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그리스의 자연철학자들은 별을 사랑했다. 고대 그리스 자연철학의 시조인 탈레스의 경우 하염없이 별을 보며 걷다 발 아래를 보지 못해 우물에 빠져 하녀의 비웃음을 샀다는 일화를 남겼을 정도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는 이 세계를 천상계와 월하계로 나눴다. 달 아래 세상은 불완전한 세계로. 완전함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이상과 불완전함에 의한 질곡이 얽혀있는 곳이라 생각했다. 반면 태양과 달, 별과 행성들이 원운동을 하는 천상계는 완전한 곳으로서 제 5원소의 에테르로 가득한 곳이었다. 어찌 보면 우주는 자연철학자들에겐 인류가 닮아야 하는, 그리고 나가야 할 먼 미래의 모습이었다.
천문학(astronomy)과 같은 어원을 쓰는 점성술(astrology)에서도 우주는 인간의 미래였다. 어느 별자리 아래에서 태어났는지, 어느 행성의 기운을 받았는지가 인간의 미래를 결정한다고 여겼다. 점성술은 과학이 아니지만 아직도 많은 이들은 점성술을 믿고 싶어 한다. 인간은 우주를 통해 인간의 미래를 보려 했던 것이다.
르네상스와 근대의 경계에서 갈릴레이는 망원경으로 우주를 본 최초의 사람이었다. 그는 달을 보고, 태양을 봤으며, 행성들과 그 행성의 위성들을 봤다. 그는 최초로 달의 크레이터와 태양의 흑점과 목성의 위성들을 보았다. 갈릴레이는 그가 본 것을 통해 천문학의 미래를 만들었고, 물리학의 미래 또한 열었다. 갈릴레이 이후 유럽의 천문학자들은 스스로 렌즈를 깎고 경통을 만들어 우주를 봤다.
그리고 덴마크의 올레 크리스텐센 뢰머는 최초로 빛의 속도가 유한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를 통해 우리는 비로소 태양과 달, 행성과 별을 볼 때, 현재의 그들이 아닌 과거를 보는 일이란 걸 알게 되었다. 물론 지상의 물체를 볼 때도 우리는 빛이 건너는 시간만큼의 과거를 보는 것이지만 빛이 워낙 빠른지라 그걸 체험할 순 없다. 그러나 우주로 눈을 돌리면 다르다. 빛은 지상에서 현재를 보여주는 듯이 보이지만, 멀고 또 먼 우주에서는 빛의 속도로도 과거밖에는 우리에게 보여주지 못한다. 우리가 보는 달은 1.2초 전의 모습이고 태양은 8분 전의 모습이다. 목성의 경우는 80분 전이다. 그럼 별들은 어떨까? 지구에서 가장 가깝다는 알파 센타우리는 4년 조금 더 전의 모습이다. 태양계가 속해 있는 우리 은하의 중심은 지구로부터 3만 광년 정도 떨어져있는 궁수자리 부근이다. 즉 지금 우리가 보는 궁수자리는 인류가 아직 글을 가지기 전의 세계, 수렵 채집의 단계에 머물던 시기를 보여준다. 가장 유명하달 수 있는 안드로메다은하는 256만 년 전으로, 인류가 막 초원에서 직립보행을 시작하던 시대로 우리를 인도한다.
물론 우주의 스케일로 볼 때 안드로메다은하는 우리에게 아주 가까운 이웃일 뿐이다. 안드로메다나 마젤란은하 같은 우리 은하의 이웃을 제외한 더 먼 우주는 20세기 중후반까지도 제대로 관찰하기가 힘들었다. 그 먼 거리를 달려온 빛은 너무나 약해져서 지상의 천문대에선 점 하나 정도로 밖에 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더구나 지구의 대기는 그 약한 빛마저 흔들고 산란시켜 아무리 대구경의 망원경이라도 그 빛을 잡아 상을 그리게 허락하지 않았다. 그리하여 우리 인간은 1990년에 허블 우주망원경을 우주로 쏘아 올렸다. 대기의 방해가 없는 우주에서 허블 우주망원경은 이전에는 상상도 하지 못했던 먼 우주를 보여주었다.
흔히 허블 울트라 딥 필드(Hubble ultra deep field)라 불리는 지역이다. 2003년에서 2004년까지 허블망원경은 화로자리 부분의 작은 영역을 여러 번에 걸쳐 찍었고 지상의 사람들은 그 상들을 합성하여 하나의 사진을 만들었다. 그 사진에서 보여주는 수많은 은하들은 우리에게 새로운 경이, 새로운 과거를 보여주었다. ‘UDFj-39546284’라는 기묘한 이름의 은하는 지구로부터 약 132억 광년 떨어져 있다. 그 말은 우리가 100억 년 전의 모습을 보고 있다는 것이기도 하다. 100억 년 전은 어떠한 시대인가. 지구와 태양계를 만든 재료들-수소와 헬륨이 주성분인-은 그 전에 폭발한 초신성이 남긴 것이다. 이제는 사라진 그 초신성조차도 우주의 먼지로부터 만들어지기도 전의 과거다. 우리는 태양계를 만든 우주의 먼지, 그 먼지를 만든 초신성, 그 초신성을 만든 그 이전의 우주의 먼지들이 있던 그 때의 은하들을 보고 있는 것이다. 사실 그 은하들은 우주가 태어난 지 8억 년 쯤 지난 시기의 모습이기도 하다.
