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 117분이 참여해주셨고, 우열을 가릴 수 없을 정도로 다수의 작품들이 심사위원들의 마음을 울렸습니다.
고민에 고민을 거듭한 결과 다음과 같이 심사평과 수상자를 알려드립니다.
●심사평
본 공모의 수상자를 선정하는 것은 매우 행복하고도 괴로운 작업이었음을 고백합니다. 백편이 넘는 공모작 가운데 심사자를 머뭇거리게 하고 심금을 울렸던 사연들을 추려보았습니다. 그 중에서 자신의 언어로 꾸밈없이 표현한 사연들을 최종 선정하였습니다. 소박한 일상 속에서도 위대한 꿈을 꾸고자 애쓰는 분들께 축하인사를 보냅니다. 본 심사는 꿈에 대한 다양한 관점과 해석이 있음을 일깨워준 귀한 시간이었습니다. 사연 속에 포착된 꿈들은 장래희망 뿐만이 아니라, 청년의 이상과 중년의 재활, 그리고 사회적 약자의 간절한 바람에서부터 낭만적인 공상에 이르기까지 여러 빛깔의 아름다운 이야기들의 향연이었습니다. 그 모든 꿈이 한결같이 소중하다고 생각합니다. 참여해주신 많은 분들에게 감사를 전합니다.
●수상자 명단(가나다순)
수상자 명단(가나다순): 구분, 성명, 게시물번호, 휴대폰번호 뒷자리로 구성
구분
성명
게시물 번호
휴대폰번호 뒷자리
최우수상 (1명)
문화상품권 30만원 상당
임○훈
63
0560
우수상 (3명)
문화상품권 10만원 상당
공○영
83
5907
박○민
66
2601
함○주
2
6095
장려상 (10명)
문화상품권 5만원 상당
강○희
35
1206
김○호
72
2097
김○원
6
1032
오○연
39
6261
이○영
28
7240
정○모
23
0651
주○우
71
7629
최○숙
24
2191
하○림
108
9675
허○행
109
4657
* Ctrl+F 입력 후 본인 휴대폰번호 뒷자리로 검색하시면 쉽습니다.
* 개별 연락을 통해 경품수령에 대해 안내해 드립니다.
지면 관계상 선정작의 일부를 공개합니다.
다음에도 더욱 이벤트로 여러분들과 소통하고자 하오니, 지속적인 관심 부탁드립니다.
다시 한 번 이벤트에 참여해주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리며,
인문360˚은 앞으로도 다양하고 우수한 인문정신문화 콘텐츠를 제공하는데에 더욱 노력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최우수작
오지의 우체부 임O훈 갑작스러운 명퇴를 마주했습니다. 삶에도 관성의 법칙이 작용하는지 30 여 년간의 밥벌이를 놓았으니 위로받을 만도 한데 어서 또 다른 벌이를 찾으라고 자신이 등을 떠밉니다.
퇴직동기 백수 3명이 여행을 떠낫습니다. 서해안에서 동해안까지 해변을 따라 가는 오프로드 투어입니다. 간적곶에서 소망우체통을 보며 아련히 꾸었던 꿈을 떠올렸습니다.
우편배달부! 재직 시 동료들과 은퇴 이후 가슴이 시키는, 정말 하고 싶은 일에 대하여 얘기할 때 우편배달부가 되고 싶다고 했습니다.
오지라서 차가 닿지 않고 걷거나 자전거로 가야 하는, 외진 곳을 담당하는
집배원을 꿈꾸었습니다. 산을 넘고 내를 건너, 때론 편지를 읽어 주기도 하고
늦으면 하루 묵고 오기도 하는, 이제껏 구속당한 돈과 시간에 구애받지 않는
따뜻한 마음을 함께 전하는 일용직 우편배달부 말입니다.
나이가 많아 안 되면 어느 택배하청 업체의 오지담당 택배원도 괜찮겠지요.
지금은 다른 밥벌이를 위해 잠시 유예된 꿈이지만
언젠가 반드시 그 꿈을 쫒아 떠날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 시간날 때 마다 아내를 세뇌시키는(?) 중입니다.
은퇴하면 공기 좋은 시골로 내려가자고...
끝으로 세상이 온통 회색이고 막막할 땐 여행을 떠나보세요.
저 같이 꿈이 되살아 날수도 있으니까요.
