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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를 어떻게 살릴 것인가> 의료인문학자 김준혁

환자와 의사 모두를 위한 의료윤리

황효진

2019-01-16


의학은 인간의 목숨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는 점에서 특수한 학문이다. 사회 전반에 걸친 의학 관련 문제들을 이론적으로만 따져볼 수 없는 것 또한 바로 이 때문이다. 의료인문학자 김준혁은 저서 <누구를 어떻게 살릴 것인가>를 통해 “엄밀히 과학을 기반으로 하면서도 철저히 인간적인 일”로 의학을 정의하고 그렇기에 모든 의료 과정에서 “인간과 인간적인 것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한다. 그를 만나 의료윤리란 무엇인지, 왜 지금 우리의 삶에 의료윤리가 필요한지 묻고 또 들었다.


의료인문학자 김준혁



Q. 의료인문학이라는 학문이 조금은 생소하게 느껴집니다.

A. 의학의 폭을 더 넓히기 위한 학문이 의료인문학, 혹은 의료윤리입니다.


지금까지 의학이 인간을 위한 것이라고 하면서도 신체의 특정한 부분에만 초점을 맞춰왔습니다. 덕분에 세부적인 지식에서는 더 나아가고 있지만, 의학으로 결국 무엇을 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당황스러운 상황에 처해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사실 백 년 전부터 십 몇 년 전까지 의학은 ‘마법 탄환’ 같은 거라고들 이야기했거든요. ‘탕’ 쏘면 환자의 병이 다 낫고, ‘우리가 병을 이겼어’ 혹은 ‘우리가 승리할 거야’라는 식으로 많이들 생각했죠. 그런데 외국에서는 한 40년 전부터 의학의 한계를 인식하고 어떻게 할 것인지 논의해야 한다는 흐름이 생겼어요. 어떤 분들은 대체 의학을 주장하고, 어떤 분들은 다른 데서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주장하죠. 저는 의학의 폭을 더 넓혀야 한다고 봐요. 범위를 넓히고, 생각의 방향을 바꾸는 일만으로도 현재 의학이 직면한 문제에 대한 새로운 접근법을 발견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해요.



Q. 의학의 문제를 깊게 고민하게 된 계기가 있을까요?

A. ‘이게 의학이고 나머지는 아니야’라는 방식으로 의학을 배웠기 때문에 지금껏 내가 다른 것들을 보지 못했구나, 싶었어요.


저는 소아치과에서 일했는데, 거의 대부분의 아이들이 치과는 무섭고 두렵다고 생각해요. 그럼 상식적으로 무섭고 두렵지 않다는 것을 설명하고 안심시켜 해줘야 하는데, 흥분한 아이들에게 치과에 관해 설명하기도 어려운 상황이 많이 있다 보니 어떻게 상황을 제압할 수 있을지를 배우죠. 이것이 우리나라 제도 문제와 겹쳐서, 소아치과에서는 아이들을 ‘웃음 가스’를 사용해 재워요. 저는 이러한 상황이 의사 스스로 생각할 가능성을 닫는다고 생각해요. 분명 더 좋은, 더 나은 방법이 있을 텐데 고정되어 온 인식으로 진료를 하는 거죠. 의료인문학을 공부하면 의학에서 고정된 방식들을 조금이나마 다시 생각해 볼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 싶었어요.


‘내가 진료하는 방법이 옳은가’, ‘내가 하는 일은 어떤 이유로 정당화 될 수 있는가’. 등에 대한 질문들은 학교에서 배운 과학과 의학으로 정리되지 않아요. 의학은 학생들에게 ‘너희는 환자를 이렇게 봐야 해’라고 규정해주는 학문입니다. 그래야지 과학의 틀에서 합리화된 방식으로, 증거에 기반하여 일정한 규율에 따라 환자를 치료할 수 있거든요. 각 질병에 따른 진료 방식이 고정될 필요는 있지만, 그 고정된 것들로 인해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것들을 놓쳐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Q. 저서 <누구를 어떻게 살릴 것인가>에서 임신중절, 존엄사, 유전자 편집기술을 활용한 질병 치료 등 현재 의료학계는 물론 사회 전반에 걸쳐 떠오르는 문제들에 대해 언급하셨습니다.

A. 찬성 혹은 반대의 입장 보다는 떠오르는 사안들에 대해 다양한 시각으로 고민하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예전부터 교육 현장에서는 임신중절, 존엄사 등에 대해 찬성과 반대 입장으로 나뉘어 서로 싸우는 식으로 다뤄졌습니다. 그런데 실제 우리의 삶은 그렇게 단순하게 흘러가지 않거든요.


의학 관련 문제들이 마치 화제거리처럼 ‘편 갈라서 한번 싸워봐’라는 식으로 다뤄지고 있지만 실은 그 문제들을 둘러싼 다양한 지점을 고민해 봐야 해요. 쉽게 결론을 내리거나 그 복잡함을 한번도 들여다보지 않는 것보다는, 한번쯤 들어보고 생각해 보는 것만으로도 많은 게 달라질 수 있거든요. 그런 움직임들이 모이고 모이면 또 다른 접근법을 찾을 수 있는 힘이 될 겁니다.


