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 어른이 되지 않는 소년의 이야기를 읽은 적 있다. 피터팬이란 이름의 소년은 네버랜드에 살았고, 그곳에서는 아무도 나이를 먹지 않았다. 만약 피터팬과 네버랜드가 실제로 존재한다면 어떤 모습일까? 어른이 되어도 여전히 아이 같은 맘으로 살아가는 아동문학가의 모습은 아닐까. 아이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아이와 함께 꿈을 그리는 어른. 이들이 바로 피터팬이고, 이들이 머무는 곳이 네버랜드일 것이다. 지난해 8월, 제주시 함덕 포구 마을에 네버랜드가 생겼다.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춘, 아이들의 시로 가득한 작은 책방. 바로 동시전문책방 ‘오줌폭탄’이다.
▲ 동시전문책방 오줌폭탄 전경ⓒ오줌폭탄 ▲ 오줌폭탄 입구ⓒ오줌폭탄
전국 유일 동시전문책방, 오줌폭탄
언뜻 보면 ‘오줌폭탄’은 친근한 시골집 같다. 돌담 사이 하얀 대문을 열면 작은 마당과 평상이 보이고, 신을 벗고 들어선 내부에는 천장 낮은 방이 오밀조밀 모여 있다. 마치 시골 할머니 집에서 안방, 건넛방, 마루를 돌며 보물찾기를 하는 듯한 구조다. 실제로 동시전문책방 ‘오줌폭탄’이 들어선 건물은 김정희 대표가 태어나 어린 시절을 보낸 고향집 바깥채다.
▲ 날씨 좋은 날엔 행사장으로 활용하는 마당ⓒ 양혜영
▲ 전국의 동시집이 다 모인 책방ⓒ양혜영
▲ 아이들이 숨어 읽기 좋은 놀이방ⓒ양혜영 ▲ 오줌폭탄 김정희 대표 ⓒ양혜영
“아이들과 함께 놀고 읽고 쓰는 공간은 가장 따뜻해야 한다는 생각이 있었어요. 저에게 가장 따뜻한 곳이 어디인가를 생각하다 보니 바로 고향집이더라고요. 고향집은 매일 가지 못해도 힘들 때 가장 먼저 생각나고, 들르면 힘을 얻고 가는 곳이잖아요. 제 책방을 찾는 모든 손님이 따뜻해진 마음으로 돌아갔으면 하는 바람에서 이곳을 택했어요.”
김정희 대표는 2006년 시동인 활동을 시작으로 이미 여러 권의 동시집과 시집을 발표한 아동문학가이자 시인이다. 듣기만 해도 웃음이 나오는 책방 이름도 그녀의 첫 동시집 제목에서 가져왔다.
“텔레비전에서 거미가 지네를 향해 오줌을 날리는데, 오줌이 닿자 지네 발이 스르르 녹는 거예요. 그때 생각했죠. 지네 입장에서는 거미 오줌이 난데없는 폭탄 같았을 거라고요.”
▲ 책방 이름이 된 동시_오줌폭탄ⓒ 양혜영
동전을 넣으면 원하는 물건이 나오는 자판기처럼 ‘오줌폭탄’에서는 여기저기서 동시가 또르르 나온다. 진열대, 벽면 책장 틀, 액자, 빨랫줄에 걸린 티셔츠, 심지어는 방문객이 남긴 엽서에도 동시가 들어 있다.
▲ 방문객들이 남긴 동시 엽서ⓒ양혜영 ▲ 동시 티셔츠ⓒ양혜영
▲ 아이들과 함께 만든 동시집ⓒ양혜영
그중 김정희 대표가 특히 아끼는 동시는 초등학교에서 지도한 아이들이 직접 쓴 동시집이다. 2000년부터 제주형 자율학교에서 방과 후 활동으로 논술을 지도하다 국어 시간에 동시 수업을 맡았다. 김정희 대표는 수업 시간마다 동시를 낭송해 들려주었고, 처음엔 동시에 관심 없던 아이들이 스스로 낭송하고 발표하며 점차 동시와 친해졌다. 아이들이 직접 쓴 시를 모아 펴낸 시집은 벌써 여섯 권이 넘었고, 이 작업은 앞으로도 계속될 예정이다.
우리도 한때 어린이였다
다음 달이면 ‘오줌폭탄’이 문을 연 지 1년이 된다. 올해는 더 다양하게 공간을 활용해 동네 주민과 여행자들이 편히 들어와 차를 마시고 책을 읽고 체험할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 생각이다. 정기적으로 동시 창작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것은 물론이고 아동문학가를 초청해 아이들이 직접 작가를 만나 낭송과 구연을 배우며, 색동회와 제주어 보존회를 통해 제주어를 널리 알리고, 시극으로 표현하는 문학아트 시간도 준비 중이다.