●우수작
꿈은 변해도 노력은 변하지 않는다. 영일초등학교 6학년 1반 공O영
"뭐가 되고 싶니? 꿈이 뭐야?" 어릴 때부터 6학년이 된 지금까지도 가장 많이 듣는 질문입니다. 아마 앞으로 중학교에 가고 성인이 되어도 이 질문에 끊임없이 대답하고 고민해야 할 것 같습니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까지 저의 꿈은 소방관과 경찰관 이었습니다. 엄마께서는 제가 많은 경험을 할 수 있게 늘 도와주셨습니다. 직접 물 뿌리고 체험해 보는 것이 직업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또 적극적으로 그 직업을 가진 사람들을 만나 보는 것도 도움이 되었습니다. 경찰 대학교에서 일찍부터 경찰이 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는 것도 배웠었습니다.
경찰박물도 가서 경찰이 하는 일에 대해 더 자세히 알아보기도 했습니다. 처음엔 경찰의 제복이 너무 멋잇어 경찰이 되고 싶었고 사회의 정의를 실현하는 것이 보람 있어 보였었습니다. 저는 이렇게 체험을 하면서 그 직업을 이해하는 것이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요즘 저는 기자가 되고 싶다는 꿈을 꾸고 있습니다. 삼성어린이기자, 국세청 어린이 기자를 하면서 제가 아는 정보를 누군가에게 전해주면서 즐거움을 느꼈습니다. 어떤 기자분이 쓴 책에서 기자 생활 동안 잠도 많이 못자고 경찰서나 응급실 등에서 밤을 세고 쪽잠을 잔다는 이야기도 봤지만 그것이 '힘들겠다'라는 생각보다는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얼마전 '히말라야'란 영화를 보았습니다. 예전에 산을 오르는 사람을 보면서 '왜 저렇게 힘들게 올라갈까?'라는 생각을 한 적이 있었는데 영화를 보고 배우와 산악인 엄홍길의 인터뷰를 보고 제 질문이 너무 어리석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 일이 아무리 힘들어도 그것에서 보람을 느낀다면 그것이 맞는 것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매년 이것도 되고 싶고 저것도 되고 싶었던 저는 요즘은 다시 꿈에 대해 고민하고 있습니다. 급속히 변하는 사회에서는 없어지는 직업도 새로 생기는 직업도 있다는 것도요. 그리고 평생 직업의 의미가 사라지고 여러 개의 직업을 가지는 사람들이 생기는 요즘이니까 저의 꿈이 계속 바뀌는 것이 당연한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는 요즘 직업카드를 빼면서 3개로 줄여나가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글 쓰는 것과 시사에 관심이 많아 기자가 되고 싶기도 하고 여행 작가가 되고 싶기도 합니다. 혹시 내년에 저의 꿈이 또 바뀔 지도 모르고 확고해 질지도 모르겠지만 목표가 정해지면 속도는 중요한 것이 않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뭐든 될 수 있고 할 수 있는 지금 이 순간을 열심히 살아야 할 것 같습니다. '오랫동안 꿈을 그리는 사람은 마침내 그 꿈을 닮아간다'는 명언을 참 좋아합니다. 저희 아빠는 지금도 중국어 공부를 열심히 하십니다. 그런데 공부를 하시는 모습이 참 즐거워 보입니다. 목표가 있다면 공부도 힘든 일은 아닌 것 같습니다. 저의 꿈은 바뀔지도 모르지만 지금 하는 노력이 제가 커 가는데 저에게 좋은 밑거름이 될 것 같습니다. 미래의 저에게 작년에 썼던 편지가 있어 첨부합니다. 앞으로도 계속 꿈을 위해 노력할 것입니다.
박O민
제 꿈은 어머니가 더 이상 아프지 않고 어머니께서 좋아하는 바다를 보고 싶을때 언제나 함께 보는 거에요.
지금도 믿고 싶지 않지만 제작년 9월 뇌출혈로 뇌병변장애 1급이 된 어머니.
아버지를 일찍 여의시고, 밤낮없이 생계를 위해 일하셨던 어머니.
그런 어머니께서 휴일 근무를 가시다 새벽에 마을버스 정류장에서 쓰러지셨습니다.
조금만 일찍 병원에 도착했다면 이렇게 큰 휴유증은 없었을텐데 쓰러지시고 1시간이 반이 넘어 병원에 갔던 탓에 생명을 건진것도 천만다행이라던 의사선생님의 말씀이 아직도 귓가에 선명하게 들리는거 같아요.
흔한 감기한번 걸리지 않으셨던 건강하셨던 어머니께서 쓰러지시니 저와 누나는 어떻게 해야할지 공황상태였습니다.
