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둑한 수평선 위에 집어등 불빛이 하나씩 켜지면 도시보다 환한 바다의 밤이 열린다. 칠흑 같은 어둠을 헤치고 모이를 찾는 갈매기가 날아드는 뱃전, 그곳에서 홀로 고요히 낚시를 드리우는 어부의 무던한 얼굴은 아름답다는 표현만으론 부족하다. 그 모습이 얼마나 경이로웠으면 제주를 대표하는 영주 십 경의 하나로 손꼽혔을까. 산지천은 바로 그 영주 십 경 중 하나인 ‘산포조어’의 장소다. 예부터 깨끗하고 맑은 용천수가 풍부하게 솟아 시민들이 식수원과 빨래터로 애용했다.
▲ 산지천 광장 입구ⓒ양혜영
▲ 산지천 빨래터(출처: 사진으로 보는 20세기 제주시)
▲ 복개 중인 산지천 (출처: 사진으로 보는 20세기 제주시)
그러나 인접한 제주항이 커지고 상가와 주거시설이 산지천 주변으로 몰리면서 환경이 급격히 악화되고, 하천 복개로 인한 생태계 파괴와 폐 물질 유입으로 도시오염지대로 전락했다. 이를 안타깝게 여긴 제주도는 오염된 산지천을 이전 모습으로 되돌리기 위해 1995년부터 2016년까지 하천복원 정비와 생태공원 조성사업을 대대적으로 벌였다. 덕분에 지금은 숭어와 은어가 서식하고, 낚시와 수영을 즐기는 깨끗한 하천으로 돌아왔음은 물론, 시민과 관광객이 힐링할 수 있는 산책로와 문화광장으로 탈바꿈됐다.
산책로에서 만나는 제주의 과거와 현재
▲현재의 산지천 산책로 ⓒ 양혜영
▲ 산지천 탐라문화광장 ⓒ양혜영
▲ 산지천 하류에 있는 산지교 ⓒ양혜영
▲ 테우 체험현장 ⓒ양혜영
▲ 제주 자생식물과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벽화 ⓒ양혜영
산지천 광장 입구인 동문교에서 산지천 하류에 있는 산짓물까지 이어진 산책로는 제주의 자생 나무들과 제주의 역사를 기록한 벽화로 조성돼 걸으면서 자연스레 제주의 역사와 전통을 익히게 된다. 또한 하천 중간마다 놓인 각기 다른 특색의 다리에서 산지천의 다양한 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 상류에 있는 광제교는 구도심의 중심인 칠성로로 이어지는 길목이고, 중류에 놓인 북성교는 물속에 잠긴 큰 바위 얼굴을 교량 옆면에 형상화한 조형예술품이다. 하류의 산지교에는 전통 배 ‘테우’ 체험 현장과 예전 빨래터를 재현한 산지물 빨래터가 있고, 다른 한쪽에 푸른 잔디밭에서 맘껏 뛰놀 수 있는 산짓물공원이 있다.
▲ 탐라광장하하페스티벌 현장(북수구광장) ⓒ 양혜영
▲ 탐라광장하하페스티벌 문화체험부스 ⓒ양혜영
▲ 주말에 열리는 산지천 플리마켓 ⓒ양혜영
▲ 물놀이 하는 아이들 ⓒ양혜영
▲ 산지천 하류에 있는 산짓물 공원 ⓒ양혜영
산책로 입구와 광제교 근처에 마련된 문화광장에서는 시민과 관광객을 위한 문화공연행사가 다채롭게 열린다. 일요일마다 탐라문화광장에서 자선공연과 플리마켓이, 매달 둘째・넷째 금요일 저녁에는 ‘탐라광장 하하 페스티벌’이 탐라문화광장과 북수구광장(광제교 옆)에서 펼쳐지고 있다. 특히 ‘탐라광장 하하 페스티벌’은 밴드, 댄스, 재즈, 마술 등 다양한 테마 공연과 함께 아기자기한 소품과 기념품을 판매하는 부스를 운영해 공연을 감상하면서 쇼핑까지 할 수 있다.
버려진 여관의 재탄생, 산지천 갤러리
지난해 연말, 산책로에 낡은 여관 두 동을 연결한 ‘산지천 갤러리’가 개관했다. 목욕탕을 겸했던 금성장의 굴뚝과 옛 여관 건물 외관을 그대로 살려 리모델링한 ‘산지천 갤러리’는 제주에 유일한 사진 전문 갤러리로 향후 제주에서 활동하는 사진가 또는 제주 출신 작가의 작품을 전시하는 문화공간으로 활용할 예정이다.
