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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가만히 읽는 당신의 이야기

 어디로 옮겨 심어야 할까

어디로 옮겨 심어야 할까?

엄마를 만나러 가는 길

2019.06.05

내가 집을 나간 엄마를 다시 만난 건 열세 살 되던 해 겨울이었다. 


어떤 날 지인의 한 친척이 비탈진 부산 초량의 판잣집 앞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니가 수정이구나. 엄마 이름이 '김선이' 맞지?” 


산뜻한 서울 말씨로 엄마의 이름을 말하는 그 아주머니 앞에서 나는 선뜻 대답할 수 없었다. 발을 다 넣을 수 없어 뒤축을 구긴, 새까맣게 반들거리는 운동화만을 하릴없이 내려다보았다. 아주머니는 잠시 내 모습을 안쓰러운 듯 가만히 쳐다보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엄마가 너를 많이 보고 싶어 해. 아버지께 말씀 드리고 엄마 보러 가자, 아가. 정말 눈이 이쁘게 생겼네.” 


나는 아주머니의 말을 듣고도 못 들은 척 한참을 서 있었다. 방 안에서 취해 쓰러져 잠들어 있을 아버지를 아주머니에게 보여 주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수정아, 아버지 어디 계시니?” 하며 아주머니가 재촉하는 바람에 그만 참았던 울음이 터지고 말았다.


주춤거리는 소녀의 운동화 위로 분홍빛 코스모스가 한 송이 피어난다.  illustration Kim Jina


아주머니를 따라 찾아간 어머니의 집은 서울의 방배동이라는 곳에 있었다. 태어나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규모의 집이었다. 거대한 철제 대문이 요란한 벨소리와 함께 철커덕 열렸다. 곧장 달려온 것은 큰 개 한 마리였다. 컹컹 짓는 소리가 어둠보다 더 무섭게 울렸다. 저편에서 보이는 엄마는 내 이름이 아닌 개 이름을 먼저 불렀다. 희뿌연 불빛 아래 넓게 깔린 푸른 잔디가 보였다. 돌계단을 올라 마주한 2층 건물은 내가 다니는 초등학교 건물보다 커 보였다. 나를 보고 싶다던 엄마는 정작 내 얼굴은 한사코 피한 채 그 집 식구들의 기색을 살피며 나를 소개했다. 머리를 숙이지 않는 나를 대신해 엄마는 몇 번이고 그들에게 머리를 조아렸다. 


“미안해서 우짭미꺼. 하룻밤만 재우고 보내께예.” 


늘 앞섶을 다 덮을 만큼 큰 전대를 차고, 경상도 말씨 특유의 높은 톤으로 노점에서 손님들과 과일 삯 흥정으로 실랑이를 하던 엄마였기에 그런 모습은 사뭇 낯설게 보였다. 


엄마는 나를 주방 옆에 딸린 조그마한 방으로 데려갔다. 윗옷을 벗기고 나를 주방 탁자에 앉혔다. 그 와중에도 그 집 식구들이 모두 방으로 들어갔는지 연신 눈치를 살폈다. 엄마는 먹을 것들을 내왔다. 알 수 없는 음식들이 상에 올랐다. 기름진 고기를 뜯어 번들거리는 손으로 나의 입에 계속 넣어 주었다. 


“염병할 인간이 아이를 얼마나 굶겼으면 이리 삐쩍 말랐노. 가스나 몸에 살때기 하나가 없네.” 

“내 안 굶는다. 내 이 집에서 자야 되나, 엄마?” 

“와 싫나? 가스나야, 빨리 많이 묵어라.” 


엄마는 눈물보다 콧물을 더 훌쩍였다. 콧물을 훔친 손으로 음식을 내 입에 넣어 주었다. 마치 하룻밤에 수년 동안 못 먹였던 밥을 내 목구멍 속으로 다 넣으려는 것처럼… 


“수정아” 


엄마가 캑캑거리며 잘 삼키지 못하는 나를 불렀다. 엄마의 어깨가 조금 흔들리더니 이내 온몸이 바들거렸다. 엄마는 갑자기 고기를 바르던 손을 탁자에 놓고 꺼억꺼억 울었다. 그런 엄마를 나는 입을 다물고 쳐다보았다. 안경에 서린 습기가 내 눈을 가려주어 다행이었다. 