저와 누나는 학생인지라 어머니가 꼭 필요한 휠체어조차 사드릴수 없던 형편이었습니다.
그래도 살아계시다는 것, 그 하나만으로도 감사함을 느끼겨 눈앞에 현실에 당당하게 맞설수 있었습니다.
저는 중고휠체어를 구한다는 광고를 냈고, 며칠 후 한토으이 전화를 받고 약속장소로 가게되었습니다.
인상 좋으신 한 아주머니께서 휠체어를 옆에 두고 계셨습니다. 가까이 다가가니 너무나 새것이엇죠.
그 아주머니께 좌초지정을 다시한번 설명드리고 얼마를 드리면 되냐고 물었을때 아주머니께서는 당신의 어머니께서 보름정도 쓰시고 하늘나라를 가셨는데 저 처럼 힘든 가정에 필요한곳이 있으면 꼭 선물하고 싶었다고 돈 한푼 안받으시고 저에게 휠체어를 건네주셨습니다.
일면식도 없던 제게 선뜻 휠체어를 주신 그 아주머니의 감사함을 아직도 잊지 못합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저의 어머니의 발이 되어주는 고마운 휠체어입니다.
5개월의 병원생활을 마치고 집으로 온 어머니는 지금까지 재활운동에 하루하루를 열심히 생활하고 있습니다.
왼쪽 뇌혈관이 터지셔서 오른쪽 전부를 사용할수 없는 몸이시지만 오른손으로 수저와 젓가락을 수백 수천번씩 잡고 드는 연습을 반복하십니다.
체온조절이 안되 사계절내내 두꺼운 내복을 입고 집근처 초등학교 운동장을 오전 오후 서너번씩 지팡이를 집고 도움없이 혼자 걷는 연습을 하시면서 힘들지만 얼굴엔 미소를 잃지 않으시고 재활에 전념하십니다.
어머니께서 장애를 입으시고 만 3년째 되는 올 가을 날씨 좋은 날 바다가 보고 싶다던 어머니를 데리고 해운대 바닷가로 갔었습니다. 저 또한 너무나 오랜만인 바닷가라 내심 들뜬 기분이었는데요.
해운대 모래복원을 한 후라 백사장이 많이 넓어졌더라구요. 어머니를 등에 업고, 바닷물이 들어오는 곳 가까이까지 가서 드넓은 해운대 바다를 어머니와 함께 보았습니다. 탁 트인 풍경에 어머니와 저는 동시에 팔을 올려서 그동안의 마음속 힘들었던 모든것을 날려보냈습니다.
어머니께서 말씀하시더군요. 내가 살아있을때 바다를 원없이 봤으면 좋겠다구요.
저는 그 말을 듣는 순간 깨달았습니다. 어머니께서 필요로 할때 언제나 바다를 함께 보러갈것이라구요.
그리고 어머니의 손과 발이 되어 건강했던 그 때보다 더 행복하게 해드려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제 꿈은 어머니와 함께 오래오래 바다를 함께보며 건강한 웃음 지으며 하루하루를 사는것이 꿈이 되었습니다. 이 꿈 평생 지키며 살겠습니다. 어머니 사랑해요.
함O주
나의 꿈, 나의 가난
스스로 가난하다 여기지말고 사는동안 마음껏 가난을 누려야겠다.
모두 별이 되어서 내게로 오려는데
이리 속이 가득 차서야 껴안아 맞을 수가 없으니.
한도 몇백의 카드는 있어도 천원짜리 지폐 몇 장이 없어 노점상 할아버지의 귤을 사지 못한 일이 있었다.
차가 없어 갈 수 없는 곳과 두 다리 있어 갈 수 있는 곳을 비교하며 편의와 축복을 저울질했다.
양화대교 위 줄지어 선 빨간 후미등에 피로를 호소하며 멀미를 했다.
한강마저 노랗게 물들인 노을을 창가에 두고.
보기 좋은 것만 보느라 서러운 세상- 뒤늦게 눈치채 불편한 걸음을 애써 떼는 일도 많았다.
사람으로 났으니 사람으로 떳떳하고 햇빛과 바람과 밤낮에 부끄럽지 않아야
꿈도 삶도 죽음도 나다워진다고 믿고있다.
세상의 시셈을 다 사도록 비우고 게워내서
네 풍족이 내 풍족이 되지 않게 부지런히 가난하게 살다가
내 무덤가에 심을 들꽃씨 한덩이 보물처럼 챙겨가야겠다.
