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오래전부터 술은 우리의 일상과 함께해왔다. 기쁠 때나 슬플 때, 혹은 축제와 파티 등 사람들이 모이는 곳엔 늘 술이 있었다. 우리는 술을 통해 자신을 내려놓고 허심탄회하게 상대방을 만난다. 술이 없었다면 인간의 삶은 훨씬 더 무미건조했으리라.과거 우리나라 사람들은 집에서 막걸리를 직접 빚어 마시곤 했다. 가정에서의 술 제조가 금지되고, 각종 외국 술이 들어온 후로 인지도가 예전 같지는 않지만, 막걸리는 여전히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전통주다. 유명한 막걸리 브랜드를 비롯해 전국의 무수히 많은 양조장에서는 지금도 다양한 막걸리를 생산하고 있다.
▲양조장과 갤러리카페 외관
얼마 전 경기도 평택에 있는 밝은세상영농조합을 방문해 양조장을 둘러보고 이혜경 대표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어보았다. 현재 이곳에서는 화가 아버지와 패션디자이너 큰딸, 사진작가 둘째 딸, 그리고 요리연구가이자 도예가 어머니가 함께 양조장을 운영 중이다.
세월과 술이 함께 익어가는 양조장
▲마당에 늘어선 장독들
밝은세상영농조합에서 생산하는 술은‘호랑이배꼽 막걸리’와 증류주인‘소호주’단 두 가지다. 양조장에서는 술을 발효시키고, 마당에 늘어선 장독대 안에서는 발효 식초가 익어간다.
▲고택 외부 전경
밝은세상영농조합이 둥지를 튼 이 고택은 1944년에 지은 것으로, 이계송 화백의 아버지가 살다가 물려주신 것이다. 일부분 개보수를 했으나, 문패와 마루 등은 옛 모습 그대로 보존되어있다. 마당에 들어서 위를 올려다보니 하늘이 네모난 액자에 담긴 듯 보인다. 마당 중앙에 설치된 펌프에서는 호랑이배꼽 막걸리를 만드는 천연암반수가 나온다.
▲양조장 외부 전경
고택 바로 옆에 자리 잡은 황토집은 겨울에는 따뜻하고 여름에는 시원한 덕에 발효 공간으로 안성맞춤이다. 아담한 공간 내부에는 막걸리 발효실과 저온 창고, 그리고 증류주를 내리는 기계가 있다. 한여름에는 에어컨을 가동해 온도를 낮추지만, 그 외 계절에는 인위적으로 온도를 조절하지 않는다. 자연스럽게 발효시켜 막걸리의 맛을 완성하려는 양조장 주인장의 철학이 엿보이는 부분이다.
▲ 밝은세상영농조합의 갤러리카페
갤러리카페에서는 호랑이배꼽 막걸리와 소호주를 시음할 수 있고, 구매도 가능하다. 카페 내부에는 이계송 화백의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어 술과 그림을 함께 즐길 수 있다.
느림의 미학으로 빚어지는 막걸리
제품 이름부터 포장 디자인에 이르기까지, 밝은세상영농조합의 술에는 이계송 화백의 아이디어와 손길이 담겨 있다.‘호랑이배꼽 막걸리’는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의 술맛을 재현한다는 뜻에서 지은 이름이다. 또한, 엄마와 자식을 연결하는 배꼽처럼 과거와 현재, 정신과 육체를 잇는 연결고리가 되겠다는 의미도 있다.
평택에서 태어난 이계송 화백은 천연화강암 암반수로 호랑이배꼽 막걸리를 빚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배로 와인을 만들다 배 대신 고향 평택 쌀을 원료로 술을 빚기 시작했다.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은 후에야 생쌀로 빚은 막걸리를 완성할 수 있었다.
▲호랑이배꼽 막걸리
호랑이배꼽 막걸리는 평택 백미 60%, 현미 60%로 이루어진 쌀누룩으로 만들어지며, 아스파탐을 비롯한 인공감미료가 일절 들어가지 않는다. 미네랄이 풍부하고 비옥한 땅에서 자란 평택 쌀은 품질이 우수하고 밥맛이 좋다. 호랑이배꼽 막걸리 한 병이 나오기까지는 약 100일이 걸린다. 먼저 밥을 지은 후 막걸리를 만드는 보통의 양조장과 달리, 이곳에서는 생쌀을 이용해 술을 빚다 보니 훨씬 긴 시간이 필요하다.
▲막걸리 시음 현장
막걸리 맛이 다 비슷할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호랑이배꼽 막걸리는 이제껏 접해보지 못한 맛이었다. 걸쭉한 식감을 지닌 기존 막걸리에 비해 담백하고 산뜻하면서도 배 맛과 감주 맛 등 다양한 맛이 동시에 느껴졌다.
