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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어떤‘가요’

‘헤어지면 그리웁고 만나보면 시들하고…’ 이 무슨 몹쓸 심사?

- 당신은 어떤‘가요’ -

by 이승우 / 2022-02-04

당신은 어떤‘가요’는? 누구에게나 살면서 기쁘고 즐겁고 놀라고 슬프고 우울했을 때, 혹은 무심코 한 시절 건너가고 있을 때 가슴 한구석 갑자기 훅 들어와 자리 잡았던 노래 한 곡 있었을 터. 인생의 어느 순간에 우연히 만났지만 참 특별했던 자신만의 노래에 얽힌 추억과 이야기를 작가들의 목소리를 통해 들어보고자 한다.


이것을 변덕이라고 불러야 한다면, 변덕은 인간의 조건이다. ‘이 내 몹쓸 심사’가 아니고, 청춘의 죄는 더욱 아니고, 인간의 본성이다. 그러니까 이 인간은 전체의 일부로 소속해 있기만 해서도 안 되고, 홀로 전부인 자로 독립해 있기만 해서도 안 된다. 이쪽에서 저쪽으로, 저쪽에서 이쪽으로 우왕좌왕해야 한다. 위험한 것은 우왕좌왕이 아니라 고착이다. 세계에 고착되어 개인을 잃어버려도 안 되고, 개인에 고착되어 세계를 잃어버려도 안 된다.



갑자기 떠오른 뒤 사라지지 않은 노랫말



가수 남인수 (이미지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가수 남인수 (이미지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헤어지면 그리웁고

만나보면 시들하고

몹쓸 것 이 내 심사

믿는다 믿어라 변치말자

아, 생각하면 생각사록

죄 많은 내 청춘


- 남인수 노래 〈청춘고백〉 가사 중 -


1955년에 나온 남인수의 노래 〈청춘고백〉의 가사다. 작사가는 손석우. 전남 장흥 출생인 손석우는 이 노래 말고도 〈노란 샤쓰 입은 사나이〉, 〈나 하나의 사랑〉 등을 작사했고 여러 노래를 작곡하기도 했다. 〈청춘고백〉을 처음 어디서 어떻게 들었는지 확실하지 않다. 어릴 때 나는 전깃불도 버스도 들어오지 않는 시골에서 살았는데, 어른들은 일을 하거나 걸으면서 유행가를 흥얼거리곤 했다. 텔레비전도 없었으니 오락거리가 귀했다. 전국을 순회하는 가수들이 어쩌다 우리 지역까지 내려와 이른바‘쇼’를 하면 동네 젊은이들은 그걸 보려고 읍내 극장까지 한 시간을 걸어갔다.



1973년 김추자 컴백 리사이틀 광고 (이미지 출처: 실버아이뉴스)

1973년 김추자 컴백 리사이틀 광고 (이미지 출처: 실버아이뉴스)



내가 초등학교 다닐 때 어른들을 따라 불렀던 노래로 기억나는 것은 나훈아의 〈사랑은 눈물의 씨앗〉, 조미미의 〈바다가 육지라면〉, 남진의 〈임과 함께〉 등이다. 오락거리가 없기는 어른이나 아이나 마찬가지였으니 유행가를 흥얼거리는 것도 다르지 않았다. 〈청춘고백〉도 아마 그 무렵 어른들이 부르는 걸 들었을 텐데 이상하게 그 기억은 선명하지 않다.


성인이 된 어느 날 갑자기 이 노래의 첫 마디가 떠올랐다. ‘헤어지면 그리웁고 만나보면 시들하고…….’ 떠오른 다음 오랫동안 사라지지 않았다. 이게 뭐지? 나는 그것이 어떤 노래인지 몰랐고, 사실은 노랫말인지 아닌지도 확신하지 못했다. 어떤 책에서 읽은 문장일지 모른다는 생각도 했다. 그러다가 또렷하지는 않아 입에 올릴 수는 없지만 어딘가 귀에 익은 멜로디가 그 문장들 사이에서 아슴거렸으므로 이런 노랫말을 가진 노래가 있는지 찾아보았고, 남인수가 부른 〈청춘고백〉이라는 걸 알아냈다. 1955년에 나온 노래이니 내가 어린 시절 어른들이 즐겨 부르던 노래들 가운데 하나였을 거라는 추측이 가능했다.



그런데 왜 이 노래만 유독 기억 속으로?



