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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청] 얘들아, 돈 없고 갈 데 없을 땐 여기로 와라!

산청 동네사랑방 <까치밥> 주인장 김병준

권영란

2018-05-04

“처음에는 동네 할매들이 ‘까치밥’이라는 간판을 보고는 밥 파는 덴 줄 알고 ‘아재, 국수도 됩니꺼?’ 하면서 들어오기도 했어요, 하하. 아이들도 들락날락, 동네 할매들도 오다가다 들르기도 해요.”


경남 산청읍 시외버스주차장 옆 <까치밥>. 10평 남짓 작은 공간이다. 골목 안을 작정하고 찾지 않는 한눈에 띄지 않을 것 같다. 밖에서 얼핏 보기에도 뭐 하는 곳인지를 짐작하기 어렵다. 실내 한쪽 벽면은 책장으로 채워져 있고, 또 다른 쪽은 커피나 음료를 준비해서 파는 작은 바가 있다. 방문 쪽 벽면에는 아이들 그림이나 글이 붙어 있다. 간간이 붙은 이런저런 정보나 모집 안내문을 훑다보면 ‘뭔가 있는 곳’이라는 짐작만 들 뿐이다. 서점이라지만 꽂혀 있는 책은 얼마 되지 않고 사러오는 이도 없는 듯하다. 어떤 곳일까 싶다.


산청 동네사랑방 <까치밥>의 외관1산청 동네사랑방 <까치밥>의 외관2

▲ 산청 동네사랑방 <까치밥>의 외관


어쩌다보니, 뭐든 다 하는 ‘종합사회복지관’


“어린이와 청소년들의 공유 공간으로 시작했어요. 시골 학생들이 여유 시간이 있어도 갈 만한 곳이 없잖아요. 학원 아니면 대부분 PC방에 가거든요. 여기까지 올 때는 정말 심심하거나 사정이 딱해서 오는 거잖아요. 아이들이 와도 이거 해라, 저거 해라 시키지 않아요. 그냥 먹고 싶은 음료 있으면 주고, 같이 주전부리 하고, 다 같이 떡볶이나 요리를 해서 나눠 먹기도 하고, 그러다 진짜 할 게 없으면 그림도 그리고, 짧은 글쓰기도 하고…. 책을 읽으면 좋은데 아이들에게 억지로 권하지는 않아요. 자유롭게 먹고 노는 게 좋지요.”


김병준(53) 씨는 <까치밥>의 주인장이다. 이곳을 드나드는 아이들과 학부모, 이들 부부의 친구들은 병준 씨를 ‘까치님’이라 하고 그의 아내 김연숙(52) 씨를 ‘밥님’이라 한다. 병준 씨는 까치밥을 열면서 처음부터 거창한 계획이나 바람 따위는 없었다고 한다. 다만 이곳 아이들이 갈 곳 없을 때 ‘삐댈 수 있는’ 공간이기를 바랐다.


“아이들에게 음료나 간식 값을 따로 받지는 않아요. 어른들에게 판 책과 커피 등의 수익금 일부를 아이들 음료 값으로 계산한다는 규정을 세웠거든요. 이용하는 주민들은 다들 알고 있어요. 이곳에 오는 아이들은 저소득층에다 결손가정들이 많아요. 경제적으로 힘든 가정들이지요. 일일이 개인사를 묻기는 어려운데 시간이 자연스럽게 알게 하지요. 자주 만나면 어느새 하기 힘든 이야기도 하게 되잖아요. 아이들에게 자기 편이라는 믿음을 갖게 해줘야 해요.”


<까치밥>에서 자유롭게 먹고 노는 아이들1<까치밥>에서 자유롭게 먹고 노는 아이들2

▲ <까치밥>에서 자유롭게 먹고 노는 아이들


아이들은 비 오는 날이면 우산을 빌려가기도 하고, 집에 갈 버스를 기다리는 동안에 와서 간식도 얻어먹고 같이 장난을 치기도 한다. 동네 할매는 길 가다 목이 마르면 물을 달라며 들어온다. 더러는 인근 주민들이 물건을 맡겨두는 보관소가 되기도 한다.


“안 하는 것, 안 되는 것 없어요. 어쩌다보니 종합사회복지관이 됐네요, 하하.” 병준 씨 너스레가 이어지는 순간, 출입문이 열리더니 중학생쯤으로 보이는 여학생 두 명이 들어섰다. “까치님, 차비 좀 빌려주세요. 2000원.” 키 큰 여학생이 그에게 바짝 다가와 손을 내민다. 병준 씨는 자연스럽게 지갑에서 돈을 꺼내준다. 언제 갚을 건지, 왜 차비가 없는지 묻지도 않는다. 여자애는 문 앞에서 기다리는 친구에게 가다가 다시 돌아와 그가 들고 있던 감자칩 봉지에서 과자를 한 줌 두 줌 덜어간다. 늘 일어나는 일처럼 편안하게 보인다.