▲소호주와 굿즈
‘소호주’라는 이름은 이 술을 마시고 웃는 호랑이처럼 되길 바란다는 마음을 담아 지은 것이다. 처음에는 도수가 강한 듯 느껴지지만, 한두 잔 마시다 보면 달콤하면서도 목 넘김이 부드러운 술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밝은세상영농조합의 술은 전통주점에서 만날 수 있으며, 개인이 구매하려면 양조장을 방문하거나 온라인을 통해 구매해야 한다. 이혜경 대표는 대량 판매를 위해 중간유통단계를 거쳐 소비자를 만나기보다는 소비자에게 직접 판매하는 방식을 고수한다. 마찬가지로, 그녀는 술을 완성하는 일도, 새로운 술을 개발하는 일도 서두르는 법 없이 오랜 시간을 들인다. 때로는 술 빚는 일이 고되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막걸리가 완성되기까지의 과정을 지켜보는 일이 그녀에겐 여전히 신기하고 흥미롭기만 하다.
지난해 농림축산식품부와 aT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에서‘찾아가는 양조장’으로 선정된 밝은세상영농조합은 앞으로 매달 다양한 문화 행사를 통해 사람들과 만날 예정이다. 대화를 마치며, 이혜경 대표는“우리가 빚은 술이 사람들에게 맛과 멋을 선사하길 바란다”며 웃음 지었다.
▲양조장 내 소품들
밝은세상영농조합 양조장은 예술과 막걸리를 동시에 즐길 수 있는 공간이다. 단순히 술을 만드는 공간이 아니라 오랜 시간과 이야기가 쌓인 곳이기에, 이곳에서 맛보는 술이 더욱더 값지게 느껴진다. 정성껏 빚은 술이 천천히 익어가는 고택에서 잔잔하고도 특별한 즐거움을 선물 받길 바란다.
결혼할 생각 없었던 자유로운 영혼이었지만, 어느새 결혼 20년 차.
가족만큼 나를 사랑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며 살고 있다.
대학 때 연극반에서 연극을 하며 나와 세상을 이해하는 데 많은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하며 연극을 비롯한 공연, 영화, 전시, 음악 등 문화 및 여행, 사진촬영을 좋아한다.
인문은 나와 세상을 이해하는 창. 인문쟁이 4기로서 열심히 취재하고 끄적이며 나와 인문360을 채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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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리게 술 빚는 양조장을 찾아서
밝은세상영농조합
인문쟁이 이우영
2019-02-25
▲밝은세상영농조합 양조장 외부 전경
아주 오래전부터 술은 우리의 일상과 함께해왔다. 기쁠 때나 슬플 때, 혹은 축제와 파티 등 사람들이 모이는 곳엔 늘 술이 있었다. 우리는 술을 통해 자신을 내려놓고 허심탄회하게 상대방을 만난다. 술이 없었다면 인간의 삶은 훨씬 더 무미건조했으리라.과거 우리나라 사람들은 집에서 막걸리를 직접 빚어 마시곤 했다. 가정에서의 술 제조가 금지되고, 각종 외국 술이 들어온 후로 인지도가 예전 같지는 않지만, 막걸리는 여전히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전통주다. 유명한 막걸리 브랜드를 비롯해 전국의 무수히 많은 양조장에서는 지금도 다양한 막걸리를 생산하고 있다.
▲양조장과 갤러리카페 외관
얼마 전 경기도 평택에 있는 밝은세상영농조합을 방문해 양조장을 둘러보고 이혜경 대표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어보았다. 현재 이곳에서는 화가 아버지와 패션디자이너 큰딸, 사진작가 둘째 딸, 그리고 요리연구가이자 도예가 어머니가 함께 양조장을 운영 중이다.
세월과 술이 함께 익어가는 양조장
▲마당에 늘어선 장독들
밝은세상영농조합에서 생산하는 술은‘호랑이배꼽 막걸리’와 증류주인‘소호주’단 두 가지다. 양조장에서는 술을 발효시키고, 마당에 늘어선 장독대 안에서는 발효 식초가 익어간다.
▲고택 외부 전경
밝은세상영농조합이 둥지를 튼 이 고택은 1944년에 지은 것으로, 이계송 화백의 아버지가 살다가 물려주신 것이다. 일부분 개보수를 했으나, 문패와 마루 등은 옛 모습 그대로 보존되어있다. 마당에 들어서 위를 올려다보니 하늘이 네모난 액자에 담긴 듯 보인다. 마당 중앙에 설치된 펌프에서는 호랑이배꼽 막걸리를 만드는 천연암반수가 나온다.
▲양조장 외부 전경
고택 바로 옆에 자리 잡은 황토집은 겨울에는 따뜻하고 여름에는 시원한 덕에 발효 공간으로 안성맞춤이다. 아담한 공간 내부에는 막걸리 발효실과 저온 창고, 그리고 증류주를 내리는 기계가 있다. 한여름에는 에어컨을 가동해 온도를 낮추지만, 그 외 계절에는 인위적으로 온도를 조절하지 않는다. 자연스럽게 발효시켜 막걸리의 맛을 완성하려는 양조장 주인장의 철학이 엿보이는 부분이다.
▲ 밝은세상영농조합의 갤러리카페
갤러리카페에서는 호랑이배꼽 막걸리와 소호주를 시음할 수 있고, 구매도 가능하다. 카페 내부에는 이계송 화백의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어 술과 그림을 함께 즐길 수 있다.
