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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가만히 읽는 당신의 이야기

기억이란 필터로 바라본 나라는 삶

시간을 엮어 책으로 만들 수 있다면

기억으로 엮어낸 '삶'이라는 책

by 조온윤 / 2019.08.14

 

내게는 뭉텅뭉텅 자른 시간의 주기로 분철된 몇 권의 책들이 있다. 모두 나라는 한 사람의 기억에서 비롯된 것들일 테지만, 가끔은 각각의 시간이 서로 다른 인물의 이야기인 양 생경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어떤 책 속에서 나는 세상 물정 모르고 무구했던 것 같고, 또 어떤 책 속에서는 스스로를 지나치게 아프고 우울한 사람으로 단정했던 같고, 또 다른 책 속에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루하루를 성실하게 살아가는 사람이라고 나를 긍정했던 것 같다. 너무 많은 사건이 등장해서 주인공이 누구인지 잊어버린 소설처럼, 시간을 추념할 때마다 스스로가 서먹하고 신기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그 책들은 기뻤거나 슬펐던 일을 가리지 않고 내 기억의 서가에 뒤죽박죽으로 꽂혀 있다. 현재의 책이 너무 슬프거나 고통스러울 때면 나는 비슷한 상황을 이겨냈던 시간을 복기하기 위해 그 책들을 골라 들춰보고는 한다. 비록 그런 상황을 현명한 방법으로 극복해낸 경험이 많지는 않은 것 같다. 그럼에도 지나간 책들을 다시금 꺼내 읽는 이유는, 스스로 다난한 시간들을 무사히 통과했었다는 사실을 상기하는 것만으로도 나에게는 큰 위안이 되는 때문이다.


가령 책등에 유년이라고 적혀 있는 책을 펼치면 이런 풍경이 열린다. 햇빛이 불투명한 유리창을 뚫고 들어와 집 안을 온통 노랗게 물들이고 있는 오후. 좁은 부엌 하나를 통로로 두고 큰방과 작은방이 나뉘어 있는 작은 집. 이따금씩 고구마나 수박 따위를 가득 실은 파란 트럭이 확성기를 틀며 지나가는 골목. 그리고 그 골목을 하루 종일 쏘다니느라 옷이며 신발, 얼굴이 죄 꼬질꼬질한 아이들.

 

거기엔 또 이런 이야기가 씌어 있다. 네 살 즈음 되어 보이는 한 아이가 낮잠을 자다 일어나 엄마를 찾는데, 잠을 자는 사이 아이의 엄마는 잠깐 외출을 했다. 집에는 정적만 가득 차 있다. 집 안을 돌아다니며 엄마를 아무리 불러 봐도 대답이 없자 아이는 곧 세상에 외따로 남겨진 것 같은 기분에 휩싸인다. 어떻게 기억하고 있는 건지 모르겠지만 아이는 밧줄을 붙잡는 심정으로 아빠의 휴대전화로 전화를 걸어 그대로 목을 놓고 엉엉 울어버린다. 마을버스 운전사인 아이의 아빠는 어린 아들의 오열에 가까운 전화에 놀란 나머지 그대로 노선 바깥으로 버스를 몰아 집 앞까지 달려온다. 아빠는 겁에 질린 아들을 달래 버스에 태운 뒤 다시 노선 위로 돌아가고, 아이는 종일 아빠가 모는 버스의 맨 앞좌석에 앉아 창 너머로 휙휙 지나가는 낯선 동네들을 구경한다. 그 책은 늦은 밤이 되어서야 아이가 퇴근한 아빠의 품에 안겨 집으로 돌아오는 것으로 끝이 난다. 울고 있는 어린 나를 위해 노선 바깥으로 버스를 몰아 내달렸던 나의 아빠. 그 이야기는 지금도 종종 아빠가 미워지는 순간마다 꺼내 읽곤 하는 이야기다.


유년 시절의 기억들이 책장처럼 펼쳐진다. 울보였던, 내성적이었던 소년 시절.