▲ 낡은 여관 건물 리모델링한 산지천 갤러리 ⓒ 양혜영
▲ 산지천 갤러리 입구 ⓒ양혜영
▲ 김수남기증작품특별전시전 ⓒ양혜영
▲ 산지천 갤러리 전시관 내부 ⓒ양혜영
▲ 김수남 작가의 카메라와 취재수첩 ⓒ양혜영
산지천 갤러리는 5월 15일부터 9월 30일까지, 굿을 테마로 한 김수남 사진작가의 기증작품특별전 ‘굿, 바람길 구름길을 열다’를 개최하고 있다. 김수남 사진작가는 평생 ‘굿판’에 남다른 관심과 애정을 갖고 있었는데, 우리나라 구석구석은 물론 멀리 아시아 대륙을 누비며 영과 사람이 교감하는 순간을 영상으로 담았다. 이번 전시장에는 김수남 작가가 사용했던 카메라와 취재 수첩, 원고와 작품집이 공개되어 평생을 사진예술에 바친 고인의 예술혼까지 들여다볼 수 있다.
특별함이 가득한 산지천 둘레길
길은 길로 이어진다. 왕복 1.2Km에 달하는 산지천 산책로를 돌면 이내 사방으로 뻗은 길을 마주한다. 그 길은 제주에서 가장 큰 동문재래시장으로 이어지기도 하고, 영화예술의 거리로 통하는 칠성로와 제주 상권의 중심인 중앙로, 바다를 보며 킥보드를 탈 수 있는 탑동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그중 어느 길을 택해도 제주만의 특별함을 경험할 수 있다. 특히 오후 6시에 개장하는 동문야시장은 제주에서 나는 재료를 엄선해 조리한 퓨전푸드코트를 열어 미식가들의 입맛을 사로잡는다. 주말에는 인파가 몰려 짧게 30분, 길게는 1시간을 기다려야 원하는 음식을 먹을 수 있지만 기다리는 이들의 얼굴엔 짜증 대신 웃음이 가득하다. 오랜 기다림마저 설레고 즐거운 곳이 제주이기 때문에.
▲ 탐라문화광장 앞에 있는 제주동문시장 ⓒ 양혜영
▲ 밤에만 열리는 동문야시장 ⓒ양혜영
▲ 제주 구도심 중심지 칠성로 입구 (북수구광장 옆) ⓒ양혜영
산지천과 멀지 않은 곳에 살지만 실제로 산지천을 찬찬히 돌아본 것은 세 번째다. 첫 만남에선 용천수가 샘솟는 빨래터를, 두 번째 만남에서는 복개천 하류에 떠다니는 오·폐수를, 세 번째 만남에서는 문화공연을 즐기는 시민들을 만났다. 같은 지역에서 각기 다른 세 번의 만남을 가진 셈이다. 그렇다면 다음번엔 어떤 만남을 갖게 될까?사람과의 만남만이 인연은 아닐 것이다. 사람이 태어난 자리, 발길이 머무는 장소 또한 각별한 연이 닿아야 만날 수 있다. 그러니 다음 만남을 위해 지금의 인연에 감사하고 현재의 모습을 아끼고 보듬는 일을 게을리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양혜영은 제주시 용담동에 살고 거리를 기웃거리며 이야기를 수집한다. 하루라도 책을 보지 않으면 입에 가시가 돋는 희귀병을 앓고 있어 매일 책을 읽고 뭔가를 쓰고 말하는 것을 좋아한다. 소설에만 집중된 편독에서 벗어나 인문의 세계를 배우려고 인문쟁이에 지원했고, 여러 인문공간을 통해 많은 경험과 추억을 쌓고 싶다.
댓글(0)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보유한 '제주의 역사와 문화가 흐르는 곳' 저작물은 "공공누리"
출처표시-상업적이용금지-변경금지
조건에 따라 이용 할 수 있습니다. 단, 디자인 작품(이미지, 사진 등)의 경우 사용에 제한이 있을 수 있사오니 문의 후 이용 부탁드립니다.
제주의 역사와 문화가 흐르는 곳
산지천
인문쟁이 양혜영
2018-06-26
산포조어의 절경, 산지천
어둑한 수평선 위에 집어등 불빛이 하나씩 켜지면 도시보다 환한 바다의 밤이 열린다. 칠흑 같은 어둠을 헤치고 모이를 찾는 갈매기가 날아드는 뱃전, 그곳에서 홀로 고요히 낚시를 드리우는 어부의 무던한 얼굴은 아름답다는 표현만으론 부족하다. 그 모습이 얼마나 경이로웠으면 제주를 대표하는 영주 십 경의 하나로 손꼽혔을까. 산지천은 바로 그 영주 십 경 중 하나인 ‘산포조어’의 장소다. 예부터 깨끗하고 맑은 용천수가 풍부하게 솟아 시민들이 식수원과 빨래터로 애용했다.