“오줌폭탄에서는 동시로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해볼 거예요. 동시는 따뜻함을 주는 문학이에요. 삭막하고 거친 말이 오가는 현실과 달리 동시 안에는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말, 재미있는 말, 즐거운 말이 들어 있어요. 동시를 읽을 때만큼은 세상에서 가장 예쁜 말을 할 수밖에 없지요. 그런 따뜻함을 주는 곳으로, 그리고 따뜻한 작가로 남고 싶어요.”
초등학교 때, 잔디 잔디 금잔디로 시작되는 동시를 읽으면 정말 입에서 금빛 가루가 나오는 것 같았다. 조금이라도 예쁜 말을 하고, 고운 글을 쓰려고 노력한 시절이었다. 그때 내 옆에는 동시와 동화가 있었다. 동시와 동화를 멀리하는 어른이 되면서부터 입에서는 금빛 가루 대신 날 선 말과 글이 나왔다. 우리는 자주 잊는다. 어른도 한때는 가장 예쁜 말을 하던 어린이였음을. 가끔은 아이와 함께 어릴 때로 돌아간 듯 동시를 읽어보면 어떨까. 그동안 차갑게 메마른 가슴이 조금은 따뜻해지지 않을까.
양혜영은 제주시 용담동에 살고 거리를 기웃거리며 이야기를 수집한다. 하루라도 책을 보지 않으면 입에 가시가 돋는 희귀병을 앓고 있어 매일 책을 읽고 뭔가를 쓰고 말하는 것을 좋아한다. 소설에만 집중된 편독에서 벗어나 인문의 세계를 배우려고 인문쟁이에 지원했고, 여러 인문공간을 통해 많은 경험과 추억을 쌓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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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시전문책방, 오줌폭탄
네버랜드를 가다.
인문쟁이 양혜영
2018-07-26
영원한 동심, 네버랜드
어릴 때 어른이 되지 않는 소년의 이야기를 읽은 적 있다. 피터팬이란 이름의 소년은 네버랜드에 살았고, 그곳에서는 아무도 나이를 먹지 않았다. 만약 피터팬과 네버랜드가 실제로 존재한다면 어떤 모습일까? 어른이 되어도 여전히 아이 같은 맘으로 살아가는 아동문학가의 모습은 아닐까. 아이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아이와 함께 꿈을 그리는 어른. 이들이 바로 피터팬이고, 이들이 머무는 곳이 네버랜드일 것이다. 지난해 8월, 제주시 함덕 포구 마을에 네버랜드가 생겼다.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춘, 아이들의 시로 가득한 작은 책방. 바로 동시전문책방 ‘오줌폭탄’이다.
▲ 동시전문책방 오줌폭탄 전경ⓒ오줌폭탄 ▲ 오줌폭탄 입구ⓒ오줌폭탄
전국 유일 동시전문책방, 오줌폭탄
언뜻 보면 ‘오줌폭탄’은 친근한 시골집 같다. 돌담 사이 하얀 대문을 열면 작은 마당과 평상이 보이고, 신을 벗고 들어선 내부에는 천장 낮은 방이 오밀조밀 모여 있다. 마치 시골 할머니 집에서 안방, 건넛방, 마루를 돌며 보물찾기를 하는 듯한 구조다. 실제로 동시전문책방 ‘오줌폭탄’이 들어선 건물은 김정희 대표가 태어나 어린 시절을 보낸 고향집 바깥채다.
▲ 날씨 좋은 날엔 행사장으로 활용하는 마당ⓒ 양혜영
▲ 전국의 동시집이 다 모인 책방ⓒ양혜영
▲ 아이들이 숨어 읽기 좋은 놀이방ⓒ양혜영 ▲ 오줌폭탄 김정희 대표 ⓒ양혜영
“아이들과 함께 놀고 읽고 쓰는 공간은 가장 따뜻해야 한다는 생각이 있었어요. 저에게 가장 따뜻한 곳이 어디인가를 생각하다 보니 바로 고향집이더라고요. 고향집은 매일 가지 못해도 힘들 때 가장 먼저 생각나고, 들르면 힘을 얻고 가는 곳이잖아요. 제 책방을 찾는 모든 손님이 따뜻해진 마음으로 돌아갔으면 하는 바람에서 이곳을 택했어요.”
