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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동 벽화마을 골목길을 거닐다

이야기가 흐르는 원도심의 추억

인문쟁이 양재여

2019-06-13


어둠이 뉘엿뉘엿 내리기 시작하면 순이네 담벼락 너머에서 밥 먹으라는 엄마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곧이어 철수 이름도 부른다 “철수야 밥 먹어~” 이윽고 영희의 이름도... 우리는 해가 지는지도, 배가 고픈지도 모르고 골목길에서 놀았다. 그 아련하게 떠오르는 추억을 담은 골목길이, 이제는 점점 찾기 힘들다. 도시는 아파트 숲으로 빼곡하다. 아파트로 가득한 신도시 반대편에서야 우리 어린 시절을 기억하게 하는 원도심을 만난다. 좁은 골목길과 낮은 담벼락이 있는 대동 벽화마을 골목길을 찾았다.


대전연탄은행 춘하추동 영양탕 주차금지

▲ 연탄 은행 간판 등 70~80년대를 연상시키는 대동 골목길 ⓒ양재여


지금 대동은 젊은 층을 중심으로 ‘벽화마을’, ‘하늘공원’으로 불리며 세칭 핫 플레이스로 떠오르고 있다. 하지만 ‘벽화마을’이나 ‘하늘공원’이 전부인 대동이 아니라, 어떤 이에게는 어린 시절 추억을 떠올리게 하고 또 어떤 이에게는 전혀 생경한 풍경을 마주하게 하는 대동의 골목골목을 조명하고자 한다.


대동은 대전역 뒤편에 자리한다. 대동하면 오랫동안 대전의 대표적인 달동네로 알려졌다. 대동은 한국전쟁 이후 피난민에 의해 생긴 마을이다. 많은 피난민이 역 주변에 모여 살았다. 가장 열악한 환경에 있는 사람들이 밀리고 밀려 정착한 곳이 아닐까. 그들은 산을 헐어 집을 짓고 판자촌을 이루었다. 그중 루핑 집은 기름을 바른 종이로 지붕을 만든 집으로, 바람에 지붕이 날아가는 일이 종종 있었다고 한다. 루핑 집에 사는 사람들은 비나 눈이 오는 날을 제일 두려워했다고 한다. 행여 지붕이 날아가기라도 하면 마을 사람 모두 힘을 모아 변을 당한 집을 위해 지붕을 만들었다. 비록 생활은 어려웠지만 훈훈한 정이 있었다. 

 

불어나다 슈퍼 담배 게토레이 50

▲ 골목 안 삼거리에 자리한 30년 넘은 슈퍼 ⓒ양재여

 

대동의 골목길을 거닐다 보면 이야기 보따리는 덤이다. 대동 입구에서 하늘공원으로 향하는 길의 중간 정도에 이르면, 30년이 넘은 슈퍼가 골목 안 삼거리에 자리하고 있다. 간판은 세월의 경과를 증명이라도 하듯 낡고 허름하다. 무더운 여름이면 찬 음료수를 찾는 손님을 감당 못해 큰 고무 대야에 물을 채워 음료수를 가득 담가 둘 정도였다고 한다. 문득 어린 시절 슈퍼 들마루에 앉아 '아이스께끼'를 먹던 생각이 났다.

 

노인 보호구역 30

▲ 대동 골목골목마다 어린이 보호구역이 아닌 노인보호구역이 그려져있다. ⓒ양재여

 

과거 대동은 골목골목 노는 아이들로 빼곡했지만, 이제 아이들은 자라 도시로 떠나고 노인들만 남아있는 동네가 됐다. 그래서 이곳 골목길은 ‘어린이 보호 구역’이 아닌 ‘노인 보호 구역’이라는 문구를 달고 있다. 

이젠 대동의 이야기는 할머니들을 통해서만 들을 수 있게 되었다. 대전문화재단은 2014년에 대동의 이야기를 기록하고자 대동 할머니들과 함께 모놀로그(독백 형식) 공연을 진행했다. 공연 후 <대동 모놀로그 : 대동 착한 할매들의 아름다운 독백>이라는 책도 발간했다. 여기에 실린 한 편의 시를 소개하고자 한다.


눈 오는 날


겨울이면 정말 행복했지

얼마나 좋았는지 몰라

눈 오는 날이면 아침도 먹는 둥 마는 둥

밖으로 뛰어 나갔어

창고에 있는 비료푸대를 끄집어내어

그걸 타고 놀았어

키 작은 내가 오빠들 속도를 맞춰 뒷산으로 뛰어가느라

눈발에 몇 번이나 넘어졌는지 몰라

오빠들이랑 비료푸대를 타고 신나게 타고 내려올 땐 세상 가장 행복했지

그때만큼 행복했던 적도 없었어

겨울인데도 눈이 안 오면

마루에 앉아 오빠들과 눈이 왔으면 좋겠다 눈 와라 눈 와라 하고 소원을 빌 듯이 중얼거릴 정도였으니까

이제 나이가 드니 눈이 그렇게 달갑지 않아

그 좋았던 눈도 이제는 야속해

그 때 만큼 쌩쌩 달릴 수도 없고 동네방네 뛰어다닐 수 없으니까

이제 눈 오면 가만히 집에 있는 게 더 생산적이라니까

얼마 전엔 허리 디스크 때문에 죽을 듯 아팠는데

아 글쎄 아무리 콜택시를 불러도 다 못 온다는 거야

눈이 많이 와서 여기 대동까지는 올라올 수 없다고

그러니 어떻게

나는 아파 죽겠지 병원은 가야겠지 차는 없지 택시는 안 오지 아주 서러웠어

그날은 겨우 옷을 챙겨입고 큰길까지 엉금엉금 기듯이 걸어가는데

옆집 아저씨를 만났지

어디 가세요?