며칠 후 어머니와 헤어지던 서울역. 나를 마중하던 어머니의 눈에 소리도 없이 눈물이 그득 차올랐다. 나는 갑자기 목구멍이 뻐근해졌다. 역사 주변으로 늘어선 창백한 수은등 불빛에 어머니의 둥글고 아담한 이마와 날렵한 콧날이 떠올랐다. 어머니의 얼굴이 흐뭇하게 보였다. 


“수정아, 가지 말고 서울 이모 집에 있어라. 엄마가 하루에 한 번씩 올게.” 

“아부지는 내 없으면 안 된다. 술만 마시다 죽는다.” 

“빌어묵을 인간! 엄마가 준 돈 아버지 주면 안 된다. 단디 잘 감춰라. 배고플 때 니 묵을 거 사 묵으라. 굶지 말고. 알았제, 수정아?” 


거대한 도시를 떠나 아버지에게로 돌아가는 길. 어머니는 내가 개찰구를 넘어 플랫폼으로 들어설 때까지 손을 흔들었다. 기차는 역을 완전히 빠져나와 드문드문 건물이 늘어선 도시의 변두리를 달렸다. 나는 쿵쾅거리는 기차의 소음에 기대어 숨죽여 울었다. 아무리 울어도 먹먹한 가슴은 여전했지만 나에겐 나밖에 없는 아버지에게 돌아갈 도리밖에 없다는 것, 그것이 내가 짊어진 몫이라는 것을 나는 분명히 알고 있었다. 아버지이, 나 없으면 하루 한 끼도 안 먹을 아버지이…


가파른 산동네 길을 오르며 소녀는 외로움을 참고 또 참는다.  illustration Kim Jina


그날 이후, 엄마를 만날 수 있는 방학만 손꼽으며 고주망태 아버지와 내내 막힌 수채 구멍과 씨름했다. 한 손으로 코를 막고 다른 한 손으론 고인 물을 양동이에 퍼 담았다. 어두운 수채 구멍에 고인 구정물 냄새! 나중에는 코를 막아도 냄새가 입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바람에 토악질이 났다. 구정물이 가득 찬 양동이를 들고 집 밖으로 나오는 순간 찬바람이 기다렸다는 듯 내 얼굴로 휘몰아쳤다. 왼쪽 귀와 볼이 얼얼해졌다. 겨우내 볕이 들지 않아 얼어버린 비탈진 골목 시멘트 바닥을 오르내리던 내 무릎엔 볼록하게 물이 찼다. 수채 구멍으로 빠져 나가지 못한 외로움이 내 무릎에 고였던 것이다. 


1987년 7월, 학교에서 기말고사를 보던 날이었다. 아버지는 아침밥도 못 잡수고 텅 빈 방에서 외롭게 돌아가셨다.​ 


아버지 장례를 치르고 서울로 갔다. 종암경찰서 건너편에 망연히 서 있는 엄마가 보였다. 엄마에게 가기 위해선 육교를 올라야 했다. 미처 빠지지 못한 구정물이 출렁거린 것일까? 계단을 오르는 내 무릎은 절룩거렸다. 어머니는 아무것도 토해내지 못한 얼굴을 한 채, 나를 보자 고개를 돌리고 울었다. 어쩌다 우리는 이렇게 낯선 길 위에서 다시 만났을까? 왜 이 넓은 하늘 아래, 함께 살 집 하나 없어 또 길에서 만나 울어야 하는 것일까?​ 


내가 스무 살이 돼서야 어머니는 식모살이 집을 나왔다. 당시 어머니는 콜라 따위 음료수를 마음대로 삼킬 수 없었다. 물을 마셔도 코로 나왔다. 어머니의 육체엔 힘이 없었다. 의사는 그것을 '근무력증'이라 했다. 서울대학교병원에서 수술을 하고 한 달쯤 입원했다. 어머니는 세상에 매달린 채 떨어지지 않으려 긴긴 시간 안달복달했다. 그녀가 오로지 자신을 위해 편히 누워 본 시간은 아마 이때뿐이었을 것이다. 


자식과 남편을 가난 때문에 버리고, 나와 비교도 안 되는 좋은 환경에서 밥을 먹고 잠을 잘 때 느꼈을 죄책감과 자괴감은, 급기야 어머니를 비굴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비록 그것이 남의 집 식모살이였지만, 그 밀려오는 비굴함에도 어머니는 어쩐지 당당했다. 