의료인문학자 김준혁


Q. 의료인문학이 의료인과 환자들에게 실질적으로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을 거라고 보시나요?

A. 의사와 환자 사이의 신뢰를 회복할 수 있는 밑바탕이 되리라 생각해요.


저에게 누군가 ‘의료인문학이 도대체 어떻게 도움을 줄 수 있어? 진료 현장은 바빠 죽겠는데 당장 써먹을 수 있어?’라고 물어본다면, 아마 당장은 의미가 없다고 답할 수밖에 없을 거예요. 그런데 의사로서 환자를 만나면서 ‘아, 내가 만나는 환자들이 이런 삶을 살고 있구나. 이런 문제에 대해 고민하고 있겠구나’라는 생각을 하나씩 늘려가다 보면 그 의사가 하는 진료는 좀 더 풍성해 질 거라 생각해요. 타인의 고통에 완전히 공감하기는 어렵겠지만, 이해할 수는 있을 거예요. 최소한 저는 그런 의사에게 진료를 받고 싶어요.


지금 한국 의료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문제들은 결국 환자와 의사 간 신뢰의 문제로 귀결되고 있어요. 거칠게 말하면 자본주의로 인해서 세상이 확 바뀌었고, 환자는 의료 서비스의 소비자가 되었죠. 상품을 사고파는 관계에서는 신뢰가 형성되기 힘들어요. 그런데 의학은 그렇게 돌아가면 문제가 발생합니다. 의사와 환자가 서로 믿을 수 있는 상황이 돼야 하는데 그걸 어디서 어떻게 쌓아야 하는지 고민이 있어요. 의사를 믿기 위해서, 또는 의사와 환자가 새로운 관계를 쌓기 위해서 어떤 방법이 필요할지 함께 생각할 수 있는 자리와 시간이 계속 마련되어야 회복 될 수 있습니다.



Q. 책에서도 “우리가 꿈꾸는 의료가 의사와 환자가 질병이라는 고난 앞에서 함께 힘을 합쳐 나아가는 것이라면, 이 꿈을 함께 그려나가기 위해 의료를 생각할 수 있는 새로운 틀을 마련해야 한다”라고 하셨습니다. 작가님께서 이상적으로 그리는 의사와 환자의 관계는 무엇일까요?

A. 환자는 질병을 포함한 모든 상황까지 의사에게 이야기 할 수 있어야 하고 의사는 그것을 종합적으로 판단해 이야기 해 줄 수 있어야 해요.


가령 암을 앓고 계신 분들이라면, 암 환자로서 겪는 문제는 이런 것이고 그 때문에 이런 갈등들을 겪고 있으니 도움을 줄 수 있겠냐고 의료 전문가들에게 이야기하는 거죠. 그럼 의사는 전문적인 의견과 실제에 바탕한 환자의 경험, 또 다른 누군가의 상황을 종합해서 환자에게 설명하는 거죠. 이게 제가 생각하는 가장 이상적 관계인 것 같아요.


여기에 더해서, 최근 정신과 의사 한 분이 의료현장에서 사망한 사건 때문에 말이 많이 나오고 있잖아요. 누군가 폭력을 행사하였으니 그에 대한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데 그것은 본질을 호도하는 접근이에요. 1차적으로는 제도적으로 안전장치를 마련해 같은 일이 다시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고, 더 크게는 정신질환을 어떻게 인식하고 다룰 것인가에 대한 논의가 필요해요. 약을 주는 것과 처벌 수위를 높이는 것처럼 제일 쉽고 저렴한 방법을 선택하는 것은 미봉책이에요. 다른 접근 방식을 고민해야 합니다.


누구를 어떻게 살릴 것인가 우리 삶에 의료윤리가 필요한 순간들 김준혁 지음

▲ <누구를 어떻게 살릴 것인가>, 김준혁, 문학동네


Q. 인간을 향한 의학으로 나아가기 위해 의료인에게 가장 필요한 태도는 어떤 것일까요?

A. 모든 것에 대해서 질문할 수 있어야 합니다.


몇 년 전, 국내·외에서 의학교육을 공부하는 사람들이 모여 앞으로 의과대학에 다니는 학생들에게 무엇을 가르쳐야 하는지 회담을 연 적이 있어요. ‘이제 무엇을 해야 할까? 앞으로의, 혹은 지금의 의사들에게 무엇을 요구해야 할까? 우리는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하나?’ 같은 질문들이 나왔는데, 한 분이 ‘Question everything’이라고 정리하더라고요. 모든 것에 대해서 질문할 수 있어야 한다는 거죠. 저는 그분 말에 동의해요. 의학에 있어서도, 자신의 조건에 대해서도, 삶에 대해서도 ‘그냥 그런 거지 뭐’ 하고 사는 게 아니라 ‘왜 그렇지? 꼭 그렇게 해야 하나? 그게 답인가?’라고 물어볼 수 있는 사람들이 되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명확한 답을 얻지 못한다고 해도, 심지어는 잠깐 질문만 하고 덮어둔다고 해도 그런 생각을 하지 않는 사람들과는 달라지지 않을까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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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황효진
황효진

웹매거진 <ize>에서 기자로 일했고, 지금은 프리랜서 에디터이자 칼럼니스트. 문화와 라이프스타일에 관한 글을 기획하고 쓰거나,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를 듣고 글로 옮긴다. 읽고 듣고 쓰고 말하는 일 전부를 좋아한다. 인터뷰집 <일하는 여자들>과 에세이집 <아무튼, 잡지>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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