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동역에서 헌법재판소를 지나 북촌으로 가는 길은 늘 정겹고 흥미롭다. 아파트촌이 난립하면서부터 어릴 적 놀았던 골목은 사라졌고, 이제는 인사동이나 구시가지에 가야 골목을 만날 수 있다. 북촌 골목을 걷는 일은 근대 건축인 한옥과 가장 현대적인 디자인 라이브러리를 동시에 만나는 흥미로운 여정이 되어준다.
▲ 북촌 골목
백인제가옥, 한옥과 일본 건축 양식의 콜라보
▲ 북촌 백인제가옥
인사동과 가회동거리를 걷다 보면 한복 입은 국내외 관광객을 꽤 자주 볼 수 있다. 어쩌다 보니 백인제가옥에는 여름에만 두 번 왔다. 야간 개장 때 방문했던 지난번과 달리 폭염이 한참인 오후에 오니 정말 무더웠다. 이 폭염에 과연 사람이 있을까 싶었지만, 막상 안으로 들어가니 제법 많은 관광객으로 북적거렸다. 한복을 입고 백인제가옥에 방문한 인도네시아 여성들 3명과 우연히 마주쳐 그들의 사진 촬영 의뢰에 선뜻 응해줬다. 영화 <암살> 촬영지로 알려진 이후 이곳은 북촌마을에서 꼭 가볼 만한 명소로 자리 잡았다.
▲ 백인제가옥에서 만난 인도네시아 여행객
▲ 백인제가옥 별당채
영화 속에서 친일파 ‘강인국’의 집으로 나온 백인제가옥은 한국 전통 한옥과 근대 시기 일본 건축 양식이 섞인 건물로 1913년 한성은행 전무였던 친일파 한상룡에 의해 건립되었다. 한성은행 소유 시절에는 천도교 단체가 가옥을 임차하여 지방에서 상경한 교도들의 숙소 겸 회합 장소로 사용하기도 했다. 당시 소유자였던 최선익은 개성 출신의 청년 부호로 1932년 27세 나이에 중앙일보를 인수해 민족운동가인 여운형을 사장으로 추대하는 등 민족 언론사에 중요한 족적을 남긴 인물이다. 1944년 이후에는 국내 의술계의 일인자였던 백인제 선생과 그 가족에게 건물 소유권이 이전됐고, 건축과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아 1977년 서울특별시 민속문화재 제22호로 지정되었다.
▲ 서울특별시 민속문화재 제22호로 지정된 백인제가옥
한옥은 일반적으로 1층으로 이뤄져 있지만, 백인제가옥은 특이하게도 2층으로 만들어졌다. 게다가 창문에는 한지 대신 벨기에에서 들여온 유리가 사용되었다. 덕분에 유리창으로 이루어진 공간에서 일반적인 한옥과 사뭇 다른 묘한 아우라를 느낄 수 있다. 또한 압록강 흑송으로 건축된 별당채, 안채, 대문간채, 사랑채 등 한옥 구조를 띠고 있는 동시에 사랑채와 안채가 복도로 연결되어 있어 문밖으로 나가지 않아도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다. 과거 모습 그대로 재현해 놓은 아궁이와 부엌, 장독대 등은 물론이고 전반적으로 가옥을 수리해 보존한 상태가 무척 양호했다. 홈페이지에서 도슨트를 예약한 사람에 한해 내부시설을 둘러볼 수 있어 다음 기회를 기약하며 아쉬운 발걸음을 떼었다.
▲ 현대카드 디자인 라이브러리 입구
북촌마을에 자리한 디자인 라이브러리, 의외의 반전미
백인제가옥을 나와 고작 3분 정도 걸었는데도 벌써 땀이 줄줄 흘렀다. 더위를 잠시 식혀줄 쉼터가 간절하던 터라 골목이 끝나는 곳에 현대카드 디자인 라이브러리가 있다는 사실이 고마울 정도였다.
▲ 입구에 들어서면 보이는 2층
▲ 겨울 눈 내리던 날의 도서관 전경
현대적인 감각의 디자인 전문 도서관이 고풍스러운 색채가 짙은 인사동 근처 북촌에 있다니 언제 봐도 의외라는 생각이 든다. 건물 안에 들어서면 네모난 정원과 그 위로 시원하게 뚫린 하늘 그리고 책 읽는 사람들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온다. 현대식 건축물답게 대부분 모던한 감각을 드러내고 있지만, 가장 안쪽 벽면과 천장은 한옥의 형태를 이루고 있다. 한옥 기와지붕이 건물과 자연스럽게 이어지면서 동네 특유의 분위기와 조화를 이루는 모습에서 북촌과 인사동이라는 지리적 장소를 고려한 설계자의 의도가 느껴졌다.
