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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뷔, 실패담, 성공적

강훈구

2016-02-04


  • 이기호의 단편 「원주통신」이 실린 소설집 『갈팡질팡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지』책표지

    이기호의 단편 「원주통신」이 실린 소설집
    『갈팡질팡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지』 ⓒ문학동네

대학을 졸업하면서 나는 마음 맞는 친구들과 함께 본격적으로 연극을 하기로 했다. 연극한답시고 깝죽대고 다니면서, 쥐뿔도 없는 게 히히덕거리고 다니니 다들 걱정되시는지, 주변은 만류 일색이었다. 심지어 연극을 하는 선배들까지도 마찬가지였다. 괜한 걱정은 아니었던 것이, 원대한 포부를 가지고 만든 연극은 공연은 하면 할수록 빈틈을 드러냈고, 관객은 들어도 돈은 전혀 모일 기미가 없었다.

공연을 하는 동안은 행복할 줄 알았는데, 좌절과 열패감이 가득해 연극에 관한 어떤 일도 떠올리고 싶지 않은 날들이 더 많았다. 그럴 때 나는 집에서 실패담을 찾아 읽었다. 성공담은 나를 동기부여하기보다는 시기와 좌절을 불러일으키는 경우가 많았다. 유쾌감이나, 혹은 위안을 가져다주는 쪽은 오히려 실패담이었다. 아마도 이기호의 자전적 소설 「원주통신」에서, 주인공이 버스비 100원이 없어 시내까지 걸어 나가야 했던 스물여섯의 여름을 술회하는 장면이나, 유하가 첫 영화에 실패하고 10년 간 경마장을 전전했다는 그런 이야기가 나를 희미하게나마 웃음 짓게 했다. 끝도 없이 몰락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한참 읽고 나면, 기묘하게도 무모함이 다시 차올랐다. 그 무모함과 함께라면 걱정할 거리가 한가득이어도 공연장 가는 발걸음이 가벼웠다. 덕분에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첫 공연을 마쳤다.

  • 친구들과 함께 올린 연극 작품 『죽은 사회의 시인』포스터

    친구들과 함께 올린 연극 작품 『죽은 사회의 시인』

공연을 마치고 정산을 마치니까 여섯 명 각자에게 6만원이 남았다. 서로 나눠지니 웃음만 나왔다. 우리는 늘 돈을 써가면서 연극했지 연극해서 돈 벌어본 적 없으니 얼떨떨한 일이었다. 두 달을 연습하고 일주일을 공연한 대가로는 턱없이 부족한 돈이 분명하니, 우리는 실패한 것일까. 아니면 어떤 이에겐 티셔츠 한 장 사기에도 모자란 돈이지만, 억만금 줘도 살 수 없는 경험을 벌었으니 성공적 데뷔를 한 것일까.

적어도 이제 나는 나를 위안한 이야기들을 무작정 실패담으로 규정할 수는 없겠다는 걸 알겠다. 도처에 흘러넘치는 절망 속에서도 광인처럼 낙관하고, 감당하기 힘든 기쁨 속에서도 냉정한 비관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는 힘도 얻었다. 이 모든 것을 시작하지 않았다면 알 수 없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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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강훈구
강훈구

연극인. 8년차 대학생. 정치학과 국문학을 전공했는데, 정작 다른 데 기웃거리느라 수업은 잘 듣지 않았다. 귀동냥, 눈대중으로 배운 것이 전부라 갈 길이 구만리지만, 연극을 만들 때 제일 신이 난다. 실천적 인문공동체 시민행성에 공부하며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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