)소리가 여운으로 남아 귓가에 맴돈다. 돈이 목적이었다면 이 체육관이 지금처럼 고풍스러움을 간직한 채 이 자리에 남아 있었을까? 돈보다 더 가치 있는 일에 열정과 땀으로 답한, 오로지 권투 한길을 걸어온 이 관장에게 힘찬 박수와 응원을 보낸다. 언젠가 이수남 관장의 지도로 올림픽 금메달리스트가 탄생하는 날을 기대해본다.



사진 촬영 _  ⓒ양재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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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쟁이 양재여
인문쟁이 양재여

2019 [인문쟁이 4기, 5기]


대전의 골목 골목을 거닐고 대전의 잊혀져가는 곳을 기록하고 대전의 축억을 기록하는 대전을 사랑하는 아주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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