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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의 책

테마로 읽는 이주의 양식

실례지만, 이 책이 시급합니다

2021.03.08

실례지만, 이 책이 시급합니다. 이수은. 민음사. DO IT NOW. 여태껏 읽은 독서 에세이 중 가장 유쾌한 책, 이런 실례는 대환영입니다. 장강명(소설가).

이수은 지음/민음사/2020년/266쪽/16,000원



울분이 치솟을 때 시간을 두고 마음을 가라앉히기에 좋은 책이 뭘까 생각해 본다. 인류 최고의 문화유산이자 가장 오래된 문학작품인 호메로스의 『일리아스』가 바로 떠오른다. 이 웅장한 고대 그리스 서사시는 한 사내의 울분으로 시작해서 울분으로 끝나는 전쟁문학이다. '약점'을 상징하는 아킬레스건으로 더 널리 알려진 영웅 아킬레우스는 태어나는 순간부터 그렇게 억울할 수가 없었다.


『실례지만, 이 책이 시급합니다』 22쪽


『레미제라블』의 마지막 페이지를 덮는 순간, 당신은 오늘을 더 뜨겁게 살기로 결심하고 사직서에 서명을 할 것이다. 또는 내 삶의 혁명기가 아직은 도래하지 않았음을 깨달라 조용히 사표를 찢어 버리고 출근 준비를 하게 될 것이다. 어느 쪽이든 후회는 없을 것이다.


『실례지만, 이 책이 시급합니다』 36쪽


세상에는 수많은 ‘독서 에세이’들이 있다. 개인적이긴 하지만 좋은 ‘독서 에세이’를 나누는 몇 개의 기준이 있다. 저자가 책을 진심으로 좋아하는 게 글에서 느껴지는가? 다 읽고 나서 배운 것이 있는가? 그리고 한 가지는 그 책에 소개된 책들을 지금 당장 읽고 싶은 충동이 느껴지는가? 하는 것들이다. 이 세 가지 측면에서라면 이 책은 모두 ‘그렇다’. 고전문학, 철학, 현대문학, SF소설에 이르기까지, 이 책은 한평생 책을 읽고 책을 떠나 본 적이 없는 사람만이 쓸 수 있어 보인다. 한 사람의 깊은 독자가 모르는 사람들에게 “실례를 무릅쓰고 권하고 싶은 책들”에 관한 이유와 내밀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책. 지은이는 에세이에 관해 이렇게 말한다. “한 개인의 체험, 경험, 생각, 감상이 독자와 같은 진동수로 공명해야 울림을 갖는 장르”라고. 그래서인가 이 책의 목차는 다음과 같이 시작한다. ‘가슴속에 울분이 차오를 때는’, ‘사표 쓰기 전에 읽는 책’, ‘통장 잔고가 바닥이라면’, ‘왜 나만 이렇게 되는 일이 없는가’ 등. 이 저자와 같은 진동수로 우리의 체험과 감정이 공명할 때 어느 페이지든 넘겨서 읽을 수 있도록 말이다. 세상에는 우리가 시급하게 읽어야 하는 책들이 정말로 많다. 그 목록에 이 책을 슬며시 끼워 넣는다. 무거운 이야기는 유쾌하게, 가벼운 이야기는 아프게 들린다. 해석에 대한 편협함이 없다면 이 책의 신선함은 줄어들었을지 모른다. 이 책의 저자가 그 해박함과 진솔한 사유의 문장으로 『실례지만, 이 책도 시급합니다』 같은 후속작도 써주면 어떨까. 이 책을 손에 드는 것만으로도 우리에게는 양질의 독서 리스트가 저절로 생길 것이다.


추천사 : 조경란(소설가)



○ 출 처 : 책나눔위원회 2021년 <3월의 추천도서> 문학 https://www.readin.or.kr/home/bbs/20049/bbsPostDetail.do?currentPageNo=1&tabNo=0&childPageNo=1&postIdx=11346

책나눔위원회 3월의추천도서 이주의책 문학 이수은 독서에세이
이수은
이수은
대학에서 국문학을, 대학원에서 현대 시를 전공했다. 유럽 중세사를 연구한 책 한 권을 읽고 과하게 심취하여 독일 유학을 결행했으나, 무모한 도전임을 깨달아 이 년 만에 돌아왔다. 서른에는 취업을 해야 한다는 절박함으로 구직 끝에 출판사에 입사, 이십 년간 편집자로 일했다. 직업상 다양한 종류의 글을 읽게 되지만, 개인적으로는 17세기 이전에 쓰인 고전들을 특히 좋아한다. 이유는, 시류에 영향 받는 견해들로부터 자유로우면서도 인간의 본연성을 탐구하는 경이와 감동이 있기 때문이다.
이토록 짜릿한 고전 읽기의 즐거움을 널리 알리고 나누고 싶은데 관심 가져 주시는 분들이 적어 쓸쓸해 하던 중, 합정역 사거리에서 신호등을 기다리다 불현듯 깨우침을 얻었다. 책이라는 것도 노래나 여행처럼 각자의 마음 상태나 기분에 따라, 또 시절과 형편에 따라 다르게 다가오기 마련. 하여, 상황별 맞춤 책을 제안해보기로 했다. 몇 권의 책을 번역했지만 모두 피치 못할 사정에 의한 것이었을 뿐, 글로 하는 일 중에서 번역이 가장 어렵다고 생각한다. 지은 책으로 『숙련자를 위한 고전노트』가 있다. (이미지 출처: 민음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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