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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동] 시가 익어가는 백 년의 그곳, 황간역

강병규 전 황간역장

김지혜

2018-09-21


황간역에 시(詩)가 오자, 사람이 왔다. 주인 없는 점포처럼 둔 게 미안했는지 사람들은 빈손으로 오지 않았다. 음악을 들고 올 때도 있었고, 사진 혹은 그림과 함께일 때도 있었다. 예술은 그렇게 황간역으로 왔다. 기차와 사람 사이로. 백 살도 넘은 황간역을 지킨 강병규 전 역장. 그곳은 2016년말에 역장에서 퇴임하고 현재는 임금피크제 역무원으로 근무하는 그의 일터이자 화폭이기도 하다.


강병규 전 역장



모두를 시인으로 만드는 곳


기차가 멈추고 발부터 내린다. 딱딱한 시멘트 바닥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발에 닿은 건 푹신한 풀이다. 강병규 전 역장이 일부러 뽑지 않고 자라도록 둔 것이다. 그래야 고향에 온 것 같으니까. 완전히 내리면 철로 옆으로 시 적힌 항아리가 도착한 이들을 반긴다. 꼭 역무원 같다. 항아리에 적힌 시와 황간역 풍경은 도착한 사람 모두를 시인으로 만든다. 그런 의미에서 42년 동안 기차역에 머문 그는 철도원일까, 시인일까?


“저는 시인도 화가도 아닙니다. 그저 철도원이죠.”


황간역 곳곳에는 그가 직접 쓰고 그린 시화와 벽화가 많다. 어린 시절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던 그는 화가의 꿈은 이루지 못했지만, 이곳에서 재능을 마음껏 펼치고 있다. 비록 가난 때문에 철도와 인연을 맺었지만, 철도원으로 산 세월은 언제나 충분했다.


“철길 따라 걸은 기분이에요. 평생을. 철도가 제 삶의 전부였으니까요. 기차역에서 보낸 하루하루가 정말 좋았어요. 특히 사랑하는 풍경이 있는데요. 새벽 두 시, 장대비가 쏟아지는 여름밤이었어요. 주룩주룩 비 쏟아지는 밤에 신호등 불빛이 비에 녹아내리며 철길에 닿는 장면을 봤는데, 정말 행복했어요. 철도원이 되길 정말 잘했다 싶었죠. 그 풍경 안에 있을 수 있는 건 귀한 행운이니까요.”


정년을 앞두고 시골 역장이 되고 싶었던 그. 황간역으로 발령받아 그 소원을 이루었지만 역은 사라지기 직전이었다. 지역 인구가 계속 감소하는 상황에서 황간역의 필요성이 줄어들었다. 그는 사람들이 역을 찾아올 이유를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의 기도가 절실했는지 황간중학교 35회 동창들이 기적처럼 나타나 기꺼이 손을 보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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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김지혜
김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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