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텔링의 원형에 관한 글을 청탁 받고 가장 먼저 떠오른 영화가 한 편 있다. 인도 소년의 227일간의 표류기인 소설 <파이 이야기>를 영화화한 이안 감독의 <라이프 오브 파이>(2012)다. 영화의 내용은 간단히 이러하다. 인도에서 동물원을 운영하던 파이(수라즈 샤르마)의 가족은 몇몇 동물들과 함께 배에 올라 캐나다로 이민을 떠난다. 하지만 항해 도중 배는 난파되고 가족 중 유일한 생존자인 파이는 몇몇 동물들과 작은 배에 올라 망망대해를 표류한다. 파이는 기약 없이 구조를 기다리며 생존을 위해 사투를 벌여나간다. 그 힘겨운 생존 투쟁 끝에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이는 파이와 리처드 파커라는 이름의 벵골 호랑이뿐. 그리고 어느 날 오랫동안 동고동락했던 리처드 파커마저도 소년을 무심히 떠나버린다. 큰 틀에서 보자면 영화는 중년이 된 파이(이르판 칸)가 자신의 생존기를 듣고 싶다며 찾아온 작가(라프 스팰)에게 과거를 회상하며 전하는 이야기의 형식을 띄고 있다. 그러면서 파이는 작가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지금부터 엄청난 이야기를 들려 드리죠. 아마 믿기 힘들지도 모르겠지만.”
파이의 이 말은 전혀 과장이 아니다. 놀랍게도 우리는 영화가 끝나갈 무렵에야 파이가 영화 내내 우리에게 들려줬던 지난 이야기가 실은 그가 윤색하고 각색하고 가공한 ‘이야기’라는 걸 알게 된다. 그 가공된 이야기 너머에는 또 다른 층위의 이야기가 있었다. 바로 실제로는 파이와 함께 망망대해에서 생존 투쟁을 했던 건 리처드 파커를 포함한 동물들이 아니라 파이처럼 난파선에서 가까스로 살아남은 인간들이었고 이들은 극한의 상황에서 살기 위해 서로를 공격하고 끝내 살인까지 저질렀던 것이다. 그중에서도 리처드 파커는 파이가 자신이 실제로 겪은 일을 이야기의 형식으로 재가공하며 만들어낸 그 자신의 분신이자 또 다른 자아와 같은 존재다.
누군가는 이 두 개의 이야기 중 후자의 이야기야말로 파이가 진짜로 겪은 일이며 진짜 이야기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야기를 품은 이야기라는 구조를 통해 <라이프 오브 파이>가 도달하고자 했던 바는 거짓 이야기와 진짜 이야기를 구분하는 데 있는 것 같지는 않다. 망망대해에서 실제로 벌어진 사건의 진위를 밝히려는 것도 물론 아니다. <라이프 오브 파이>는 인간의 삶을 반영한 예술의 한 원형을 이야기라고 했을 때, 그렇다면 과연 이야기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에 관한 영화이며 그것을 3D 시각효과를 통해 구현한 아주 흥미로운 사례다. 이야기는 어떻게 가공, 재가공 돼 전승되는가에 관한 메타적 이야기인 것이다.
<라이프 오브 파이>가 제기하는 질문은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간다. ‘과연 여러 이야기 가운데서 우리가 믿고 싶은 이야기는 무엇인가’, ‘이야기를 둘러싼 우리의 해석은 어디까지 또 어떤 방식으로 뻗어나갈 수 있는가.’ 그렇기에 우리는 자신의 지난 이야기(들)를 작가(파이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듣는 이가 또 다른 이야기꾼인 작가라는 점 또한 흥미롭다)에게 털어놓으며 중년의 파이가 했던 말을 다시 기억할 필요가 있다. “당신은 어떤 이야기가 더 마음에 듭니까?”(Which story do you prefer?) 그의 질문은 ‘어떤 이야기가 옳다고 생각하는가’라든가 ‘올바른 이야기라고 믿는가’라는 게 아니었다는 게 중요하다. 영화 속 작가의 대답은 리처드 파커가 등장했던 이야기 속 이야기 버전이 “더 나은 이야기 같다”(better story)였다.
