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사건이 있다. 이 사건은 누구나 겪을 수 있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그럴 수도 있지’ 하며 지나친다. 아니면 사건의 당연함에 고개를 끄덕이며 기억에서 지운다. 그런 것들에게 우리는 ‘평범’이라는 단어를 붙일 것이다. 하지만 작가들은 다르다. 평범한 사건에도 신경을 세운다. 그리고 자신만의 시선으로 재해석하려고 한다.
재해석과정은 우리에게 낯섦으로 다가온다. 낯섦은 미술에서 즐거움이기도 하다. ‘낯설기에 재밌다’ 라는 말은 미술에서 아니 예술에서 결코 어색한 표현이 아니다. 이러한 평범과 낯섦이 어울리는 시선을 느낄 수 있는 전시회가 준비되어 있다. 또 하나, 전시회는 단순히 낯섦만 웅크리고 있지 않다. 젊고 새로운 감각들도 함께 한다. 대전시립미술관에서 20년째 진행하고 있는 청년작가지원전, <넥스트코드 2019>이다.
문을 열면 백남준의 「프랙탈 거북선(Fractal Turtleship)」이 맞이한다. 다시 불을 붙인 형형색색 거북선은 대전시립미술관에 젊은 감각들이 도사리고 있음을 직감하게 한다. 거북선 좌측 1전시실에도 낯선 감각을 만날 수 있다는 기대를 하게 만든다.
의외로 전시실의 주제는 평범한 것 같다. 자연을 그리거나 찍은 작가들의 작품이다. 폭력적인 행위들이 주제가 된 2, 3전시실에 비하면 1전시실은 평화로운 제목들의 연속이다. 산, 나무 강. 진경산수화나 풍경화로 가득한 전시실일 것만 같다.
장재민 작가의 작품 앞에 서면 그런 기대는 거부당한다. 강과 바위, 강물을 그린 듯한 풍경화는 초점이 흔들린 사진처럼 일그러져 있다. 우리는 잔잔한 풍경에서 일그러짐을 본다. 다시 말해 일상적이지만 평화롭지 않다. 여기서 장재민 작가가 그린 공간의 공통점을 볼 수 있다. 도시가 아니다. 사람이 적다. 외곽이다. 소외되었다. 아무도 없다 또는 그림을 그리는 나밖에 없다.
그가 그리는 풍경은 고립된 사각지대의 공간이다. 누구도 기억하지 않는 황량한 풍경을 그림에서마저 기억하지 못하게 일그러트리고 있다. 상실과 소실의 장소는 풍경화와 추상화의 중간지점에 절묘하게 걸쳐있다. 이런 모습은 작품의 제목에서도 드러난다. <비린 곳>, <어떤 곳>, <자갈과 나무>, <나무 밤>과 같은 제목은 구체적인 지명을 제시하지 않는다. 그림처럼 소멸의 중간에서 그 흔적을 대변할 뿐이다.
▲ 정재민 작가에겐 인물도 풍경의 일부이다 ⓒ정재민, 촬영_노예찬
언뜻 사람은 그림에 없다. 하지만 분명 존재한다. 이미 흔적이 된 사람은 사람이라 할 수 없다. 작가는 오히려 인물이 아닌 나무를 자화상이라고 이야기한다. 소멸의 풍경 자체를 하나의 유기체로 여기고 자신의 표현으로 승화시킨 것이다. 장재민 작가의 작품을 재미있게 읽는 방법은 흩날림과 소외, 소멸에 있다. 모두가 알고 있을 만큼 평범한 풍경이지만 중요한 사실을 조명하고 있다. 잊히고 있는 사람들과 잊히고 있는 풍경들이다. 잊힘을 그림으로써 평범한 풍경은 새로운 주제와 생명력을 얻게 된다.
▲ 그림의 거친 붓질을 느낄 수 있다 ⓒ정재민, 촬영_노예찬
▲ ⓒ정재민, 촬영_노예찬
김재연의 씨, 생명력 그리고 나(自己)
▲ ⓒ정재민, 촬영_노예찬
이어지는 공간에는 김재연 작가의 작품이 함께한다. 같은 전시실의 작품인 만큼 자연을 찍은 사진에 눈길이 간다. 멀리서 보면 산에서 찍은 사진들 같지만 가까이서 보면 일반적인 풍경이 아니다. 사진에는 씨앗이 스캔되어 있다. 어색한 듯 조화로운 씨앗들의 조화는 새로운 감각을 느끼게 해준다.