▲ 산지천 광장 입구ⓒ양혜영
▲ 산지천 빨래터(출처: 사진으로 보는 20세기 제주시)
▲ 복개 중인 산지천 (출처: 사진으로 보는 20세기 제주시)
그러나 인접한 제주항이 커지고 상가와 주거시설이 산지천 주변으로 몰리면서 환경이 급격히 악화되고, 하천 복개로 인한 생태계 파괴와 폐 물질 유입으로 도시오염지대로 전락했다. 이를 안타깝게 여긴 제주도는 오염된 산지천을 이전 모습으로 되돌리기 위해 1995년부터 2016년까지 하천복원 정비와 생태공원 조성사업을 대대적으로 벌였다. 덕분에 지금은 숭어와 은어가 서식하고, 낚시와 수영을 즐기는 깨끗한 하천으로 돌아왔음은 물론, 시민과 관광객이 힐링할 수 있는 산책로와 문화광장으로 탈바꿈됐다.
산책로에서 만나는 제주의 과거와 현재
▲현재의 산지천 산책로 ⓒ 양혜영
▲ 산지천 탐라문화광장 ⓒ양혜영
▲ 산지천 하류에 있는 산지교 ⓒ양혜영
▲ 테우 체험현장 ⓒ양혜영
▲ 제주 자생식물과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벽화 ⓒ양혜영
산지천 광장 입구인 동문교에서 산지천 하류에 있는 산짓물까지 이어진 산책로는 제주의 자생 나무들과 제주의 역사를 기록한 벽화로 조성돼 걸으면서 자연스레 제주의 역사와 전통을 익히게 된다. 또한 하천 중간마다 놓인 각기 다른 특색의 다리에서 산지천의 다양한 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 상류에 있는 광제교는 구도심의 중심인 칠성로로 이어지는 길목이고, 중류에 놓인 북성교는 물속에 잠긴 큰 바위 얼굴을 교량 옆면에 형상화한 조형예술품이다. 하류의 산지교에는 전통 배 ‘테우’ 체험 현장과 예전 빨래터를 재현한 산지물 빨래터가 있고, 다른 한쪽에 푸른 잔디밭에서 맘껏 뛰놀 수 있는 산짓물공원이 있다.
▲ 탐라광장하하페스티벌 현장(북수구광장) ⓒ 양혜영
▲ 탐라광장하하페스티벌 문화체험부스 ⓒ양혜영
▲ 주말에 열리는 산지천 플리마켓 ⓒ양혜영
▲ 물놀이 하는 아이들 ⓒ양혜영
▲ 산지천 하류에 있는 산짓물 공원 ⓒ양혜영
산책로 입구와 광제교 근처에 마련된 문화광장에서는 시민과 관광객을 위한 문화공연행사가 다채롭게 열린다. 일요일마다 탐라문화광장에서 자선공연과 플리마켓이, 매달 둘째・넷째 금요일 저녁에는 ‘탐라광장 하하 페스티벌’이 탐라문화광장과 북수구광장(광제교 옆)에서 펼쳐지고 있다. 특히 ‘탐라광장 하하 페스티벌’은 밴드, 댄스, 재즈, 마술 등 다양한 테마 공연과 함께 아기자기한 소품과 기념품을 판매하는 부스를 운영해 공연을 감상하면서 쇼핑까지 할 수 있다.
버려진 여관의 재탄생, 산지천 갤러리
지난해 연말, 산책로에 낡은 여관 두 동을 연결한 ‘산지천 갤러리’가 개관했다. 목욕탕을 겸했던 금성장의 굴뚝과 옛 여관 건물 외관을 그대로 살려 리모델링한 ‘산지천 갤러리’는 제주에 유일한 사진 전문 갤러리로 향후 제주에서 활동하는 사진가 또는 제주 출신 작가의 작품을 전시하는 문화공간으로 활용할 예정이다.
