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계절이 사람의 리듬을 좌우한다고 말하면, 24절기가 서운해 할 것이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의 각 계절마다 무려 6가지 절기가 각기 다른 목적을 촘촘히 수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 달에 두 개꼴, 일 년 동안 부단히 릴레이를 펼치는 24절기. 지금은 씨를 뿌리거나 논에 모를 심는 ‘망종(芒種)’에서, 연중 낮이 가장 길다는 ‘하지(夏至)’를 향하고 있다. 선농단은 풍년을 기원하는 목적에서 만들어진 제단이다. 선농단에도 생명이 있다면 생동하는 자연을 보며 가슴 뛰고 있을 것이다.
▲ 사적 제436호 선농단(서울특별시 동대문구 무학로44길 38) ⓒ김세희
선농단에서 내린 국밥, 그리고
지난 4월 20일은 농사비가 내린다는 곡우(穀雨)였다. 그날 선농단에선 인근 주민들이 모여 300인분의 설렁탕을 함께 나눴다. 풍년을 기원하는 ‘선농대제(先農大祭)’를 재현한 것. 주민들은 제기동의 선농단 주변에 삼삼오오 모여 고깃국물에 밥을 말아 먹으며 곡식이 잘 자라길 기원했다. 중국 고대 불의 신, 신농씨와 곡식의 신, 후직씨를 모시는 제단인 선농단에서 어가행렬을 비롯한 유교식 제례가 거행되었다. 제례 후 나눠 먹은 뜨끈한 ‘선농탕’ 한 그릇엔 가난한 백성을 긍휼히 여겼던 임금의 애민정신이 어려 있다.
▲ ‘선농단 역사문화관’에서는 설렁탕의 유래를 엿볼 수 있다. ⓒ김세희
“임금이 쟁기를 잡고 친경하시니,
반열에 있는 신료(臣僚), 군교(軍校), 기로(耆老)와
도성의 사녀(士女), 기전(畿甸)의 백성으로서 보는 자는
바라보고 감탄하지 않는 이가 없었으며,
심지어 눈물을 흘리는 자도 있었다."
_ 고려사 권3, 세가3, 성종
선농단 주변은 조선시대와는 달리 주택과 학교가 들어서 있다. 이에 따라, 왕이 몸소 경작하는 선농대제 ‘친경의식’은 계승하기가 어려워졌다. 일제에 의해 선농단이 훼손되어, 약 70여 년간 선농대제가 재현되지 못한 이유도 있다. 왕이 농사의 모범을 보여 백성들의 고락을 함께하던 소통의 전통이 단절된 셈이다.
▲ 선농단 맞은편 주택가에 그려진 동대문미술협회의 선농대제 벽화 ⓒ김세희
선농단 역사문화관의 시간
선농단 바로 옆에서 지난 이야기를 들려주며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는 ‘선농단 역사문화관’. 2015년에 개관했다. 지하 1층은 선농단의 변천 과정을 보여주는 코너가 마련되어있고, 지하 3층은 선농대제 제사상 진설, 전통 농기구 및 의복 체험, 역사적 풍경을 합성한 사진 촬영 등 흥미로운 프로그램들이 제공되고 있다.
▲ 제11회 대한민국 공공건축상 우수상을 수상한 ‘선농단 역사문화관’ ⓒ김세희
무엇보다 눈길을 끈 건, 선농단 역사문화관 한편에서 볼 수 있는 문구들. ‘문화유산을 활용한 교육, 축제의 장, 개방형 공간, 작은 도서관’과 같은 설립 당시 주민들의 의견이다. 지난 3월부터 선농단 역사문화관을 맡게 된 (재)동대문문화재단은 각종 문화교육 아카데미와 생생문화재, 도시농부학교를 진행하고 있다. 특히 생생문화재는 ‘내가 도슨트, 선농제향체험, 설롱요리대회’ 등 남녀노소 누구나 취향에 따라 즐길 수 있어 반응이 좋다. 올 가을부터는 특별 기획전도 예정되어 더욱 기대를 모은다.
▲ 선농단 역사문화관에는 24절기의 흐름을 짚어볼 수 있다. ⓒ김세희
▲ 선농단 역사문화관 입구의 전통 찻집은 주민들의 쉼터가 되어준다. ⓒ김세희
선농단 향나무 아래, 청량대
선농단에는 수령 약 600년으로 추정되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향나무가 있다. 천연기념물 제240호. 선농단의 옛 모습을 조명하는 데 매우 귀중한 자료라고 한다. 보통 향나무는 휘어지며 자라는 특성이 있다. 하지만 선농단 향나무는 하늘을 향해 곧게 뻗어있다. 어쩌면 곧은 자태 그 자체로 인간에게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를 몸소 표현하고 있는 건 아닐까.
