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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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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심의 가격

변하지 않는 관심의 가격은 얼마일까

by 신일애 / 2019.12.11



사람이 무척이나 그리운 날이 있었다. 

한평생 산골짜기에서 자란 내게 서울은 그저 복잡하고 차가운 도시처럼 보였다. 독립적인 줄 알았던 내가 사실은 외로움을 잘 타는 사람이라는 것도 그 시절에 알게 됐다. 그때 나는 자격지심 덩어리였다. 하루에 채 열 마디의 말도 하지 않는 날들이, 그렇지 않은 날들보다 많았다. 누군가 내 억양을 듣고 내 출신을 알아차리지 않기를, 그래서 나를 무시하지 않기만을 간절히 바랐다. 그 마음이 나를 더욱 고립시키고 있다는 것조차 알지 못한 채.  


도시 속 혼자라는 외로움


따뜻한 손길과 관심 어린 대화, 그런 것들이 결핍된 날이 있었다.

제발 누구든 나를 좀 사랑해달라고 길 한복판에서 외치고 싶은 심정이었다. 예능 방송을 보면서 깔깔거리고 웃다가도 누우면 잠들 수가 없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200km 밖에 있다는 걸 떠올릴 때마다 견디기 어려울 만큼 괴로워졌다.  


서울 생활에도 약간의 요령이 붙었을 때쯤, 나는 한 가지 진리를 깨달았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관심도 돈으로 살 수 있다는 것을. 그맘때쯤부터 나는 미용실에 다니기 시작했다. 미용실은 내가 원한 두 가지가 쉽고 빠르게 충족되는 공간이었다. (머리카락을) 만져주고, (상태가 어떤지) 말 걸어주고. 나에게 보이는 관심이 내가 낼 돈 때문인 줄 알면서도 직원의 친절에 행복했다. 그 시간이 오래도록 계속되기를 바랄 만큼. 그래서 나는 뭔가 추가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다. 미용실 입장에서 나는 아주 좋은 손님이었을 것이다. 우리들의 대화는 이런 식이었다. 


“지금 두피가 많이 일어나 있어서요. 두피 케어에 좋은 시술을 받아 보시는 건 어떨까요?”

“그건 시간이 얼마나 걸려요?” 

“30~40분 정도 더 걸려요.” 

“그거 해주세요.” 


내가 궁금한 건 비용이 아니라 시간이었다. 시간이 오래 걸릴수록 좋았으니까. 

괜히 대화가 하고 싶어지면 내가 먼저 말을 걸 때도 있었다. 모발 상태가 어떤지, 머리숱은 많은지 물으면 친절한 직원은 내게 ‘끝이 많이 상하셨어요’, ‘정수리 쪽에 머리숱이 좀 없으세요’라고 대꾸해주었다. 

어떤 날은 머리를 자르고, 어떤 날은 파마를 하고, 또 어떤 날은 염색을 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내 머리는 점점 더 화려해졌다. 


그 짓을 그만둔 건 상경한 지 2년쯤 지났을 때였다. 자연스러운 과정이었다. 잦은 시술로 내 모발은 손으로 빗어 넘길 수 없을 정도로 상해 있었다. 억지로 빗으면 끊어진 머리카락이 우수수 떨어졌다. 아무리 좋은 염색약을 쓰더라도, 영양 케어를 추가하더라도 한 번 손상된 모발은 쉽게 돌아오지 않았다. 그때 찍은 사진을 보면 내 머리는 불타는 듯한 빨간색이었다. 염색을 자주 하면 점점 색이 밝아진다는 소소한 지식도 얻게 됐지만 나는 더는 미용실에 다닐 수 없었다. 마지막으로 검은색으로 염색하고 당분간 미용실을 끊기로 했다. 다른 사람들과 평범한 대화를 하고 싶었다. 돈만 낸다면 얼마든지 관심 받을 수 있다는 걸 미용실을 다니면서 배운 참이었다. 