 

또 다른 책을 열면 이런 모습도 보인다. 그 책 속의 하늘에는 왜인지 항상 비가 내리고 있고, 중학생이 된 아이는 몇 년 사이에 지극히 내향적으로 변해 있다. 아이의 주변에서 많은 일이 있었던 것 같다. 학교서든 집에서든 아이는 말이 별로 없고 늘 주눅이 들었다. 가족이나 친구들과 어울리기보다는 혼자서 보내는 시간이 많은데, 그 시간의 대부분 방에 틀어박혀 책을 읽는 데에 쓴다. 아이가 읽는 책은 주로 현실과 동떨어진 세계를 그리고 있는 소설들이다. 아마 현실에서 최대한 멀리 떨어진 곳으로 가고 싶은 것처럼 보인다.


아이는 그렇게 현실이 아닌 이야기에 탐닉하며 지내다가, 언젠가는 자기도 글을 쓰는 사람이 되고 싶단 생각을 처음으로 한다.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앞으로도 지금처럼 사람들을 만나지 않고 침묵과 정지를 지키며 살아갈 수 있을 테니까. 글을 쓰는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가만히 몸을 앉힐 수 있는 책상과 의자, 펜과 종이 정도일 테니까. 그렇게 아이는 책을 지붕 삼아 하염없이 내리는 세상의 비를 피하면서, 언젠가 자신의 머리 위로도 비가 그치고 쨍한 볕이 들길 기다리고 또 기다린다.


이 이야길 떠올릴 때면 나는 별로 유쾌한 기분이 들진 않는다. 하지만 가끔 견딜 수 없이 마음이 힘들어질 때마다 그때를 떠올리곤 한다. 겨우 중학생이었던 아이가 자신의 삶에 찾아온 우울을 어떻게 견뎌냈는지를 기억하며, 지금의 마음을 이겨내기 위해서다. 무엇 때문에 그 아이가 그다지도 힘들었던 거냐고 묻는다면 글쎄, 나는 입을 열기가 쉽지 않다. 그때나 지금이나 나는 소심하고 겁이 많긴 마찬가지여서 나의 가장 큰 아픔에 대해서도 고작 이 정도밖에 말을 하지 못한다. 다만 나는 내가 처음으로 글을 쓰는 사람을 꿈꾸게 되었던 내력을 잊지 않으려고 한다. 책을 뒤집어 놓았을 때 만들어지는 'ㅅ' 모양이 세상의 슬픔을 가려주는 내 유일한 차양이었다는 것을 잊지 않으려 한다.


책이라는 안식처


기억으로 엮어낸 이런 책들은 언제든지 손을 뻗어 꺼낼 수 있도록 나와 아주 가까이에 있다. 그런가 하면 손이 닿지 않는 곳에 아직 아무것도 쓰이지 않은 채로 꽂혀 있는 책도 있다. 그 책은 미래의 책인데, 거기에 어떤 이야기가 쓰여 있는지는 당연히 책을 열기 전까지 알 수 없다. 요즘 나는 내 앞에 펼쳐진 현재의 책이 권태롭게만 느껴지고 이 다음에 이어질 이야기가 너무 궁금하기도 해서, 하루 빨리 이 책을 덮고 그 책을 손에 넣고 싶다. 하지만 지금의 일상을 읽어내는 데에 충실하지 않으면 미래의 책 또한 난해할 수밖에 없다는 걸 알기에, 별 수 없이 종이 위로 빼곡하게 적혀 있는 생활이라는 활자를 묵묵히 읽어 내려가고 있다.


그렇다면 지금 읽고 있는 이 책 속에서 나는 어떨까. 이미 몇 개의 고단한 시절을 지나온 지금 내 모습이 나는 마음에 드나? 아니면 여전히 슬픔이 꼬리를 물고 찾아와 하루의 대부분을 혼자서만 보낼까?


그동안 내게는 많은 변화가 있었던 것 같다. 동시에 많은 것들이 변하지 않고 그대로인 것도 같다. 나는 여전히 조용한 곳, 멈춰 있는 풍경 따위를 좋아하고 여전히 말수가 적어서 주변 사람들에게 왜 그리 말이 없냐는 핀잔을 자주 듣는다. 물론 변한 것도 있다. 사람들의 핀잔을 듣는다는 건 이제 더는 혼자만의 공간에 갇혀 있지 않고 종종 바깥에 나가 사람들을 만나고 있다는 의미다. 그리고 과거의 책과 가장 달라진 게 있다면, 내게도 이제는 친구라고 부를 수 있는 몇몇 소중한 이들이 생겼다는 것이다.