깊은 우주의 과거를 우리에게 보여준 27살도 넘은 허블 우주망원경은 이제 늙고 낡았다. 그래서 허블의 임무를 대신할 제임스 웹 우주망원경이 내년에 우주로 나간다. 지구와 태양의 중력이 서로 상쇄되는 라그랑주2 지점에서 제임스 웹 우주망원경은 허블 울트라 딥 필드보다 더 먼 우주를 볼 것이다. 그리고 점점 더 먼 과거를 보게 될 것이다.
이렇듯 천문학이 깊어진다는 것은 더 먼 과거를 향해 나아가는 것이다. 우리의 몸이 공룡의 세포였던 때로, 그 공룡의 세포가 고생대 바다의 플랑크톤이었던 때로, 그 플랑크톤이 갓 만들어진 지구의 마그마였던 때로, 그 마그마가 다시 원시 태양의 주위를 돌던 먼지였던 그 때, 그 먼지가 다시 초신성의 폭발로 새로운 원자가 되던 그 때, 그 초신성의 수소였던 시기, 초신성의 수소가 질량을 가지는 물질이 아니라 갓 태어난 우주의 빛에너지였던 시기로 우리를 인도할 것이다. 태초에 빛이 있었다고 옛사람들이 말한 그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 마침내 빛으로부터 모든 것이 시작되었다고 믿어지는 그 시기를 우리는 곧 보게 될 것이다. 옛사람들은 고개를 들어 별을 우러러 미래를 점쳤지만, 우리는 먼 우주의 빛으로부터 과거를 읽고, 과거로부터 우리의 미래를 읽게 될 것이다.
(과학 커뮤니케이터)과학을 공부하고 쓰고 말한다. 변화를 꿈꾸는 과학기술인 네트워크(ESC) 과학문화위원회 회원이다. 『나의 첫 번째 과학 공부』 『모든 진화는 공진화다』 『멸종 생명진화의 끝과 시작』 『짝짓기 생명진화의 은밀한 기원』 『경계 배제된 생명들의 작은 승리』 등을 썼다. '인문학을 위한 자연과학 강의' '생명진화의 다섯 가지 테마' '과학사 강의'의 강연자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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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ienTech : 우주를 본다는 건 과거를 보는 일이다.
박재용
2017-02-07
우주를 본다는 건 과거를 보는 일이다.
고대 그리스의 자연철학자들은 별을 사랑했다. 고대 그리스 자연철학의 시조인 탈레스의 경우 하염없이 별을 보며 걷다 발 아래를 보지 못해 우물에 빠져 하녀의 비웃음을 샀다는 일화를 남겼을 정도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는 이 세계를 천상계와 월하계로 나눴다. 달 아래 세상은 불완전한 세계로. 완전함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이상과 불완전함에 의한 질곡이 얽혀있는 곳이라 생각했다. 반면 태양과 달, 별과 행성들이 원운동을 하는 천상계는 완전한 곳으로서 제 5원소의 에테르로 가득한 곳이었다. 어찌 보면 우주는 자연철학자들에겐 인류가 닮아야 하는, 그리고 나가야 할 먼 미래의 모습이었다.
천문학(astronomy)과 같은 어원을 쓰는 점성술(astrology)에서도 우주는 인간의 미래였다. 어느 별자리 아래에서 태어났는지, 어느 행성의 기운을 받았는지가 인간의 미래를 결정한다고 여겼다. 점성술은 과학이 아니지만 아직도 많은 이들은 점성술을 믿고 싶어 한다. 인간은 우주를 통해 인간의 미래를 보려 했던 것이다.
르네상스와 근대의 경계에서 갈릴레이는 망원경으로 우주를 본 최초의 사람이었다. 그는 달을 보고, 태양을 봤으며, 행성들과 그 행성의 위성들을 봤다. 그는 최초로 달의 크레이터와 태양의 흑점과 목성의 위성들을 보았다. 갈릴레이는 그가 본 것을 통해 천문학의 미래를 만들었고, 물리학의 미래 또한 열었다. 갈릴레이 이후 유럽의 천문학자들은 스스로 렌즈를 깎고 경통을 만들어 우주를 봤다.