'당신은 꿈이 뭐예요?' 수상자를 발표합니다.
2016-01-15안녕하세요?
2016년이 시작하고 어느새 2주일이 지난 지금,
날마다 새로운 생각, 날마다 새로운 관점 - 인문360˚입니다.
작년 12월 1일 ~ 12월22일 홈페이지 오픈기념 공모전 '당신은 꿈이 뭐예요?'에
총 117분이 참여해주셨고, 우열을 가릴 수 없을 정도로 다수의 작품들이 심사위원들의 마음을 울렸습니다.
고민에 고민을 거듭한 결과 다음과 같이 심사평과 수상자를 알려드립니다.
●심사평
본 공모의 수상자를 선정하는 것은 매우 행복하고도 괴로운 작업이었음을 고백합니다. 백편이 넘는 공모작 가운데 심사자를 머뭇거리게 하고 심금을 울렸던 사연들을 추려보았습니다. 그 중에서 자신의 언어로 꾸밈없이 표현한 사연들을 최종 선정하였습니다. 소박한 일상 속에서도 위대한 꿈을 꾸고자 애쓰는 분들께 축하인사를 보냅니다. 본 심사는 꿈에 대한 다양한 관점과 해석이 있음을 일깨워준 귀한 시간이었습니다. 사연 속에 포착된 꿈들은 장래희망 뿐만이 아니라, 청년의 이상과 중년의 재활, 그리고 사회적 약자의 간절한 바람에서부터 낭만적인 공상에 이르기까지 여러 빛깔의 아름다운 이야기들의 향연이었습니다. 그 모든 꿈이 한결같이 소중하다고 생각합니다. 참여해주신 많은 분들에게 감사를 전합니다.
●수상자 명단(가나다순)
번호
뒷자리
(1명)
30만원 상당
(3명)
10만원 상당
(10명)
5만원 상당
* Ctrl+F 입력 후 본인 휴대폰번호 뒷자리로 검색하시면 쉽습니다.
* 개별 연락을 통해 경품수령에 대해 안내해 드립니다.
지면 관계상 선정작의 일부를 공개합니다.
다음에도 더욱 이벤트로 여러분들과 소통하고자 하오니, 지속적인 관심 부탁드립니다.
다시 한 번 이벤트에 참여해주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리며,
인문360˚은 앞으로도 다양하고 우수한 인문정신문화 콘텐츠를 제공하는데에 더욱 노력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최우수작
오지의 우체부 임O훈
갑작스러운 명퇴를 마주했습니다. 삶에도 관성의 법칙이 작용하는지 30 여 년간의 밥벌이를 놓았으니 위로받을 만도 한데 어서 또 다른 벌이를 찾으라고 자신이 등을 떠밉니다.
퇴직동기 백수 3명이 여행을 떠낫습니다.
서해안에서 동해안까지 해변을 따라 가는 오프로드 투어입니다.
간적곶에서 소망우체통을 보며 아련히 꾸었던 꿈을 떠올렸습니다.
우편배달부!
재직 시 동료들과 은퇴 이후 가슴이 시키는, 정말 하고 싶은 일에 대하여
얘기할 때 우편배달부가 되고 싶다고 했습니다.
오지라서 차가 닿지 않고 걷거나 자전거로 가야 하는, 외진 곳을 담당하는
집배원을 꿈꾸었습니다. 산을 넘고 내를 건너, 때론 편지를 읽어 주기도 하고
늦으면 하루 묵고 오기도 하는, 이제껏 구속당한 돈과 시간에 구애받지 않는
따뜻한 마음을 함께 전하는 일용직 우편배달부 말입니다.
나이가 많아 안 되면 어느 택배하청 업체의 오지담당 택배원도 괜찮겠지요.
지금은 다른 밥벌이를 위해 잠시 유예된 꿈이지만
언젠가 반드시 그 꿈을 쫒아 떠날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 시간날 때 마다 아내를 세뇌시키는(?) 중입니다.
은퇴하면 공기 좋은 시골로 내려가자고...
끝으로 세상이 온통 회색이고 막막할 땐 여행을 떠나보세요.
저 같이 꿈이 되살아 날수도 있으니까요.
