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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가만히 읽는 당신의 이야기

노랑과 분홍이 어우러진 경쾌한 담벼락
여행 감성 가족

나만의 파파라치


"그런데 그 사진 앨범 속에 가장 많이 보이는 대상은 나였다.
카메라를 의식해 포즈를 잡는 인위적인 내가 아닌,
자연스런 여행자 모습의 내가 그 속에 담겨 있었다."

by 윤혜림 / 2020.01.15


“그 한 장을 위해 수백 장을 찍으신 거잖아”

테이저건에 맞으면 이런 느낌일까. 온몸이 찌릿했다. 특히 심장이.

친구에게 부모님과 함께한 여행 이야기를 하던 중이었다. 부모님이 사진을 잘 못 찍어 백 장 중에 한 장 건질까 말까였다는 말을 했다. 친구 부모님은 두 분 다 병으로 일찍 돌아가셨다. 아무 생각 없이 던진 말에서 친구는 부모님의 마음을 읽어낸 거다.


한 달 전, 마흔 넘은 미혼인 나는 일흔 넘은 부모님을 모시고 미국 대륙 횡단 여행을 했다. 직장에서 미국 1년 연수라는 꿈같은 기회를 얻었기 때문이다. 미국에 오면 꼭 하고 싶었던 대륙 횡단, 나는 그 여행 파트너를 부모님으로 정했다. “누구랑 여행하는 것이 가장 좋아?” 여행을 많이 다니는 내게 사람들이 물으면 망설임 없이 ‘부모님’이라고 답한다. 상대가 이해 못하는 표정을 짓는다면 설명을 덧붙인다. “세상에서 나를 가장 사랑해주는 사람이잖아” 답변을 듣고 사람들이 짓는 표정은 두 가지. ‘저 나이 되도록 쯧쯧’, ‘남편도 남자친구도 없고 쯧쯧’, 그리고 아주 가끔은 ‘아이고 착하네. 효녀네’라는 눈빛. 


부모님과 함께 미국 횡단 여행을 떠나다


독립하지 않고 부모님과 함께 사는 나는 세상이 정한 ‘평범한’ 범주에는 벗어난 존재다. 다만 밥벌이 할 직장은 있어 부모님께 손은 벌리지 않는다. 내세울 것 없는 딸을 되레 부모님은 친구 분들에게는 자랑을 한단다. ‘우리 딸이 사줬다’, ‘우리 딸이 외식시켜줬다’, ‘우리 딸이 스마트폰 사용 방법을 가르쳐줬다.’ 실상 드린 것도 별로 없는데 부모님의 모든 말에는 ‘준’ 자식이 되어있다. 이것은 아마 노처녀 딸에 대한 험한 소리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한 방패막일 것이다. ‘결혼하고 부모 신경 안 써주는 너네 자식보다 결혼 못해도 곁에서 살가운 우리 딸이 더 낫다!’라는 무언의 시위. 나는 이 부모님의 애정 넘치는 시위에 미국 대륙 횡단이라는 날개를 달아 드린 셈이 됐다. 36일 동안의 미국 횡단 여행 계획을 밝히자 부모님의 망설임은 잠시, 바로 승낙했다. 한국을 떠난 지 몇 개월 만에 미국서 부모님을 다시 만났고, 파이팅을 외치며 우리의 대륙 횡단은 시작됐다.


처음엔 몇 개월만에 만난 부모님이 마냥 반갑고 좋았다. 딸을 향한 무한 신뢰를 가슴에 품고 미국에 오신 것도, 일정을 소화해내는 부모님의 체력에도 감사했다. 하지만 인간의 마음은 간사하다. ‘내리 사랑은 있어도 치사랑*은 없다’고 했던가. ‘더 많이 사랑하는 사람이 을’이라고 했던가. 나는 부모님께 항상 갑의 존재였기에 ‘절대 권력’을 발휘한다. 