▲ 선농단 향나무는 선농대제를 지낼 때 피울 향으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김세희
순종 황제 제위 시기에 신농씨의 신위를 사직단으로 옮겼다. 당시 일제는 동양척식회사를 설립해 정부 출자라는 명목으로 선농단의 토지를 빼앗아 ‘청량대 공원’을 조성했다. 청량대가 적힌 표석을 세워 선농단의 의미를 퇴색시키려 했고, 선농제를 올리던 제기(놋그릇)마저 태평양 전쟁 때 군수물자로 수탈했다. 해방 후 주민들은 청량대 표석을 쓰러뜨리며 울분을 달랬다고 한다. 역사 속에서 벌어진 모든 풍파를 목격한 선농단 향나무. 오늘도 어김없이 푸른 자태로 그날을 우리에게 소환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김세희는 경기도 남양주시에 둥지를 틀고 있으며,
여행 콘텐츠 에디터로서 때로는 느슨하게, 때로는 발빠르게 노마드의 삶을 걷고 있다.
낯선 이가 우리의 인문 기억에 놀러오는 일은 생각만 해도 설레고 두근거린다.
더 많은 것을 꿈꾸고 소망하고 함께 응원하는 온기를 뼈 마디마디에 불어넣고 싶다.
어떤 바람도 어떤 파도도 잔잔해질 수 있도록.
댓글(0)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보유한 '리마인드 선농단' 저작물은 "공공누리"
출처표시-상업적이용금지-변경금지
조건에 따라 이용 할 수 있습니다. 단, 디자인 작품(이미지, 사진 등)의 경우 사용에 제한이 있을 수 있사오니 문의 후 이용 부탁드립니다.
리마인드 선농단
서울 제기동 선농단과 선농단 역사문화관
인문쟁이 김세희
2019-06-06
사계절이 사람의 리듬을 좌우한다고 말하면, 24절기가 서운해 할 것이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의 각 계절마다 무려 6가지 절기가 각기 다른 목적을 촘촘히 수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 달에 두 개꼴, 일 년 동안 부단히 릴레이를 펼치는 24절기. 지금은 씨를 뿌리거나 논에 모를 심는 ‘망종(芒種)’에서, 연중 낮이 가장 길다는 ‘하지(夏至)’를 향하고 있다. 선농단은 풍년을 기원하는 목적에서 만들어진 제단이다. 선농단에도 생명이 있다면 생동하는 자연을 보며 가슴 뛰고 있을 것이다.
▲ 사적 제436호 선농단(서울특별시 동대문구 무학로44길 38) ⓒ김세희
선농단에서 내린 국밥, 그리고
지난 4월 20일은 농사비가 내린다는 곡우(穀雨)였다. 그날 선농단에선 인근 주민들이 모여 300인분의 설렁탕을 함께 나눴다. 풍년을 기원하는 ‘선농대제(先農大祭)’를 재현한 것. 주민들은 제기동의 선농단 주변에 삼삼오오 모여 고깃국물에 밥을 말아 먹으며 곡식이 잘 자라길 기원했다. 중국 고대 불의 신, 신농씨와 곡식의 신, 후직씨를 모시는 제단인 선농단에서 어가행렬을 비롯한 유교식 제례가 거행되었다. 제례 후 나눠 먹은 뜨끈한 ‘선농탕’ 한 그릇엔 가난한 백성을 긍휼히 여겼던 임금의 애민정신이 어려 있다.
▲ ‘선농단 역사문화관’에서는 설렁탕의 유래를 엿볼 수 있다. ⓒ김세희
“임금이 쟁기를 잡고 친경하시니,
반열에 있는 신료(臣僚), 군교(軍校), 기로(耆老)와
도성의 사녀(士女), 기전(畿甸)의 백성으로서 보는 자는
바라보고 감탄하지 않는 이가 없었으며,
심지어 눈물을 흘리는 자도 있었다."
_ 고려사 권3, 세가3, 성종
선농단 주변은 조선시대와는 달리 주택과 학교가 들어서 있다. 이에 따라, 왕이 몸소 경작하는 선농대제 ‘친경의식’은 계승하기가 어려워졌다. 일제에 의해 선농단이 훼손되어, 약 70여 년간 선농대제가 재현되지 못한 이유도 있다. 왕이 농사의 모범을 보여 백성들의 고락을 함께하던 소통의 전통이 단절된 셈이다.
