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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가만히 읽는 당신의 이야기

 

빛바랜 영화 포스터 같은, 지난 시간을 포개어 본다

느리고 불편했던 기억이 추억으로 돌아오다

by 권현우 / 2019.07.10

 

오토바이 한 대가 달려온다. ‘도시’라는 뜻의 영어 ‘시티city’와 나란히, 배기량을 의미하는 숫자 ‘100’이 표기된 오토바이 한 대가 영화 포스터들이 덕지덕지 붙어 있는 광고판 앞에 멈춰 선다. 오토바이를 타고 있던 아저씨는 내리기도 전에, 익숙한 동작으로 오토바이 뒷바퀴에 설치된 상자 안에 둥글게 말려 있는 포스터 한 장을 스윽 꺼내어 왼손으로 잡아 쥔다. 그리고 오른손으로는 포스터가 담긴 상자 옆에 윗부분이 잘린 흰 물통에서 도배용으로 보이는 붓을 뽑아 들고 광고판 앞에 선다. 


마루치 아라치 고독이 몸부림칠 때 과부의 눈물 뭔가 보여드리겠습니다 왕과 나 인디아나존스


잠시, 아주 잠시 모든 행동을 멈추고 아저씨는 이미 붙어 있는 포스터들을 바라본다. 오늘 날짜를 생각하며 이미 개봉한 영화가 있는지, 혹은 개봉한 지 한참 지난 영화가 있는지 살피기 위해서다. 다행히 적당한 자리가 보인다. 아저씨는 다시 움직이기 시작한다. 오른손에 쥐고 있던 도배용 붓을 다시 흰 물통 안에 넣어 풀을 잔뜩 먹인다. 광고판의 한 자리에 아래 위로 풀을 넓게 바른다. 그리고는 왼손에 쥐고 있던 포스터를 그 위에 척하고 붙인다. 다시 붓에 풀을 듬뿍 먹인다. 바로 옆에 서 있다면 풀 냄새를, 마치 새 집에 들어온 듯한 느낌이 나는 도배 풀 냄새를 맡을 수 있다. 모든 작업이 끝났다. 아저씨는 붓을 흰 물통에 던지듯 넣고 오토바이 시동을 켠다. 아저씨는 다음 광고판이 있는 장소로 이동한다.  


막 붙인 영화 포스터는 반질거렸다. 더 반질거리는 포스터가 더 최신의 영화라는 의미다. 포스터에는 월(月)이 적혀 있지 않고 일(日)만 적혀 있다. 영화관의 이름과 날짜가 하단부를 크게 차지하고 있다. 새 포스터 옆, 붙인 지 오래된 포스터는 묘한 입체감을 느끼게 했다. 햇살을 쬐고 바람에 흔들려 말라버린 포스터들이 겹겹이 포개져 있다. 그 때문일까, 포스터의 모서리 부분들이 앞쪽으로 돌돌 말려 있다. 풀이 마르면서 포스터의 종이들이 수축한 탓이다. 만져보면 딱딱한 느낌이 들었고, 튕겨 보면 ‘툭’ 하는 소리가 났다. 포스터 표면에는 결코 새 종이에서는 느낄 수 없는 질감이 느껴졌다. 여러 장을 겹쳐 만들어낸 질감이 쉽게 표현될 수 없는 무게감을 드러내고 있다. 포스터들은 마치 하나의 판자처럼 보였다. 이제 더이상 돌아갈 수도 존재하지도 않는 그 시절의 기억에 잠길 때, 내가 처음 떠올리는 풍경이다. 


이제 거리에서 포스터를 발견할 수도, 포스터를 붙이며 다니는 사람도 없다. 사람들은 컴퓨터나 스마트폰으로 영화의 개봉일과 주연, 감독 등을 확인한다. 물론 과도기도 있었다. 도배풀을 먹인 영화 광고판이 사라지고 자석으로 붙이는 광고판이 잠시 등장했다. 하지만 그곳은 더이상 영화만을 위한 광고판이 아니라 지역에서 개최되는 다양한 행사들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는 게시판이었다. 햇빛을 받아도 바람이 불어도 그 모습이 바뀌지 않도록 투명한 유리문 안 네 귀퉁이에 자석이 붙은 각종 포스터들은 작은 흠 하나 없이 게시되고 있었다. 그러다 이내 그 게시판 역시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졌다. 

