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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하나의 테마, 360도 관점

건축 역사 철학

[나의 집, 우리집] 공공(公共)의 건축, ‘공공’ 하는 건축

by 조성룡 / 2016.02.04

공공(公共)의 건축, ‘공공’ 하는 건축


나는 지난 10여 년 간 여러 곳에 '공공 건축', '공공 장소'를 설계했다. 지역의 미술관, 기념관, 공원 시설 등으로 거의 모두 정부 기관에서 '시행'한 설계 경기를 통하여 맡게 된 프로젝트들로 물론 채택되기보단 실패한 것이 더 많다. 그 까닭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우리 사회에서 공공 건축과 장소에 대한 견해가 서로 다른 요인도 컸다. 불과 8년 전에 설립된 성균건축도시설계원(SKAi)은 공공 기관과 건축가, 그리고 장소의 최종적인 사용자인 시민 사이에서 이러한 차이를 줄이기 위해 실질적 연구와 실천을 목표로 한 우리 나라 최초의 연구소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상황이 이럴진대, 우리는 공공 건축, 공공 장소는 무엇일까에 답하기 쉽지 않다. ‘공공 건축’에 대한 구체적인 정의나 해석은 매우 애매하기 때문이다. 공공은 무엇인가?

 

꿈마루. 원형을 살려 복원된 어린이대공원 ‘꿈마루’. 한국 최초의 골프장 클럽하우스였다. 어린이대공원 교양관으로 쓰이면서 원형을 알 수 없을 정도로 변형됐다가 재탄생. 건축가 나상진의 대표작 중 하나로 조성룡에 의해서 복원되었다.

▲ 꿈마루. 원형을 살려 복원된 어린이대공원 ‘꿈마루’. 한국 최초의 골프장 클럽하우스였다.
어린이대공원 교양관으로 쓰이면서 원형을 알 수 없을 정도로 변형됐다가 재탄생.
건축가 나상진의 대표작 중 하나로 조성룡에 의해서 복원되었다. ©김재경

 

사(私), 공(公), 공공(公共)? 사전적 의미로 공공은 ‘국가나 사회의 구성원에게 공동으로 속하거나 두루 관계되는 것’으로 공공 기관, 공공 생활, 공공 영역, 공공의 이익, 공공의 복지 등의 개념을 정의할 때에 사용된다. 공(公=public) 은 당연히 ‘사(私=private)’의 개념과 함께 이해할 수 있다. ‘공적인’ 생활은 상대적으로 열려 있고 보편적인 사회적 관계를 포함하지만 ‘사적인’ 생활은 개인이 조정하고 가족이나 친구들에게만 나누는 친밀하고 차폐된 것이다. 퍼블릭(public)에 해당하는 공공이라는 말은 '열려 있고(公)', '함께(共)'라는 뜻이다. 언뜻 근대 시민 사회의 형태가 서구에서 이식된 이후에 이런 개념이 생겨난 듯하지만, 사실 공공이라는 개념은 중국, 일본 등 동아시아에서 오래전부터 쓰였다. 조선왕조실록에도 ‘공공’이 포함된 기록이 많이 나타난다(16세기 이전의 기록이 압도적으로 많고 승정원일기에도 매우 많은 용례가 있다고 한다). "열어 두고" "함께 한다"는 뜻으로 헤아려 보면, 우리의 전통 안에도 자연스레 깃들어 왔음이 당연하다 하겠다.


선유도공원은 우리나라 최초의 재활용 생태 공원이다.

▲ 선유도공원은 우리나라 최초의 재활용 생태 공원이다. ©김재경

 

공공철학을 연구하는 김태창은 다음과 같이 '공'과 '공공'의 개념을 설명한다. 그가 강조하는 이른바 '공공(公共) 철학'은 기본적으로 다음 세 가지 차원의 상호 운동으로서 그 첫째는 (시민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판단하며 행동하고 책임지는) '공공의 철학'이고 둘째는 (전문가의 입장에서 공공성을 탐구하는) '공공성의 철학'이며 셋째는 (삶의 실천 속에서) '공공(하는)철학'이라고 설명한다.

 

사기(史記)에서도 "법이란… 천하 만민과 함께 공공하는 데서 성립하며" 기록된 바대로 공공은 '명사'가 아니라 '동사(動詞)'로서 실천, 활동의 관점에서 이해될 수 있다. 그러나 유의해서 볼 점은, 공(公)과 사(私)를 서로 대립적으로 보지 않고 상극(相剋), 상화(相和), 상생(相生)이라는 삼원화된 사고에서 출발해 이 세계를 상호 운동하는 관계로 파악한다는 점이다. 공(公)과 공공(公共)을 구분해야 하고 양자의 관계를 이해하는 관점이 중요하다. 공공이란 시민과 전문가가 공(公)적으로 함께(共)하는 뜻이다. 공과 사 사이를 매개하여 양자의 관계를 소통시키는 것이 '동사의 공공'이다.

