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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에서 미국 콜로라도 스프링스까지

" 그 사람은 콜로라도 스프링스라는 곳에 살고 있다고 들었다. "

윤혜연

2020-02-05



미국은 나에게 아주 먼, 관계없는 곳이었다. 그 사람을 알기 전까지.


미국에는 사람 보다 땅이 더 많단다. 우연히 검색해 본 미국 땅의 면적은 '9억 헥타르’가 넘는다고 한다. 그 숫자만으로는 미국의 크기를 쉽게 가늠할 수 없었다. 그저 ‘엄청나게 크구나’라고 생각했다. 미국이라는 나라에 여행 한번 가보지 않아서 별로 인연이랄 것도 없었다. 보통 ‘외국’이라고 하면 나는 ‘미국’을 많이 떠올렸을 뿐이었다.


"처음 말을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를 몰라서 글을 몇 번이나 썼다 지우고 있습니다."


그 '9억 헥타르’가 넘는 면적의 땅에 있는 누군가에게 전자우편을 보낼 줄은 꿈에도 몰랐다. 물론 기관을 통해 영어로 번역해 보내는 전자우편이었지만. ‘그 사람’은 콜로라도 스프링스라는 곳에 살고 있다고 들었다. 대한민국과 미국 콜로라도 스프링스는 8시간의 시차가 있다는 것도 ‘그 사람’ 때문에 알았다. 


"제게 또 다른 언니가 있다는 사실은 중학교 3학년 때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아버지도 당신에 대해서 알고 있었고, 엄마와 함께 그 이야기를 나누던 중이었지요. 아버지가 제게 말씀해주셨습니다. '네게 또 다른 언니가 있다.' 그 말을 처음 들었을 때, 뭔가 멍한 상태였어요. 충격을 받았다기보다는 그저 멍한 상태였습니다."


당시 엄마는 도무지 키울 여력이 되지 않아, 갓 낳은 아이를 산부인과에 놓고 와야 했다. 다음날 다시 찾으러 갔지만 아이는 이미 미국 땅으로 입양이 결정되어 병원에서 찾을 수는 없었다고 했다. 긴 세월이 흐르고 우연찮게 입양과 관련한 기관과 연락이 닿아, 그 아이와 다시 연락할 수 있게 되었다.


그동안 엄마는 그 ‘인연’을, 그 ‘연결’을 숱하게 거절했다. 나는 엄마가 아니라서 그 마음을 다 헤아리지 못한다.


어릴 때 입양된 언니와 메일을 주고받게 되었다



"중3 때 알게 된 당신의 존재는 얼마 지나지 않아 그냥 기억 저편 속으로 사라지는 것 같았어요. 그러다 다시 연락이 닿게 되자 조금 궁금하기도 했습니다. 당신이 어떤 이야기를 가지고 살아왔는지, 살아가고 있는지 궁금했습니다. J 언니가 당신한테 온 편지를 전해줄 때마다, 또 다른 언니가 있다는 사실을 다시금 실감하게 됩니다."


"참, 그리고 당신은 J 언니를 참 많이 닮았어요. 원래 자매는 닮는다고 하잖아요? 특히 당신은 J 언니를 많이 닮았다고, 처음 사진을 봤을 때 그렇게 느꼈어요. 저도 J 언니를 닮았어요. 그런 점에서 우리가 자매라는 사실을 새삼 깨닫습니다."


나에게는 이미 언니가 한 명 있었기 때문에 ‘또 다른 언니’라는 설명을 붙여야만 하는 누군가를 받아들이는 게 쉽지 않았다. 지금까지도 미안한 말이지만 그저 ‘미국에 있는 사람’이라거나 ‘그 사람’으로 부를 뿐이다. ‘당신’이라는 말은 전자우편을 주고받을 때 주로 붙여 쓰는 호칭이다.


"그리고 당신이 '스스로를 가끔 외계인 같은 존재로 느꼈다'는 이야기를 듣고 마음이 아팠습니다."


미국인이지만 이방인으로 받아들여졌을 ‘그 사람’의 시간들을, 나는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다. 언니와 나를 닮은 얼굴의 또 다른 ‘가족’이 미국이라는 먼 땅에 존재함을 전혀 알지 못했던 것만큼.


"당신에게 아픈 이야기가 있는 것처럼 저 역시 아픈 이야기가 있습니다. 엄마, 언니, 아빠에게 모두 아픈 이야기가 있지요. J 언니는 다를 수 있겠지만, 전 그 이야기를 하고 싶지가 않았어요. 당신이 힘들게 찾았던 가족이 저마다 아픔을 하나씩 갖고 있다는 사실을 알면, 당신도 분명 가슴이 아플 테니까요. 그래서 행복한 이야기만 들려주고 싶습니다."


또 다른 언니와 관계를 쌓을 수 있게 된, 과거라면 불가능했던 일들

 

글을 쓰는 나는 어떤 이야기의 처음을 쓸 때보다 이 편지를 쓰는 게 더 힘들었다.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할까, 어떤 이야기를 해야 그녀의 가슴에 상처를 만들지 않을까……하는 고민들.


"엄마에 대해서 이야기 하자면…… 어쩌면 제가 이야기하는 게 주제 넘는 말일 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조금 한다면, 엄마는 마음이 참 약한 사람입니다. 당신에 대한 미안함도 가득 가지고 있는 것 같아요. 가슴에 묻어두고 너무 미안해서 차마 꺼내 보지도 못하는, 그런 존재가 아마 당신인 것 같습니다. 엄마에게는 더 시간이 필요한 것 같아요. 이해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엄마도 강한 사람입니다. 제가 전에 이야기 했었던 것처럼 엄마에게도 아픈 이야기가 있어요. 그 일들을 다 겪어내면서 J 언니와 저를 키웠습니다. 물론 엄마는 당신에 대해서 후회를 많이 하는 것 같아요. 제가 엄마의 마음 속까지 들어가 보지 못해서 잘 알지는 못하지만. 당신을 놓아 버린 일에 대해서 많은 후회를 하는 것 같습니다. 그것만큼은 당신이 알아줬으면 좋겠어요. 엄마는 당신을 사랑하고 있어요. 전 그렇게 믿어요."


"더 많은, 부모님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은데 잘 되지가 않아요. 머릿속에서 정리가 되지 않는 것인지 아니면 당신에게 상처를 줄까봐서 두려운 것인지. 아마 둘 다 일수도 있을 거 같네요."


"참, 당신 사진을 J 언니 메일을 통해 보게 되었어요. 그리고 당신의 사진을 보면서 또한 J 언니를 많이 닮았다고 느꼈습니다. 당신 목소리가 궁금해지기도 해요. 왜냐하면 저도 J 언니와 목소리가 많이 닮았다고 사람들이 말하거든요."


지금은 그녀와 메신저로 대화를 나눌 수 있게 되었다. 여전히 나는 번역기에 의지를 해야 하지만.


"어쨌든, 그것만은 알아주셨으면 해요. 엄마는 당신을 잊지 않았어요. 단 한 순간도 잊은 적이 없답니다. 꼭 기억해두세요. 그럼 이만 줄일게요. - 당신의 동생, 윤혜연." 


나는 ‘당신’과 ‘연결’ 될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이만한 마음에 이만한 생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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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혜연
윤혜연

스물 일곱, 벌써 글을 쓴 지 7년이 되었지만 여전히 글을 쓰는 게 더 좋고, 좋은 사람과 좋은 글을 사랑하고 싶은 글쟁이입니다. yy940916@naver.com
이미지 제공 _ ⓒ윤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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