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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리 일기

“혼자 쓰고 읽는 일기 같은 거라 그래.”

김초연

2018-04-24

16년 차 베테랑이지만 월경에 관해 타인과 대화를 나눈 기억이 거의 없다. 불과 1~2년 전만 해도 ‘생리’라는 단어를 입 밖으로 꺼내지도 않았다. 불가피하게 꺼내야 하면 ‘월경’ 혹은 ‘그날’이라 조용히 말하고 주변 살피기에 급급했다. 또, 부인과 진료 접수대에서 생리 주기나 마지막 월경 시작일을 물어보면 흠칫 놀라기도 했다. 초경부터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월경 대하는 방법을 알려준 사람이 없었다. 내 몸의 변화를 이해하고 거부감 없이 받아들일 수 있도록 도움의 손길을 내미는 사람도 없었다. 그저 월경은 숨겨야 하는 것 혹은 조심스러운 것이라는 것이라고 무척이나 당연한 일인 양 배웠다. 그렇게 ‘월경 회피 인생’을 살았으니 세월이 무상하게 월경이 낯설 수밖에.


달력 - 18일 시작

▲  한 번도 제대로 배운 적 없는 상태에서 갑자기 시작된 몸의 변화는 낯설고 두려운 일이었다.


11살 때 초경을 했다. 또래 친구들보다 월경을 빨리 시작했기에 준비를 충분히 하지 못한 상태에서 몸의 변화를 겪었다. 조회시간부터 계속 배가 아프더니 점심시간 지나서 갑자기 아래쪽에 축축한 느낌이 들어 화장실로 뛰어가 속옷을 확인했다. 새끼손톱만큼 작은 핏자국을 보고 화들짝 놀란 내가 할 수 있던 건 휴지를 돌돌 말아 속옷에 대는 것뿐이었다. 갑자기 학교에서 월경을 겪게 되면 어디서 위생대를 받을 수 있는지 알게 된 건 초경 후 1년이 지난 뒤였다. 학교에서 남자반, 여자반을 나눠 성교육 수업을 했는데, 여자반에서는 위생대 사용법을 알려줬다. (남자반에서 무슨 수업을 했는지 지금도 궁금하다.) 정말, 말 그대로 사용법이었다. ‘스티커를 뜯고, 속옷에 붙인다.’ 사용 설명서만 봐도 알 수 있는 형식적인 내용들을 한참 설명하던 선생님은 수업 후반부에 들어서야 “월경을 시작하면 당황하지 말고 여자 선생님이나 양호 선생님에게 도와달라고 하면 된다”고 말했다. 그 말을 들은 친구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초경을 한 날 엄마에게 들은 조언이었지만 왠지 모를 민망함이 있었는데, 마치 확답을 받은 듯 나 역시 친구들과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중고등학교를 여학교로 진학하면서 그간 숨기고 조심하던 것들에서 벗어났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것도 얼마 가지 못했다. 중학교 2학년 때, 우리 반은 화장실과 가까운 탓에 위생대를 빌리러 오는 친구가 많았다. 뒷문에서 큰소리로 “생리대 있는 사람”이라 외치면 다들 자신의 위생대를 빌려주었다. (가끔 책상에 엎드려 있으면 머리 위로 위생대가 날아다니기도 했다.) 워낙 자주 있던 일이기에 대수롭지 않게 넘겼는데, 어느 날부터 담임 선생님이 “남자 선생님들도 왔다 갔다 하는데 민망하지도 않냐” 꾸지람을 주며 ‘여자애들이’라는 단어를 자주 사용했다. 세 번 정도 꾸지람을 들은 후에는 위생대를 빌려주거나 빌리러 오는 친구들이 적어졌고, 자연스럽게 몸에 관한 이야기를 입 밖으로 꺼내는 걸 민망해하거나 눈살을 찌푸리는 친구들이 더러 나타났다. 나는 그 ‘더러’ 중 한 명이었다.

내가 고등학교에 입학했을 무렵 ‘생리 조퇴’가 가능해졌다. 그전에는 월경통(복통)이 심하면 양호실에 누워있거나 진통제를 받아먹는 게 전부였는데, ‘생리 조퇴’가 가능해지면서 억지로 참지 않고 집에 갈 수 있게 됐다. 반가운 소식이지만 혼란스럽기도 했다. 담임 선생님이 남자면 증명할 방법이 없다. 여자 선생님이라면 부담 없이 말했겠지만, 남자 선생님에게는 말을 꺼내기도 힘들다. 용기를 내 ‘생리 조퇴’를 하고 싶다고 말하면 일단 진통제를 먹고 견뎌보라는 답을 들었다. “정 힘들면 양호 선생님께 확인받아와”라는 말은 더 많이 들었다. 그래서 애초에 시도하지 않았다.