 

오늘날 우리는 흔히 정부나 지방자치단체, 정부 출연 기관에서 세금을 써서 지어 다수가 사용하는 진행되는 프로젝트를 가리킬 때 '공공 건축'이란 개념을 깊은 생각 없이 적용한다. 그러나 여기에는 그 주체가 관이므로 ‘공공=국가’, 즉 정부가 주도해 만드는 것이라는 왜곡된 개념이 작동한다. 이에,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타율적인 근대화도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메이지 시대부터 군국주의에 이르기까지 일본에서 '공'은 천황, 국가, 정부를 아우르는 이른바 권(權)을 의미했으며, 이 이념 체계가 일제의 식민 통치를 통해 왜곡되어 아직도 우리 사회에 만연해 있음을 볼 수 있다. 이는 “법(왕권)이 여론(비록 지배 계급 위주이지만)을 살핀다.”는 뜻에 가까운 조선의 공공 개념과는 차이가 있다고 한다.

 

세습하는 왕권이라고 할지라도 공론, 즉 여론을 살펴야만 했던 조선을 생각하면 오늘날 공공의 철학과 실천은 큰 반성을 요한다. 공공 철학을 실천하는 관점에서 설명한 '공공 하는' 철학의 개념에 주목하여 '공공(하는)' 건축을 생각한다.

 

공공(하는) 건축 서울시청 신청사를 두고 여러 가지 다른 반응이 나타났다. 일제 강점기에 건축된 옛 건물과 관계에 대해서거나 특이한 형태의 건물에 관심이 쏠린 건 당연한 사건이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그것이 우리가 직접 관여하고 있는 공공 공간이라는 데 있다.

 

 

베르사유 궁전. 루이 14세 시절 절대 권력을 상징하던 공간이 18세기 프랑스 혁명 이후에는 텅빈 건물로 남아있다 궁전의 일부를 역사박물관 등으로 바꾸었다.

▲베르사유 궁전. 루이 14세 시절 절대 권력을 상징하던 공간이 18세기 프랑스 혁명 이후에는 텅빈 건물로 남아있다 궁전의 일부를 역사박물관 등으로 바꾸었다.

 

18세기 혁명을 겪은 유럽 도시에서는 전제 정치 시대의 왕궁이나 귀족의 저택을 도서관, 박물관으로 활용하거나, 정원이나 사냥터를 시민 공원으로 바꿔 썼다. 시청, 병원, 감옥, 기차 역 등 새롭게 필요하게 된 도시 시설을 세우게 된 것은 대체로 19세기 말에서 1차대전이 끝날 무렵이므로 그 역사가 오래지 않다. 1960년대에는, 2차대전 때 파괴된 대도시를 재건하느라 여러 유럽 도시의 중심 지역 재개발이 절정에 이르렀다. 특히 전시장, 미술관 박물관 등 전시 공간과 공연장이 많이 들어섰다. 미국과 유럽 도시에는 라디오, 축음기가 널리 보급되었고, 연주회가 늘었으며 현대 미술에는 미디어 아트가 포함되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구겐하임 미술관(1959년, 뉴욕), 로열 페스티벌홀(1951년, 런던), 필하모닉홀과 내셔널 갤러리(각각 1963년, 1968년, 베를린), 퐁피두 센터(1976년, 파리) 등이 일제히 건축되었다(뉴욕 현대미술관은 더 이른 1939년에 문을 열었다).

 

 

구겐하임 미술관, 로열 페스티벌 홀, 내셔널 갤러리, 퐁피두 센터

▲ 2차 세계대전 때 파괴된 대도시를 재건하느라, 1960년대에는 여러 유럽 도시의 중심 지역 재개발이 절정에 이르렀다 .


전쟁이 끝나고 나자 올림픽, 월드컵 같은 국제 스포츠 이벤트가 "텔레비전 중계권과 광고로 벌어들이는 이익"을 기대하게 하며 "도시의 이미지를 드러내는 중요한 계기"를 만든다는 것을 확인하게 되었다. 그뿐 아니다. "토지를 많이 보유했던 (미국과 영국의) 옛 대학들은 전후 미친 듯이 과열된 부동산 시장에서 커다란 재정 이익"을 보았고 기업들은 당대에 가장 뛰어난 건축가들이 지은 건물을 대학에 기증함으로서 중요 공공 건축 역사에 자신의 이름을 남겼다.