<0g Drawing>이라는 제목을 달고 있는 사진들은 약 25종의 씨앗을 채집하고 이를 필름과 중첩한 상태로 이미지를 구현한다. 씨앗은 어떠한 무게를 지니지 않지만 응축된 생명력을 지녔다. 이를 풍경과 조합시킬 때 씨앗은 불꽃처럼 타오르는 이미지를 갖게 된다. 사진에서 보이는 씨앗은 씨앗이라고 호명하지 않으면 평범하게 보이지 않는다. 누군가 불꽃을 피운 것처럼 강렬하다. 작가는 민들레 홀씨처럼 평범하지만, 잊혀가는 생명력에 관심을 보인다.
그리고 자기(自己)의 생(生)을 작품으로 표현한다. 작가, 작품설명 옆에 있는 <4810days>는 두 장이 하나의 작업으로 구성되는 딥틱(diptych)형식을 사용한다. 재밌는 것은 공통된 비교이다. 출생증명서로 대표되는 육아는 잊혀가는 어린 시절을, 농산물로 대표되는 농사 역시 잊히는 지점들을 중첩하고 있다. 작가는 흘러가는 것들, 너무 가벼워 눈에 띄지 않은 것들, 이미 사라져버린 것들에 독특한 시선을 통해 재조명하고 있다. 작가의 시선은 교묘히 조작되어 있지만, 사진 안에서 피어오르는 따뜻함은 왜곡됨이 없다. 있는 그대로, 생명의 날것이 그대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오늘도 초심을 잡는다. 나는 왼쪽이 현저하게 부족했지만, 그것은 나를 잘 알고 있었다. 왼손은 조금씩 나의 오른손을 파고들었다. 나의 두 손이 깍지를 낀 것 처럼, 아무런 느낌없이. 처음에 대한 생각에 빠져들어야만 했다. 그러니까. 더 많이 보고, 많이 듣고, 많이 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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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시선 모음 : 진실을 닮은 조각Ⅰ
대전시립미술관, 청년작가지원전 넥스트코드 2019
인문쟁이 노예찬
2019-05-13
▲ 넥스트코드 2019 ©노예찬
평범한 사건이 있다. 이 사건은 누구나 겪을 수 있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그럴 수도 있지’ 하며 지나친다. 아니면 사건의 당연함에 고개를 끄덕이며 기억에서 지운다. 그런 것들에게 우리는 ‘평범’이라는 단어를 붙일 것이다. 하지만 작가들은 다르다. 평범한 사건에도 신경을 세운다. 그리고 자신만의 시선으로 재해석하려고 한다.
재해석과정은 우리에게 낯섦으로 다가온다. 낯섦은 미술에서 즐거움이기도 하다. ‘낯설기에 재밌다’ 라는 말은 미술에서 아니 예술에서 결코 어색한 표현이 아니다. 이러한 평범과 낯섦이 어울리는 시선을 느낄 수 있는 전시회가 준비되어 있다. 또 하나, 전시회는 단순히 낯섦만 웅크리고 있지 않다. 젊고 새로운 감각들도 함께 한다. 대전시립미술관에서 20년째 진행하고 있는 청년작가지원전, <넥스트코드 2019>이다.
▲ 1전시실 전경 ©노예찬
정재민의 산, 나무, 낚시터 그리고 사람
문을 열면 백남준의 「프랙탈 거북선(Fractal Turtleship)」이 맞이한다. 다시 불을 붙인 형형색색 거북선은 대전시립미술관에 젊은 감각들이 도사리고 있음을 직감하게 한다. 거북선 좌측 1전시실에도 낯선 감각을 만날 수 있다는 기대를 하게 만든다.
의외로 전시실의 주제는 평범한 것 같다. 자연을 그리거나 찍은 작가들의 작품이다. 폭력적인 행위들이 주제가 된 2, 3전시실에 비하면 1전시실은 평화로운 제목들의 연속이다. 산, 나무 강. 진경산수화나 풍경화로 가득한 전시실일 것만 같다.
장재민 작가의 작품 앞에 서면 그런 기대는 거부당한다. 강과 바위, 강물을 그린 듯한 풍경화는 초점이 흔들린 사진처럼 일그러져 있다. 우리는 잔잔한 풍경에서 일그러짐을 본다. 다시 말해 일상적이지만 평화롭지 않다. 여기서 장재민 작가가 그린 공간의 공통점을 볼 수 있다. 도시가 아니다. 사람이 적다. 외곽이다. 소외되었다. 아무도 없다 또는 그림을 그리는 나밖에 없다.