“저리 빌려갔다가 시간이 걸리더라도 갚기도 잘 합니다. 까치밥을 꾸준히 찾는 어린이와 청소년들이 그리 많지는 않아요. 오다가 안 오는 아이도 있고 어느 날은 새로운 아이가 친구 따라 오기도 하고요. 대부분 친구들 따라 찾아온답니다. 친구랑 놀다가 편안하게 뒹굴다 가요. 다른 데 가는 것보다는 안전하잖아요.”


아이들과 병준씨가 쓰는 약속문1아이들과 병준씨가 쓰는 약속문2

▲ 아이들과 병준씨가 쓰는 약속문


병준 씨는 아이들이 어디에 사는지, 몇 시 버스를 타고 집으로 가는지 대부분 알고 있다. 마침 학원에 다녀오던 태윤(산청초등학교 5학년)이가 왔다. 4학년이 될 무렵부터 까치밥에 왔다는 태윤이는 말없이 옆에 와 앉는다. 태윤이는 슬그머니 이번 새 학기에 전교부회장이 됐다고 자랑한다. “와, 대단한데.”라는 병준 씨의 목소리가 커진다. 태윤이는 랩 가사 쓰기가 취미다. “아이들은 제가 랩 가사 쓰는 걸 몰라요. 일기 쓰는 것보다 더 재미나요.” 병준 씨는 언제 그 가사를 보여줄 수 있느냐, 누나는 요즘 뭐 하냐 등 소소한 관심을 보이고 얘기를 나눈다.


“태윤이는 할머니 할아버지와 지내고, 아버지와 어머니는 진주에서 돈을 벌고 있다네요. 요즘 아이들은 돈이 없으면 뭘 할 수 없다는 걸 더 잘 알고 있어요. 그래서 꿈이 적어요, 꿈이 없어요. 제대로 놀지도 못하고….” 
 

시골살이 13년차, 자격증을 줄줄이


최근 병준 씨는 월요일과 금요일, 매주 이틀은 중증장애인 활동보조인으로 나가고 있다. 6~7년 전 장애시설에서 알게 된 장애아동을 돌보고 있다. 아내 연숙 씨는 산청군 수어(수화)통역센터에서 일을 하며 매주 수어(수화) 모임을 하고 있다. 이들 부부에게는 두 자녀가 있다. 큰딸은 서울에서 취업준비를 하고 있고, 지난 해 결혼한 아들은 축구 코치로 일하고 있다.


“저한테 며느리가 있다면 다들 깜짝 놀라더라고요. 제가 25세에 결혼했는데 아들도 25세에 결혼했어요. 아버지 어머니 닮아 일찍 결혼했나 봐요, 하하”


병준 씨 가족은 2006년에 귀촌했다. 서울과 수원을 전전하며 직장생활을 하다가 더 이상 이대로는 살 수 없다 싶어 직장을 그만 두고 아파트 상가에서 채소가게를 운영하기도 했다. 이것도 잠시였다.


“큰애가 중학교 들어가면서 학원을 보냈는데, 밤 12시 넘어 집에 오고 집에 와서는 그 시간에 자지도 못하고 숙제 하고…. 다들 그렇게 한다는데, 나는 도시에서는 더 이상 살 수가 없구나 싶었어요. 다른 방식으로 살아야지 싶었어요. 그래서 우리 가족이 들어갈 시골을 찾았어요. 작은 일자리만 있으면 텃밭 일구며 살 수 있겠다 싶었거든요.”


뚜렷한 목표나 치밀한 계획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아내 연숙 씨도 지지를 했고 아이들도 시골살이에 대한 호기심을 갖고 좋아했다.


 <까치밥>을 운영하는 김병준 씨

▲ <까치밥>을 운영하는 김병준 씨


“산청에는 아무런 연고가 없습니다. 당시 산청군 신안면 갈전리에 간디마을학교가 생길 때였는데, 만들 때 참여했지요. 현장 책임자였어요. 작은 애가 간디중학교를 다녔어요. 비인가 대안학교라 나중에 검정고시 치고 대학은 학점이수은행을 통해 체육학과를 나왔지요. 큰애는 인근 동네 중학교를 졸업했는데 그 뒤 고교 진학을 하지 않고 전부 검정고시를 쳤어요. 방송통신대 유아교육과를 졸업했지요. 그 학기 최연소 졸업자였는데…. 부모가 해주는 게 없으니 아이들이 잘 알아서 하더라고요. 생존전략이지요, 하하.”


산청에 들어와 시골살이를 한 지난 12년 동안 그는 할 수 있는 일은 다 했다. 농사만으로는 온 가족이 생활하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유정란 배달 일도 하고 대안중학교 행정실장도 2년 했다. 장애어린이집 보인원 교사, 요양보호사, 방문목욕 활동도 했다. 그동안 그가 딴 자격증만 해도 서너 개다. 요양보호사 1급 자격증, 보육교사 자격증, 사회복지사 2급 등. 그렇다고 텃밭 농사를 팽개친 것도 아니다. 수확한 농산물은 이웃과 나눠먹거나 도시 친인척들에게 직매를 하기도 했다.