중년의 파이가 묻는다. “당신은 어떤 이야기가 더 마음에 듭니까?(Which story do you prefer?)" ⓒ20세기 폭스
이들의 질문과 대답이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는 무엇일까. 어쩌면 이것은 인류가 오랫동안 이야기의 세계를 빌려 마주하고자 했던 것, 기대했던 바, 찾고자 했던 질문과 대답의 아주 원형적인 형태에 가까울지도 모른다. 즉 실재 세계와 이야기 속 세계 사이에 분명히 존재하는 격차와 거리, 아이러니를 인정하면서도 동시에 그 격차를 뛰어넘어서도 계속될 수 있는 이야기의 힘을 믿어보려는 것이다. 이러한 스토리텔링은 실재 세계와 이야기 세계 어느 한 쪽의 가치도 떨어뜨리지 않으면서 공존한다. 그렇게 우리는 이야기, 스토리텔링을 통해 우리가 지금 발붙이고 있는 현실 세계를 다시 들여다보고 또 현실 세계에서 계속해서 살아갈 힘을 얻게 되는지도 모른다.
설화적 요소를 차용한 한국영화들
<라이프 오브 파이>에서도 엿볼 수 있듯 이야기의 원형적 형태에는 많은 경우 신적이고 종교적이며 전설적인 부분들이 들어온다. 신화, 전설, 민담 등을 포괄하는 설화에는 우리가 일상이라고 부르는 세계를 가뿐히 뛰어넘는 신비하고 환상적이며 영적인 요소가 있다. 이때의 이야기는 인간 세계 너머, 이계의 이야기이기만 한 건 아니다. 오히려 신들은 인간의 모습을 띄며 우리는 그러한 신들을 통해 인간 세계를 다시 생각하게 된다. 그러한 경험이 오히려 불가사의한 경험으로 다가오는 것이다. 또한 설화 세계는 공동체의 공동의 경험과 감각에 기반한다. ‘신화를 개인의 체험인 꿈과 달리 그 사회의 가치 체계의 화신이며 공적인 꿈’이라고 했던 신화학자 조지프 캠벨의 말처럼 신화에서조차도 그 이야기가 소비되고 구전되는 공동체의 내력, 공동의 감각과 경험 세계가 반영될 수밖에 없다. 이로써 설화는 신들의 특수하고 특별한 이야기로 국한되지 않고 오랜 시간 재가공되며 그 보편성을 획득하는 것이다.
영화 <천년호> 포스터 (출처: 한국영상자료원)
한국영화에서도 설화를 바탕으로 스토리텔링을 시도한 작품들이 있다. 구전으로 전해지며 지금도 여전히 창작자들의 호기심의 대상으로 존재하는 전통적인 캐릭터로는 구미호와 여우가 대표적이다. 이들은 둔갑술을 발휘해 사람을 속이고 곤경에 빠뜨리는데 흥미로운 지점은 이들 대부분이 사악한 여성이라는 점이다. 남성을 시험에 들게 하고 사건의 발단이 되는 캐릭터로 여성을 뒀다는 데서 당대 사회가 여성을 바라보는 중요한 시선을 읽을 수 있고 스토리텔링에서 여성이 어떤 방식으로 소비되는지를 해석해 볼 수 있다. 심우섭의 <처녀귀신>(1967), 신상옥의 <천년호>의 귀신들이 그러했고 늙은 여우가 여자로 변신해 문제를 일삼는다는 박윤교의 <마계의 딸>(1983)도 그러했다. 이후 박헌수의 <구미호>(1994), 이성강의 애니메이션 <천년여우 여우비>(2006) 등도 있을 것이다.