느림의 미학으로 빚어지는 막걸리
제품 이름부터 포장 디자인에 이르기까지, 밝은세상영농조합의 술에는 이계송 화백의 아이디어와 손길이 담겨 있다.‘호랑이배꼽 막걸리’는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의 술맛을 재현한다는 뜻에서 지은 이름이다. 또한, 엄마와 자식을 연결하는 배꼽처럼 과거와 현재, 정신과 육체를 잇는 연결고리가 되겠다는 의미도 있다.
평택에서 태어난 이계송 화백은 천연화강암 암반수로 호랑이배꼽 막걸리를 빚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배로 와인을 만들다 배 대신 고향 평택 쌀을 원료로 술을 빚기 시작했다.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은 후에야 생쌀로 빚은 막걸리를 완성할 수 있었다.
▲호랑이배꼽 막걸리
호랑이배꼽 막걸리는 평택 백미 60%, 현미 60%로 이루어진 쌀누룩으로 만들어지며, 아스파탐을 비롯한 인공감미료가 일절 들어가지 않는다. 미네랄이 풍부하고 비옥한 땅에서 자란 평택 쌀은 품질이 우수하고 밥맛이 좋다. 호랑이배꼽 막걸리 한 병이 나오기까지는 약 100일이 걸린다. 먼저 밥을 지은 후 막걸리를 만드는 보통의 양조장과 달리, 이곳에서는 생쌀을 이용해 술을 빚다 보니 훨씬 긴 시간이 필요하다.
▲막걸리 시음 현장
막걸리 맛이 다 비슷할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호랑이배꼽 막걸리는 이제껏 접해보지 못한 맛이었다. 걸쭉한 식감을 지닌 기존 막걸리에 비해 담백하고 산뜻하면서도 배 맛과 감주 맛 등 다양한 맛이 동시에 느껴졌다.
▲소호주와 굿즈
‘소호주’라는 이름은 이 술을 마시고 웃는 호랑이처럼 되길 바란다는 마음을 담아 지은 것이다. 처음에는 도수가 강한 듯 느껴지지만, 한두 잔 마시다 보면 달콤하면서도 목 넘김이 부드러운 술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밝은세상영농조합의 술은 전통주점에서 만날 수 있으며, 개인이 구매하려면 양조장을 방문하거나 온라인을 통해 구매해야 한다. 이혜경 대표는 대량 판매를 위해 중간유통단계를 거쳐 소비자를 만나기보다는 소비자에게 직접 판매하는 방식을 고수한다. 마찬가지로, 그녀는 술을 완성하는 일도, 새로운 술을 개발하는 일도 서두르는 법 없이 오랜 시간을 들인다. 때로는 술 빚는 일이 고되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막걸리가 완성되기까지의 과정을 지켜보는 일이 그녀에겐 여전히 신기하고 흥미롭기만 하다.
지난해 농림축산식품부와 aT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에서‘찾아가는 양조장’으로 선정된 밝은세상영농조합은 앞으로 매달 다양한 문화 행사를 통해 사람들과 만날 예정이다. 대화를 마치며, 이혜경 대표는“우리가 빚은 술이 사람들에게 맛과 멋을 선사하길 바란다”며 웃음 지었다.
▲양조장 내 소품들
밝은세상영농조합 양조장은 예술과 막걸리를 동시에 즐길 수 있는 공간이다. 단순히 술을 만드는 공간이 아니라 오랜 시간과 이야기가 쌓인 곳이기에, 이곳에서 맛보는 술이 더욱더 값지게 느껴진다. 정성껏 빚은 술이 천천히 익어가는 고택에서 잔잔하고도 특별한 즐거움을 선물 받길 바란다.
주소 경기도 평택시 포승읍 충열길 37
전화번호 031-683-0981
홈페이지 http://www.tigercalyx.com
장소 정보
2018 [인문쟁이 4기]
결혼할 생각 없었던 자유로운 영혼이었지만, 어느새 결혼 20년 차. 가족만큼 나를 사랑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며 살고 있다. 대학 때 연극반에서 연극을 하며 나와 세상을 이해하는 데 많은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하며 연극을 비롯한 공연, 영화, 전시, 음악 등 문화 및 여행, 사진촬영을 좋아한다. 인문은 나와 세상을 이해하는 창. 인문쟁이 4기로서 열심히 취재하고 끄적이며 나와 인문360을 채우고 싶다.댓글(0)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보유한 '느리게 술 빚는 양조장을 찾아서' 저작물은 "공공누리" 출처표시-상업적이용금지-변경금지 조건에 따라 이용 할 수 있습니다. 단, 디자인 작품(이미지, 사진 등)의 경우 사용에 제한이 있을 수 있사오니 문의 후 이용 부탁드립니다.
대전역이 품어 온 기억을 다시 마주하다.
인문쟁이 양재여
지친 마음에 위로 한 권 그리고 대화 한 스푼
인문쟁이 임수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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