여행이 계속될수록 나의 ‘갑질’은 정도를 더해갔다. 영어를 몰라서, 잘 못 들어서(아버지는 귀가 어둡다) 물어보는 말들에 짜증을 내기 시작했다. 피곤함이 쌓일수록 빈도는 잦아졌다. ‘몰라야 할 수 있다’는 자동차 여행은 우리에겐 그저 미국 동서남북을 제멋대로 가로지르는 강행군의 연속일 뿐이었다. 하루 평균 주행거리 5백 킬로미터. 한국에서는 ‘헉’ 소리가 나오는 거리다. 하루 주행거리가 서울-부산 거리는 ‘보통’, 서울-부산 왕복 거리 정도는 ‘좀 달린’ 정도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그야말로 ‘극한 달리기 여행’인 셈이다. 


*치사랑: 손아랫사람이 손윗사람을 사랑함


여행의 풍경은 아름다웠지만 맘에 드는 사진을 찍기 힘들었다.


하지만 ‘이국적’을 넘어선 ‘외계적’ 풍경은 이런 모든 피곤함을 상쇄할 만큼 아름다웠다. ‘이 세상의 것이 아니다’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의 숨막히는 풍경은 여행의 피곤함과 짜증을 달래줬다. 여기에 아름다운 사진을 담을 수 있다면, 내 모습이 풍경과 아름답게 조화를 이룬다면 금상첨화가 아니겠는가. ‘마음에 담고’, ‘눈에 담는’ 여행이 아니라 ‘사진에 담는’ 여행이 중요했던 ‘나’이다. 

그런데 여행이 계속되어도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인생사진’이 나오지 않았다. 제대로 된 사진 하나를 건지지 못했다. 마음이 불안해졌다. 예쁜 풍경과 (내가 봤을 때) 예쁜 나. 이 두 조합이 완벽하게 합을 이룬 사진을 건져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니 말이다. 사진이 없다는 것은 후에 누군가에게 자랑할 수 없다는 말도 된다. 백 번의 여행 무용담보다 한 장의 사진이 모든 것을 말해주는 것 아니겠는가. 


사진을 부탁했던 부모님에 대한 짜증도 심해졌다. 부모님께 찍어 달라고 부탁드린 사진을 막상 확인하면 중요한 배경이 잘리거나(가령, 미국 최남단 표지석의 글자가 안 보인다든가), 구도가 엉망이거나, 초점이 나가거나, 심지어 사진 찍는 손가락이 걸려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나이가 들수록 눈도 잘 안 보이는 법). ‘인생 샷’을 포기해야하는 심정. 어차피 이번 여행은 효도 여행이니 잘 나온 사진은 기대하지 말자며 어느 순간 포기해버렸다. 여행 일정 짜느라, 운전하느라, 부모님에게 신경쓰느라 매일 예쁜 옷으로 갈아입지도(사진 대부분 같은 옷), 화장을 예쁘게 하지도(가져간 립스틱 3개를 딱 2번 바름) 못했기 때문이다. 


여행도 중반으로 접어든 어느 날 저녁. 아빠가 씻으러 간 사이 숙소 침대에 널브러졌던 나는 아빠의 휴대폰을 집었다. 정작 제대로 찍지도 못하면서 뭘 맨날 그리 찍는지, 아빠가 담아낸 풍경이 궁금했던 것이다. 역시... 아름다운 풍경들을... 엉망으로 찍어 놨다. 팔 할이 삭제해야 할 사진들이었다. 그런데 그 사진 앨범 속에 가장 많이 보이는 대상은 나였다. 카메라를 의식해 포즈를 잡는 인위적인 내가 아닌, 자연스런 여행자 모습의 내가 그 속에 담겨 있었다. 꾸밈없는, 가식 없는, 적나라한 내가 드러났다. ‘내가 이렇게 웃는구나, 인상 쓰면 얼굴에 주름이 이렇게 잡히는구나, 평소 짝다리를 많이 하는구나...’ 등. 내가 모르던 나를 보게 된 것이다. 


