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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당기는 대로 살면 돼

"우리는 결국 누군가와 연결되어 있는데, 그것은 연결되고자 하는 욕구가 만들어낸 결과이기도 하다."

by 허경은 / 2020.02.12


인터넷으로 연결되어 있는 우리

 

"그는 없는 것만 찾았고, 눈앞에 있는 것은 보지 못했다"


영화 <애드 아스트라>(Ad Astra, 2019)에서 우주의 지적 생명체를 찾아 가족을 두고 떠난 아버지를 향해 아들 로이(브래드 피트)가 던지는 대사다. 신비한 과학적 지식을 바탕으로 광활한 우주 공간을 연출한 SF 영화라기보다는, 가족과 주변 이웃을 돌아보게 하는 인간관계에 대한 철학적 영화라고 세간의 평을 받았다. 물론 전자를 기대한 관객들에겐 낮은 평점을 받았지만 영화가 던진 깊은 메시지에 공감한 관객들은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나는 후자에 속한다.


영화를 관람한 건 지난해 가을, 더위가 물러가고 찬바람이 솔솔 불기 시작하던 때였다. ‘혼밥’이 익숙하고 때론 편하기까지 한 싱글로서, 그날도 어김없이 혼자 밥을 먹은 후 특별한 약속 없이 무료한 일요일 오후를 보내고 있었다. 그때 접속은 자주 해 봤지만 선뜻 이용하지 못하고 있던 모임 관련 소셜 앱에서 ‘오늘 함께 영화 볼 분을 찾는다’는 게시글이 눈에 들어왔다. 영화는 <애드 아스트라>. 마침 아직 못 본 작품이기도 했거니와 심심한 주말을 함께 보낼 사람이 생겨 일석이조인 동시에, 대화보다는 시청(視聽)이 목적이라 낯선 사람들과의 어색함도 덜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약간의 망설임 끝에 ‘참여’ 버튼을 누르고 채팅 창에 들어가 인사를 나눴다.


평소라면 인터넷을 통해 사람을 만나는 일을 꺼려했을 터다. 이런 만남에는 위험이 따른다는 인식이 컸는데, 인터넷 게임이나 앱에서 만나 결혼까지 간 사람들도 있겠지만 때론 그런 만남이 싸움이나 범행 등 극단적 사건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종종 있음을 뉴스를 통해 본 기억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점점 나이가 들어 친구들은 하나둘씩 결혼을 하고, 각자 가족과의 시간에 더 집중하는 시점에 닿게 되면 인간관계 전반에 변화가 생긴다. 물론 회사나 일을 목적으로 이어진 관계도 많긴 하지만, 그런 만남을 개인적인 영역과 시간으로까지 끌어들이고 싶지는 않다. 그러던 차에 접하게 된 게 소셜 앱이다. 


청년들은 물론 외국인들에게도 이미 ‘핫한’ 홍대입구역을 중심으로 인근 지역에 거주하는 사람들끼리 모임을 주선하거나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앱인데, 소개글에는 ‘미래형 이웃 커뮤니티’란 수식어가 붙어 있었다. '서로 적절히 거리를 존중하면서...'라는 문구도 자주 등장한다. 오프라인에서 만났을 때는 닉네임으로만 서로를 불러야 하고, 실명과 나이, 연락처 등 신상을 묻는 일은 무례한 행동이며, 세 차례 이상 만나기 전까지는 개별 연락을 금한다는 주의가 명시돼있었다. 요리 프로그램에서 ‘소금을 적당히 뿌리고 고기가 이 정도 적절히 익었다 싶을 때 뒤집으세요’라고 말하면 누구나 고개는 끄덕이지만 막상 직접 따라하려면 어떤 정도가 ‘적절한’ 것인지 잘 알지 못한다. 그래서 똑같은 레시피로 요리를 해도 그 기준이 다르니 맛도 달라진다. 이 앱에서는 ‘적절한 관계’를 명확한 예시를 들어 설명해주니 그나마 다행이란 생각은 들었다.


모르는 사람들과 만나 영화를 함께 보다


극장에서 만난 다섯 명의 각 개인들은 서로 닉네임으로 인사를 나눈 후 곧장 상영관으로 입장했다. 만나기 전 이미 채팅 방에서 좌석 번호를 공유해가며 티켓 예매를 마쳤기 때문에 나란히 한 줄에 앉을 수 있었다. 


“영화를 보려고 만난 거니까, 상영이 끝나면 바로 가셔도 괜찮고 더 남아서 커피 한잔을 하셔도 되세요. 어떻게 하시든 누가 뭐라 하지 않으니 편한 대로 하세요.”


모임을 주선한 사람이 영화가 시작되기 전에 미리 말을 남겼다. 이런 만남에 부담을 갖지 말라는 뜻에서 한 말이겠고, 또 그런 정도가 편해서 이 앱을 통해 사람들이 모인 거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순간 매우 냉정하게 들려 약간의 서운한 기분도 들었다. ‘아, 적절한 관계를 유지하랬지…’


생각해보면 영화 관람은 혼자서도 충분히 즐길 수 있는 일이었다. 그동안에도 종종 무료함이 밀려올 때면 외투 하나 걸쳐 입고 나와 영화 한 편을 보고 들어가곤 했다. 극장을 포함한 다양한 문화 시설이 즐비한 홍대 거리는 혼자 살기에도 전혀 불편함이 없는 1인 가구에 최적화된 지역이지 않던가. 티켓을 각자 끊고 영화 시작 5분 전에 만나 입장한 뒤, 영화가 끝나는 대로 곧장 귀가할 것이라면 굳이 이 앱을 통할 필요도 없었다. 혼영(혼자 영화 보기)과 다른 점이라면 내 옆에 아는-얼굴, 성별, 닉네임이 전부이지만-사람이 앉았다는 것 말고는 없다.