김정희 대표는 2006년 시동인 활동을 시작으로 이미 여러 권의 동시집과 시집을 발표한 아동문학가이자 시인이다. 듣기만 해도 웃음이 나오는 책방 이름도 그녀의 첫 동시집 제목에서 가져왔다.
“텔레비전에서 거미가 지네를 향해 오줌을 날리는데, 오줌이 닿자 지네 발이 스르르 녹는 거예요. 그때 생각했죠. 지네 입장에서는 거미 오줌이 난데없는 폭탄 같았을 거라고요.”
▲ 책방 이름이 된 동시_오줌폭탄ⓒ 양혜영
동전을 넣으면 원하는 물건이 나오는 자판기처럼 ‘오줌폭탄’에서는 여기저기서 동시가 또르르 나온다. 진열대, 벽면 책장 틀, 액자, 빨랫줄에 걸린 티셔츠, 심지어는 방문객이 남긴 엽서에도 동시가 들어 있다.
▲ 방문객들이 남긴 동시 엽서ⓒ양혜영 ▲ 동시 티셔츠ⓒ양혜영
▲ 아이들과 함께 만든 동시집ⓒ양혜영
그중 김정희 대표가 특히 아끼는 동시는 초등학교에서 지도한 아이들이 직접 쓴 동시집이다. 2000년부터 제주형 자율학교에서 방과 후 활동으로 논술을 지도하다 국어 시간에 동시 수업을 맡았다. 김정희 대표는 수업 시간마다 동시를 낭송해 들려주었고, 처음엔 동시에 관심 없던 아이들이 스스로 낭송하고 발표하며 점차 동시와 친해졌다. 아이들이 직접 쓴 시를 모아 펴낸 시집은 벌써 여섯 권이 넘었고, 이 작업은 앞으로도 계속될 예정이다.
우리도 한때 어린이였다
다음 달이면 ‘오줌폭탄’이 문을 연 지 1년이 된다. 올해는 더 다양하게 공간을 활용해 동네 주민과 여행자들이 편히 들어와 차를 마시고 책을 읽고 체험할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 생각이다. 정기적으로 동시 창작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것은 물론이고 아동문학가를 초청해 아이들이 직접 작가를 만나 낭송과 구연을 배우며, 색동회와 제주어 보존회를 통해 제주어를 널리 알리고, 시극으로 표현하는 문학아트 시간도 준비 중이다.
“오줌폭탄에서는 동시로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해볼 거예요. 동시는 따뜻함을 주는 문학이에요. 삭막하고 거친 말이 오가는 현실과 달리 동시 안에는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말, 재미있는 말, 즐거운 말이 들어 있어요. 동시를 읽을 때만큼은 세상에서 가장 예쁜 말을 할 수밖에 없지요. 그런 따뜻함을 주는 곳으로, 그리고 따뜻한 작가로 남고 싶어요.”
▲ 색동회제주지회장을 맡아 제주어 홍보에 앞장서는 김정희 대표ⓒ양혜영 ▲ 시극으로 연출한 문학아트ⓒ양혜영
초등학교 때, 잔디 잔디 금잔디로 시작되는 동시를 읽으면 정말 입에서 금빛 가루가 나오는 것 같았다. 조금이라도 예쁜 말을 하고, 고운 글을 쓰려고 노력한 시절이었다. 그때 내 옆에는 동시와 동화가 있었다. 동시와 동화를 멀리하는 어른이 되면서부터 입에서는 금빛 가루 대신 날 선 말과 글이 나왔다. 우리는 자주 잊는다. 어른도 한때는 가장 예쁜 말을 하던 어린이였음을. 가끔은 아이와 함께 어릴 때로 돌아간 듯 동시를 읽어보면 어떨까. 그동안 차갑게 메마른 가슴이 조금은 따뜻해지지 않을까.
* 동시전문책방 오줌폭탄
운영시간 : 화요일~ 일요일 13:00~ 17:00
주 소 : 제주시 조천읍 함덕5길 8-23 문 의 : 010-9687-3795
장소 정보
2017,2018 [인문쟁이 3,4기]
양혜영은 제주시 용담동에 살고 거리를 기웃거리며 이야기를 수집한다. 하루라도 책을 보지 않으면 입에 가시가 돋는 희귀병을 앓고 있어 매일 책을 읽고 뭔가를 쓰고 말하는 것을 좋아한다. 소설에만 집중된 편독에서 벗어나 인문의 세계를 배우려고 인문쟁이에 지원했고, 여러 인문공간을 통해 많은 경험과 추억을 쌓고 싶다.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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