다정하게 물으시길래

네 병원에 가요 택시도 안 온다네요 이런 날엔

푸념을 했더니

그 아저씨가 잠시 계세요 하더니 차를 가지고 나왔어

한사코 사양해도 병원에 데려다주고 진료 끝날 때까지 기다려주었지

얼마나 고마웠는지 몰라

그 뒤로도 몇 번이나 병원에 데려다 줬다니까

바쁜 사람이 그러기 쉽지않지

그 집 내외 분이 다 그렇게 인심이 좋으셔

어릴 땐 그렇게 좋았던 겨울이 늙어버린 이제는 짐이여 짐

그래도 따뜻한 사람들이 있어 아직 견딜만 해

그런 사람들 때문에 추운 겨울도 잠시 포근해지니까


할머니의 독백은 벌써 내 머릿 속에 그림으로 그려졌다. 어려서 놀던 골목길과 이젠 나이 들어 눈도 반갑지 않게 된 할머니의 이야기를 통해 대동을 느낄 수 있었다.


 

▲ 화려한 얼룩말 벽화가 사람들 시선을 사로잡는다. ⓒ양재여



희망세

▲ 셔터가 닫히는 저녁에서야 볼 수 있는 '비밀 벽화' ⓒ양재여

 

 

드디어 본격적인 벽화가 시작된다. 처음에 보이는 얼룩말의 콧구멍은 벽에 난 구멍을 이용하여 그렸다. 화려한 색감이 벽화마을 입성을 축하해준다. 대동 벽화마을은 ‘골목이 주는 위로’라는 주제로 조성됐다. 벽화마을 골목길을 오르다 보면 재미있는 벽화를 찾는 즐거움이 있다. 낮에는 볼 수 없지만 밤에는 볼 수 있는 벽화도 있다. 그 비밀은 바로 노인 공동작업장인 ‘희망공장’ 셔터문에 있다. 낮에는 어르신들이 셔터문을 올리고 있으니 볼 수 없고, 퇴근 이후에나 셔터문이 내려져 볼 수 있는 벽화다. 마치 보물찾기하듯 새로운 벽화를 발견한다.

 

유니크 디자인 백룡로 48번길 41-1 공간 빈티지 쉼터 말소리와 발검음을 조용히!

▲ 하늘공원 바로 밑의 대동 벽화 골목길. 화려하고 예술성이 뛰어난 벽화다. ⓒ양재여


 

벽화를 따라 골목길을 올라가면 하늘공원 방향으로 좁고 가파른 골목길에 또 다른 벽화들을 볼 수 있다. 2008년 공공미술 추진위원회에서 기획한 소외 계층을 위한 문화 사업이 당선되어, 미술인 30명이 30일 동안 함께 머물면서 그린 벽화다. 이때 대외적으로 주목을 많이 받았고, 2008년 무지개 프로젝트에 선정되면서 대동은 크게 변화했다. 무지개 프로젝트는 대표적인 도시 재생 프로그램이다. 소외된 지역민이 더 잘 살 수 있도록 주차, 도로 환경, 교육 등 모든 분야에 전폭적인 지원을 펼친다. 이는 마을 사람들 스스로 각성하는 계기도 되었다. 현 정부의 뉴딜 사업도 2021년까지 약 100억 원을 들여 노후된 주택, 담장 등 공간을 변화시킨다고 한다.


 

▲ 대동 하늘공원 손님을 반갑게 맞이해주는 강아지 ⓒ양재여



 

▲ 대동 하늘공원에 자리한 독특한 카페를 카메라에 담고 있다. ⓒ양재여


겨우 한 사람 지나다닐 수 있는 좁은 골목길을 통해 대동 하늘공원으로 향했다. 창문 밖으로 손님을 맞이하는 강아지는 짖기는커녕 꼬리를 흔들며 반가워한다. 드디어 대동하늘공원에 다다른다. 이곳에는 젊은이의 발걸음을 이끄는 매력적인 카페들이 곳곳에 자리하고 있다. 대동하늘공원에선 아름다운 야경 또한 감상할 수 있다. 계룡산 산등선 위로 떨어지는 낙조의 아름다움은 그 어디에도 비할 수 없다. 랜드마크 역할을 하는 풍차도 있다. 낙조와 풍차의 아름다운 조화로 대동하늘공원은 대전 8경 중 5경에 꼽히며 대전 시민이 사랑하는 명소로 자리 잡고 있다.

 

 

▲ 대전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대동 하늘공원의 야경 ⓒ양재여


대동 하늘공원에서 내려다보는 야경은 대전의 따스함을 느낄 수 있는 야경이다. 대동 벽화마을 골목길은 어떤 이에겐 추억의 골목길이다. 또 아파트만 보고 자란 이들에겐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가 되는, 낯설고 신기한 골목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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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쟁이 양재여
인문쟁이 양재여

2019 [인문쟁이 4기, 5기]


대전의 골목 골목을 거닐고 대전의 잊혀져가는 곳을 기록하고 대전의 축억을 기록하는 대전을 사랑하는 아주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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