“이 병원은 방배동 할아버지 빽 아니었으면 들어오지도 못한다. 우리나라에서 제일 좋은 병원 아이가. 나를 수술한 교수도 우리나라 최고 의사라 카드라.” 


겨우 마흔일곱 살 먹은 여자가 머리카락은 새하얗게 센 채 병원 침대에 누워 ‘은혜’를 말하며 웃었다.


 어디로 옮겨 심어야 할까 소녀는 구겨진 종이같은 일상 위에 있지만, 꽃같은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


방배동 집의 새파랗게 젊은 아들이 어느 날 술에 취해 들어왔고, 빨리 문을 열어 주지 않았다는 이유로 어머니를 때렸다고 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다. 어머니의 부러진 팔이 오빠를 취직시켰다. 나는 울었다. 울부짖었다. 옛날 자신의 뺨을 후려치던 아버지께 소리치던 어머니처럼. 그 집 반신불수 할아버지의 수발을 한 대가로 수유리의 17평 주공아파트에 나도 살 수 있었다. 내가 상업고등학교를 나와 받는 월급으로는 가질 수 없었던 우리 집!


​“누가 뭐라캐도 내한테는 그 방배동이 비빌 언덕이었다. 늙은이 똥오줌 받아내는 게 뭐가 더럽노. 내 새끼들 먹이고 입힐 돈을 주는데... 세상 누가 십원짜리 하나 공짜로 주는 줄 아나? 가스나야, 니도 새끼 낳고 살아봐라.” 


나는 무서웠다. 어머니가 이렇게 변한 채 쓰러질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나는 무서웠다. 무서워서 욕이 나왔다. 아무도 들을 수 없는, 기도같은 욕을 마구 쏟아냈다. 이 가난한 여자도 사람이 아니냐고. 우리도 이 땅에 옮겨 심어 달라고. 길 위에서 처연히 울지 않게…




_ 일러스트레이션 Kim Jina

디아스포라 판잣집 서울역 방배동 저택 종암경찰서 수유리 오빠 주정뱅이 아버지 어머니 소녀
 
김수정
1971년 부산 출생. 방송통신대학교 국문학과를 졸업했습니다. 공장 노동자로 일했고(1999-2010년까지, 알곤 자동용접) 지금은 경상북도 영천에서 농사를 짓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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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2)

  • 감명깊게 잘 읽었습니다..

    박영우 2019.06.07

  • 매우 감동적인 문장이군요^^ 감사합니다^^

    이승희 2019.06.07

  • 이 가난한 여자도 사람이 아니냐고. 우리도 이 땅에 옮겨 심어 달라고. 길 위에서 처연히 울지 않게…

    이재익 2019.06.07

  • 가슴으로 읽게 하는군요~ 파란 하늘을 보며 맘껏 웃을 수 있는 날이 올 겁니다~!!!♥

    양은미 2019.06.07

  • 감동과 슬픔이 맘을 아리게 합니다~. 좋은 글 감사 합니다

    김소영 2019.06.07

  • 가슴에 와 닿는 글 ....감사합니다^^

    김인호 2019.06.07

  • 음..맘속 깊이 있던 아리던 것이...아리고 아리다..ㅜ

    김영석 2019.06.07

  • 겨우내 볕이 들지 않아 얼어버린 비탈진 골목 시멘트 바닥을 오르내리던 내 무릎엔 볼록하게 물이 찼다. 수채 구멍으로 빠져 나가지 못한 외로움이 내 무릎에 고였던 것이다. _ 어렸을 때 느끼셨을 외로움에 가슴이 아픕니다. 안아드리고 싶습니다. 글 잘 읽었습니다.

    김경희 2019.06.07

  • 외로움이 무릎에 고였다는 표현이 글의 전체적 감정을 대변하고 있군요

    김성찬 2019.06.11

  • 감사한 글입니다^^

    권의수 2019.06.11

  • 어제 퇴근길 지하철 안에서 읽다가... 읽다가 보니 이미 읽었던 글이었는데 새삼 마음이 아팠습니다요

    황성하 2019.06.21

  • 잘봤습니다. 응원합니다.

    양정인 2019.0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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