기본 생리대 - 기본형, 날개형, 오버나이트가 있는데요. 여기서도 소, 중, 대 사이즈로 나뉘어요~! / 면 생리대 / 탐폰 / 생리컵 / 진통제 / 위생팬티

▲  최근에는 점차 월경과 위생 용품에 대한 대화를 공공연하게 하는 분위로 바뀌고 있지만 아직은 낯설고 불편하기만 하다.


월경을 공연한 화제로 올릴 수 있게 물꼬를 튼 것은 얼마 전 인터넷과 뉴스에 떠들썩했던 유해 위생대 사건이었다. 여성 중 대부분은 자신에게 잘 맞는 위생대를 찾아 사용한다. 그래서인지 그간 나하고 맞지 않았던 위생대에서 발암물질이 검출됐다는 보도를 접하고 나서 분노는 하였으나 ‘어쩐지’라는 말이 먼저 튀어나왔다. 보도 이후 동성을 만나는 자리에서는 비교적 쉽게 위생대에 관한 내 생각을 꺼낼 수 있게 됐다. A 제품은 피부랑 안 맞아서 뾰루지가 나기도 하고, B의 경우는 냄새가 다른 제품보다 더 많이 나고, C는 고루고루 나쁜 점만 다 갖췄다는 등 정보를 공유하다 보니, 월경에 대한 궁금증과 고민을 털어놓을 용기가 차츰 생겼다.

월경은 아직도 낯설고 불편하다. 불편한 건 그렇다 치더라도 1년에 12번, 16년간 192번의 월경을 경험했음에도 낯선 이유에 관해 묻는다면 정답은 간단하다.


“혼자 쓰고 읽는 일기 같은 거라 그래.”


내게 월경은 빨간 동그라미일 뿐이다. 월경을 시작하면 달력에 빨간 동그라미를 그려 주기를 확인하고, 평소보다 주기가 늦어지면 혼자 걱정하고 고민하는 게 전부다. 월경이 늦다거나 하지 않는다는 말을 자칫 잘못 꺼내면 오해받기에 십상이다. 건강한 미혼 여성이 월경에 대해 고민하고 있으면 대부분의 사람이 ‘임신’을 떠올리며 대뜸 테스트기부터 들이민다. 당황스럽다. 가능성이 있다면 고민하기 전에 당사자가 먼저 해봤을 텐데 말이다. 월경은 불규칙한 생활, 과도한 스트레스, 인스턴트 음식 등 다양한 부분에서 건강 상태를 판단하는 잣대가 되기도 한다. 충분한 교육과 관심이 없다면 알기 힘들다. 오해와 편견에 휘둘릴 바에야 입을 다무는 편이 낫다.

최근에는 미투운동이 일어나 남성이 여성에게 가한 성적 폭력을 수면 위로 끄집어내고 있다. 단편적으로 보면 그렇다. 하지만 그저 달력에 빨간 동그라미를 그리거나 ‘월경’을 입 밖으로 꺼내기 힘든 나로서는 미투운동이 다른 의미로 다가왔다. 그간 다양한 여성단체가 여성의 인권을 지키기 위해 사회의 부조리함에 꾸준히 저항하고 변화시키려 애썼다면, 미투운동은 여성 개개인이 오로지 자신만의 힘으로 사회를 변화시키고 있는 셈이다. 또, 이제까지 문제의식 없이 살아온 여성은 이 운동을 통해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무엇이 잘못됐는지 깨닫는 기회를 얻을 수 있다. “과거보다 지금이 낫지”라는 말은 불필요하다. 우리 사회는 아직 더 변화해야 한다. 아직 갈 길이 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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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김초연
김초연

용산에서 태어나고 자랐으며, 현재도 용산에 살고 있는 이제 겨우 사회생활 3년차 여성. 둥글둥글한 외모와 목소리를 방패 삼아 회사에선 본색을 숨기고 살고 있다 생각했지만, 어째 나만 그렇게 생각하는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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