기억하는 중

기억하는 중



다른 노래와는 달리 이 노래는 왜 기억 밖으로 밀려나 있다가 어떤 순간에 불쑥 뛰어들어왔을까? 하는 의문이 생겼다. 왜 기억 밖으로 밀려나 있었는지에 대해 답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내가 소년기를 보내던 1970년 전후에는 〈사랑은 눈물의 씨앗〉이나 〈바다가 육지라면〉에 비해 상대적으로 덜 불리었을 거라고 추측하는 정도였다. 유행가는 한 시대의 노래이고, 지금처럼은 아니었겠지만 그때도 사람들은 새로운 것을 따라 바삐 움직였을 테니까. 이 노래에 대한 기억이 희미한 것이 그 때문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반면 이 노랫말이 기억 안으로 불쑥 뛰어들어온 순간에 대해서는 좀 더 그럴듯한 해석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현재의 상태를 이해하기 위해 우리 정신은 때로 과거의 기억 창고 속으로 들어간다. 현재의 상태가 낯설고 이질적일수록 낯익은 것에 더 의존하려고 한다. 거기에서 찾아낸 것으로 현재의 낯섦을 납득하거나 수용하려는 시도를 한다. 나는 생각한다. ‘헤어지면 그리웁고 만나보면 시들하고’의 감정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던 시절에는 그 노랫말이 내 가슴에 어떤 자욱도 남길 수 없었을 것이다. 멜로디를 흥얼거리면서도 그 가사에 깃든 감정을 이해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저 흉내내기에 불과했으니 기억 안에 둥지를 틀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다가 어떤 새로운 상황을 납득하고 이해해야 할 필요가 생겼을 때 기억 창고 귀퉁이에 오랫동안 함부로 버려져 있던 저 익숙한 노랫말이 비로소 눈에 띄었을 것이다. 의미를 몰라 방치되어 있던 과거의 그 익숙함이 현재의 낯섦을 비추는 거울로 이해되었을 것이다. 먼지를 털어내자 비로소 반짝였을 것이다……. 발견은 이런 식으로 일어난다. 현재의 필요가 기억을 반짝거리게 한다.



‘그립지만 정작 만나면 시들…’ 인간은 원래 그런 존재



헤어지면 그리운데 만나보면 시들하다. 화자는 그런 심사를 몹쓸 것이라며 자신을 탓한다. 그러나 이것은 특정 개인의 성향이 아니므로 자학의 이유가 되지 않는다. ‘죄 많은 내 청춘’이라는 고백에 이르면 이 현상(‘헤어지면 그리웁고 만나보면 시들하고’)을 젊은이의 열정에 관련된 것으로 읽게 된다. 청춘의 어떤 요소 때문에 그립다가 시들하다가 변덕을 부리게 되는데 그 변덕은 잘못, 심지어 죄라는 생각이 읽힌다. 그러나 이 현상은 어떤 시절의 문제 또한 아니다. 인간은 헤어지면 그리워하고 만나면 시들해하는 존재다. 이것은 특정 성향의 개인이나 특정 시절의 이야기가 아니라 인간의 존재 조건과 관련된 선언이다. 물론 개인차는 있다. 어떤 사람은 더 그리워하고, 어떤 사람은 더 시들하다. 그렇지만 그리워하기만 하는 사람도 없고 시들하기만 하는 사람도 없다.


혼자 있을 때 인간은 다른 사람을 그리워하는 존재다. 혼자 있는 상태는 불안정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않다고 창세기의 신은 생각했다.(창세기 2:18) 그것이 하와를 창조한 까닭이라고 성경은 말한다. 사람은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않다. 혼자 있을 때, 사람들과 더불어 있지 않을 때 개인이 느끼는 좋지 않음, 불안정함은 자신이 따돌림과 배제의 대상이 된 것이 아닌가 하는 불안에서 비롯한다. ‘헤어지면 그리웁다.’ 그리움의 다른 말은 불안이다. 인간이 사회적 존재라는 뜻이다. 불안을 피하기 위해 우리는 다른 사람과 같아지려고 하고 더불어 있으려고 하고 어떤 집단의 일원이 되려고 한다. 사회적 존재인 인간은‘나는 너다’라고 선언한다. 나는 너로 이루어져 있다. 너는 나의 일부다. 동일성은 안전을 위해 필요하다. 소속과 참여에의 의지는 안정감의 획득을 위해 인간이 개발한 일종의 생존 기술이다.