미용실에서도 다양한 취미활동에서도 외로움은 채워지지 않았다


온갖 종류의 취미활동을 시작한 건 그때부터였다. 배드민턴, 조깅, 기타 등 나는 조금이라도 재미있어 보이는 건 전부 시작했다. 동호회에도 나가고 모임에도 가입했다. 각종 장비와 휴대전화 속 연락처가 늘어났다. 그런데 내가 아는 건 남들도 아는 사실인 모양이었다. 목적이 다른 사람들은 눈빛부터 다르다고 했던가? 동호회는 나만큼이나 외로운 인간들이 오는 종착지 같은 곳이었다. 반은 취미활동에 관한 관심과 반은 관심을 받을 목적이었던 나는, 모임이 있다는 공지만 뜨면 달려나갔다. 


어느 쪽의 비중이 더 컸냐고 묻는다면 그때 내 눈빛을 본 사람들은 답을 알고 있을 것이다. 나는 매일 모임 참가비와 뒤풀이 비용으로 월급을 탕진했다. 다 같이 있을 땐 즐거웠지만 밤늦게 돌아오는 길은 외로웠다. 올라갔던 기분만큼이나 떨어지는 기분의 낙차가 컸다. 혼자 걸어가면서 이 길을 같이 걸어 줄 사람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이 세상에 나를 변함없이 좋아해 줄 사람은 없는 건지 아무라도 붙잡고 물어보고 싶었다. 


서울살이 3년 차가 되자 사람들은 더는 나를 ‘지방 출신’으로 보지 않았다. 내가 지방 출신이라고 말하면 어떤 이들은 놀라기도 했다. 서울 출신인 줄 알았다고, 어쩜 사투리를 하나도 안 쓰느냐고 했다.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기뻤으나 그저 별일 아닌 양 어깨를 으쓱했다. 원래부터 서울 사람이었던 것처럼. 여전히 나는 자격지심 덩어리였다. 


그러는 사이 우연히 한 남자를 만났다.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말을 하는 사람이었다. 내가 가지지 못한 걸 가진 그 사람에게 나는 쉽게 빠졌다. 취미 활동에 탕진하던 월급을 데이트 비용에 탕진하기 시작했다. 내게도 관심을 가져주는 사람이 생겼구나, 하는 벅찬 마음에 그 사람에게 뭐든 사주고 싶었다. 그와 내가 물질이 아닌 감정을 교류하는 관계라는 것을 서투르기 짝이 없던 나는 잘 몰랐다. 관심받기 위해 비용을 지불했던 것처럼, 내가 가진 애정만큼 그에게 자꾸만 뭔가 사주고 싶었다. 그에게 미안하다, 고맙다는 말을 하는 게 아니라 대신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만큼의 선물을 사주는 식이었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진정한 관계에서 '관심의 가격'을 깨닫다


다행히도 관계가 파탄 나지 않은 건 순전히 그 사람 덕분이었다. 우리 사이는 자본주의 논리로 설명되지 않는다는 걸 그 사람이 보여줬기 때문이었다. 내가 아플 때 걱정하며 약을 지어 주고, 내게 좋은 일이 생겼을 때 자기 일처럼 기뻐해 주고, 또 내게 고민이 있을 때 한밤중이라도 경청해주었던 그런 것들. 내가 돈을 내지 않았는데도 그가 해준 것들이었다. 물론 나 또한 그가 내게 해준 대로 그가 아플 때, 기쁠 때, 슬플 때와 같은 순간들을 함께하며 돈으로 환산되지 않는 것들을 그에게 해주었다. 


지금은 안다. 진짜 관심이라는 건 돈으로 살 수 없다는 걸, 변함없는 관심의 가격은 값을 매길 수 없다는 걸 말이다. ‘갑자기 날씨가 추워졌으니 따뜻하게 입고 다녀라.’와 같은 엄마의 문자 메시지, ‘누나 먹어라.’ 하며 커피 쿠폰을 보내주는 무뚝뚝한 동생의 연락, ‘오늘도 차 조심해요.’ 하는 사랑하는 사람의 배웅은 결코 돈으로는 살 수 없다는 것을. 


그리고 한 가지 더. 이제 출신 얘기가 나와도, 누군가 내게 서울 사람 같다고 해도 정말 아무렇지도 않다. 그건 그저 내가 사투리를 고치기 위해 무던히 노력했던 결과이기 때문이니까. 진짜 관심은 자격지심 덩어리를 갱생시키기도 한다! 





일러스트_ⓒ김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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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일애
신일애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 매일같이 깨지고 재조립되는 것이 저의 일이라고 믿습니다.
이미지_ⓒ신일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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