▲ 현대카드 디자인 라이브러리 내부
▲ 의자와 탁자를 곳곳에 배치해 놓은 내부
만 천여 권의 도서는 사진과 일러스트, 건축 등 분야별로 정리되어 있다. 건축비평가이자 2012년 베니스 건축비엔날레 황금사자상 공동수상자인 ‘Justin McGuirk’와 디자인 비평 작가이자 에디터인 ‘Alexandra Lange’가 북 큐레이터로 참여해 도서를 선정했다고 한다. 영어 원서가 대부분이라 디자인에 대한 배경 지식이 없어도 일단 구경이나 해보자 하는 마음으로 방문했던 터였는데, 막상 방문해보니 의외로 눈이 즐겁고 흥미로운 책이 많았다. 도서관 구경 자체가 마치 전시 도록을 여러 권 본 기분이랄까? 디자인 전문가가 아니라도 충분히 읽을거리, 볼거리가 많았다.
▲ LIFE 잡지 희귀본
특히 현대카드 디자인 라이브러리는 희귀 도서도 소장하고 있다. 미국 대중문화잡지의 1936년 창간호부터 2000년 폐간호까지 전 컬렉션 2,167권과 1928년 창간해 현재까지 꾸준히 발간 중인 이탈리아 건축 전문잡지 'life'의 전 컬렉션을 국내 최초로 선보이고 있다.
▲ 현대카드 디자인라이브러리 소장 도서
내부에는 의자와 탁자를 곳곳에 배치해 두었는데 책을 고르고 읽는 이용자 입장에서 신경 써 건축했다는 인상을 받았다. 가장 마음에 들었던 자리는 바로 하늘이 보이는 전면 유리 앞 의자. 그곳에 앉아 책을 읽고 있자니 더워서 땀을 뻘뻘 흘리던 조금 전의 내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이것이야말로 천국이 아닌가 싶어 미소가 절로 지어졌다.
이름 없는 골목마저 정겨운 북촌. 골목 곳곳에서 벽을 타고 자라는 정겨운 담쟁이를 만나고, 근대와 현대를 아우르는 건축물이 공존하는 동네. 백인제가옥에서 현대카드 디자인 라이브러리까지 걷고 걸어 무더위를 피해 책 한 권을 탐독한 한나절은 더할 나위 없이 만족스러운 하루 여행 코스였다.
결혼할 생각 없었던 자유로운 영혼이었지만, 어느새 결혼 20년 차.
가족만큼 나를 사랑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며 살고 있다.
대학 때 연극반에서 연극을 하며 나와 세상을 이해하는 데 많은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하며 연극을 비롯한 공연, 영화, 전시, 음악 등 문화 및 여행, 사진촬영을 좋아한다.
인문은 나와 세상을 이해하는 창. 인문쟁이 4기로서 열심히 취재하고 끄적이며 나와 인문360을 채우고 싶다.
근대와 현대가 공존하는 북촌 골목 탐방
백인제가옥을 지나 현대카드 디자인 라이브러리까지
인문쟁이 이우영
2018-08-09
인사동역에서 헌법재판소를 지나 북촌으로 가는 길은 늘 정겹고 흥미롭다. 아파트촌이 난립하면서부터 어릴 적 놀았던 골목은 사라졌고, 이제는 인사동이나 구시가지에 가야 골목을 만날 수 있다. 북촌 골목을 걷는 일은 근대 건축인 한옥과 가장 현대적인 디자인 라이브러리를 동시에 만나는 흥미로운 여정이 되어준다.
▲ 북촌 골목
백인제가옥, 한옥과 일본 건축 양식의 콜라보
▲ 북촌 백인제가옥
인사동과 가회동거리를 걷다 보면 한복 입은 국내외 관광객을 꽤 자주 볼 수 있다. 어쩌다 보니 백인제가옥에는 여름에만 두 번 왔다. 야간 개장 때 방문했던 지난번과 달리 폭염이 한참인 오후에 오니 정말 무더웠다. 이 폭염에 과연 사람이 있을까 싶었지만, 막상 안으로 들어가니 제법 많은 관광객으로 북적거렸다. 한복을 입고 백인제가옥에 방문한 인도네시아 여성들 3명과 우연히 마주쳐 그들의 사진 촬영 의뢰에 선뜻 응해줬다. 영화 <암살> 촬영지로 알려진 이후 이곳은 북촌마을에서 꼭 가볼 만한 명소로 자리 잡았다.
