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력은 반복된다. 헤라클레이토스에게 똑같은 강물이란 있을 수 없고 매일 매일이 전혀 새로운 날이겠지만, 어찌됐든 달력은 반복된다. 친구와 가족의 생일, 혹은 기일, 결혼기념일, 크리스마스, 하루 하루 그 의미를 더해가는 1일, 100일, 200일… 어쩌면 우리는 알게 모르게 매일을 기념일 속에서 살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지금도 누군가는 부러 조명을 내린 식탁 앞에서 기념 초를 후, 하고 불어 끄고 있을지도. 식탁에 함께 둘러앉은 이들의 박수소리를 받으며 진행되고 있을 그 사람의 의식은 해를 바꿔 내년에도 반복될 것이다.
우리의 달력 위엔 어떤 날들이 새겨져 있을까
▲ 5·18민주광장은 옛 전남도청 건물 앞에 위치해 있다. ⓒ조온윤
1년이라는 주기를 두고 반복되는 달력은 인간의 기억 또한 같은 주기를 갖게 만든다. 우리는 매년 모월 모일이 되면 서랍을 뒤지듯 기억을 더듬어 그때의 일들을 추억하곤 한다. 그 서랍은 오래될 대로 오래되어서 꺼내야 할 것들이 넘치도록 많다. 앞서 말한 것처럼 매일을 기념하면서 살아가야 할지도 모르는 것이다. 지금 우리가 2019년이라는 같은 시간을 살아가고 있다면 결코 잊지 말아야 할 중요한 날들이 있다. 그 중 하나가 4월 16일이다.
▲ 세월호를 기억하려는 시민들이 5·18민주광장으로 모였다. ⓒ조온윤
봄이 되면서 5·18민주광장은 바빠졌다. 지난 3월에는 3·1운동 100주년을 맞은 기념행사가 이곳에서 이뤄졌고, 다음 달인 5월에는 39주년을 맞은 5·18광주민주항쟁 기념행사도 마찬가지로 이곳에서 진행된다. 그리고 세월호 참사의 희생자들이 세상을 떠난 지 꼭 5년이 된 올해 4월 16일, 5·18민주광장에는 5년 전 그날을 기억하고자 노란 조끼를 입고 노란 풍선을 든 사람들이 모여 광장을 온통 노란 빛으로 물들였다.
▲ 구명조끼 모양을 본뜬 천 조끼 위에 메시지를 새긴 작품들이 전시되었다. ⓒ조온윤
추모행사에는 광주의 시민단체와 예술인들이 공연과 전시작품을 준비해 시민들과 함께 세월호의 슬픔을 기리는 시간을 가졌다. 오후 6시에는 민주광장에 모인 시민들이 노란 풍선을 들고 광주 금남로 일대를 순례하고 돌아오는 퍼포먼스도 진행됐다. 순례에 참여하지 않은 시민들도 행렬에 기꺼이 차를 멈추고 옆으로 길을 터주면서 세월호 참사와 희생자들을 기억하자는 추모행사를 지지해주었다.
민주항쟁부터 세월호까지, 기억의 광장
▲ 노란 풍선을 들고 금남로 일대를 행진하는 순례 퍼포먼스도 진행됐다. ⓒ조온윤
5·18민주광장은 그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아픈 역사가 있는 장소다. 그래서 광주의 시민들은 5월이 되면 이곳에 모여 그날의 아픔을 기억하기 시작했고, 몇 해 전부터는 5월이 아닌 또 다른 슬픔을 기억하기 위해서도 모이는 장소가 되었다. 사라지지 않고 우리 주변을 배회하는 모든 기억들이 모이는 기억의 광장이 된 것이다.
▲ 세월호의 슬픔을 표현한 그림들이 광장에 설치되었다. ⓒ조온윤
하지만 그건 결코 좋은 일만은 아닐 것이다. 사람들이 불현듯 이곳 광장에 서글픈 표정을 하고 모인다는 건 달력 위에 슬픔으로 기억될 날짜가 늘었다는 것이고, 그 숫자는 결코 달력 위에서 지워지지 않고 해마다 우릴 찾아올 테니까. 몇 달 몇 년의 시간이 지난다 해도 그 숫자는 우리의 기억을 그 날 그 곳으로 회귀하게 만들 것이다.
▲ 세월호 유족들의 슬픔을 표현한 그림 ⓒ조온윤
3·1절, 학생독립운동기념일, 5·18민주항쟁과 4월 16일 세월호 참사까지. 우리에게는 잊지 말아야 할 아픈 역사가 많다. 이렇게 무수한 기념일들에 눌려버린 어떤 이들은 언제까지 세월호에 슬퍼해야 하냐며 지겨움을 토로하기도 한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달력은 영원히 반복되고 우리 주변엔 아직도 눈가에 눈물이 마르지 않은 사람이 있는 것을. 그 사람과 우리가 같은 땅 위에서 같은 시간 속을 함께 살아가고 있는 것을. 우리에게 남은 숙제가 있다면 그것은 기억을 지겨워하지 않는 것이다. 기억이 아프고 지겹다는 이유로 아무것도 기억하지 않을 것인가, 아니면 아픔을 끝까지 기억해서 더는 새로운 상처들이 달력 위에 새겨지지 않게 할 것인가. 5년 전의 기억이 2019년 4월 16일의 우리에게 묻고 있다.
