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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와 말, 유행어의 변화

박다온

2018-04-05

말: [명사] 사람의 생각이나 느낌 따위를 표현하고 전달하는 데 쓰는 음성 기호. 혹은 그 행위나 결과물.


문득 ‘나는 이제 말의 주체에서 벗어났구나’ 느낀 적 있다. 특정 대화를 주도하는 일이 줄어들었다는 토로 같은 건 아니다. 그 시발점은 정말 물리적으로 ‘말할’ 일이 적어졌음에 대한 감상이다. 여러모로 디지털라이즈(Digitalize)된 현대사회를 살다 보니 말이 필요한 경우부터 적고, 말하더라도 업무상 필요하거나 사회적 자리에서의 적당한 어울림의 도구인 경우가 잦기 때문이다. 물론 바쁘게 일하다 보면 그마저도 드물어 “네” “알겠습니다” “~란 말씀이시죠?” “진행하겠습니다” 등 어떤 실용적 신호(Signal)에 그친 나날도 많다. 그렇게 하루며 며칠을 보내노라면 문득 느끼는 것이다. “아 뭔가 요새 말한 적이 없는데?” 물론 정말 입을 열고 목구멍으로부터 단 한 마디 소리도 안 낸 것은 아니지만 뭐랄까, 했어도 안 한 것 같은 기분. 혹은 그런 것(?)만 해서 더 공허한 기분. 그러니까 ‘말’의 사전적 정의 따나 생각이나 느낌 따위를 표현하고 전달하기는 했는데 그게 일에 필요한 의견과 생각인 거지 나 자신을 표현하고 드러낼 만한 말은 아니었기 때문에.


오늘날 말, 바쁘니 최소한으로 완전무결하기를


말은 도구적으로도 필요할뿐더러, 각박한 오늘날 비단 나뿐이랴, 말의 ‘할당량’을 충족하며 사는 사람이. 그러나 인간에게 필요한 하루 권장량이 꼭 비타민이나 영양소만은 아니지 않은가. 이를테면 일일 대화 권장량, 일일 소통 권장량, 일일 아무 말 권장량이라든지 혹은 반대로 일일 업무 최대 생각량 같은 것도 필요하지 않을까. 그렇게 사회가 변화한 만큼, 말에 거는 필요충분량도 변화한 듯하다. 대화의 장(?)이 마련되더라도 웬만큼 막역한 친구 사이나 가족 간이 아닌 이상 나의 말이 혹여 ‘개소리’나 실례가 되지 않도록, 혹은 여러 가치를 존중할 수 있도록 사회적 도덕률 이른바 모럴(Moral)을 각별히 만족해야 한다. 차별적인 표현은 아닌지, 특정 입장에서만 바라본 편향된 시각은 아닌지 등등. 과거 대화는 어떤 가치관에 대한 저울에서 벗어나 친교나 정서적 유대를 공고히 하는 데 의미를 두었다면, 오늘날은 그 자체로써 저울이 되기도 한다. 물론 그간 응당 배려받지 못한 여러 가치에 대한 인식 재고가 성숙해지는 좋은 현상이고 한참은 더 격렬하게 이뤄져야겠지만, 그다지 똑똑하지도 말을 잘하지도 그렇다고 뻔뻔과 당당 사이의 용기(?)도 없는 나는 우물쭈물 말을 아끼게 된다. 혹은 말을 입밖에 내 놓고도 금방 ‘아, 방금은 ‘그렇게’ 들릴 여지가 있었나?’ 하고 곱씹게 된다. 그렇게 사회가 성숙한 만큼, 말에 요구되는 도덕성도 변화했다. 


메신저1 : 아까 수정하라는 거 했나? 넵 , 네~ , 네넵 , 넵... , 네네  / 메신저2 : 00원고 0월 0일까지 보내드리면 되나요? 네~, 작가님?, 일정확인 부탁드립니다. / 메신저3: 2018상반기기획안(파일 업로드) 수정 요청드립니다. , 2018상반기기획안1(파일 업로드) 수정 요청드립니다,2018상반기기획안2(파일 업로드) 수정 요청드립니다, 2018상반기기획안3(파일 업로드) 수정 요청드립니다, 야이씨 (작성중)

▲  오늘날 우스갯소리로 직딩체 혹은 급여체라고 불리는 표현은 그야말로 ‘용건만 간단히’ ‘감정도 간단히’의 정수를 보여준다. 

왼쪽부터 각각 ‘기본대답체(기분, 친분, 상황별로 달라짐)’, ‘휴먼독촉체’, ‘휴먼격동굴림체(파일버전무한생성체로도 불림)’.


