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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가만히 읽는 당신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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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이상은 모른척 하지 않을게, 나의 몸

고유한 나의 몸을 소중히 여기기

by 이아나 / 2019.02.20


‘몸뚱이’를 ‘몸’으로 인식하게 되다


회사를 관두고 태국 치앙마이로 떠났다. 현실 도피에 가까웠지만, 자유로워지고 싶었다. 치앙마이에서 지내는 동안 여러 면에서 서울에서와는 다른 생활을 했다. 특히 아래와 같은 노력을 했다.

 

- 자정 전에 잠자리에 든다.
다음 날 일정이 없을 때는 일어나고 싶을 때까지 잔다.
배가 고플 때 먹는다.
밖에서 사 먹을 때는 채식 위주로 먹는다.
하루 한 끼는 직접 해 먹고, 날마다 장을 본다.
일주일에 2~3회 요가를 한다.
타는 듯 뜨거운 시간을 제외하면 걸어 다니고, 저녁 시간엔 종종 동네 산책을 한다.
무리해서 몸에 신호가 올 때는 하던 일을 멈추고 쉰다.
잠자리에 들기 전엔 누워서 가벼운 스트레칭을 한다.
아픈 곳이 생길 때마다, 간단히 병상 일기를 쓴다.


회사를 관두고 태국 치앙마이(Chiang Mai)로 떠났다, Illustration ⓒAmy Shin

 

서울에서와 달랐던 생활을 우리 사회의 시선으로는 ‘태국에서 시간 여유가 많은 사람이 건강 챙기는 생활'로 볼지 모른다. 하지만 내가 표현하고픈 이 단면의 핵심은 ‘최대한 몸을 편하게 하고, 관찰하려 노력한 생활’이다.


예전엔 늘 바빴다. 괜한 것들로 마음을 졸이고 발을 동동거렸다. 그래서였을까? 바쁜 일상에서 내 몸을 제대로 느끼거나 살피는 일이 드물었다. 내 모든 것을 담고 있는 몸을 그저 숨 쉬는 것처럼 당연한, 뗄 수 없어 지니고 다니는 ‘몸뚱이’ 취급하며 지냈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자유롭고 시간에 여유가 생기자 몸뚱이가 온전한 나, 나의 ‘몸’으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찬찬히 뜯어보니 내 몸이 낯설다.


더위를 쫓기 위해 차가운 타일 바닥에서 뒹굴뒹굴하다 보니 발이 보였다. 내 발이 어색해서 보고 또 봤다. 발에서 올라와 다리, 무릎에서 사라져가고 있는 흉터와 새로 생긴 상처도 꼼꼼히 살펴봤다. 셔츠를 들어 올려 아랫배를 만졌더니 차가움이, 갈비뼈 사이사이를 눌렀더니 통증이 느껴졌다. 거울을 통해 화장품이 잘 발리는지 확인하며 슬쩍슬쩍 봤던 얼굴의 그 살결들을 하나씩 뜯어 봤다. 팔의 냄새를 샅샅이 맡아 보기도 했고, 손가락 길이를 하나씩 재어 보기도 했다.


더위를 쫓기 위해 차가운 타일 바닥에서 뒹굴뒹굴하다 보니 발이 보였다. Illustration ⓒAmy Shin


이렇게 찬찬히 뜯어보니 내 몸이 낯설었다. 삶은 죽음으로 종결된다. 그 종결의 순간은 온전히 내 몸이 보내는 신호가 중지되면서 결정된다. 결국 삶이란 살아 있는 순간들의 집합인 것으로 내 몸이 세상에서 직면한 반응들의 총합과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내 몸을 너무 모르고 살았다. 그냥 모르는 게 아니라, 내 몸을 외면하며 학대하기도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몸의 소리를 듣기 시작하니, 몸이 사랑스러워졌다. 그래서 자주 몸을 관찰했다. 어느 한 곳도 불편하거나 거슬리지 않는 가뿐한 상태를 유지하려고 했다. 일반적인 건강 상식을 적용해 보기도 했고, 실제로 좋은 느낌을 받았던 활동을 반복해 보기도 했다. 그렇게 몸의 감각들이 내게 보내는 신호를 들으려 애썼다.


내 몸의 소리.

살아 있음을 알리는 신호.

내 몸이 세상과 만날 때 발생하는 마찰음.

놀라운 것은 이 소리를 듣기 시작하니, 내 몸이 사랑스러웠다.

그리고 내 몸이 부딪혀야 하는 세상이 겁나지 않았다



온전히 나만 알 수 있는 몸의 메시지


한국으로 돌아왔다. 치앙마이에서 하던 일상이 그대로 유지되고 있진 않지만, 몸의 소리를 듣는 일상의 노력을 놓치지 않으려 한다. 하지만 다른 이들에게 내가 몸에 가지는 관심이나 그 의미를 전하면 오해 섞인 반응이 돌아온다.


몸의 중요성을 강조할 때면, "아직 젊은데 웬 몸 관리를 그렇게 해? 얼마나 오래 살려고?" 몸에 무리가 되는 생활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하면, "어떻게 그렇게 살아! 돈 벌고 가족 챙기고 하려면 몸이 열두 개라도 부족해." 내 몸이 먹는 것이나 사용하는 것에 예민하다고 하면, "그걸 다 신경 쓰고 어찌 살아. 아는 게 병이다."


다른 사람들은 알 수 없고, 나만 온전히 알 수 있는 내 몸의 메시지. 그 메시지가 내게 주는 삶의 자신감. 그래서 더 짜릿하고 소중한 것. 그러나 다른 사람들에게 설명하기는 어려운 이 몸의 메시지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다른 사람들은 알 수 없고, 나만 온전히 알 수 있는 내 몸의 메시지다른 사람들은 알 수 없고, 나만 온전히 알 수 있는 내 몸의 메시지


“메를로 퐁티는 나의 신체가 살아 있고 움직이기 때문에 세계도 늘 다양한 모습을 갖고 나의 신체에 화답하는 형식으로 있다고 했죠.

나의 고유한 몸이 얼마나 중요한가, 그것을 통해 세계를 경험하는 게 이전에 알던 것과 다를 수 있다고 이야기 한 것입니다.”

- 《몸과 살, 그리고 세계의 철학자》, 〈모리스 메를로 퐁티, 처음 읽는 프랑스 현대 철학〉, 정지은, 들녘


몸에 대한 나의 파편화된 생각과 느낌을 다른 이들에게 제대로 설명할 수 없었는데, 좋은 가이드가 생겼다. 메를로 퐁티가 말했듯 나의 고유한 몸, 소중한 몸을 온전히 알고 난 이후 내가 경험하는 세상은 다르다. 내가 바라보게 된 타인들도 달라졌다. 내 고유하고 소중한 몸만큼이나 타인의 그것 또한 귀하다. 타인의 몸을 귀하게 여기는 마음이 나는 좋다.


컴퓨터 자판을 누르는 손가락들의 움직임이 정지한다. 세상과 만나는 나의 글이 마침표를 찍으려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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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레이션 Amy Sh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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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프로필 이아나
이아나
<엄마, 나 시골 살래요> 저자. 글을 쓰고 농사를 짓습니다. 소박하지만, 하루하루 기쁘게 ‘완벽한 날들’을 살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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