모든 기억이 모이는 광장
광주광역시 동구 5·18민주광장
인문쟁이 조온윤
2019-05-24
달력은 반복된다. 헤라클레이토스에게 똑같은 강물이란 있을 수 없고 매일 매일이 전혀 새로운 날이겠지만, 어찌됐든 달력은 반복된다. 친구와 가족의 생일, 혹은 기일, 결혼기념일, 크리스마스, 하루 하루 그 의미를 더해가는 1일, 100일, 200일… 어쩌면 우리는 알게 모르게 매일을 기념일 속에서 살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지금도 누군가는 부러 조명을 내린 식탁 앞에서 기념 초를 후, 하고 불어 끄고 있을지도. 식탁에 함께 둘러앉은 이들의 박수소리를 받으며 진행되고 있을 그 사람의 의식은 해를 바꿔 내년에도 반복될 것이다.
우리의 달력 위엔 어떤 날들이 새겨져 있을까
▲ 5·18민주광장은 옛 전남도청 건물 앞에 위치해 있다. ⓒ조온윤
1년이라는 주기를 두고 반복되는 달력은 인간의 기억 또한 같은 주기를 갖게 만든다. 우리는 매년 모월 모일이 되면 서랍을 뒤지듯 기억을 더듬어 그때의 일들을 추억하곤 한다. 그 서랍은 오래될 대로 오래되어서 꺼내야 할 것들이 넘치도록 많다. 앞서 말한 것처럼 매일을 기념하면서 살아가야 할지도 모르는 것이다. 지금 우리가 2019년이라는 같은 시간을 살아가고 있다면 결코 잊지 말아야 할 중요한 날들이 있다. 그 중 하나가 4월 16일이다.
▲ 세월호를 기억하려는 시민들이 5·18민주광장으로 모였다. ⓒ조온윤
봄이 되면서 5·18민주광장은 바빠졌다. 지난 3월에는 3·1운동 100주년을 맞은 기념행사가 이곳에서 이뤄졌고, 다음 달인 5월에는 39주년을 맞은 5·18광주민주항쟁 기념행사도 마찬가지로 이곳에서 진행된다. 그리고 세월호 참사의 희생자들이 세상을 떠난 지 꼭 5년이 된 올해 4월 16일, 5·18민주광장에는 5년 전 그날을 기억하고자 노란 조끼를 입고 노란 풍선을 든 사람들이 모여 광장을 온통 노란 빛으로 물들였다.
▲ 구명조끼 모양을 본뜬 천 조끼 위에 메시지를 새긴 작품들이 전시되었다. ⓒ조온윤
추모행사에는 광주의 시민단체와 예술인들이 공연과 전시작품을 준비해 시민들과 함께 세월호의 슬픔을 기리는 시간을 가졌다. 오후 6시에는 민주광장에 모인 시민들이 노란 풍선을 들고 광주 금남로 일대를 순례하고 돌아오는 퍼포먼스도 진행됐다. 순례에 참여하지 않은 시민들도 행렬에 기꺼이 차를 멈추고 옆으로 길을 터주면서 세월호 참사와 희생자들을 기억하자는 추모행사를 지지해주었다.
민주항쟁부터 세월호까지, 기억의 광장
▲ 노란 풍선을 들고 금남로 일대를 행진하는 순례 퍼포먼스도 진행됐다. ⓒ조온윤
5·18민주광장은 그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아픈 역사가 있는 장소다. 그래서 광주의 시민들은 5월이 되면 이곳에 모여 그날의 아픔을 기억하기 시작했고, 몇 해 전부터는 5월이 아닌 또 다른 슬픔을 기억하기 위해서도 모이는 장소가 되었다. 사라지지 않고 우리 주변을 배회하는 모든 기억들이 모이는 기억의 광장이 된 것이다.
▲ 세월호의 슬픔을 표현한 그림들이 광장에 설치되었다. ⓒ조온윤
하지만 그건 결코 좋은 일만은 아닐 것이다. 사람들이 불현듯 이곳 광장에 서글픈 표정을 하고 모인다는 건 달력 위에 슬픔으로 기억될 날짜가 늘었다는 것이고, 그 숫자는 결코 달력 위에서 지워지지 않고 해마다 우릴 찾아올 테니까. 몇 달 몇 년의 시간이 지난다 해도 그 숫자는 우리의 기억을 그 날 그 곳으로 회귀하게 만들 것이다.
▲ 세월호 유족들의 슬픔을 표현한 그림 ⓒ조온윤
3·1절, 학생독립운동기념일, 5·18민주항쟁과 4월 16일 세월호 참사까지. 우리에게는 잊지 말아야 할 아픈 역사가 많다. 이렇게 무수한 기념일들에 눌려버린 어떤 이들은 언제까지 세월호에 슬퍼해야 하냐며 지겨움을 토로하기도 한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달력은 영원히 반복되고 우리 주변엔 아직도 눈가에 눈물이 마르지 않은 사람이 있는 것을. 그 사람과 우리가 같은 땅 위에서 같은 시간 속을 함께 살아가고 있는 것을. 우리에게 남은 숙제가 있다면 그것은 기억을 지겨워하지 않는 것이다. 기억이 아프고 지겹다는 이유로 아무것도 기억하지 않을 것인가, 아니면 아픔을 끝까지 기억해서 더는 새로운 상처들이 달력 위에 새겨지지 않게 할 것인가. 5년 전의 기억이 2019년 4월 16일의 우리에게 묻고 있다.
○ 공간 정보
주소 : 광주광역시 동구 금남로 245 5.18민주광장
○ 사진 촬영_조온윤
2019 [인문쟁이 5기]
생활 속에서 틈틈이 시를 쓰며 지냅니다. 시끄러운 곳보다 조용한 곳을 좋아합니다. 움직이는 것보다 가만히 멈춰있는 것을 좋아합니다. 침묵과 정지. 그런 것들을 지키며 살아가고 싶습니다.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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