▲ 백인제가옥에서 만난 인도네시아 여행객
▲ 백인제가옥 별당채
영화 속에서 친일파 ‘강인국’의 집으로 나온 백인제가옥은 한국 전통 한옥과 근대 시기 일본 건축 양식이 섞인 건물로 1913년 한성은행 전무였던 친일파 한상룡에 의해 건립되었다. 한성은행 소유 시절에는 천도교 단체가 가옥을 임차하여 지방에서 상경한 교도들의 숙소 겸 회합 장소로 사용하기도 했다. 당시 소유자였던 최선익은 개성 출신의 청년 부호로 1932년 27세 나이에 중앙일보를 인수해 민족운동가인 여운형을 사장으로 추대하는 등 민족 언론사에 중요한 족적을 남긴 인물이다. 1944년 이후에는 국내 의술계의 일인자였던 백인제 선생과 그 가족에게 건물 소유권이 이전됐고, 건축과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아 1977년 서울특별시 민속문화재 제22호로 지정되었다.
▲ 서울특별시 민속문화재 제22호로 지정된 백인제가옥
한옥은 일반적으로 1층으로 이뤄져 있지만, 백인제가옥은 특이하게도 2층으로 만들어졌다. 게다가 창문에는 한지 대신 벨기에에서 들여온 유리가 사용되었다. 덕분에 유리창으로 이루어진 공간에서 일반적인 한옥과 사뭇 다른 묘한 아우라를 느낄 수 있다. 또한 압록강 흑송으로 건축된 별당채, 안채, 대문간채, 사랑채 등 한옥 구조를 띠고 있는 동시에 사랑채와 안채가 복도로 연결되어 있어 문밖으로 나가지 않아도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다. 과거 모습 그대로 재현해 놓은 아궁이와 부엌, 장독대 등은 물론이고 전반적으로 가옥을 수리해 보존한 상태가 무척 양호했다. 홈페이지에서 도슨트를 예약한 사람에 한해 내부시설을 둘러볼 수 있어 다음 기회를 기약하며 아쉬운 발걸음을 떼었다.
▲ 현대카드 디자인 라이브러리 입구
북촌마을에 자리한 디자인 라이브러리, 의외의 반전미
백인제가옥을 나와 고작 3분 정도 걸었는데도 벌써 땀이 줄줄 흘렀다. 더위를 잠시 식혀줄 쉼터가 간절하던 터라 골목이 끝나는 곳에 현대카드 디자인 라이브러리가 있다는 사실이 고마울 정도였다.
▲ 입구에 들어서면 보이는 2층
▲ 겨울 눈 내리던 날의 도서관 전경
현대적인 감각의 디자인 전문 도서관이 고풍스러운 색채가 짙은 인사동 근처 북촌에 있다니 언제 봐도 의외라는 생각이 든다. 건물 안에 들어서면 네모난 정원과 그 위로 시원하게 뚫린 하늘 그리고 책 읽는 사람들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온다. 현대식 건축물답게 대부분 모던한 감각을 드러내고 있지만, 가장 안쪽 벽면과 천장은 한옥의 형태를 이루고 있다. 한옥 기와지붕이 건물과 자연스럽게 이어지면서 동네 특유의 분위기와 조화를 이루는 모습에서 북촌과 인사동이라는 지리적 장소를 고려한 설계자의 의도가 느껴졌다.
▲ 현대카드 디자인 라이브러리 내부
▲ 의자와 탁자를 곳곳에 배치해 놓은 내부
만 천여 권의 도서는 사진과 일러스트, 건축 등 분야별로 정리되어 있다. 건축비평가이자 2012년 베니스 건축비엔날레 황금사자상 공동수상자인 ‘Justin McGuirk’와 디자인 비평 작가이자 에디터인 ‘Alexandra Lange’가 북 큐레이터로 참여해 도서를 선정했다고 한다. 영어 원서가 대부분이라 디자인에 대한 배경 지식이 없어도 일단 구경이나 해보자 하는 마음으로 방문했던 터였는데, 막상 방문해보니 의외로 눈이 즐겁고 흥미로운 책이 많았다. 도서관 구경 자체가 마치 전시 도록을 여러 권 본 기분이랄까? 디자인 전문가가 아니라도 충분히 읽을거리, 볼거리가 많았다.
▲ LIFE 잡지 희귀본
특히 현대카드 디자인 라이브러리는 희귀 도서도 소장하고 있다. 미국 대중문화잡지의 1936년 창간호부터 2000년 폐간호까지 전 컬렉션 2,167권과 1928년 창간해 현재까지 꾸준히 발간 중인 이탈리아 건축 전문잡지 'life'의 전 컬렉션을 국내 최초로 선보이고 있다.
장소 정보
2018 [인문쟁이 4기]
결혼할 생각 없었던 자유로운 영혼이었지만, 어느새 결혼 20년 차. 가족만큼 나를 사랑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며 살고 있다. 대학 때 연극반에서 연극을 하며 나와 세상을 이해하는 데 많은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하며 연극을 비롯한 공연, 영화, 전시, 음악 등 문화 및 여행, 사진촬영을 좋아한다. 인문은 나와 세상을 이해하는 창. 인문쟁이 4기로서 열심히 취재하고 끄적이며 나와 인문360을 채우고 싶다.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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