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필인물화를 그리고 삶의 활력을 찾았어요. 잊고 살았던 그림의 꿈도 찾고, 또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줄 수 있으니 얼마나 좋아요?”
평균 수명 100세를 바라보는 시대. 퇴직 이후의 삶에 대해 고민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여기 60세에 회사를 퇴직하고 잊고 있던 꿈을 찾아 이웃에게도 그 기쁨을 나누는, 새로운 인생 2막을 연 이가 있다. 연필인물화를 배우고 이웃에게 인물화를 그려주고 있는 송용준 씨.
막연히 꿈꾸던 화가의 꿈을 이루다
송용준 씨가 본격적으로 그림을 배우기 시작한 것은 10여년 전부터이다. 퇴직 후 남은 생을 무엇을 하며 어떻게 살아갈까 고민하던 차, 주민자치센터에서 운영하는 연필인물화 과정이 눈에 띄었다. 어려서부터 친구들과 주변 사람들에게 그림 솜씨를 인정받았기에 그림에는 자신 있었다. 연필인물화 교실을 찾아 그림을 그려보니 잊고 있던 학창시절의 열정이 되살아났다.
“연필화를 배우다 보니, 노트에 끄적끄적하고 있으면 친구들이 ‘잘 그린다’ 칭찬해주던 옛 기억이 떠올랐어요.
내가 막연히 화가에 대한 꿈이 있었는데 먹고 사는 게 바빠 잊고 지냈지 뭐.”
먹고 사는 것이 우선이었던 시절, 화가가 된다는 것은 쉽게 꿈꿀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보통의 아버지들처럼 성실하게 가장으로서 살아온 40여년, 이제야 비로소 본인을 생각하는 삶을 살 수 있게 되었다. 잊고 있던 그림이라는 꿈을 다시 찾고 그는 하루하루가 행복하다. 화방에 들러 물건들을 둘러보고 필요한 화구를 사는 일은 평범한 일상이 되었다.
“아주 재미있어요. 매일 매일 그려요. 이젤이 항상 내 방에 펼쳐져 있어요. 방을 오가며 그리고 자다 깨서 잠이 오지 않을 때도 그려요.”
벌써 연필화를 배운지 10여년 남짓, 몰두해서 그릴 때는 하루 2~3시간도 거뜬했다. 그가 주로 그리는 것은 초상화. 그중에서도 연필로만 그리는 세밀화다. 머리카락 한올, 주름 하나까지 자세히 묘사하다 보니 엄청난 섬세함이 요구된다. 젊은 사람들도 2시간씩 앉아 집중한다는 것은 절대 쉽지 않다. 그러다 보니 요즘은 점점 시력도 떨어지고 허리도 아파 30분~1시간씩 틈틈이 이젤 앞을 찾는다. 그렇게 인물화 하나를 완성하는 데 일주일에서 열흘 정도 걸린다. 그래도 더 오래 더 많이 그리고 싶은 마음에 걷기 운동은 매일 빼놓지 않는다고.
“처음에는 광고 사진을 보고 인물화를 그렸어요. 그러다 주변 사람들을 그려주기 시작했고,
한 명 그려주면 알음알음 여기저기서 그려달라고 찾아오고 그랬죠”
인물화를 그리다 보니 모델은 필수. 그림을 배우던 시절에는 신문이나 잡지 속의 광고 사진을 보고 그렸다. 그런데 막상 자주 보는 가족들의 얼굴은 몇 번 그려본 적 없단다.
“손자, 손녀는 많이 그려줬는데 아들이나 며느리는 쑥스러워 그런가 자주 봐서 그런가 잘 안 그리게 되네.”
이제는 그림을 부탁하는 이가 많아 진득하게 가족의 얼굴을 보며 그릴 새가 없어 아쉬우신 모양이다.
더 큰 기쁨으로 돌아오는 재능기부
그의 그림을 찾는 이가 많아진 것은 의왕 사랑채노인복지관을 통해 인물화 재능기부를 시작하면서부터이다. 복지관을 통해서 의뢰받은 인물화를 그려주는 봉사를 하고 있다. 노인복지관의 회원들이나 관내 어린이집의 어린이들이 그의 모델이다.
“요구하는 조건이 다 똑같아요. 젊게 그려달래. (웃음) 최대한 젊게 주름 없이 예쁘게 그리고 있어요. 가장 공을 들이는 부분은 눈이에요. 코나 입을 가려도 눈을 보면 누군지 알 수 있잖아요. 사람의 인상을 좌우하는 게 눈이니까. 눈이 생각대로 잘 표현될 때 기분이 좋아요.”
