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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 속에 노닐다

돌문화공원-2019 설문대할망 페스티벌

인문쟁이 성기낭

2019-06-04

바람의 신 영등할망이 들고난 지 한참인데 요 며칠 계속되던 강풍에 비 날씨. 그래도 오늘은 반짝 반짝 반가운 햇살로 나린다. 마음도 함께 설레어 5월의 대표 축제 설문대할망 페스티벌이 진행되는 돌문화공원으로 유쾌한 걸음을 하기로 한다. 


제주에서 중산간 도로를 이동하다 보면 어느새 한라산의 울창한 숲 어디쯤일까 싶은 풍광과 만난다. ‘한라산이 제주이고 제주가 한라산’이라는 말을 실감하게 된다. 변화무쌍한 섬의 날씨 또한 실감하게 되는데 오늘이 꼭 그랬다. 분명 반짝이는 햇살의 배웅을 받고 출발했건만 중산간 도로를 지나면서 빗방울이 하나 둘씩, 바람도 살랑살랑. 돌문화공원에 다다랐을 땐 제법 큰 비와 거센 바람이 어제인 듯 여전했다. 변덕스러운 날씨만 두고 보면 제주는 거대한 섬이다. 이 정도의 날씨 변덕은 다반사라 당황하는 기색 없이 우산을 받쳐 들고 돌문화공원으로 들어선다. 


돌문화공원 입구 제주돌문화공원

▲돌문화공원 입구 ⓒ성기낭 



여신의 놀이터 – 돌문화공원 


일만 팔천 신들의 섬 제주도, 척박한 삶을 의지하기 위해 그 많은 신이 필요했던 섬. 제주의 신 중 으뜸은 단연 여신 설문대다. 제주 창조 신화 속 여신이자 제주인의 어머니로 여겨지는 설문대할망과 그 모성에 기댄 오백장군이 돌문화공원의 주된 테마다.  


설문대할망 페스티벌은 제주의 정체성과 제주 문화의 원류를 설문대할망 신화 속에서 찾아보기 위해서 한라산에 철쭉꽃이 피는 5월을 ‘설문대할망의 달’로 정하고 명상, 음악, 춤, 강연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한 달 내내 진행한다. ‘설문대할망 신화 문화 운동’이라는 슬로건을 걸고 벌써 13회째를 맞이하는, 자연과 어우러지는 페스티벌이다. 그 한 달 동안 돌문화공원은 여신의 놀이터가 된다. 



 

▲방문객을 맞는 전설의 통로 ⓒ성기낭 


입구를 지나 커다란 돌이 늘어선 ‘전설의 통로’를 지나면 이제 본격적으로 돌문화공원이다. 그 규모에 놀라기도 잠깐, 먼저 우중임에도 야외 하늘 연못에서 <오백 장군들의 기천문> 공연이 있다고 하여 서둘러 본다. 하늘 연못은 설문대할망이 빠졌다는 ‘물장오리’를 나타낸다고 한다. 기천문과 설문대할망의 만남은 어떻게 표현될까? 

빗속이라 더욱 초록이 빛나는 숲길에 앞선 방문객의 자취가 보인다. 반가운 마음에 그 걸음을 쫓다보니, 숲이 점점 터널을 이루어, 가는 길이 더욱 아늑하다. 


 

▲하늘 연못으로 이어진 숲길 ⓒ성기낭 


그 길 끝에 만난 하늘 연못의 모습이라니! 궂은 날씨마저 신비스럽게 연출한 여신님의 축제 일부처럼 느껴진다. ‘신선들의 체조’라고 불리는 ‘기천문’에 안개 자욱한 배경을 만드는 오름의 모습이며, 아예 하늘 연못 안에 들어가 물과 함께 조화를 이룬 공연 팀, 그리고 은은히 뿌려주는 빗방울까지 분위기를 고조시킨다. 그렇게 고즈넉함을 한껏 느끼며 머무르다 실내 전시 공간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하늘 연못의 <오백장군들의 기천문> 공연 ⓒ성기낭 



신화 속에 노닐다 – 설문대할망 페스티벌 2019 


하늘 연못에서 전시 공간인 오백장군 갤러리까지 가는 중 제주돌문화 야외 전시를 만났다. 정낭돌과 연자매가 모여 있기도 하고 서로 생김새가 조금씩 다른 돌하르방들도 한쪽에 지키고 섰다. 제각기 다른 돌하르방의 생김새를 찾아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근래 화제가 됐던 오백나한의 웃음과 견줄만한 제주 동자석의 순박한 웃음은 또 어떤가? 빙긋이 웃음을 따라 지으면 선해지는 마음은 덤이다. 