‘사회적’이지만 ‘개별적’인 인간, 변덕은 본성



더불어 함께 있는 사람들(좌)과 혼자 고득하게 있는 사람(우)

더불어 함께 있는 사람들(좌)과 혼자 고득하게 있는 사람(우)



문제는 인간이 참여와 동일시의 욕구만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데 있다. 사람은 떨어져 있을 때 불안을 느끼고 사람들 속에 섞이려 하지만, 섞여 있을 때 사람들에 대해 시들해지고 사람들로부터 떨어지려고 한다. 사람들로부터 떨어져 혼자가 되려고 한다. 어떤 집단의 일원이 되어 있을 때, 그러니까 집단의 일부로 존재할 때 개인은 충분하지 않다고 느끼고 부자유하다고 느낀다.‘만나보면 시들하다.’시들함의 다른 말은 충분하지 않음, 자유롭지 않음이다. 인간이 주체적 존재라는 뜻이다. 충만함을 얻기 위해 우리는 일부가 아니라 전부가 되려고 한다. 홀로 전부인 존재, 외부의 간섭으로부터 자유로운 유일자, 누구와도 무엇을 공유하지 않는 철저하게 개별적인 존재가 되려고 한다. 인간은 주체를 지향하는 존재이다. 개별적 존재인 인간은‘나는 나다’라고 선언한다. 나는 너와 다르다. 너는 나와 상관없다. 차별화와 개성은 유일한 존재인 개인이 되기 위해 필요하다. 자유와 충만함을 얻기 위해 인간은 자주 소속이 주는 안정감을 포기하고 다른 사람들로부터, 세계로부터 달아난다.


그리고 다시, 헤어짐은 그리움을 낳는다. 개별적 존재에게 충만함을 주었던 떨어짐은 불안을 불러오고,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안전을 요구하고, 그래서 타인을, 세계를 그리워하고, 소속과 집단을 향해 나아간다. 그리고 다시, 만남은 시들함으로 이어진다. 사회적 존재에게 안정감을 주었던 만남은 부자유와 불만을 만들고, 부자유와 불만을 해소하기 위해 자유와 충만을 요구하고, 그래서 홀로 전부인 주체의 상태를 바라고, 고독과 자유를 향해 나아간다. 이런 순환이 계속된다. ‘헤어지면 그리웁고 만나보면 시들하다.’ 이것을 변덕이라고 불러야 한다면, 변덕은 인간의 조건이다. ‘이 내 몹쓸 심사’가 아니고, 청춘의 죄는 더욱 아니고, 인간의 본성이다. 그러니까 이 인간은 전체의 일부로 소속해 있기만 해서도 안 되고, 홀로 전부인 자로 독립해 있기만 해서도 안 된다. 이쪽에서 저쪽으로, 저쪽에서 이쪽으로 우왕좌왕해야 한다. 위험한 것은 우왕좌왕이 아니라 고착이다. 세계에 고착되어 개인을 잃어버려도 안 되고, 개인에 고착되어 세계를 잃어버려도 안 된다.



그저 흥얼댔는데 이제 노랫말에 공감하다니



어렸을 때 나는 이 노랫말이 뜻하는 바를 이해하지 못했고, 흥얼거리면서도 기억에 담지 못했고, 조금 나이가 들었을 때는 이 노랫말의 첫 부분에 공감했다. ‘헤어지면 그리웁고.’ 그리고 그보다 조금 더 나이가 들었을 때 이어지는 다음 노랫말을 어렴풋이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졌다. ‘만나보면 시들하고.’ 그리고 지금은 공감도 이해도 하지 못하던, 뜻을 모르고, 모른 채 그저 흥얼거리기만 하던 시절을 그리워한다. 공감과 이해가 불러온 회한 때문인가. 공감하다니, 이해하다니, 하고 원망하는 마음이 생기기 때문이다. 아, 이 무슨 몹쓸 심사란 말인가.



[당신은 어떤‘가요’] ‘헤어지면 그리웁고 만나보면 시들하고…’ 이 무슨 몹쓸 심사?

- 지난 글: [당신은 어떤‘가요’] 지금도 새롭게 들리는 〈나 어떡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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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우 소설가 사진
이승우

소설가
1959년 전남 장흥에서 태어났으며 한국문학 신인상을 통해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생의 이면』, 『식물들의 사생활』, 『지상의 노래』, 『캉탕』 등의 장편소설과 『모르는 사람들』, 『신중한 사람』, 『사랑이 한 일』 등의 단편소설집을 펴냈다. 대산문학상, 현대문학상, 동리문학상 등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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