 

 

 

불편한 것들이 익숙한 시절이 있었다. 불편한지도 모른 채 사람들은 그 시절을 향유했다. 급한 소식을 전해야 할 때는 전보를 쳤고, 스크린에서 내린 영화를 보고 싶으면 비디오 가게에 들러 비디오 테이프를 빌렸다. 텔레비전과 비디오 기기를 연결시키는 수고를 기꺼이 감수했다. 급한 일이 생겨도 제시간이 아니면 전보를 치지 못했다. 우체국 영업 시간에만 전보를 칠 수 있었으므로, 매일 아침 우체국에는 간밤에 있었던 슬프거나 기쁜 일을 가득 품고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비디오 가게에서, 보고 싶었던 최신 영화의 비디오 곽이 뒤집혀져 있을 때 느끼는 낙담을 덤덤히 자신이 늦은 탓으로 돌리던 시절이 있었다(비디오가 대여되면 그 비디오 곽을 뒤집어 놓아, 대여 중임을 알렸다). 


레트로의 시간은 길고 느리다. 지금의 시대는 너무 짧고 빠르다. 레트로의 시간은, 기다림의 시간이었다. 영화를 예매하기 위해 직접 극장을 찾아야 했으며, 추석이나 설날 같은 명절 때 고향을 찾기 위해 밤새 역사 안에서 긴 줄을 서 가며 표를 끊어야 했다. 그 기다림의 시간 동안 사람들은 그때의 시간과 장소와 공기를 오롯이 기억으로 남겼다. 그 수고로움을 기쁘게 받아들이며 영화 한 편을 감상했다. 곧 만나게 될 가족을 떠올리며 가슴에 설렘을 품는다. 훗날 그 수고로움마저 추억이 되었다. 1분이나 1초의 시간이 아니라 최소 몇 시간, 길어지면 하루가 넘어가는 번거로움을 받아들였다.


지금, 빠르고 편리한 이 시대에 우리가 레트로에 열광하는 이유는, 그 길고 느린 시간과 여유가 그리워서인지도 모르겠다. 너무나 빠르게 돌아가는 세상 속에서,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유행이라는, ‘최신’이라는 것에 휩쓸리고 있으므로. 실상 매순간 무엇을 기억할 수 있는지, 기억해야 하는지 알 수 없다. 이렇게 폭주하듯 흘러가는 시간의 흐름 속에서, ‘기다란 시간’의 어떤 시절을 사람들은 그리워한다. 촌스러움이 멋스러울 수 있는 것은 그 시간 속에 녹아 있는 누군가에게 기대고 싶기 때문인지도 모르고, 자신의 부모 세대가 향유했던, 결코 빠르지 않았던 시대를 느껴보고 싶은 것인지도 모른다.


 


영화 포스터가 붙어 있는 광고판에는, 한 달 전의 영화도 붙어 있었다. 붙어 있음에도 더 이상 눈에 보이지는 않는, 새로 붙은 포스터 뒤의 어느 한 공간에서 최신 영화를 위한 토대가 되어주었다. 지금의 우리에게도 어쩌면 지난 날 눈에 보이지도 않는 포스터가 주는 의미가 필요할지도 모른다. 겹겹이 포개져 묵묵히 뒤를 받치고 있는 포스터처럼, 과거는 어쩌면 풀을 잔뜩 먹어 약간은 구겨진 모습이지만, 과거는 그 자체로 ‘기다림의 시간’과 ‘긴 시간’ 그리고 ‘느린 시간’에 대해서 생각하게 한다. 


지금 우리가 잊고 있는 것은 무엇인지, 우리가 열광하며 좋아했던 것들은 무엇인지, 최선이 아니었던 시점에서의 최선이 무엇인지 생각해보게 하는 레트로의 힘이란 결국 우리가 지금의 우리를 '있게 한', 지금의 우리를 '잊게 한' 빠른 기술과 문화의 발전에서 한 걸음 뒤로 물러나는 시간을 가져다 준 것은 아닐까. 포스터를 붙이는 아저씨의 날렵한 손길에, 새로 붙는 포스터에는 도배 풀 냄새가 났다. 그 시절 영화 포스터는 지금 보면 촌스럽다. 하지만 나는 알지 못했다. 그런 포스터를 완전히 잊어버리게 될 줄은, 그리고 시간이 지나 다시 사람들이 그런 시대를 그리워할 줄은. 길고 느리고 불편했던 시절을 추억하며, 다시 찾은 여유가 이렇게 반가울 줄은 미처 몰랐다.


일러스트레이터 - ⓒ김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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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현우
권현우
홍대입구에서 4년째 외국인에게 길을 안내해주는 봉사활동을 하는 사람. 직장을 다니면서 정치학을 공부하고 있는 연구자. 글을 적고 그림을 그린다. 보이지 않는 것을 보려, 들리지 않는 것을 들으려 노력하는 사람. 외국인 안내 봉사 ‘에스크미’와 음식 사진 기부 캠페인 ‘도너그래프’를 운영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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