아버지는 늘 나만을 찍었다. 나의 가장 자연스러운 모습을.


그런데... 그 모습이 자연스럽고 예뻤다. 내가 이렇게 예뻤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무엇보다 편안하고 행복해보였다. 부모님의 사랑을 듬뿍 받는 어린아이의 해맑은 표정처럼 말이다. 대부분 흔들리고 이상하게 나왔지만 ‘소 뒷걸음치다 쥐 잡는 격’으로 개중에 ‘예술 사진’도 하나씩 나왔다. 무엇보다 모든 사진 속에서 아빠의 애정이 느껴졌다. 아빠는 나를 바라보고 있었던 것이다. 아빠는 나의 파파라치 역할을 했던 것이다. 문득 내 핸드폰 속 사진을 생각해봤다. 셀카든 뭐든 죄다 나 아니면 풍경사진뿐이었다. 하지만 정작 내가 찍은 아빠의 사진은 별로 없었다. 나의 시선은 아빠를 향해 있지 않았던 것이다. 


그날 이후, 내 핸드폰은 부모님의 사진으로 가득찼다. 아빠가 나를 찍어주고 있다는 것을 알기에 나는 부모님을 향하게 됐다. 부모님의 순간순간 일상의 모습을 담아내기 시작했다. 포즈를 잡지 않아도 좋다. 먹느라고 입을 벌려도 좋다. 눈이 희번덕거려도 좋다. 그게 더 자연스럽다. 사실 그게 부모님의 진짜 모습인 것이다. 어릴 적 부모님의 관심과 사랑은 내게 당연했다. 커 갈수록 관심과 사랑은 귀찮아졌다. 부모님보다 이성의 관심과 사랑만이 내 관심사가 됐다. 나는 변했지만 부모님은 변하지 않았다. 부모님이 내 사진을 많이 찍는 것이 아니라, 이제 내가 부모님을 많이 찍어야 할지 모른다. 언젠가 부모님을 향한 나의 그리움을 오로지 사진으로 달래야 할 때가 올 것이기에. 그런 날은... 아주아주 늦게 올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36일, 1만7천 킬로미터의 미 대륙 횡단 대장정을 마치고 부모님이 한국으로 떠나시던 날, 나는 공항에서 부모님을 배웅하며 펑펑 울었다. 숨어서 울었냐고? 아니, 바보같이 부모님 앞에서 울었다. 8개월 뒤면 만나지만 마치 생이별하는 사람처럼 목 놓아 울었다. 그 대목을 듣던 친구는 가지가지 한다며 혀를 찼다. 난 그저 감수성이 예민한 사람일 뿐이다. 사실은 여행이 끝나기 며칠 전부터 눈시울은 항상 젖어 있었다. 옆에서 주무시는 엄마의 살결을 만지며, 엄마의 숨결을 들으며, 아빠의 구부정한 뒷모습을 보며 계속 울었다. 


언제 끝날까 싶었던 미 대륙 횡단 여행도 결국엔 끝이 있듯이 부모님과 나의 시간도 언젠가는 끝이 있을 것이다. 나는 이번 여행 기간동안 그 끝남을 미리 아쉬워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깨달았다. 여행을 완수하는 것 보다 같이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사랑하는 사람과 같이하는 것이, 같이하는 시간이 중요하다는 것을. 



여행 중 찍은 부모님의 사진

▲ 미국 횡단 여행 중 찍은 부모님 사진 ⓒ윤혜림





○ 일러스트레이터 _ ⓒ김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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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혜림
윤혜림
산책, 요가, 쇼핑, 여행, 독서를 좋아합니다. 매일 좋아하는 일들만 하고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현실은 봉급생활자의 고단한 삶. 그래도 즐거움을 잃지 않고 사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이미지 제공 _ ⓒ윤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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