그의 휴대폰 속에는 그가 그린 많은 그림이 들어있다. 그림은 주인공에게 전달하고, 그 기록은 사진으로 남겨 가끔 들춰 보는 것 또한 그의 또 다른 기쁨이다.
좋아서 그리는 그림이기에 돈을 받는다는 건 생각해 본 적 없단다. 그림을 부탁하는 지인들에게는 그래도 가끔 소주 한 병, 국밥 한 그릇 얻어먹는다지만, 복지관을 통해 의뢰받은 사람들은 그림을 복지관에 전달하고 나면 끝이란다. 한사코 사례하겠다는 사람에게도 문자 한 통이면 족하다고 말하는 그다.
“사례비나 이런 건 전혀 받지 않아요. 내가 기뻐서 하는걸. 재능기부지 뭐.”
복지관을 통해 재능기부를 한 지 벌써 7년 남짓 되었다. 정확하게 헤아릴 수는 없지만, 그가 그려준 사람만 150명 정도 된다. 다양한 사람들의 얼굴만큼 다양한 사연도 만난다고.
“내 또래의 남성이 색이 다 바랜 흑백사진을 들고 와서 그려달라고 한 적이 있어요. 그 사진이 누군가 하니 일찍 돌아가셔서 얼굴도 모르는 아버지라는 거예요. 더 정성을 들여 그려 드렸죠. 빛이 바래 머리 모양이 잘 안 보여서 반듯하게 그려서 보여드렸는데 아버님 머리가 본인처럼 곱슬이시라고. 그래서 머리 모양을 고쳐서 그려드렸어요. 그 그림을 보신 연로하신 그 분의 어머님께서 ‘어쩜 이렇게 똑같이 잘 그렸냐’고 참 많이 좋아하셨더라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인생사를 다 담고 있는 얼굴이니 그 안에 담긴 사연도 끝이 없다. 누군가에게 감동을 주는 일이기에 힘이 들어도 그는 인물화를 그만둘 수 없다.
어린이집에서 의뢰받은 어린이들을 그릴 때는 더 재미있다. 아이들의 맑은 눈이 잘 표현될 때는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하고, 저마다 가지고 있는 아이들의 다채로운 표정과 빛은 그를 더 힘 나게 한다.
“어린아이들은 눈이 맑고 초롱초롱해요. 그래서 더 그리는 재미가 있어요. 그냥 봐도 예쁘잖아요.
밝고 환한 모습을 보면 그림 그릴 때도 행복해져요. 그 부모님들도 좋아하시고 고맙다 할 때 참 보람을 느끼죠.”
어차피 그리는 그림이고 잡지나 사진 속의 모델 등 재능기부가 아니더라도 그릴 거리가 많지만 그림이 완성되었을 때 웃으며 좋아하는 사람들의 표정이 더 좋아서, 그들과의 소통이 더 그를 기쁘게 만들기 때문에 그는 시력과 체력이 다하는 한 그림을, 재능기부를 계속해 나갈 예정이다.
“수채화를 그려볼까도 생각해봤는데 물통이나 붓, 물감 이런 것들이 너무 번거로워요.
연필이랑 종이만 있으면 어디서든 그릴 수 있는 연필화가 좋아요.”
연필과 흰 종이. 본인과 다른 사람들 모두에게 만족을 주기에 이 단조로운 재료면 충분하다. 그 안에 담긴 그의 노력과 열정, 그의 그림을 보고 행복해하는 사람들의 기쁨은 결코 단조롭지 않기에…
늦게 피는 꽃이 더 아름답다 했던가. 오래전 꾸었던 꿈을 이루고 또 다른 이들의 얼굴에 웃음을 주는 송용준 씨의 얼굴이 그가 그린 그림 속의 어린이들처럼 맑고 행복해 보이는 것은 기분 탓만은 아니리라.
“내가 조금만 더 일찍 시작했으면 피카소처럼 유명해졌을 거라고 우스갯 소리로 하지만 지금 이렇게 즐겁게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삶에 만족합니다. 틈틈이 그림 그리고 사람들 만나면서 술 한잔 기울이며 그림에 담긴 사연에 관해 이야기하고. 이보다 더 재미있을 수는 없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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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왕] 하얀 종이에 연필로 그리는 꿈과 나눔
연필인물화 그리며 봉사하는 송용준 씨
홍노을
2019-03-29
“연필인물화를 그리고 삶의 활력을 찾았어요. 잊고 살았던 그림의 꿈도 찾고, 또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줄 수 있으니 얼마나 좋아요?”
