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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가만히 읽는 당신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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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초록

나의 첫 번째 인문적 프로필

by 조선수 / 2016.02.25


꿈에도 색깔이 있다면 나는 초록 꿈을 꾸고 싶다. 초록은 알게 모르게 언제나 내게 온다.

 

  • 양화진 밤하늘의 초록
  • 양화진 밤하늘의 초록 ⓒ조선수

내가 처음으로 맛본 초록은 시금치였다. 시금치가 몸에는 좋다지만 네 살배기가 먹기에는 좀 거북했다. 접시에 놓인 시금치는 마치 수풀이 죽어 누워있는 것처럼 보였다.

 

내가 처음으로 만져본 초록은 개구리였다. 고등학교 1학년 때 생물 시간이었다. 책상 위에 개구리 한 마리가 놓여 있었다. 개구리를 해부하라는 선생님 말씀을 나는 따르지 않았다. 그 벌로 30센티미터 막대자로 손바닥을 맞고 한 시간 내내 교실 한구석에 서 있어야 했다.

 

내가 처음 본 거대한 초록은 벽에 걸려 있었다. 카페에 들어섰을 때 한 쪽 벽면을 가득 채운 그림은 시공간을 뛰어 넘어 나를 몽골 초원으로 이끄는 것 같았다. 코끼리의 등이 너무나 싱싱하여 몽골 초원에 초록 코끼리가 살고 있을까, 하는 의문점 따윈 잊게 만들었다.

 

시카고 미술관에는 「시인의 정원」이란 고흐의 그림이 전시되어 있다. 내가 맨 처음 맛본 시금치 색깔, 고개를 돌리고 만져본, 발발 떠는 개구리 색깔, 벽에 걸려 있던 코끼리가 단잠을 자는 듯 초록이 숨쉬는 빛깔까지. ‘시인의 정원’에는 모든 초록이 다 들어 있다.

 

  • 일본 아오모리의 초록
  • 일본 아오모리의 초록 ⓒ조선수

초록 속에는 어떤 색채가 담겨 있는 것일까. 어떤 때는 무덤 속을 어루만지는 것 같고, 심해에 가닿는 것만 같고, 또 어떤 때는 내가 알지 못하지만 꼭 내가 아는 색 같다. 어디 가든 무엇을 보든 내 눈은 초록을 찾아내고야 만다. 그럼에도 정작 나는 초록을 알지 못한다.

 

나는 여전히 초록을 꿈꾸고 있다. 의자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자판을 두드리며 압핀 하나로 코끼리를 벽에 걸기, 구상을 한다. 코끼리가 날아다니는 상상도 한다. 그 코끼리는 언제나 생생하게 살아서 껌벅껌벅 나를 바라보고 있을 것이다.

 

  • 청주의 초록
  • 청주의 초록 ⓒ조선수

 

초록 시금치 개구리
필자 조선수
조선수
2015년 4월생 시인, 2016년 1월생 소설가(한국일보 신춘문예 당선). 시와 소설 사이에서 안간힘으로 시소 타기를 하고 있다. 불안할 때마다 1인칭인 나를 3인칭으로 지칭하는 연습을 해본다. 1인칭과 3인칭 사이, 언어가 흐릿해지자 새로운 캐릭터가 숨을 쉬기 시작한다.사잇빛에 미친, 카페인에 중독된, 천생 게으른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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