▲ 낡은 여관 건물 리모델링한 산지천 갤러리 ⓒ 양혜영
▲ 산지천 갤러리 입구 ⓒ양혜영
▲ 김수남기증작품특별전시전 ⓒ양혜영
▲ 산지천 갤러리 전시관 내부 ⓒ양혜영
▲ 김수남 작가의 카메라와 취재수첩 ⓒ양혜영
산지천 갤러리는 5월 15일부터 9월 30일까지, 굿을 테마로 한 김수남 사진작가의 기증작품특별전 ‘굿, 바람길 구름길을 열다’를 개최하고 있다. 김수남 사진작가는 평생 ‘굿판’에 남다른 관심과 애정을 갖고 있었는데, 우리나라 구석구석은 물론 멀리 아시아 대륙을 누비며 영과 사람이 교감하는 순간을 영상으로 담았다. 이번 전시장에는 김수남 작가가 사용했던 카메라와 취재 수첩, 원고와 작품집이 공개되어 평생을 사진예술에 바친 고인의 예술혼까지 들여다볼 수 있다.
특별함이 가득한 산지천 둘레길
길은 길로 이어진다. 왕복 1.2Km에 달하는 산지천 산책로를 돌면 이내 사방으로 뻗은 길을 마주한다. 그 길은 제주에서 가장 큰 동문재래시장으로 이어지기도 하고, 영화예술의 거리로 통하는 칠성로와 제주 상권의 중심인 중앙로, 바다를 보며 킥보드를 탈 수 있는 탑동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그중 어느 길을 택해도 제주만의 특별함을 경험할 수 있다. 특히 오후 6시에 개장하는 동문야시장은 제주에서 나는 재료를 엄선해 조리한 퓨전푸드코트를 열어 미식가들의 입맛을 사로잡는다. 주말에는 인파가 몰려 짧게 30분, 길게는 1시간을 기다려야 원하는 음식을 먹을 수 있지만 기다리는 이들의 얼굴엔 짜증 대신 웃음이 가득하다. 오랜 기다림마저 설레고 즐거운 곳이 제주이기 때문에.
▲ 탐라문화광장 앞에 있는 제주동문시장 ⓒ 양혜영
▲ 밤에만 열리는 동문야시장 ⓒ양혜영
▲ 제주 구도심 중심지 칠성로 입구 (북수구광장 옆) ⓒ양혜영
산지천과 멀지 않은 곳에 살지만 실제로 산지천을 찬찬히 돌아본 것은 세 번째다. 첫 만남에선 용천수가 샘솟는 빨래터를, 두 번째 만남에서는 복개천 하류에 떠다니는 오·폐수를, 세 번째 만남에서는 문화공연을 즐기는 시민들을 만났다. 같은 지역에서 각기 다른 세 번의 만남을 가진 셈이다. 그렇다면 다음번엔 어떤 만남을 갖게 될까?사람과의 만남만이 인연은 아닐 것이다. 사람이 태어난 자리, 발길이 머무는 장소 또한 각별한 연이 닿아야 만날 수 있다. 그러니 다음 만남을 위해 지금의 인연에 감사하고 현재의 모습을 아끼고 보듬는 일을 게을리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
*공간소개 및 관련링크
<탐라광장 하하 페스티벌>
일 시 : 2018년 4월 28일~ 10월 20일 (매월 둘째・넷째 금요일 19시)
장 소 : 산지천 탐라광장 및 북수구광장
문 의 : 제주시 일도1동 주민센터 (064) 728-4412
*<산지천 갤러리>
운영시간 : 화-일 오전 11시~ 오후 7시 (매주 월요일 휴관)
사 이 트 : https://www.facebook.com/sanjicheongallery
문 의 : (064) 725-1208
장소 정보
2017,2018 [인문쟁이 3,4기]
양혜영은 제주시 용담동에 살고 거리를 기웃거리며 이야기를 수집한다. 하루라도 책을 보지 않으면 입에 가시가 돋는 희귀병을 앓고 있어 매일 책을 읽고 뭔가를 쓰고 말하는 것을 좋아한다. 소설에만 집중된 편독에서 벗어나 인문의 세계를 배우려고 인문쟁이에 지원했고, 여러 인문공간을 통해 많은 경험과 추억을 쌓고 싶다.댓글(0)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보유한 '제주의 역사와 문화가 흐르는 곳' 저작물은 "공공누리" 출처표시-상업적이용금지-변경금지 조건에 따라 이용 할 수 있습니다. 단, 디자인 작품(이미지, 사진 등)의 경우 사용에 제한이 있을 수 있사오니 문의 후 이용 부탁드립니다.
[홍천] 홉으로 호프(Hope)를 만든 농촌기획자
김지혜
[단양] 소금 앞에서 정직한 남자
이혜인
관련 콘텐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