●우수작
꿈은 변해도 노력은 변하지 않는다. 영일초등학교 6학년 1반 공O영
"뭐가 되고 싶니? 꿈이 뭐야?" 어릴 때부터 6학년이 된 지금까지도 가장 많이 듣는 질문입니다. 아마 앞으로 중학교에 가고 성인이 되어도 이 질문에 끊임없이 대답하고 고민해야 할 것 같습니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까지 저의 꿈은 소방관과 경찰관 이었습니다. 엄마께서는 제가 많은 경험을 할 수 있게 늘 도와주셨습니다. 직접 물 뿌리고 체험해 보는 것이 직업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또 적극적으로 그 직업을 가진 사람들을 만나 보는 것도 도움이 되었습니다. 경찰 대학교에서 일찍부터 경찰이 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는 것도 배웠었습니다. 경찰박물도 가서 경찰이 하는 일에 대해 더 자세히 알아보기도 했습니다. 처음엔 경찰의 제복이 너무 멋잇어 경찰이 되고 싶었고 사회의 정의를 실현하는 것이 보람 있어 보였었습니다. 저는 이렇게 체험을 하면서 그 직업을 이해하는 것이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요즘 저는 기자가 되고 싶다는 꿈을 꾸고 있습니다. 삼성어린이기자, 국세청 어린이 기자를 하면서 제가 아는 정보를 누군가에게 전해주면서 즐거움을 느꼈습니다. 어떤 기자분이 쓴 책에서 기자 생활 동안 잠도 많이 못자고 경찰서나 응급실 등에서 밤을 세고 쪽잠을 잔다는 이야기도 봤지만 그것이 '힘들겠다'라는 생각보다는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얼마전 '히말라야'란 영화를 보았습니다. 예전에 산을 오르는 사람을 보면서 '왜 저렇게 힘들게 올라갈까?'라는 생각을 한 적이 있었는데 영화를 보고 배우와 산악인 엄홍길의 인터뷰를 보고 제 질문이 너무 어리석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 일이 아무리 힘들어도 그것에서 보람을 느낀다면 그것이 맞는 것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매년 이것도 되고 싶고 저것도 되고 싶었던 저는 요즘은 다시 꿈에 대해 고민하고 있습니다. 급속히 변하는 사회에서는 없어지는 직업도 새로 생기는 직업도 있다는 것도요. 그리고 평생 직업의 의미가 사라지고 여러 개의 직업을 가지는 사람들이 생기는 요즘이니까 저의 꿈이 계속 바뀌는 것이 당연한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는 요즘 직업카드를 빼면서 3개로 줄여나가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글 쓰는 것과 시사에 관심이 많아 기자가 되고 싶기도 하고 여행 작가가 되고 싶기도 합니다. 혹시 내년에 저의 꿈이 또 바뀔 지도 모르고 확고해 질지도 모르겠지만 목표가 정해지면 속도는 중요한 것이 않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뭐든 될 수 있고 할 수 있는 지금 이 순간을 열심히 살아야 할 것 같습니다. '오랫동안 꿈을 그리는 사람은 마침내 그 꿈을 닮아간다'는 명언을 참 좋아합니다. 저희 아빠는 지금도 중국어 공부를 열심히 하십니다. 그런데 공부를 하시는 모습이 참 즐거워 보입니다. 목표가 있다면 공부도 힘든 일은 아닌 것 같습니다. 저의 꿈은 바뀔지도 모르지만 지금 하는 노력이 제가 커 가는데 저에게 좋은 밑거름이 될 것 같습니다. 미래의 저에게 작년에 썼던 편지가 있어 첨부합니다. 앞으로도 계속 꿈을 위해 노력할 것입니다.
박O민
제 꿈은 어머니가 더 이상 아프지 않고 어머니께서 좋아하는 바다를 보고 싶을때 언제나 함께 보는 거에요.
지금도 믿고 싶지 않지만 제작년 9월 뇌출혈로 뇌병변장애 1급이 된 어머니.
아버지를 일찍 여의시고, 밤낮없이 생계를 위해 일하셨던 어머니.
그런 어머니께서 휴일 근무를 가시다 새벽에 마을버스 정류장에서 쓰러지셨습니다.
조금만 일찍 병원에 도착했다면 이렇게 큰 휴유증은 없었을텐데 쓰러지시고 1시간이 반이 넘어 병원에 갔던 탓에 생명을 건진것도 천만다행이라던 의사선생님의 말씀이 아직도 귓가에 선명하게 들리는거 같아요.
흔한 감기한번 걸리지 않으셨던 건강하셨던 어머니께서 쓰러지시니 저와 누나는 어떻게 해야할지 공황상태였습니다.
저와 누나는 학생인지라 어머니가 꼭 필요한 휠체어조차 사드릴수 없던 형편이었습니다.