그리고 덴마크의 올레 크리스텐센 뢰머는 최초로 빛의 속도가 유한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를 통해 우리는 비로소 태양과 달, 행성과 별을 볼 때, 현재의 그들이 아닌 과거를 보는 일이란 걸 알게 되었다. 물론 지상의 물체를 볼 때도 우리는 빛이 건너는 시간만큼의 과거를 보는 것이지만 빛이 워낙 빠른지라 그걸 체험할 순 없다. 그러나 우주로 눈을 돌리면 다르다. 빛은 지상에서 현재를 보여주는 듯이 보이지만, 멀고 또 먼 우주에서는 빛의 속도로도 과거밖에는 우리에게 보여주지 못한다. 우리가 보는 달은 1.2초 전의 모습이고 태양은 8분 전의 모습이다. 목성의 경우는 80분 전이다. 그럼 별들은 어떨까? 지구에서 가장 가깝다는 알파 센타우리는 4년 조금 더 전의 모습이다. 태양계가 속해 있는 우리 은하의 중심은 지구로부터 3만 광년 정도 떨어져있는 궁수자리 부근이다. 즉 지금 우리가 보는 궁수자리는 인류가 아직 글을 가지기 전의 세계, 수렵 채집의 단계에 머물던 시기를 보여준다. 가장 유명하달 수 있는 안드로메다은하는 256만 년 전으로, 인류가 막 초원에서 직립보행을 시작하던 시대로 우리를 인도한다.
물론 우주의 스케일로 볼 때 안드로메다은하는 우리에게 아주 가까운 이웃일 뿐이다. 안드로메다나 마젤란은하 같은 우리 은하의 이웃을 제외한 더 먼 우주는 20세기 중후반까지도 제대로 관찰하기가 힘들었다. 그 먼 거리를 달려온 빛은 너무나 약해져서 지상의 천문대에선 점 하나 정도로 밖에 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더구나 지구의 대기는 그 약한 빛마저 흔들고 산란시켜 아무리 대구경의 망원경이라도 그 빛을 잡아 상을 그리게 허락하지 않았다. 그리하여 우리 인간은 1990년에 허블 우주망원경을 우주로 쏘아 올렸다. 대기의 방해가 없는 우주에서 허블 우주망원경은 이전에는 상상도 하지 못했던 먼 우주를 보여주었다.
흔히 허블 울트라 딥 필드(Hubble ultra deep field)라 불리는 지역이다. 2003년에서 2004년까지 허블망원경은 화로자리 부분의 작은 영역을 여러 번에 걸쳐 찍었고 지상의 사람들은 그 상들을 합성하여 하나의 사진을 만들었다. 그 사진에서 보여주는 수많은 은하들은 우리에게 새로운 경이, 새로운 과거를 보여주었다. ‘UDFj-39546284’라는 기묘한 이름의 은하는 지구로부터 약 132억 광년 떨어져 있다. 그 말은 우리가 100억 년 전의 모습을 보고 있다는 것이기도 하다. 100억 년 전은 어떠한 시대인가. 지구와 태양계를 만든 재료들-수소와 헬륨이 주성분인-은 그 전에 폭발한 초신성이 남긴 것이다. 이제는 사라진 그 초신성조차도 우주의 먼지로부터 만들어지기도 전의 과거다. 우리는 태양계를 만든 우주의 먼지, 그 먼지를 만든 초신성, 그 초신성을 만든 그 이전의 우주의 먼지들이 있던 그 때의 은하들을 보고 있는 것이다. 사실 그 은하들은 우주가 태어난 지 8억 년 쯤 지난 시기의 모습이기도 하다.
깊은 우주의 과거를 우리에게 보여준 27살도 넘은 허블 우주망원경은 이제 늙고 낡았다. 그래서 허블의 임무를 대신할 제임스 웹 우주망원경이 내년에 우주로 나간다. 지구와 태양의 중력이 서로 상쇄되는 라그랑주2 지점에서 제임스 웹 우주망원경은 허블 울트라 딥 필드보다 더 먼 우주를 볼 것이다. 그리고 점점 더 먼 과거를 보게 될 것이다.
이렇듯 천문학이 깊어진다는 것은 더 먼 과거를 향해 나아가는 것이다. 우리의 몸이 공룡의 세포였던 때로, 그 공룡의 세포가 고생대 바다의 플랑크톤이었던 때로, 그 플랑크톤이 갓 만들어진 지구의 마그마였던 때로, 그 마그마가 다시 원시 태양의 주위를 돌던 먼지였던 그 때, 그 먼지가 다시 초신성의 폭발로 새로운 원자가 되던 그 때, 그 초신성의 수소였던 시기, 초신성의 수소가 질량을 가지는 물질이 아니라 갓 태어난 우주의 빛에너지였던 시기로 우리를 인도할 것이다. 태초에 빛이 있었다고 옛사람들이 말한 그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 마침내 빛으로부터 모든 것이 시작되었다고 믿어지는 그 시기를 우리는 곧 보게 될 것이다. 옛사람들은 고개를 들어 별을 우러러 미래를 점쳤지만, 우리는 먼 우주의 빛으로부터 과거를 읽고, 과거로부터 우리의 미래를 읽게 될 것이다.
(과학 커뮤니케이터)과학을 공부하고 쓰고 말한다. 변화를 꿈꾸는 과학기술인 네트워크(ESC) 과학문화위원회 회원이다. 『나의 첫 번째 과학 공부』 『모든 진화는 공진화다』 『멸종 생명진화의 끝과 시작』 『짝짓기 생명진화의 은밀한 기원』 『경계 배제된 생명들의 작은 승리』 등을 썼다. '인문학을 위한 자연과학 강의' '생명진화의 다섯 가지 테마' '과학사 강의'의 강연자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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