 

세종문화회관, 과천 현대미술관, 독립기념관, 예술의전당, 종합운동장, 올림픽공원

▲ 1970~80년대 서울과 같은 거대 도시에는 여러 가지 성격의 공공 영역이 배치 되었다.

 

서울과 같은 거대 도시에는 여러 가지 성격의 공공 영역이 배치되어 있다. 행정 관청과 같은 정부 시설뿐 아니라 박물관이나 공연장 같은 문화 공간과 교통 관련 시설, 교육 시설, 종교 시설 등을 포함한 수많은 건조물과 공원, 거리, 운동장 등 외부 공간들이다. 개인이나 사적인 집단의 소유가 아닌 모든 공간이 공공 영역, 공공 공간에 해당한다. 그렇게 보면 가로 장치물, 건물의 내부와 외부의 주요 공간, 조명과 조경, 건물 주변의 외부 공간, 대상에 따라서는 주변의 도시 맥락과 관련한 경관까지 범주에 들어갈 수 있다.

 

1970~80년대에는 정부종합청사, 세종문화회관, 과천 현대미술관, 독립기념관, 예술의 전당 등 대규모 공공 공간을 필두로 종합운동장과 올림픽 공원, 그리고 국·시·도립 미술관 또는 박물관 건축이 줄을 이었다. 처음에는 국가적 규모였지만 뒤이어 전국 곳곳에 크고 작은 기념 공간과 공공 건축이 시, 도, 나아가 군 단위에도 건축되었다. 기업과 대학 캠퍼스의 새로운 시설도 확장되었다.

 

서울에서 떨어진 곳에 관청 도시(세종시)를 건설 중이다. 경부선과 호남선에 고속철도(KTX) 역사를 민자로 지었다. 사용한 지 90년이 넘은 때 묻은 오랜 서울역은 새로 지은 민자 역사 바깥으로 내쳐졌다가 고쳐 '문화역'이라고 부르는(정체성을 상실한) 이상한 공간으로 되돌아왔다. 이처럼, 전국적으로 공원도 많아지고 광주와 부산, 서울 지역에서는 폐선된 철도를 공원으로 고치고 있다. 폐기된 산업시설이나 군사 시설 이적지를 고쳐 미술관, 시민공원 등으로 바꾼 재활용 장소도 늘어났다. 뿐만 아니라 역사-문화 자원을 '명품'으로 '관광지화'하려는 목적으로 하는 공공 건축과 장소도 수없이 늘어났다. 이렇게 보면 공공 건축은 활황이다.

 

야간의 옛 서울역 건물 전경. 현재 폐기된 산업시설 등을 고쳐 미술관 등으로 바꾼 재활용 장소도 늘어났다.

▲ 야간의 옛 서울역 건물 전경. 현재 폐기된 산업시설 등을 고쳐 미술관 등으로 바꾼 재활용 장소도 늘어났다.


공공성의 개념 '공공성'이라는 용어는 이렇듯 갖가지 사업에서 편의적으로, 두루 쓰인다. 공공성의 사전적 정의는 "한 개인이나 단체가 아닌 일반 사회 구성원 전체에 두루 관련되는 성질"로서 "사생활이나 사적인 것과 구분되는 공동체의(common), 공동의(public), 널리 공개된(opened) 성질"을 가리킨다. 그러나 앞에서 쓴 공공이란 말처럼 공공성이라는 이 말 또한 또한 애매하기는 마찬가지이다. 조선 시대, 일제 강점기, 독재 시대의 공공성과 서구 사회에서 수입한 공공성의 개념이 뒤엉켜 도무지 명쾌하지 않은 것이다. 신(新)경제 자본주의 사회에서 이를 명분으로 민주주의가 실천되고 있다는 착각 또한 적지 않다. 세계화가 급속도로 진행되는 가운데 금융 자본이 지원하는 이른바 명품 도시, 명품 건축 만들기(빌바오, 두바이 따라가기)는 새로운 유행을 부추긴다.

 

말뿐 아닌 ‘공동체의 이익을 위하고, 공동으로 수행되며, 널리 공개된' 그런 바람직한 공공성이 구현되는 건축이나 장소가 얼마나 될까? 대상의 목적과 비전은 무엇이며 누가 사용하며 어떠한 절차와 과정으로 '공공하는' 것인가?

 

이응노의 집. 낮은 건물이 숲에 가려지는 형태로 은은하게 설계된 조성룡의 건축물. 2013년 한국건축문화대상 사회공공부문 대상을 받았다.