평균 수명 100세를 바라보는 시대. 퇴직 이후의 삶에 대해 고민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여기 60세에 회사를 퇴직하고 잊고 있던 꿈을 찾아 이웃에게도 그 기쁨을 나누는, 새로운 인생 2막을 연 이가 있다. 연필인물화를 배우고 이웃에게 인물화를 그려주고 있는 송용준 씨.
막연히 꿈꾸던 화가의 꿈을 이루다
송용준 씨가 본격적으로 그림을 배우기 시작한 것은 10여년 전부터이다. 퇴직 후 남은 생을 무엇을 하며 어떻게 살아갈까 고민하던 차, 주민자치센터에서 운영하는 연필인물화 과정이 눈에 띄었다. 어려서부터 친구들과 주변 사람들에게 그림 솜씨를 인정받았기에 그림에는 자신 있었다. 연필인물화 교실을 찾아 그림을 그려보니 잊고 있던 학창시절의 열정이 되살아났다.
“연필화를 배우다 보니, 노트에 끄적끄적하고 있으면 친구들이 ‘잘 그린다’ 칭찬해주던 옛 기억이 떠올랐어요.
내가 막연히 화가에 대한 꿈이 있었는데 먹고 사는 게 바빠 잊고 지냈지 뭐.”
먹고 사는 것이 우선이었던 시절, 화가가 된다는 것은 쉽게 꿈꿀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보통의 아버지들처럼 성실하게 가장으로서 살아온 40여년, 이제야 비로소 본인을 생각하는 삶을 살 수 있게 되었다. 잊고 있던 그림이라는 꿈을 다시 찾고 그는 하루하루가 행복하다. 화방에 들러 물건들을 둘러보고 필요한 화구를 사는 일은 평범한 일상이 되었다.
“아주 재미있어요. 매일 매일 그려요. 이젤이 항상 내 방에 펼쳐져 있어요. 방을 오가며 그리고 자다 깨서 잠이 오지 않을 때도 그려요.”
벌써 연필화를 배운지 10여년 남짓, 몰두해서 그릴 때는 하루 2~3시간도 거뜬했다. 그가 주로 그리는 것은 초상화. 그중에서도 연필로만 그리는 세밀화다. 머리카락 한올, 주름 하나까지 자세히 묘사하다 보니 엄청난 섬세함이 요구된다. 젊은 사람들도 2시간씩 앉아 집중한다는 것은 절대 쉽지 않다. 그러다 보니 요즘은 점점 시력도 떨어지고 허리도 아파 30분~1시간씩 틈틈이 이젤 앞을 찾는다. 그렇게 인물화 하나를 완성하는 데 일주일에서 열흘 정도 걸린다. 그래도 더 오래 더 많이 그리고 싶은 마음에 걷기 운동은 매일 빼놓지 않는다고.
“처음에는 광고 사진을 보고 인물화를 그렸어요. 그러다 주변 사람들을 그려주기 시작했고,
한 명 그려주면 알음알음 여기저기서 그려달라고 찾아오고 그랬죠”
인물화를 그리다 보니 모델은 필수. 그림을 배우던 시절에는 신문이나 잡지 속의 광고 사진을 보고 그렸다. 그런데 막상 자주 보는 가족들의 얼굴은 몇 번 그려본 적 없단다.
“손자, 손녀는 많이 그려줬는데 아들이나 며느리는 쑥스러워 그런가 자주 봐서 그런가 잘 안 그리게 되네.”
이제는 그림을 부탁하는 이가 많아 진득하게 가족의 얼굴을 보며 그릴 새가 없어 아쉬우신 모양이다.
더 큰 기쁨으로 돌아오는 재능기부
그의 그림을 찾는 이가 많아진 것은 의왕 사랑채노인복지관을 통해 인물화 재능기부를 시작하면서부터이다. 복지관을 통해서 의뢰받은 인물화를 그려주는 봉사를 하고 있다. 노인복지관의 회원들이나 관내 어린이집의 어린이들이 그의 모델이다.
