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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마을이 필요하다

"마음을 여니 새로운 집이 나타났다. 서로가 정을 부대끼며 사는 작은 터전이었다."

김진이

2019-09-11



그해, 나는 모든 것이 서툴렀다. 갓 태어난 아이를 품에 안은 초보 엄마였다. 아는 이 하나 없는 작은 빌라로 이사 온 직후, 날마다 피곤한 눈을 비비며 아이를 보살피는 일은 쉽지 않았다. 하나의 생명을 키운다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가 몸소 깨닫는 중이었다. 그중 가장 힘들었던 건 아이의 눈물과 마주했을 때다. 밤낮없이 우는 아이를 안고 당혹감에 발을 동동 구르기 일쑤였다. 행여 이웃에게 피해가 갈까 싶어 매일 가슴 졸였다. 말이 통하지 않는 아이를 다그칠 수도 없는 노릇이고 계속 이렇게 지내자니 마음이 영 불편했다. 가시방석이 따로 없었다.


우는 아기, 서툰 초보 엄마

 

어느 날, 잠시 짬을 내어 책을 읽다 신영복 작가의 글귀를 보았다.

“위층의 아이가 뛰어 다녀 시끄러우면, 아이에게 아이스크림을 사줘라. 아는 아이가 떠들면 덜 시끄럽다.”

‘그래, 어쩌면 사소한 인사 한번이 도움이 될지 몰라.’ 

요즘은 옆집에 누가 사는지 알 수 없는 시대라지만 나는 용기를 내기로 했다. 수줍음 많은 큰 도전이나 다름없었다.


다음 날, 차가운 바람을 헤치고 아기와 단골 빵집으로 갔다. 그곳에서 이웃과 함께 나눌 수제 빵을 한가득 샀다. 집으로 돌아와 책상 깊숙이 넣어 두었던 편지지를 꺼내 간단한 글귀를 적기로 했다. 

“안녕하세요. 301호 사는 사람입니다. 요즘 아기 소리 때문에 시끄러우시죠? 저희도 아직 초보 엄마, 아빠라 아이가 울 때마다 무척 당황하고 있답니다. 조금만 이해해주세요. 피해가 가지 않도록 최선을 다할게요. 좋은 하루 보내세요. 늘 감사합니다.”


총 일곱 가구에 나눠 줄 빵 꾸러미를 정성껏 만들고 편지를 담았다. 차마 얼굴을 보고 인사할 용기는 없어 집집마다 돌며 문고리에 봉지를 걸었다. 어찌나 마음이 쿵쿵거리던지, 한 겨울 몰래 온 산타할아버지가 된 기분이었다. 그동안의 미안함을 조금이나마 전한 것 같아 가슴을 쓸어내렸다.


한데 다음 날부터 신기한 일이 벌어졌다. 우리 집 복도에 진짜 산타가 나타난 것이다. 외출하려고 아이와 문을 나서려다 깜짝 놀랐다. 노오란 귤을 담은 검정 비닐봉지가 걸려 있었던 것이다.

‘감사합니다. 옆집 사는 총각입니다. 저는 전혀 불편함이 없었는데 뭘 이런 걸 다……. 아무 염려 마시고 즐거운 육아하세요. 파이팅!’ 

지금껏 누가 사는지도 몰랐는데 이토록 반가운 답장이라니! 마음이 뭉클했다.


그뿐 아니었다. 잠시 뒤엔 201호에서 문을 두드렸다. 

“안녕하세요. 마침 집에 있었네요. 잡채 좀 만들어 왔어요. 애기 보느라 식사 못했죠? 그맘땐 그래요. 식기 전에 어서 먹어요. 시끄럽지 않으니 마음 푹 놓으시고요.” 

일곱 살 아들을 키운다는 아주머니는 내가 분명 밥을 못 먹었을 거라며 갓 만든 잡채를 건넸다. 낯선 누군가가 나의 끼니를 살펴 주는 일이 이렇게 큰 위로가 될 줄은 미처 몰랐다. 왈칵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다음 날 아침에도 어김없이 반가운 쪽지가 도착해있었다. 

‘202호 사는 할머니입니다. 아이는 울어야 건강합니다. 나는 괜찮습니다. 마음껏 울리세요. 시골에서 직접 담근 장으로 채소 넣어 쌈장 만들었어요. 맛있게 먹어요.’ 