▲ 선농단 맞은편 주택가에 그려진 동대문미술협회의 선농대제 벽화 ⓒ김세희
선농단 역사문화관의 시간
선농단 바로 옆에서 지난 이야기를 들려주며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는 ‘선농단 역사문화관’. 2015년에 개관했다. 지하 1층은 선농단의 변천 과정을 보여주는 코너가 마련되어있고, 지하 3층은 선농대제 제사상 진설, 전통 농기구 및 의복 체험, 역사적 풍경을 합성한 사진 촬영 등 흥미로운 프로그램들이 제공되고 있다.
▲ 제11회 대한민국 공공건축상 우수상을 수상한 ‘선농단 역사문화관’ ⓒ김세희
무엇보다 눈길을 끈 건, 선농단 역사문화관 한편에서 볼 수 있는 문구들. ‘문화유산을 활용한 교육, 축제의 장, 개방형 공간, 작은 도서관’과 같은 설립 당시 주민들의 의견이다. 지난 3월부터 선농단 역사문화관을 맡게 된 (재)동대문문화재단은 각종 문화교육 아카데미와 생생문화재, 도시농부학교를 진행하고 있다. 특히 생생문화재는 ‘내가 도슨트, 선농제향체험, 설롱요리대회’ 등 남녀노소 누구나 취향에 따라 즐길 수 있어 반응이 좋다. 올 가을부터는 특별 기획전도 예정되어 더욱 기대를 모은다.
▲ 선농단 역사문화관에는 24절기의 흐름을 짚어볼 수 있다. ⓒ김세희
▲ 선농단 역사문화관 입구의 전통 찻집은 주민들의 쉼터가 되어준다. ⓒ김세희
선농단 향나무 아래, 청량대
선농단에는 수령 약 600년으로 추정되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향나무가 있다. 천연기념물 제240호. 선농단의 옛 모습을 조명하는 데 매우 귀중한 자료라고 한다. 보통 향나무는 휘어지며 자라는 특성이 있다. 하지만 선농단 향나무는 하늘을 향해 곧게 뻗어있다. 어쩌면 곧은 자태 그 자체로 인간에게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를 몸소 표현하고 있는 건 아닐까.
▲ 선농단 향나무는 선농대제를 지낼 때 피울 향으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김세희
순종 황제 제위 시기에 신농씨의 신위를 사직단으로 옮겼다. 당시 일제는 동양척식회사를 설립해 정부 출자라는 명목으로 선농단의 토지를 빼앗아 ‘청량대 공원’을 조성했다. 청량대가 적힌 표석을 세워 선농단의 의미를 퇴색시키려 했고, 선농제를 올리던 제기(놋그릇)마저 태평양 전쟁 때 군수물자로 수탈했다. 해방 후 주민들은 청량대 표석을 쓰러뜨리며 울분을 달랬다고 한다. 역사 속에서 벌어진 모든 풍파를 목격한 선농단 향나무. 오늘도 어김없이 푸른 자태로 그날을 우리에게 소환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 선농단의 아픔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청량대 ⓒ김세희
○ 공간 정보
주소 : 서울특별시 동대문구 무학로44길 38(제기동)
전화번호 : 02-355-7990
운영 시간 : 10:00 ~ 18:00(하절기) / 10:00 ~ 17:00(동절기) /
휴관일 법정 공휴일, 매주 월요일
관람료 : 무료
○ 관련 링크
홈페이지 : http://www.ddm.go.kr/tour/intro/historicSite_1(동대문구)
https://ddmac.or.kr/ (동대문문화재단)
https://www.facebook.com/dfacorkr/ (동대문문화재단 SNS)
○ 사진 촬영_김세희
장소 정보
2019 [인문쟁이 3기, 4기, 5기]
김세희는 경기도 남양주시에 둥지를 틀고 있으며, 여행 콘텐츠 에디터로서 때로는 느슨하게, 때로는 발빠르게 노마드의 삶을 걷고 있다. 낯선 이가 우리의 인문 기억에 놀러오는 일은 생각만 해도 설레고 두근거린다. 더 많은 것을 꿈꾸고 소망하고 함께 응원하는 온기를 뼈 마디마디에 불어넣고 싶다. 어떤 바람도 어떤 파도도 잔잔해질 수 있도록.댓글(0)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보유한 '리마인드 선농단' 저작물은 "공공누리" 출처표시-상업적이용금지-변경금지 조건에 따라 이용 할 수 있습니다. 단, 디자인 작품(이미지, 사진 등)의 경우 사용에 제한이 있을 수 있사오니 문의 후 이용 부탁드립니다.
내일이 기대되는 오늘, 시니어 칸타빌레
인문쟁이 김정은
부산 최초의 해수욕장은 해운대가 아니라 송도
인문쟁이 강태호
관련 콘텐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