“요구하는 조건이 다 똑같아요. 젊게 그려달래. (웃음) 최대한 젊게 주름 없이 예쁘게 그리고 있어요. 가장 공을 들이는 부분은 눈이에요. 코나 입을 가려도 눈을 보면 누군지 알 수 있잖아요. 사람의 인상을 좌우하는 게 눈이니까. 눈이 생각대로 잘 표현될 때 기분이 좋아요.”
그의 휴대폰 속에는 그가 그린 많은 그림이 들어있다. 그림은 주인공에게 전달하고, 그 기록은 사진으로 남겨 가끔 들춰 보는 것 또한 그의 또 다른 기쁨이다.
좋아서 그리는 그림이기에 돈을 받는다는 건 생각해 본 적 없단다. 그림을 부탁하는 지인들에게는 그래도 가끔 소주 한 병, 국밥 한 그릇 얻어먹는다지만, 복지관을 통해 의뢰받은 사람들은 그림을 복지관에 전달하고 나면 끝이란다. 한사코 사례하겠다는 사람에게도 문자 한 통이면 족하다고 말하는 그다.
“사례비나 이런 건 전혀 받지 않아요. 내가 기뻐서 하는걸. 재능기부지 뭐.”
복지관을 통해 재능기부를 한 지 벌써 7년 남짓 되었다. 정확하게 헤아릴 수는 없지만, 그가 그려준 사람만 150명 정도 된다. 다양한 사람들의 얼굴만큼 다양한 사연도 만난다고.
“내 또래의 남성이 색이 다 바랜 흑백사진을 들고 와서 그려달라고 한 적이 있어요. 그 사진이 누군가 하니 일찍 돌아가셔서 얼굴도 모르는 아버지라는 거예요. 더 정성을 들여 그려 드렸죠. 빛이 바래 머리 모양이 잘 안 보여서 반듯하게 그려서 보여드렸는데 아버님 머리가 본인처럼 곱슬이시라고. 그래서 머리 모양을 고쳐서 그려드렸어요. 그 그림을 보신 연로하신 그 분의 어머님께서 ‘어쩜 이렇게 똑같이 잘 그렸냐’고 참 많이 좋아하셨더라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인생사를 다 담고 있는 얼굴이니 그 안에 담긴 사연도 끝이 없다. 누군가에게 감동을 주는 일이기에 힘이 들어도 그는 인물화를 그만둘 수 없다.
어린이집에서 의뢰받은 어린이들을 그릴 때는 더 재미있다. 아이들의 맑은 눈이 잘 표현될 때는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하고, 저마다 가지고 있는 아이들의 다채로운 표정과 빛은 그를 더 힘 나게 한다.
“어린아이들은 눈이 맑고 초롱초롱해요. 그래서 더 그리는 재미가 있어요. 그냥 봐도 예쁘잖아요.
밝고 환한 모습을 보면 그림 그릴 때도 행복해져요. 그 부모님들도 좋아하시고 고맙다 할 때 참 보람을 느끼죠.”
어차피 그리는 그림이고 잡지나 사진 속의 모델 등 재능기부가 아니더라도 그릴 거리가 많지만 그림이 완성되었을 때 웃으며 좋아하는 사람들의 표정이 더 좋아서, 그들과의 소통이 더 그를 기쁘게 만들기 때문에 그는 시력과 체력이 다하는 한 그림을, 재능기부를 계속해 나갈 예정이다.
“수채화를 그려볼까도 생각해봤는데 물통이나 붓, 물감 이런 것들이 너무 번거로워요.
연필이랑 종이만 있으면 어디서든 그릴 수 있는 연필화가 좋아요.”
연필과 흰 종이. 본인과 다른 사람들 모두에게 만족을 주기에 이 단조로운 재료면 충분하다. 그 안에 담긴 그의 노력과 열정, 그의 그림을 보고 행복해하는 사람들의 기쁨은 결코 단조롭지 않기에…
늦게 피는 꽃이 더 아름답다 했던가. 오래전 꾸었던 꿈을 이루고 또 다른 이들의 얼굴에 웃음을 주는 송용준 씨의 얼굴이 그가 그린 그림 속의 어린이들처럼 맑고 행복해 보이는 것은 기분 탓만은 아니리라.
“내가 조금만 더 일찍 시작했으면 피카소처럼 유명해졌을 거라고 우스갯 소리로 하지만 지금 이렇게 즐겁게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삶에 만족합니다. 틈틈이 그림 그리고 사람들 만나면서 술 한잔 기울이며 그림에 담긴 사연에 관해 이야기하고. 이보다 더 재미있을 수는 없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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