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에게나 하루하루의 삶이 있고, 그게 쌓여 역사가 된다. 역사란 국가 단위, 민족 단위의 집단적인 것이기도 하지만 그것은 개인의 삶이 추적된 결과이다. 그러므로 역사란 우리의 것이기도 하지만 결국 누구에게나 ‘나’의 것이기도 하다.
하지만 대개 우리는 스스로를 역사적 존재로 여기며 살아가지 않는다. 아니, 엄밀히 말하자면 역사라는 기록적인 사건 속에 ‘나’를 자리매김하며 살아가지 않는다. 하루하루 시간의 흐름 가운데서 개인은 그저 살아나갈 뿐이다. 1998년 IMF 사태를 견디며 살아 낸 사람이 많았지만 당시 스스로 역사의 한 줄기를 헤쳐나가고 있다고 여긴 사람은 드물 것이다. 다만 급격히 얼어붙은 경제 상황 속에서 하루하루를 버티고 견뎌냈을 뿐.
2017년의 장미대선도 마찬가지이다. 도저히 가만 보고 넘길 수 없었던 정치적 상황에서 많은 이들이 거리로 촛불을 들고 나섰고, 변화를 외쳤다. 그건, ‘역사’를 바꾸려는 움직임이 아니라 더 나은 현실을 위한 참여였다. 그렇게 한 명, 한 명이 살아가는 하루하루를 통해 역사는 만들어져 간다. 결과적으로 만들어지는 것이다. 역사는 돌아보면 이미 정돈된 한 줄의 기록이지만 한 가운데를 살아가는 개인에게는 현실이며 오늘이다. 역사란 수많은 우연한 선택의 결과물인 셈이다.
스스로 자처한 고난의 길, 항일 영화 <항거>
최근 한국 영화계에서 주목하고 있는 격동기, 암흑기를 돌아보면 더욱 숙연해지는 까닭도 여기서 멀지 않다. 3·1만세운동과 유관순의 이야기를 다룬 조민호 감독의 <항거>만 해도 그렇다. <항거>의 주인공은 잘 알려져 있다시피, 당시 아우내 장터에서 만세에 참여했던 유관순이다. 유관순은 자유에 대한 순수한 갈망과 우리나라, 우리 정부에 대한 간절한 마음으로 만세를 불렀다.
대가는 처참했다. 보온도 되지 않는 성긴 옷을 입은 그녀는 난방은커녕 모두가 누워서 잠을 청할 수도 없는, 그래서 밤새 서서 방안을 맴돌아야만 하는 그런 방에 감금된다. 혹독한 고문도 뒤따른다. 유관순은 마침내 고문의 후유증으로 서대문형무소에서 목숨을 거둔다. 겨우 열여덟 살이었다.
만세를 부른다는 것은 그처럼 처참한 수감 생활을 가져오는 일임을, 그리고 감방에서도 만세를 또 부른다는 것은 잔혹한 고문을 불러오는 일임을, 그녀, 유관순은 알고 있었다. 그녀는 알면서도 위험을 무릅썼다. 바로 이 점이다. 유관순은 자신의 항거가 어떤 고난을 불러올지 알고 있으면서도 멈추지 않았다. 아무것도 모르고 혈기 왕성한 영웅심에 한 일이 아니라 고초를 예상하면서도 결연히 행한 의지였던 셈이다.
