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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 속 작은 공간에서 찾은 보물

건입박물관, 한라마을작은도서관

인문쟁이 양혜영

2019-03-19

학창시절, 소풍이 다가오면 가장 기다려지던 것은 다름 아닌 보물찾기였다. 수풀 속이나 돌담 아래 숨겨진 쪽지를 찾으면 사탕과 공책을 받을 수 있었다. 어른이 된 지금, 오래된 골목에 들어서면 소풍 전날의 설렘이 떠오르곤 한다. 자동차가 붐비는 도로를 조금 벗어났을 뿐인데, 골목 곳곳에 잊고 있던 기억이 보물 쪽지처럼 숨어 있다 나타나 어린 시절로 우리를 이끈다.


건입박물관이 있는 산지로 골목

▲ 건입박물관이 있는 산지로 골목 ⓒ양혜영

 

지역주민의 추억을 모은 건입박물관


건입박물관이 있는 산지로는 제주시에서 가장 먼저 도시화가 진행된 곳이다. 고층 건물이 즐비한 도로를 지나 샛길로 들어서면 일제 강점기의 적산가옥과 언제 만들어졌는지 가늠할 수 없을 만큼 오래된 골목이 나타난다. 그곳에 자리 잡은 건입박물관은 꾸밈없는 옛날 골목과 어울리는 소박한 모습이다.


산지복지회관을 개조해 만든 건입박물관

▲ 산지복지회관을 개조해 만든 건입박물관 ⓒ양혜영


한 번에 찾기 어려울 정도로 작은 입구에 들어서자 난간 위에 걸린 노가 눈에 들어왔다. 한때 제주 바다를 휘젓고 다녔을 노에 깊게 팬 주름이 굴곡진 어부의 삶을 보여주는 듯했다.


좌) 2층 전시실로 향하는 계단, 왼쪽 벽면에 노가 걸려있다. 우)건입박물관 전시실 내부

▲  좌) 2층 전시실로 향하는 계단 / 우)건입박물관 전시실 내부  ⓒ양혜영


2층 전시실에는 쟁기, 보리클, 물레와 같은 농기구를 비롯해 집어등, 그물 밧줄, 유리 부표 등의 어구류와 맷돌, 풍로, 물허벅, 화로 등의 생활용품, 그리고 조선 시대의 교지와 근현대에 발행된 교과서까지 총 130여 점에 이르는 물건이 전시되어 있다.


좌)지역주민의 삶을 엿볼 수 있는 어구 우)물허벅과 제기들

▲ 좌) 지역주민의 삶을 엿볼 수 있는 어구  /  우) 물허벅과 제기들  ⓒ양혜영


건입박물관에 전시된 유물은 모두 지역주민들이 기증한 것이다. 건입동에서 삶을 영위하게 해준 물건들이 사라지는 게 아쉬워 하나씩 모은 것이 지금에 이르렀다. 제주의 다른 박물관들에 비해 전시 규모가 크지는 않지만, 아련한 추억이 담긴 곳이자 옛날 제주 사람들의 생활을 엿볼 수 있는 유익한 공간이다. 


고물을 보물로 만드는 한라마을작은도서관 


건입박물관이 부모님의 삶을 엿보는 듯한 느낌을 준다면, 제주시 삼양에 있는 한라마을작은도서관은 할아버지의 서재를 닮았다. 좁은 오솔길 너머 청색 기와집의 녹슨 문을 열고 들어가자, 오래된 책 냄새와 진한 나무 냄새가 기다렸다는 듯 반겨주었다. 


한라마을작은도서관 외관

▲ 한라마을작은도서관 외관 ⓒ양혜영


한라마을작은도서관 3층의 제주 민속품 전시관에서는 어릴 적 할아버지 집에서 보았던 빨랫방망이와 나막신, 농기구 등을 만날 수 있다. 전시마다 손으로 직접 그린 삽화와 설명이 붙어 있어, 그림일기를 보는 듯 정겨운 모습이었다. 


좌) 한라마을작은도서관 3층의 제주 민속품 전시관  우)직접그린 삽화와 손글씨

▲ 좌) 한라마을작은도서관 3층의 제주 민속품 전시관  / 우) 직접 그린 삽화와 손글씨가 정겹다 ⓒ양혜영

 

건물 1층에서 ‘업사이클링’을 주제로 운영되는 작은도서관에는 신간 도서보다 세월의 흔적이 담긴 헌책이 훨씬 많다. 도서관 중앙에 있는 난로와 피아노는 재활용품센터에서 가져와 수리하고 개조한 것이다. 정원에 있는 스피커와 화분, 시소를 비롯한 놀이시설도 이곳에 오기 전에는 버려진 쓰레기에 불과했다. 이렇듯 한라마을작은도서관에서는 흔한 ‘고물’이 귀한 ‘보물’로 재탄생한다. 


오래된 책이 가득한 도서관 내부 전경

▲  오래된 책이 가득한 한라마을작은도서관 ⓒ양혜영

 

“처음엔 다들 이런 쓰레기로 뭘 하겠냐며 믿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막상 저희가 만든 작품들을 보면 깜짝 놀라곤 하죠. 저희 한라마을작은도서관은 뭐든 상상하는 대로 이뤄지는 곳입니다.”

 한라마을작은도서관의 김동호 관장은 모든 길은 책에서 시작된다는 믿음 하나로 마을도서관을 열었다. 도서관이지만 단순히 책을 읽는 곳이 아니라, 마을과 마을을 연결하고 나아가 전 세계를 잇는 지구의 사랑방을 만드는 것이 그의 꿈이다. 


재탄생한 물건들로 꾸며진 정원

▲ 재탄생한 물건들로 꾸며진 정원 ⓒ양혜영

 

우리네 삶은 골목에서 시작되었다. 오래전 좁은 골목 사이에서 피어난 기억과 꿈이 차곡차곡 쌓여 지금의 우리를 만들었다. 바쁘다는 이유로 잊고 살기 십상이지만, 추억이란 보물은 구불구불 이어진 골목에서 늘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제주의 골목에서 만난 작은 공간들은 그 보물을 소중히 품은 채 묵묵히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 건입박물관 

운영시간 : 10:00~17:00 (월~금) 주말 휴관 

주 소 : 제주시 산지로 5-14 

문 의 : (064) 757-3003 (건입동주민센터)


* 한라마을작은도서관 

 운영시간: 월~일 (휴관일 없음) 

주 소 : 제주시 삼양3동 2505 

문 의 : (064) 722-0567 

Daum cafe.한라마을작은도서관

 

 

장소 정보

  • 건입박물관
  • 한라마을작은도서관
  • 산지로
양혜영
인문쟁이 양혜영

2017,2018 [인문쟁이 3,4기]


양혜영은 제주시 용담동에 살고 거리를 기웃거리며 이야기를 수집한다. 하루라도 책을 보지 않으면 입에 가시가 돋는 희귀병을 앓고 있어 매일 책을 읽고 뭔가를 쓰고 말하는 것을 좋아한다. 소설에만 집중된 편독에서 벗어나 인문의 세계를 배우려고 인문쟁이에 지원했고, 여러 인문공간을 통해 많은 경험과 추억을 쌓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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