 

▲ 정낭돌과 연자매 ⓒ성기낭


 

▲ 돌하르방 ⓒ성기낭


 

▲ 동자석의 웃음 ⓒ성기낭


저 멀리 오백장군들을 형상화한 거석들이 보인다. 웅장하다. 어머니 설문대의 모성에 울먹이며 내달아 한라산 영실에 기암괴석이 되었다는 오백장군 설화가 눈앞에 펼쳐진다. 그 옆으로 실내 전시 공간인 오백장군 갤러리가 자리 잡고 있다. 이 곳에서 설문대할망 페스티벌의 특별한 전시회가 열린다. 


 

▲오백장군들을 형상화한 거석들 ⓒ성기낭 


지금 이곳에선 기획전 ‘최재영, 김미영 부부 기증 사진전’이 진행되고 있다. <살아있는 신화, 설문대할망과 오백장군>의 사진에서는 끝없이 이어지는 신비로운 상상의 세계를 여행하고, <우주, 그 빛 방울>의 사진에서는 순수하고 아름다운 경이의 물방울에 영롱한 우주를 담아낸다. 


 

 ▲ 오백장군 갤러리 ⓒ성기낭 

 

 

▲ <살아있는 신화, 설문대할망과 오백장군> ⓒ성기낭

 

 

 ▲ <우주, 그 빛 방울> ⓒ성기낭 


한편 <창조·여신·예술의 3중주> 展에서는 다양한 장르의 예술가가 재현하는 여신을 만날 수 있다. 그림책 작가의 원화, 신나락만나락의 다채로운 회화 작품은 그들 특유의 감성적인 시선을 느낄 수 있다. 리투아니아 출신의 아그네 라티니테(Agne Latinyte)가 표현하는 낯설고 아름다운 제주섬 창조 신화도 눈길을 끈다. 


 

▲ 원화전 <큰할망이 있었어> ⓒ성기낭

 

 

▲ 아그네 라티니테의 <설문대할망 이야기> ⓒ성기낭 


설문대할망 페스티벌 기획단에서는 ‘일찍이 우리 마음의 집에서 사라져버린 설문대(設問大) 라는 커다란 물음을 다시 찾아보자’는 뜻에서 설문대할망 신화 문화 운동을 전개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 ‘커다란 물음’이란 무엇일까? 내내 의문이었다. 의문에 대한 대답은 불휘공프로젝트 <사라진 것들의 미래 - 사남굿 설문대>라는 영상 작품에서 어렴풋이 찾을 수 있었다. 무차별적인 난개발로 파괴된 제주 자연을 치유할 설문대할망을 부활시키고자 하는 사남굿! 제주의 전통 무속이 퍼포먼스 아티스트의 춤과 소리와 만나 뒤섞인다. 제주의 병든 곳을 찾아다니는 그 순례 퍼포먼스에서 그 대답은 더욱 또렷해진다. 


 

 ▲ 불휘공프로젝트 <사라진 것들의 미래 - 사남굿 설문대> ⓒ성기낭 


제주에는 수많은 축제가 끊임없이 열린다. 그 가운데 단순한 소비로 흐르지 않으면서 제주 본연의 모습을 품은 축제로 단연 우뚝한 설문대할망 페스티벌! 국내외 20여 개 문화예술단체가 재능 기부로 적극 참여하고 있지만 많은 이에겐 다소 생소할 터. 그래서 아쉬운 마음이 크다. 제주를 찾는다면, 그 때가 초록 기운 담뿍 담은 5월이라면 여신의 놀이터 돌문화공원을 찾아 신화 속을 함께 만끽해도 좋을 것이다. 


다시 햇살이 반짝하다. 꿈결인 듯 잘 노니다 온 한바탕 축제 마당이었다. 신화가 삶 속에 스며든다.



장소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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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쟁이 성기낭

2019 [인문쟁이 5기]


아이들과 책으로 만나며 동화에 나옴직한 캐릭터 연구에 홀로 낄낄거리길 즐긴다. 언젠가 이 캐릭터들이 이야기 속을 휘저을 주인공이 될 수 있을까 기대하고 또 의심하기를 반복한다. 책의 어느 한 지점, 아이들과 함께 빵 터지는 그 유쾌한 순간의 행복감에 아이들 곁을 떠나지 못하고 서성이는 호기심 많은 어른이다. 뒤늦게인문에 스며든 호기심을 한껏 채울 수 있는 한 해가 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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