할머니의 꾹꾹 눌러 쓴 글씨를 한참동안 가만히 만져보았다. 빈 통을 그냥 주기 겸연쩍어 딸기를 가득 담아 초인종을 눌렀다. 노부부는 나를 보고 함박웃음 지었다. 

“아이 보기 힘들면 언제든 놀러 와요. 내가 대신 봐줄게. 얼마나 예쁘고 귀해. 보기만 해도 행복해지는 존재야, 애들은.”

뭔가를 바라고 한 일은 아니었는데, 이렇게 소소한 배려가 이어지다니, 어리둥절하기만 했다. 


서로를 배려하는 마음 고마운 이해

 

그중 압권은 501호 아주머니였으니, 하루는 난데없이 우리 집 문을 쿵쿵 두드렸다. 

“누구세요?”

“문 열어봐요. 나 501호 사는 사람이에요.” 

문을 열자 그녀는 다짜고짜 애기 옷 입혀서 얼른 위층으로 올라오라고 손짓했다. 

“네? 아니에요. 귀찮으실 텐데요. 정말 괜찮습니다.” 

“아이고~ 아기 엄마, 혼자 애랑 있으니 얼마나 답답해. 내가 고마워서 그래. 잠깐 놀다 가. 우리 집에 애기들 얼마나 많다고.” 

당최 무슨 말인지 몰라 머리만 긁적이는데, 그녀가 자신 있게 앞장섰다. 뭔가에 홀린 듯 아기를 안고 5층으로 올라간 나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 세상에나! 그곳엔 옹기종기 앉아 장난을 치는 네 명의 아이들이 있었다. 

“내가 조카가 둘인데, 걔네 자식들을 돌봐주고 있어. 9살, 7살, 6살, 4살. 아유, 정신 하나도 없어. 어린이집 수업 끝나면 데려와서 씻기고 먹이면 하루가 다 간다니까. 참! 내년 봄에 한 명 더 태어나. 하하하.” 

너털웃음 짓는 그녀를 보고 나도 그만 웃음이 터졌다. 그날 저녁, 아이들과 신나게 놀고 집으로 가려는데 5살 예슬이가 수줍게 종이를 건넸다.

“아줌마, 나 요즘 글 배워요. 이거 가져요.”

하얀 종이엔 예슬이가 서툴게 쓴 글씨가 담겨 있었다.

‘아가야. 사랑해. 우리 집에 또 놀러 와.’ 


모든 게 낯설어 혼자 눈물짓던 나에게 집은 위로 그 자체였다. 그땐 누구나 힘들다고, 아이는 다 울기 마련이라며 등을 토닥여주는 이웃이 있어 매일이 감사했다. 인터넷이나 티브이에서는 연일 이웃 간의 마찰로 벌어진 비극을 다뤘지만 내가 몸소 느낀 집은 그런 곳이 아니었다. 서로가 정을 부대끼며 사는 작은 터전이었다.


마음의 문을 꽁꽁 닫고 지냈을 땐 모두가 나를 불편해하는 것 같았다. 

‘아이가 운다고 싫어하겠지?’ ‘현관에서 만나면 인사를 해야 하나? 그건 좀 어색한데.’ 

크고 작은 걱정이 머리를 가득 채울 때도 많았다.

하지만 내가 먼저 손 내밀어 진심을 전한 순간, 모든 걱정이 사라졌다. 이제 집 앞에서 누군가가 보이면 반갑다. 주고받는 안부가 정겹고 눈을 마주치며 인사하는 시간들이 행복하다.


아이들을 키우는 온 마을의 정성


초보 엄마였던 내가 사람 사는 방법을 배우는 동안 아이도 무럭무럭 자랐다. 밤낮으로 울던 녀석은 이제 햇살을 가르며 쪼르르 걸어 다닌다. 아이를 키운 건 나 혼자가 아니다. 우리 집에 사는 따듯한 사람들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 

익히 들었던 그 말이 가슴에 내려앉을 줄이야……! 집이 내게 준 선물 같은 순간이다.




일러스트레이션_ⓒ김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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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이
김진이

천천히 그러나 쉬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는 어른이 되려합니다. 노력하는 아내이자 엄마로서 사는 이야기를 글로 남기고 싶습니다. 이미지 출처_ⓒ김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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