그가 그리는 풍경은 고립된 사각지대의 공간이다. 누구도 기억하지 않는 황량한 풍경을 그림에서마저 기억하지 못하게 일그러트리고 있다. 상실과 소실의 장소는 풍경화와 추상화의 중간지점에 절묘하게 걸쳐있다. 이런 모습은 작품의 제목에서도 드러난다. <비린 곳>, <어떤 곳>, <자갈과 나무>, <나무 밤>과 같은 제목은 구체적인 지명을 제시하지 않는다. 그림처럼 소멸의 중간에서 그 흔적을 대변할 뿐이다.
▲ 정재민 작가에겐 인물도 풍경의 일부이다 ⓒ정재민, 촬영_노예찬
언뜻 사람은 그림에 없다. 하지만 분명 존재한다. 이미 흔적이 된 사람은 사람이라 할 수 없다. 작가는 오히려 인물이 아닌 나무를 자화상이라고 이야기한다. 소멸의 풍경 자체를 하나의 유기체로 여기고 자신의 표현으로 승화시킨 것이다. 장재민 작가의 작품을 재미있게 읽는 방법은 흩날림과 소외, 소멸에 있다. 모두가 알고 있을 만큼 평범한 풍경이지만 중요한 사실을 조명하고 있다. 잊히고 있는 사람들과 잊히고 있는 풍경들이다. 잊힘을 그림으로써 평범한 풍경은 새로운 주제와 생명력을 얻게 된다.
▲ 그림의 거친 붓질을 느낄 수 있다 ⓒ정재민, 촬영_노예찬
▲ ⓒ정재민, 촬영_노예찬
김재연의 씨, 생명력 그리고 나(自己)
▲ ⓒ정재민, 촬영_노예찬
이어지는 공간에는 김재연 작가의 작품이 함께한다. 같은 전시실의 작품인 만큼 자연을 찍은 사진에 눈길이 간다. 멀리서 보면 산에서 찍은 사진들 같지만 가까이서 보면 일반적인 풍경이 아니다. 사진에는 씨앗이 스캔되어 있다. 어색한 듯 조화로운 씨앗들의 조화는 새로운 감각을 느끼게 해준다.
<0g Drawing>이라는 제목을 달고 있는 사진들은 약 25종의 씨앗을 채집하고 이를 필름과 중첩한 상태로 이미지를 구현한다. 씨앗은 어떠한 무게를 지니지 않지만 응축된 생명력을 지녔다. 이를 풍경과 조합시킬 때 씨앗은 불꽃처럼 타오르는 이미지를 갖게 된다. 사진에서 보이는 씨앗은 씨앗이라고 호명하지 않으면 평범하게 보이지 않는다. 누군가 불꽃을 피운 것처럼 강렬하다. 작가는 민들레 홀씨처럼 평범하지만, 잊혀가는 생명력에 관심을 보인다.
그리고 자기(自己)의 생(生)을 작품으로 표현한다. 작가, 작품설명 옆에 있는 <4810days>는 두 장이 하나의 작업으로 구성되는 딥틱(diptych)형식을 사용한다. 재밌는 것은 공통된 비교이다. 출생증명서로 대표되는 육아는 잊혀가는 어린 시절을, 농산물로 대표되는 농사 역시 잊히는 지점들을 중첩하고 있다. 작가는 흘러가는 것들, 너무 가벼워 눈에 띄지 않은 것들, 이미 사라져버린 것들에 독특한 시선을 통해 재조명하고 있다. 작가의 시선은 교묘히 조작되어 있지만, 사진 안에서 피어오르는 따뜻함은 왜곡됨이 없다. 있는 그대로, 생명의 날것이 그대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 ⓒ정재민, 촬영_노예찬
▲ ⓒ정재민, 촬영_노예찬
○ 전시
전시명 : 넥스트코드 2019
기간 : 2019. 4. 9.(화) ~ 2019. 5. 19.(일)
○ 공간정보
주소 : 대전광역시 서구 둔산대로 155(만년동) 대전시립미술관
운영시간 : 10:00 ~ 19:00 *월요일 휴관
○ 관련링크
홈페이지 : http://dmma.daejeon.go.kr
오시는길 : http://bitly.kr/OHgzhc
○ 사진 촬영_노예찬
장소 정보
2019 [인문쟁이 5기]
오늘도 초심을 잡는다. 나는 왼쪽이 현저하게 부족했지만, 그것은 나를 잘 알고 있었다. 왼손은 조금씩 나의 오른손을 파고들었다. 나의 두 손이 깍지를 낀 것 처럼, 아무런 느낌없이. 처음에 대한 생각에 빠져들어야만 했다. 그러니까. 더 많이 보고, 많이 듣고, 많이 쓰자.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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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쓰는 잡동산이
인문쟁이 김경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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