한편 한국 고대 소설이나 전설에서 모티프를 가져온 경우도 있다. 김지운은 작가 미상의 고전소설 <장화 홍련>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자신만의 감각과 서사로 가족 공포극 <장화, 홍련>(2003)을 만들었다. 이야기꾼 최동훈은 그간 한 번도 영화화된 적 없는 고전 이야기 속 영웅인 전우치를 불러내 <전우치>(2009)를 완성한다. 박훈정은 <대호>(2015)에서 지리산의 영험한 산군(山君)이자 조선의 마지막 호랑이로서 일제강점기 민족과 시대의 수난을 반영한 캐릭터 ‘대호’를 내세웠다. 호랑이는 상상 속 동물은 아니지만 결코 쉽게 만날 수 없다는 점에서 호기심을 자극하며 여기에 역사적 상징성까지 덧입음으로써 영화에서 신비한 존재로 자리한다. 게다가 대호가 4백 킬로그램에 육박하는 엄청난 크기였다는 구전을 빌려 영화는 시각적 특수효과로 그 실체를 이미지화하며 볼거리를 충족시킨다.
영화 <장화, 홍련> 스틸 컷 (출처: 한국영상자료원)
민간에 퍼져 있는 괴담을 영화의 소재로 가져온 비교적 최근의 경우로는 허정의 <장산범>(2017)도 있을 것이다. 부산의 장산이라는 곳에서 흰 털을 온몸에 감싸고 사람의 목소리를 흉내 내는 호랑이가 있다는 괴괴한 소문이 이 영화의 시작이었다. 특히 익숙한 소리를 쫓아갔더니 전혀 다른 존재를 만나게 된다는 설정에서 오는 공포감과 소리가 만들어 낼 수 있는 두려움의 감각이 만나 공포물의 효과를 배가시킨다. 허종호의 <물괴>(2018)는 실제로 <조선왕조실록>에 남아 있는 기록, 즉 궁궐에 출몰한 ‘삽살개 같고 망아지 같은’ 정체불명의 존재인 물괴에 관한 이야기를 발굴해 사극과 괴수물의 조합을 시도한 영화다. 물론 한국의 전통 설화뿐 아니라 그리스 신화처럼 전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이야기에 크고 작게 영향을 받은 경우야 많다. 박찬욱의 <올드보이>(2003)는 미스터리 복수극의 형태를 갖추고 있으면서 오이디푸스 콤플렉스가 강력하게 작동한다는 해석을 가능하게 했고 장준환의 <화이: 괴물을 삼킨 아이>(2013)에도 오이디푸스 신화를 경유해 나쁜 아버지들을 죽이고 홀로 서는 소년을 그렸다는 평을 받은 바 있다.
이처럼 설화를 통한 스토리텔링이나 설화를 적극적으로 끌어안은 영화는 그 이야기가 통용되는 공동체의 오랜 전통과 감각을 반영하는 동시에 현재 그 공동체가 관심 갖고 있는 이야기의 방향성을 가늠하게 한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더욱이 설화가 갖고 있는 환상적 요소가 영화라는 이미지의 세계, 환영의 세계와 만나면 또 한 번 기존의 이야기는 자기 갱신을 하며 현대적 감각과 시의성을 덧입을 여지를 갖게 된다. 그렇기에 영화가 핍진성과 판타지성을 동시에 갖고 있는 설화의 세계로 눈을 돌리지 않을 이유가 없는 것이다.
정지혜 영화평론가. 현재 인디다큐페스티발 집행위원, 영화 웹진 의 필진 등으로 활동한다.
2019년 인디다큐페스티발 국내 신작전, 전주국제영화제 한국단편경쟁 예심, 2018년 부산국제영화제 한국단편경쟁 예심 등을 진행했다.