최근에는 바로 그 친구들과 책을 만들고 있다. 비유로서의 책이 아니라 실제하는 책을 만들고 있다. 글을 쓰는 친구들과 모여 연간으로 서로가 쓴 시와 산문을 엮어 만드는 작은 책이다. 그것은 매일매일 권태로운 생활이 반복되고 있는 와중에 내가 유일하게 열심을 쏟고 있는 일이기도 하다. 글을 쓰고 책을 만드는 일이 내게 돈이 되는 것도, 명예를 가져다주는 것도 아니지만 나는 어째서인지 이런 일들을 앞으로도 오랫동안 하게 될 것 같다. 내 생각에 그건 책에게 빚진 것을 책으로 갚아나가고 싶다는 마음 때문일 것이다. 어린 시절 스스로 가장 불행하다고 생각했던 때에 몇 권의 책에게 빚졌던 소중한 위로를 지금도 여전히 잊지 않고 있으니까.


친구들과 함께 책을 만드는 일을 하고 있다. 열정을 쏟고 있는 유일한 일이다.

 

한 가지 더 근래에 찾아온 변화를 말하자면, 얼마 전부터는 시내에 있는 작은 회사에서 인턴으로 일을 하고 있다. 여느 회사원처럼 이른 아침에 출근해서 정오 즈음에 밥을 먹고, 늦은 오후가 되면 퇴근하는 삶을 살고 있다. 책을 읽을 시간이 적어졌다는 게 흠이지만, 정해진 퇴근 없이 일에 쫓기며 사는 사람들이 있음을 생각하면 썩 나쁘지 않은 생활일 테다. 더군다나 학교를 막 졸업한 뒤 당장 생계가 급해 이리저리 버둥대던 때를 생각하면, 약간의 싫증이나 권태는 접어두고 우선은 지금의 일상에 만족을 보여야 할 것이다.


하지만 나는 지금도 가끔 길을 걷다가, 홀로 좁은 방 안에 갇혀 지내던 어린 시절처럼 문득 침묵과 정지의 상태가 되어 주변을 둘러본다. 거리에는 사람들이 각자의 목적지를 향해 분주하게 걸어가고 있고, 차도에는 차들이 더 분주한 속도로 지나가고 있다. 그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도무지 세상의 속도에 보조를 맞추며 살아갈 엄두가 나지 않기도 하다. 그럴 때면 나는 침묵과 정지, 그 속에서 묵묵히 글을 쓰는 작가의 삶을 꿈꾸었던 걸 다시금 떠올린다. 언젠가는 꼭 지금의 권태로운 생활을 청산하고 온전히 글을 쓰는 사람으로 남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또 나는 책상 앞에 앉아 묵묵히 글을 써내려가고 있는 미래의 뒷모습에서, 어린 나를 뒷좌석에 태우고 마을버스를 운전하던 아빠의 추레한 등을 발견하기도 한다. 그건 어쩌면 서로 다른 기억으로 분철되어 있다고 생각했던 내 인생의 책들이, 사실은 하나로 엮여 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과거의 책들을 아무리 기억의 서가 안쪽으로 밀어 넣는다 해도 그 모든 기억을 내게서 분리해낼 수가 없는 것이다.

 

인생의 책이 완성되기까지는 앞으로도 많은 시간이 남아있다. 그때까지 그 위에는 검은 활자들이 때로는 기쁨으로, 때로는 우울로, 때로는 희망이라는 의미로 기록될 것이다. 많은 시간이 지나 언젠가 그 책이 완성되었을 때를 떠올려본다. 그리고 바란다. 어린 나에게 책이 잠시나마 슬픔을 피할 수 있는 지붕이었던 것처럼, 나의 책 또한 다른 누군가에게 지붕이 되어줄 수 있기를.




일러스트 _ⓒ김지나 


 

독서 인생 기억 과거 서가 마을버스 아빠 우울 권태 사춘기 슬픔 희망 작가 차양 친구 유년기
호남권 조온윤
인문쟁이 조온윤
2019 [인문쟁이 5기]


생활 속에서 틈틈이 시를 쓰며 지냅니다. 시끄러운 곳보다 조용한 곳을 좋아합니다. 움직이는 것보다 가만히 멈춰있는 것을 좋아합니다. 침묵과 정지. 그런 것들을 지키며 살아가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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