물리적 총량으로만 따질 때, 오늘날 말은 더 적은 기회와 더 높은 허들을 마주하게 됐다. 필요 없지만 나쁘지 않은 말도 때론 하릴없는 노인처럼 솎아지고 버려진다. 바쁜 한국 사회는 ‘목적 없음’에 관대함을 잃어간다. 시시하고 사사로운 얘기로 그저 웃고 떠드는 시간도 그렇게 조금은 주는 것 같다. 하지만 목적 없는 말에 의미는 없을까. 혹은 꼭 매사 의미를 찾아야 할까. 그냥 말하는 건 나쁜 일일까. 나는 묘하게도 이러한 측면을 요즘 청소년의 유행어 ‘급식체’가 잘 환기해준다고 느낀다. 현재의 내가 말의 주체에서 벗어났다는 사유를 뒤집는다면, 말의 주체는 청소년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일상에서 가장 많이 사용하고 창의적으로 활용하며 딱히 사회적 기준이나 필요에 구애됨 없이 자기 생각과 느낌을 표현하는 데 비교적 자유로이 충실할 수 있는 그 시기. 가끔은 공부보다 말을 더 잘하고 싶었던 그 시기. 돌이켜보면 나도 학창시절 친구들을 웃기고자 공부에도 잘 안 쓰던 두뇌를 창의적으로 활용해 열심히 말 욕심을, 요즘 말로 ‘드립’을 치곤 했다. 그런데 유행어를 못 알아듣는 (그 당연한!) 때가 내게도 올 줄이야. 나름 ‘N세대’ 소리를 들으며 줄임말과 유행어의 주체 세대임을 자부해왔는데, 어느 샌가부터(아마도 ‘버카충’이라는 표현이 공공연할 무렵인 듯하다) 유행어의 기표와 기의 간 연결고리를 가늠치 못하게 되더니, 급식체를 처음 접했을 때는 그야말로 ‘대략 난감’ 상태에 빠졌다. 몇 가지는 재밌기도 해서, 친구에게 짐짓 나는 신세대인양 퀴즈를 내기도(“너 ‘커여워’가 뭔지 알아? ‘귀여워’래~”) 했지만 속사포처럼 터져 나오는 ‘급식 화법’에는 여지없이 눈살이 찌푸려지곤 했다. 사실 즉각적으로 기피한 이유를 뚜렷히 모르겠지만 인터넷 개인방송 진행자, 소위 BJ의 영향으로 보이는 그 특유의 억양과 리듬이 몹시 천박하게 느껴졌던 것 같다. 그리고 이러한 거부반응은 주변 사람과 인터넷 여론에서도 비슷했다. 논리적인 이유로는 크게 ‘언어파괴’와 ‘혐오표현’이 꼽히곤 한다. 


School - 오지고요 지리고요 고요고요 고요한 밤이고요 / 이거레알 / ㅇㅈ?ㅇㅇㅈ /치킨각/ㄱㅇㄷ! / 동의?어 보감~ /커여워 / 댕댕이 / 실화냐? / 빼박캔트

▲  사실 대표적으로 접할 수 있는 급식체에는 그 지칭(급식을 먹는 세대의 말이라는 뜻)에 깃든 비하적 시선 외에 딱히 혐오나 비속한 표현이 두드러지는 것은 아니다.


‘해괴한’ 급식체는 왜 생겨난 거지?


급식체에서 가장 흔한 수식이자 널리 쓰이는 표현인 ‘오지다’ ‘지리다’의 경우 각각 ‘허술한 데 없이 야무지고 알차다’라는 뜻의 ‘오달지다’의 준말, ‘똥이나 오줌을 참지 못하고 조금 싸다’라는 뜻의 표준어이다. 세부적인 사용 범례는 차이가 있으나 과거에 쓰이지 않던 표현도 아니다. 그리고 사실 아이러니하게도 ‘급식체’를 만든 것은 성인, 그러니까 BJ들이다. 이들이 개인방송에서 사용한 말투가 인터넷 게시판이나 SNS 등을 통해 퍼진 것이 급식체이다. 그래서 사실 급식체에 지적되는 윤리적 문제에 대한 귀책은 BJ들이 이러한 말에 혐오표현, 비속어, 비인간·비윤리적으로 뒤틀린 개그 코드를 실은 것에 있다. 그러니 “하여간 ‘급식이’들은 언어파괴범”이라느니 “이해할 수 없는 문제아”라는 식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비난받아야 하는 대상과 범위를 호도한 반응이다. 따라서 급식체가 일부 뒤집어쓰고 있는 ‘혐오표현’에 대한 궁극적 해결은 몰지각한 BJ와 그 방송에 대해 제재수단을 마련하고, 나아가 개인방송을 보는 것 외 특별히 오락거리를 찾지 못하는 청소년들의 환경을 개선하는 데 있지 않나 싶다.


윤리적 잣대는 치우더라도, 급식체는 왜 생겨나고 유행할까. 과거의 유행어처럼 딱히 그 세대가 공유하는 감성적 유대가 있는 것도 아니고, 친교를 표현하는 것도 아니고, 용건을 간략히 전달하는 것도 아닌데. 왜 오늘날 유행한다고 하는 말은 이렇게 변했을까. 개인적으로 발견하는 의미는 ‘그저 말하고 싶음’이다. 경제적이고도 함축적으로 느끼는 바를 표현하자니 ‘오졌다’니 ‘지렸다’니 그 수준은 격화한다. 갈수록 자신의 말에 확신할 수 있는 ‘청자’ 혹은 그 환경이 없어지니 ‘인정? 어 인정’ 자문자답하며 빠른 답을 구한다. 충족해야 하는 모럴은 많아지고 감당할 수 없고 귀찮아지기까지 하니 방어적으로 자문자답한다. 스스로 우스꽝스러워지더라도 말하고 싶고 표현하고 싶은 마음이 더 크다. 그리고 이러한 지점이 극대화해, 말하는 사람 스스로도 아무 뜻 없다는 걸 알면서도 정말 미세먼지 급의 기표적 유사성을 리듬 삼아 ‘오지고 지려가며’ 한바탕 아무 말 대잔치를 벌인다. 말의 의미를 엄격히 따지도록 변하는 세상에서 유행어는 아이러니하게도 ‘아무 의미 없는데?’로 무장하여 변화했다. 오히려 자유로운 그들의 아무 말 대잔치가 나는 솔직히 가끔 쬐끔 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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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급식체
필자 박다온
박다온

대체로 읽고 쓰는 일을 하는 3년차 사회인. 글을 좋아했고 글을 전공했고 글 쓰는 일을 하는 중. 다음 단계들도 많다는 걸 까먹지 않도록 가끔 머리통을 쥐어박는다. 그럼에도 현재에 급급한 나를 발견해 자주 뺨을 찰싹인다. 가끔 쥐어박고, 자주 찰싹인다. 그런 리듬으로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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