그래도 살아계시다는 것, 그 하나만으로도 감사함을 느끼겨 눈앞에 현실에 당당하게 맞설수 있었습니다.
저는 중고휠체어를 구한다는 광고를 냈고, 며칠 후 한토으이 전화를 받고 약속장소로 가게되었습니다.
인상 좋으신 한 아주머니께서 휠체어를 옆에 두고 계셨습니다. 가까이 다가가니 너무나 새것이엇죠.
그 아주머니께 좌초지정을 다시한번 설명드리고 얼마를 드리면 되냐고 물었을때 아주머니께서는 당신의 어머니께서 보름정도 쓰시고 하늘나라를 가셨는데 저 처럼 힘든 가정에 필요한곳이 있으면 꼭 선물하고 싶었다고 돈 한푼 안받으시고 저에게 휠체어를 건네주셨습니다.
일면식도 없던 제게 선뜻 휠체어를 주신 그 아주머니의 감사함을 아직도 잊지 못합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저의 어머니의 발이 되어주는 고마운 휠체어입니다.
5개월의 병원생활을 마치고 집으로 온 어머니는 지금까지 재활운동에 하루하루를 열심히 생활하고 있습니다.
왼쪽 뇌혈관이 터지셔서 오른쪽 전부를 사용할수 없는 몸이시지만 오른손으로 수저와 젓가락을 수백 수천번씩 잡고 드는 연습을 반복하십니다.
체온조절이 안되 사계절내내 두꺼운 내복을 입고 집근처 초등학교 운동장을 오전 오후 서너번씩 지팡이를 집고 도움없이 혼자 걷는 연습을 하시면서 힘들지만 얼굴엔 미소를 잃지 않으시고 재활에 전념하십니다.
어머니께서 장애를 입으시고 만 3년째 되는 올 가을 날씨 좋은 날 바다가 보고 싶다던 어머니를 데리고 해운대 바닷가로 갔었습니다. 저 또한 너무나 오랜만인 바닷가라 내심 들뜬 기분이었는데요.
해운대 모래복원을 한 후라 백사장이 많이 넓어졌더라구요. 어머니를 등에 업고, 바닷물이 들어오는 곳 가까이까지 가서 드넓은 해운대 바다를 어머니와 함께 보았습니다. 탁 트인 풍경에 어머니와 저는 동시에 팔을 올려서 그동안의 마음속 힘들었던 모든것을 날려보냈습니다.
어머니께서 말씀하시더군요. 내가 살아있을때 바다를 원없이 봤으면 좋겠다구요.
저는 그 말을 듣는 순간 깨달았습니다. 어머니께서 필요로 할때 언제나 바다를 함께 보러갈것이라구요.
그리고 어머니의 손과 발이 되어 건강했던 그 때보다 더 행복하게 해드려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제 꿈은 어머니와 함께 오래오래 바다를 함께보며 건강한 웃음 지으며 하루하루를 사는것이 꿈이 되었습니다. 이 꿈 평생 지키며 살겠습니다. 어머니 사랑해요.
함O주
나의 꿈, 나의 가난
스스로 가난하다 여기지말고 사는동안 마음껏 가난을 누려야겠다.
모두 별이 되어서 내게로 오려는데
이리 속이 가득 차서야 껴안아 맞을 수가 없으니.
한도 몇백의 카드는 있어도 천원짜리 지폐 몇 장이 없어 노점상 할아버지의 귤을 사지 못한 일이 있었다.
차가 없어 갈 수 없는 곳과 두 다리 있어 갈 수 있는 곳을 비교하며 편의와 축복을 저울질했다.
양화대교 위 줄지어 선 빨간 후미등에 피로를 호소하며 멀미를 했다.
한강마저 노랗게 물들인 노을을 창가에 두고.
보기 좋은 것만 보느라 서러운 세상- 뒤늦게 눈치채 불편한 걸음을 애써 떼는 일도 많았다.
사람으로 났으니 사람으로 떳떳하고 햇빛과 바람과 밤낮에 부끄럽지 않아야
꿈도 삶도 죽음도 나다워진다고 믿고있다.
세상의 시셈을 다 사도록 비우고 게워내서
네 풍족이 내 풍족이 되지 않게 부지런히 가난하게 살다가
내 무덤가에 심을 들꽃씨 한덩이 보물처럼 챙겨가야겠다.
2015.11.인천 강화도
Copyright(c) by HAM HYE J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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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꿈이 뭐예요?
시인이 되어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