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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한국어로 철학하기

철학의 개념과 번역어를 살피다

2022-04-04

현대 한국어로 철학하기 도서사진 

신우승, 김은정, 이승택 지음/메멘토/2022년/13,000원



서양 철학 학문 공동체 ‘전기가오리’ 운영자인 신우승의 첫 저서. ‘의식의 경험의 학’ ‘직관의 잡다’? 철학 전공자들에게는 익숙한 용어겠지만 일반인은 도통 이해하기 힘든 철학 번역어다. 저자는 이 번역어들이 현대 한국어의 현실을 반영하지 않을뿐더러 철학의 추상성을 모호함으로 오해하게 하는 결과를 낳는다고 말한다. 어색하지 않은 한국어 문장으로 철학 개념을 번역하고, 일상 언어로 철학 개념을 다루는 시도가 그래서 더 필요한지 모른다. 이 책은 철학 개념의 한국어 번역 문제를 본격적으로 다룬다. 

저자는 총 14장에 걸쳐 metaphysics, epistemology, utilitarianism, aesthetics 등의 철학 개념을 검토하고 설명하면서 형이상학, 인식론, 공리주의, 미학 같은 번역어가 왜 문제인지 밝히고 대체 번역어를 제안한다. 공동 저자인 김은정과 이승택은 저자의 번역어 제안을 검토한 후 동의 또는 반박하며, 저자는 이들의 반박에 응답하면서 최종 입장을 내놓는다. 이 과정에서 독자는 각 개념어에 대한 이해를 높일 수 있고, 대체 번역어를 둘러싼 논의에 간접적으로 참여할 수 있다.

마치는 글에서 저자는 현대 한국어로 철학하는 일과 관련한 몇 가지 일반론적 제안을 한다. ‘한국어로 철학하자’고 하면 한자어와 외래어 없이 고유어만을 쓰자는 제안과 동일시하는 경향이 있지만, 저자는 한자어와 외래어가 한국어의 일부임을 인정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성(成) 같은 한자가 아닌 ‘되다’ ‘됨’ 같은 고유어나 ‘명석판명’이 아닌 ‘명료함과 또렷함’ 같은 일상어도 철학 개념으로 성립할 수 있어야 한다고도 말한다.


 『현대 한국어로 철학하기』 책소개/출처: 교보문고



 이 책은 제목이 말해주듯이, “현대 한국어로 철학하기”를 시도하는 책이다. 서양철학이 우리의 교육제도에 편입된지 80년 가까이 되었고, 일제 강점기부터 시작하면 100년이 훌쩍 넘는다. 그동안 서양철학에 대한 교육과 연구는 큰 발전을 이룩했고, 철학과의 테두리를 넘어 다른 학문 분야 및 교양 대중에게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하지만 과연 한국에서 철학하기, 특히 서양철학하기가 주체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가에 대해서는 여전히 흔쾌히 긍정하기 어렵다. 그 이유 중 하나는 국내 철학계에서 사용되는 서양철학의 주요 개념들 및 용어들 가운데 우리의 일상적 한국어와 너무 큰 괴리를 보이는 것이 많기 때문이다. 이 책은 국내 철학계에서 널리 쓰이는 철학 개념들이 과연 적절한 우리말로 번역되어 있는지 철학적으로 검토하는 작업을 통해 “현대 한국어로 철학하기”의 길을 모색하고 있다. 이것은 사소해보일 수도 있지만, 꼭 필요하면서도 유익한 시도다.


 예컨대 데카르트의 철학 개념으로 유명한 “명석판명”이라는 개념이 있다. 이것이 프랑스어 “claire et distincte”(영어로는 “clear and distinct”)의 번역어라는 것을 알게 되면, 누구나 고개를 갸우뚱하게 된다. 현대 한국어 용법을 고려하면, 왜 clear를 “명석한”이라고 하고 distinct를 “판명한”이라고 하는지 좀처럼 이해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것은 사실 일본어 번역을 국내 철학계에서 그대로 답습해온 것인데, 이런 불편한 사실을 알면서도 그동안 이 번역의 문제에 대해 제대로 된 문제제기가 없었다. 이 책의 필자 중 한 사람은 철학적 논증을 바탕으로 이러한 번역의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여기에 대한 대안으로 “명료하고 구별되는”이라는 새로운 번역어를 제시한다. 그 다음 이 번역어에 대해 두 명의 공동 필자는 나름대로 평가와 더불어 반론을 제시하면서 또 다른 대안을 제시한다. 그 결과 “분명하고 명료한”이라는 최종 대안이 제기된다. 칸트 철학의 핵심 개념인 “transcendental”이라는 용어도 예전에는 주로 “선험적”이라고 번역되어 왔는데, 이 책에서는 앞서 말한 절차에 따라 “초월론적”이라는 대안적 번역어를 제시하고 있다. 그밖에도 “형이상학”, “미학”, “인식론”, “공리주의” 같은 서양철학의 주요 용어들이 비판과 토론, 대안 제시의 시험대에 오르고 있다.


 이 책에서 대안으로 제시된 새 용어들 가운데는 어색하고 좀 고개를 갸웃하게 하는 것들도 있지만, 중요한 것은 이러한 대안을 만들기 위해 3명의 젊은 철학도들이 진행하는 문제제기, 논증, 토론의 절차다. 오래된 관습을 두려워하지 않고 비판적 지성의 힘을 바탕으로 더 합리적이고 바람직한 사유의 길을 모색하는 이 과정 자체가 철학의 고유한 미덕을 잘 보여주기 때문이다.


 

▶ 추천사: 진태원, 성공회대 연구교수



■  출처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책나눔위원회 2022 <4월의 추천도서>

■  URL  https://www.readin.or.kr/home/bbs/20049/bbsPostList.do#n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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