<애드 아스트라>는 그런 상황을 아는 것인지, 묘한 메시지를 던져주었다. 내 주변을 둘러보라고. 먼 곳이 아닌 가까운 곳에 있는 소중한 가치를 발견하라고…. 평론가들은 영화의 배경이 우주인 사실에서도 의미를 찾는다. 인류가 지구에 발을 딛고 살아갈 수 있는 이유는 강력한 중력이 작용하기 때문인데, 마치 인간의 삶에도 중력과 같은 관계의 끌어당김이 있기 마련이라고. 직장과 가정에서, 그리고 이웃과 함께하는 공동체 안에서 우리는 서로를 끌어당기게 되는데 그럴수록 그만큼의 삶의 무게 또한 짊어질 수밖에 없는 거라고. 


영화 속에서, 새로운 지적 생명체를 찾겠다며 중력이 미치지 않는 우주로 떠나버린 아버지가 발견한 것은 결국 ‘아무 것도 없다’는 사실이었다. 또 그것을 통해 아들 로이가 발견한 것은 아버지의 존재보다는 (지구에 남겨진)‘내 주변에 있는 소중한 이웃들’이었다. 


영화가 끝난 후 사람들은 뭔가 미련이 남은 듯한 표정을 지었다. “커피 한 잔 하겠느냐”는 누군가의 제안에 자연스레 커피숍으로 발길을 모았다. 한 모금씩 커피를 홀짝이며 영화에 대한 소감을 나눴고-여전히 실명과 나이를 밝히진 않았지만-각자 어떤 일을 하는지, 어쩌다 이 앱에 가입하게 되었는지, 어떤 종류의 모임에 나가봤는지 등을 물으며 소소한 담소를 즐겼다. 다들 혼밥과 혼영을 즐기며 살아가는 직장인과 학생들이었다. 


최근 뉴스를 보면 1인 가구가 증가함에 따라 전통적인 공동체 문화가 점점 사라져간다고 우려하는 목소리를 자주 접하게 된다. 한때 드라마 ‘응답하라’ 시리즈가 인기몰이를 했던 것도 이웃과 스스럼없이 음식을 나눠 먹고 정겹게 지내던 시절에 대한 향수와 공동체 가치의 상실에 대한 반성이 반영된 결과라고 본다. 인터넷이 발달하고 전화보다는 메신저로 대화하는 게 편하다는 시대를 살아보니, 그런 우려에 공감하면서도, 한편으로 공동체 가치는 정말 상실되었을까 하는 의문이 남는다. 


공유 시스템은 오히려 IT시대에 들어 더 발달했다. 인터넷만 검색해봐도 집, 가구, 차량, 자전거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공유가 이뤄지고 있다. SNS 속에서는 '좋아요' 하트 하나를 더 얻기 위해 분주히 노력하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SNS는 결국 나 혼자 고립된 채 존재하기보다는 다른 누군가와 무언가를 나누고 끊임없이 교감하려는 인간의 본성에 시대가 발맞춘 결과로 탄생한 문화가 아닐까. 공동체 문화는 그 외관이 바뀌었을 뿐 본질은 여전히 살아있다고 믿는다. 


우리가 연결되어 있는 것은, 연결되고자 하는 욕구가 만들어낸 결과이다


‘혼자 사는 게 편하다’는 사람들도 사실은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확인하기 위해 방법을 찾는다. 몇 마디 나누지 못하더라도 누군가와 함께 같은 영화를 보려하고, 혼자 떠난 여행길에서 찍은 멋진 풍경 사진도 SNS에 올려 다른 이의 반응을 살핀다. 우리는 결국 누군가와 연결되어 있는데, 그것은 연결되고자 하는 욕구가 만들어낸 결과이기도 하다. 


영화 모임을 마친 후 집에 돌아와 해당 앱에 후기를 한 줄 남겼다. 


“오늘 본 영화의 메시지는, 이 앱이 추구하고자 하는 가치와 일맥상통하는군요.”


함께 관람했던 사람들이 ‘좋아요’를 누르며 공감의 뜻을 보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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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경은
허경은
작가/기자 겸 편집자. 북한 인권, 한반도 통일 등 정치·사회적 이슈를 주로 취재한다. 화제가 되었던 주요 탈북 인사들을 비롯해 200여 명의 각계 리더들을 만나 온 인터뷰어다. 평소에는 여행과 일상 등을 주제로 에세이를 즐겨 쓴다. 개인과 사회, 국가 등 곳곳에 존재하는 갈등과 선택의 문제, 다양성과 공존의 가치 등을 주로 다룬다. 저서로 『우리는 낯선 곳에 놓일 필요가 있다』, 『얼굴 없는 사람들』 등이 있다.
이미지 제공_ⓒ허경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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