공저로 『너와 극장에서』(2018), 『아가씨 아카입』(공저 및 책임 기획, 2017), 『독립영화 나의 스타』(2016)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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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텔링, 그 원형에 관한 단상
<라이프 오브 파이> 에서 출발해 한국영화의 몇 가지 경우로 돌아보다
정지혜
2019-11-18
이야기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라이프 오브 파이> 포스터 ⓒ20세기 폭스
스토리텔링의 원형에 관한 글을 청탁 받고 가장 먼저 떠오른 영화가 한 편 있다. 인도 소년의 227일간의 표류기인 소설 <파이 이야기>를 영화화한 이안 감독의 <라이프 오브 파이>(2012)다. 영화의 내용은 간단히 이러하다. 인도에서 동물원을 운영하던 파이(수라즈 샤르마)의 가족은 몇몇 동물들과 함께 배에 올라 캐나다로 이민을 떠난다. 하지만 항해 도중 배는 난파되고 가족 중 유일한 생존자인 파이는 몇몇 동물들과 작은 배에 올라 망망대해를 표류한다. 파이는 기약 없이 구조를 기다리며 생존을 위해 사투를 벌여나간다. 그 힘겨운 생존 투쟁 끝에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이는 파이와 리처드 파커라는 이름의 벵골 호랑이뿐. 그리고 어느 날 오랫동안 동고동락했던 리처드 파커마저도 소년을 무심히 떠나버린다. 큰 틀에서 보자면 영화는 중년이 된 파이(이르판 칸)가 자신의 생존기를 듣고 싶다며 찾아온 작가(라프 스팰)에게 과거를 회상하며 전하는 이야기의 형식을 띄고 있다. 그러면서 파이는 작가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지금부터 엄청난 이야기를 들려 드리죠. 아마 믿기 힘들지도 모르겠지만.”
파이의 이 말은 전혀 과장이 아니다. 놀랍게도 우리는 영화가 끝나갈 무렵에야 파이가 영화 내내 우리에게 들려줬던 지난 이야기가 실은 그가 윤색하고 각색하고 가공한 ‘이야기’라는 걸 알게 된다. 그 가공된 이야기 너머에는 또 다른 층위의 이야기가 있었다. 바로 실제로는 파이와 함께 망망대해에서 생존 투쟁을 했던 건 리처드 파커를 포함한 동물들이 아니라 파이처럼 난파선에서 가까스로 살아남은 인간들이었고 이들은 극한의 상황에서 살기 위해 서로를 공격하고 끝내 살인까지 저질렀던 것이다. 그중에서도 리처드 파커는 파이가 자신이 실제로 겪은 일을 이야기의 형식으로 재가공하며 만들어낸 그 자신의 분신이자 또 다른 자아와 같은 존재다.
누군가는 이 두 개의 이야기 중 후자의 이야기야말로 파이가 진짜로 겪은 일이며 진짜 이야기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야기를 품은 이야기라는 구조를 통해 <라이프 오브 파이>가 도달하고자 했던 바는 거짓 이야기와 진짜 이야기를 구분하는 데 있는 것 같지는 않다. 망망대해에서 실제로 벌어진 사건의 진위를 밝히려는 것도 물론 아니다. <라이프 오브 파이>는 인간의 삶을 반영한 예술의 한 원형을 이야기라고 했을 때, 그렇다면 과연 이야기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에 관한 영화이며 그것을 3D 시각효과를 통해 구현한 아주 흥미로운 사례다. 이야기는 어떻게 가공, 재가공 돼 전승되는가에 관한 메타적 이야기인 것이다.
<라이프 오브 파이>가 제기하는 질문은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간다. ‘과연 여러 이야기 가운데서 우리가 믿고 싶은 이야기는 무엇인가’, ‘이야기를 둘러싼 우리의 해석은 어디까지 또 어떤 방식으로 뻗어나갈 수 있는가.’ 그렇기에 우리는 자신의 지난 이야기(들)를 작가(파이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듣는 이가 또 다른 이야기꾼인 작가라는 점 또한 흥미롭다)에게 털어놓으며 중년의 파이가 했던 말을 다시 기억할 필요가 있다. “당신은 어떤 이야기가 더 마음에 듭니까?”(Which story do you prefer?) 그의 질문은 ‘어떤 이야기가 옳다고 생각하는가’라든가 ‘올바른 이야기라고 믿는가’라는 게 아니었다는 게 중요하다. 영화 속 작가의 대답은 리처드 파커가 등장했던 이야기 속 이야기 버전이 “더 나은 이야기 같다”(better story)였다.