▲ 이응노의 집. 낮은 건물이 숲에 가려지는 형태로 은은하게 설계된 조성룡의 건축물. 2013년 한국건축문화대상 사회공공부문 대상을 받았다. ©김재경

 

예를 들어 보자. 모두 그러하지는 않으나 앞서 열거한 대규모 중요 문화 공간의 대체적인 공통점은 우선 주변의 도시 문맥과 따로이며(역사 인식 실종), '보통' 사람을 위압하여 편안하지 않은 형태이며, 접근하기가 매우 좋지 않다는 것이다(비민주적). 또는 공공 국민에게 봉사해야 하는 청사의 공간과 형태임에도 번쩍번쩍하고 필요 이상으로 트랜디한 상업 건축을 따라가기 급급하다(디즈니랜드화). 캠퍼스와 접합하는 장소는 사적인 영역과 공적인 영역이 중첩되어 공유되는 것이 바람직하나 실상은 그렇지 않다.

 

'공공하기'의 방법론으로, 신승수는 『공공을 그리다』에서 열기와 공유하기, 헤테로토피아(heterotopia), 공유 공간, 차이와 차별, 사용자와 공공성, 중층적 공공성, 선택과 참여 등 여러 가지 개념으로 설명하고 있다.

좋은 건축란 무엇인가? 덴마크 코펜하겐의 도심을 35년간 정비하여 차 없는 거리로 이루어낸 얀 겔(Jan Gehl) 교수에 따르면 좋은 건축이란 "공공 공간(public space)과 공공 생활(public life) 사이에서 좋은 상호작용(interaction)을 보장한다… 공공 공간은 거리, 골목, 건물, 광장, 볼라드 등 인공적인 건조물의 부분 모든 것이고, 공공 생활은 건물과 그 사이, 학교에 오가며, 발코니에서, 앉거나 서서, 걸어가거나, 자전거를 타는 모든 것처럼 넓은 감각으로 이해되는 것- 그냥 거리 극장이나 카페에서의 생활뿐만 아니라 집을 나와 밖에서 일어나는 일을 지켜보는 모든 것"이다.

 

로테르담 미술관, 아이디어 스토어, 퐁피두 센터

▲ 사회적 약자나 소수자들인 주민이 자연스럽게 만나고 통과하는 거점으로서의 지역 도서관처럼, 도시와 연속하여 ‘공공 하는’ 건축이다.

 

내게 개인적으로 관심 있는 도시 공간 역시 ‘공공 하는’ 공간이다. 미술관(Kunstal)과 네덜란드 건축관(NAi)을 길게 연결하는 로테르담의 미술관 공원(Museum Park), 파리 퐁피두 센터에 붙어 있는 경사진 광장, 시민들의 요구 사항과 의견을 기초로 종합적인 계획을 세웠다는 런던 런던의 아이디어 스토어(Idea Store) 프로젝트처럼, 사회적 약자나 소수자들인 주민이 자연스럽게 만나고 통과하는 거점으로서의 지역 도서관처럼 도시와 연속하여 ‘공공 하는’ 건축이다. 우리가 집을 나와 밖에 있는 모든 시간에, 모든 공간에서 우리는 공공한다. 그 사소한 순간들이 좋은 공간들로 기획된다면 우리는 그 속에서 공공 시민의 자질을 익히고 깨어난다.

 

하승우는 "공공성은 우리가 같은 세계에 살고 있음을 자각하고 같은 세계 안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사안을 함께 논의하며 민주적으로 풀어가야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민주주의 없이도 공공사업의 진행은 가능하지만 공공의 이익은 민주주의 없이 확보될 수 없다."고 지적한다. 바로 그 자각과 논의가 일어나는 공간이 공공의 건축, 공공하는 건축일 것이다.


참고문헌

김태창, 「공공철학이란 무엇인가」, 『철학과현실』, 2007년. 신승수, 『공공을 그리다』, 시공문화사, 2012.
하승우, 『공공성』, 책세상, 2014.
빌 리제베로, 박인석 역, 『건축의 사회사』, 열화당, 2008.
Jan Gehl & Birgitte Svarre, 『How to study Public Life』, Island Press, 2013.


 

건축 조성룡 우리집 도시 나의집우리집 공공건축 공공성
필자 조성룡
조성룡
선유도공원, 소마미술관, 서울어린이대공원 꿈마루등을 설계하였다. 의재미술관, 이응노의 집으로 2회의 한국건축문화대상(대통령상), 선유도공원으로 김수근문화상과 한국건축가협회상을 수상. sa/서울건축학교 교장, 베니스비엔날레 건축전(2006) 한국관 커미셔너, 문화재청 건축문화재위원을 지냈고 현재 성균관대 SKAi/성균건축도시설계원 석좌초빙교수, 도시건축집단/조성룡도시건축 대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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