“도시보다는 마을을 선택한 거지요. 귀촌 12년을 돌아보면 참 잘 했구나 싶어요. 아이들도 만족해 하고. 지금은 아이들이 서울, 진주 같은 도시에 나가 있지만 여기 삶이 싫어서 나가 있는 게 아니에요. 여기서 일자리와 거주 문제가 해결된다 하더라도 젊은 아이들은 도시가 재밌는 것 같아요. 때가 되면 아마 이곳으로 돌아올 겁니다.”


병준씨는 귀농·귀촌을 준비하는 사람들에게 미리 1년 이상 살아봐라, 그러고 결정하라고 강조한다. 사계절을 겪어봐야 그 지역을 조금 알 수 있다고 했다. 무엇보다 사람들을 많이 만나보라고 말한다.


정치 활동도 지역사회를 일구는 일

 

<까치밥>에서 열리는 다양한 행사 - 어린이책 작가 초청  

▲ <까치밥>에서 열리는 다양한 행사


그동안 <까치밥>에서는 아주 다양한 활동이 이뤄졌다. 지난해는 어른 성교육 강좌도 했다. 공동체 영화 상영도 했다. 여성주의 영화 관람 후 토론을 하기도 하고 초등학생을 중심으로 1주일에 한 번씩 애니메이션을 봤다. 산청 어린이도서연구회와 연계해 작가 초청강연도 하고 지역내 이주민들과 교류활동도 했다. 스리랑카 등 이주민여성이 강사가 되어 다 같이 음식을 만들어 잔치를 하기도 했다. 이들과 함께 창원 이주민축제에도 참가했다. 그가 표현한 대로 ‘종합사회복지관’이 됐다.


그렇다고 해서 병준 씨가 그동안 <까치밥> 운영만 한 건 아니다. 한편으로는 산청지역 진보연합, 농민회 등 시민단체 활동도 빠지지 않았다. 지난 시절 세월호 집회나 비상시국대회를 준비할 때도 주민들은 늦은 밤 <까치밥>에서 모여 논의하고 준비했다. 산청읍내엔 이들 단체가 모일 만한 공유 공간이 없기도 하고 병준씨 부부가 적극 나섰기 때문이다.


<까치밥>에서 열린 행사에 참여한 주민들1<까치밥>에서 열린 행사에 참여한 주민들2

▲ <까치밥>에서 열린 행사에 참여한 주민들


“더러 정치색 때문에 싫어하는 어른들도 있는 것 같아요. 대놓고 말은 안 하지만.” 하지만 병준 씨는 어느새 읍내 초등학생들에겐 유명인사가 되었다. 아이들은 멀리서도 손을 흔들며 ‘까치 아저씨’를 부르며 지나가고, 얼굴 본 적 없는 어른들도 길에서 아는 체를 하기도 한다. 아이들 이야기를 통해서 병준씨를 알고 있기 때문이다.


“지자체나 지역단체에서 청소년에 대한 관심이 적으니까 예산이 적습니다. 산청청소년수련관에는 노래방, 컴퓨터도 있고, 동아리방도 있지만 한정된 인원을 수용하다 보니 많은 학생들의 참여가 어려워요. 노인 인구는 늘고 청소년 인구는 점점 줄어드는데, 지자체에서는 별 대책이 없지요.”


아이들이 남긴 글과 그림1아이들이 남긴 글과 그림2

▲ 김병준 씨는 아이들이 남긴 글과 그림을 차곡차곡 보관하고 있다


정책이나 예산이 권리‧권한을 가진 어른들 중심으로 이뤄지다 보니 청소년 정책이 사각지대란 뜻으로 들렸다. 지방자치단체장이 길게 보고 청소년·청년 정책을 세우고 예산을 투입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3월부터 병준 씨는 아름다운재단의 지리산 5개 시·군 작은변화지원센터 산청 담당 활동가로 일한다. 지역 의제 발굴과 단체나 모임 네트워크 활성화 등을 꾀해 나갈 것이다. 청년캠프도 계획 중이다.


“청년 지원프로그램을 만들어 볼 예정입니다. 시골살이가 어떤지, 이곳에서 왜 살아야 하는지…. 최소한의 거주지, 일자리만 마련되더라도 청년들이 돌아올 것이라 보니까요.”


<까치밥>에서 어른들과 앙열린 민들레 행사 

▲ <까치밥>에서 어른들과 앙열린 민들레 행사


2016년 6월에 문을 연 <까치밥>은 두어 달 뒤면 이제 2주년이 된다.


“까치밥이란 게, 감나무 끝에 하나 남겨놓는 마음입니다. 내가 가진 것 중에 같이 나누고 싶은…. 더불어 사는 일이지요. 혼자서 하기보다는 지역의 관심 있는 분들과 함께 했으면 해요. 현재 산청에서도 청소년 공유 공간을 준비하는 분들이 있어 그 분들과 같이 의논하면서 이 공간을 활용할 수 있을 것 같아요. 활동이 처질 수도 있고 또 활발할 때도 있고 오르락내리락 하겠지만 제일 중요한 건 오래 하는 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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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권영란
권영란

현재 〈한겨레〉 칼럼니스트로 활동 중이며, 〈전라도닷컴〉과 〈경남도민일보〉에 연재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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