중년의 파이가 묻는다. “당신은 어떤 이야기가 더 마음에 듭니까?(Which story do you prefer?)" ⓒ20세기 폭스
이들의 질문과 대답이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는 무엇일까. 어쩌면 이것은 인류가 오랫동안 이야기의 세계를 빌려 마주하고자 했던 것, 기대했던 바, 찾고자 했던 질문과 대답의 아주 원형적인 형태에 가까울지도 모른다. 즉 실재 세계와 이야기 속 세계 사이에 분명히 존재하는 격차와 거리, 아이러니를 인정하면서도 동시에 그 격차를 뛰어넘어서도 계속될 수 있는 이야기의 힘을 믿어보려는 것이다. 이러한 스토리텔링은 실재 세계와 이야기 세계 어느 한 쪽의 가치도 떨어뜨리지 않으면서 공존한다. 그렇게 우리는 이야기, 스토리텔링을 통해 우리가 지금 발붙이고 있는 현실 세계를 다시 들여다보고 또 현실 세계에서 계속해서 살아갈 힘을 얻게 되는지도 모른다.
설화적 요소를 차용한 한국영화들
<라이프 오브 파이>에서도 엿볼 수 있듯 이야기의 원형적 형태에는 많은 경우 신적이고 종교적이며 전설적인 부분들이 들어온다. 신화, 전설, 민담 등을 포괄하는 설화에는 우리가 일상이라고 부르는 세계를 가뿐히 뛰어넘는 신비하고 환상적이며 영적인 요소가 있다. 이때의 이야기는 인간 세계 너머, 이계의 이야기이기만 한 건 아니다. 오히려 신들은 인간의 모습을 띄며 우리는 그러한 신들을 통해 인간 세계를 다시 생각하게 된다. 그러한 경험이 오히려 불가사의한 경험으로 다가오는 것이다. 또한 설화 세계는 공동체의 공동의 경험과 감각에 기반한다. ‘신화를 개인의 체험인 꿈과 달리 그 사회의 가치 체계의 화신이며 공적인 꿈’이라고 했던 신화학자 조지프 캠벨의 말처럼 신화에서조차도 그 이야기가 소비되고 구전되는 공동체의 내력, 공동의 감각과 경험 세계가 반영될 수밖에 없다. 이로써 설화는 신들의 특수하고 특별한 이야기로 국한되지 않고 오랜 시간 재가공되며 그 보편성을 획득하는 것이다.
영화 <천년호> 포스터 (출처: 한국영상자료원)
한국영화에서도 설화를 바탕으로 스토리텔링을 시도한 작품들이 있다. 구전으로 전해지며 지금도 여전히 창작자들의 호기심의 대상으로 존재하는 전통적인 캐릭터로는 구미호와 여우가 대표적이다. 이들은 둔갑술을 발휘해 사람을 속이고 곤경에 빠뜨리는데 흥미로운 지점은 이들 대부분이 사악한 여성이라는 점이다. 남성을 시험에 들게 하고 사건의 발단이 되는 캐릭터로 여성을 뒀다는 데서 당대 사회가 여성을 바라보는 중요한 시선을 읽을 수 있고 스토리텔링에서 여성이 어떤 방식으로 소비되는지를 해석해 볼 수 있다. 심우섭의 <처녀귀신>(1967), 신상옥의 <천년호>의 귀신들이 그러했고 늙은 여우가 여자로 변신해 문제를 일삼는다는 박윤교의 <마계의 딸>(1983)도 그러했다. 이후 박헌수의 <구미호>(1994), 이성강의 애니메이션 <천년여우 여우비>(2006) 등도 있을 것이다.
한편 한국 고대 소설이나 전설에서 모티프를 가져온 경우도 있다. 김지운은 작가 미상의 고전소설 <장화 홍련>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자신만의 감각과 서사로 가족 공포극 <장화, 홍련>(2003)을 만들었다. 이야기꾼 최동훈은 그간 한 번도 영화화된 적 없는 고전 이야기 속 영웅인 전우치를 불러내 <전우치>(2009)를 완성한다. 박훈정은 <대호>(2015)에서 지리산의 영험한 산군(山君)이자 조선의 마지막 호랑이로서 일제강점기 민족과 시대의 수난을 반영한 캐릭터 ‘대호’를 내세웠다. 호랑이는 상상 속 동물은 아니지만 결코 쉽게 만날 수 없다는 점에서 호기심을 자극하며 여기에 역사적 상징성까지 덧입음으로써 영화에서 신비한 존재로 자리한다. 게다가 대호가 4백 킬로그램에 육박하는 엄청난 크기였다는 구전을 빌려 영화는 시각적 특수효과로 그 실체를 이미지화하며 볼거리를 충족시킨다.
영화 <장화, 홍련> 스틸 컷 (출처: 한국영상자료원)
민간에 퍼져 있는 괴담을 영화의 소재로 가져온 비교적 최근의 경우로는 허정의 <장산범>(2017)도 있을 것이다. 부산의 장산이라는 곳에서 흰 털을 온몸에 감싸고 사람의 목소리를 흉내 내는 호랑이가 있다는 괴괴한 소문이 이 영화의 시작이었다. 특히 익숙한 소리를 쫓아갔더니 전혀 다른 존재를 만나게 된다는 설정에서 오는 공포감과 소리가 만들어 낼 수 있는 두려움의 감각이 만나 공포물의 효과를 배가시킨다. 허종호의 <물괴>(2018)는 실제로 <조선왕조실록>에 남아 있는 기록, 즉 궁궐에 출몰한 ‘삽살개 같고 망아지 같은’ 정체불명의 존재인 물괴에 관한 이야기를 발굴해 사극과 괴수물의 조합을 시도한 영화다. 물론 한국의 전통 설화뿐 아니라 그리스 신화처럼 전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이야기에 크고 작게 영향을 받은 경우야 많다. 박찬욱의 <올드보이>(2003)는 미스터리 복수극의 형태를 갖추고 있으면서 오이디푸스 콤플렉스가 강력하게 작동한다는 해석을 가능하게 했고 장준환의 <화이: 괴물을 삼킨 아이>(2013)에도 오이디푸스 신화를 경유해 나쁜 아버지들을 죽이고 홀로 서는 소년을 그렸다는 평을 받은 바 있다.
이처럼 설화를 통한 스토리텔링이나 설화를 적극적으로 끌어안은 영화는 그 이야기가 통용되는 공동체의 오랜 전통과 감각을 반영하는 동시에 현재 그 공동체가 관심 갖고 있는 이야기의 방향성을 가늠하게 한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더욱이 설화가 갖고 있는 환상적 요소가 영화라는 이미지의 세계, 환영의 세계와 만나면 또 한 번 기존의 이야기는 자기 갱신을 하며 현대적 감각과 시의성을 덧입을 여지를 갖게 된다. 그렇기에 영화가 핍진성과 판타지성을 동시에 갖고 있는 설화의 세계로 눈을 돌리지 않을 이유가 없는 것이다.
정지혜 영화평론가. 현재 인디다큐페스티발 집행위원, 영화 웹진의 필진 등으로 활동한다.
2019년 인디다큐페스티발 국내 신작전, 전주국제영화제 한국단편경쟁 예심, 2018년 부산국제영화제 한국단편경쟁 예심 등을 진행했다.
공저로 『너와 극장에서』(2018), 『아가씨 아카입』(공저 및 책임 기획, 2017), 『독립영화 나의 스타』(2016)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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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보유한 '스토리텔링, 그 원형에 관한 단상' 저작물은 "공공누리" 출처표시-상업적이용금지-변경금지 조건에 따라 이용 할 수 있습니다. 단, 디자인 작품(이미지, 사진 등)의 경우 사용에 제한이 있을 수 있사오니 문의 후 이용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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