▲ 영화 <항거: 유관순 이야기(2019)> ⓒ디씨지플러스, 조르바필름, 롯데컬처웍스(주)롯데엔터테인먼트
이처럼, 고난과 고통을 알면서도 행하는 일, 그게 과연 쉬운 일일까? 전혀 쉽지 않은 일이다. 100여 년 전 독립 투사들의 선택을 돌아보며 여전히 마음속 깊은 곳이 무겁고 뜨거워지는 까닭은, 그들의 독립 운동은 의지가 없다면 즉, 인간의 뜻이 아니라면 결코 해낼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대개의 평범한 사람들은 적극적으로 친일하지 않았다. 해도 적당히 일본을 모른 척 하며 부왜(附倭)1하며 지냈다. 하루하루를 살기엔 어쩌면 부왜가 더 편했을 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독립 투사들은 그 적당한 하루하루를 포기하고, 적극적 항일의 삶을 살았다. 쉽게 살 길을 두고 어렵지만 가야할 길을 간 사람들, 그게 바로 항일의 의지이다. 하루하루의 삶에 만족하고, 하루하루의 욕구에 순응하고 따르는 삶이라면 결코 마음조차 먹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런 독립 투사들이 만들어 낸 길, 그게 바로 우리 항일의 역사이다.
1왜국(일제)에 협력함, 또는 협력하는 사람
개인 개인이 바꾼 역사의 흐름, 영화 <1987>
이렇듯, 역사는 평범한 개인의 틈에서 또렷한 의지의 빛을 발하는 사람들의 족적을 따라간다. 그렇다고, 평범한 개인이 역사의 흐름에서 아예 배제된 것은 아니다. 역사의 흐름이 오래된 비유처럼 강물이라면 강물은 말 그대로 물의 흐름이다. 물에는 큰물 작은 물이 없다. 다만 물줄기가 있을 뿐. 역사를 바꾸는 그 변화에 묵묵히 하나의 몫을 보탠 이들은 바로 별다른 기록도 남기지 않은, 수많은 소시민과 개인이다.
영화 <1987>에 그려진 역사적 물줄기의 변화가 그렇다. 장준환 감독의 <1987>에는 정확한 의미에서의 주연이 존재하지 않는다.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이 있었고, 이를 덮으려던 구태의 세력들이 있었다. 하지만 이 사건은 그전의 다른 사건들처럼 묻히거나 왜곡되지 않았고 기사를 통해 세상에 알려졌으며 결국 수많은 사람의 공분을 일으켜 역사적 변화를 가져왔다.
영화 속에서 이 변화는 자기 본분을 지킨 검사, 진실을 외면하지 않은 부검의, 진실의 전파에 매달린 기자, 침묵하지 않았던 대학생들의 연쇄적 참여를 통해 현실이 된다. 누군가 하나 영웅적 인물이 나타나 이끈 게 아니라 세상이 더 이상 잘못되어서는 안 된다는 위기감에 공감한 시민 한 명, 한 명의 참여가 결국 역사의 흐름을 바꾼 것이다.
그래서 <1987>은 그 역사적 시기의 한 명 한 명 개인을 따라간다. 역사책의 기록에 남지 않았을, 한 명의, 익명의 여성 대학생의 시선을 쫓아 마지막까지 따라간 이유도 여기에 있다. 1987년은 그런 여대생 한 명, 한 명의 시선과 참여를 통해 만날 수 있었던 기념비적인 해였다. 그러므로, 그 역사는 누구 하나의 성과가 아니라 하루하루를 살아냈던 ‘우리’의 성과인 셈이다.
▲ 영화 <1987(2017)> ⓒ우정필름, CJ 엔터테인먼트
정사(正史) 밖 개인의 욕망을 다루다
역사는 이렇듯 모든 개인에게 영향을 미친다. 1987년에 태어나지 않았던 사람들조차 그 영향권 아래에 살고 있다. 하지만 때로 역사는 한 개인의 내밀한 욕망을 통해 조망될 수도 있다. 대단한 능력을 지니고 있기도 하지만 충분히 삶을 망가뜨릴 수도 있는 힘, 그게 바로 인간의 내면 아래 똬리를 틀고 있는 욕망이다. 역사를 바탕으로 한 영화들 중 많은 작품이 역사라는 기록보다 그 연대기를 거쳤던 욕망하는 인간을 들여다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인간은 언제나 그렇듯 자신의 내면 하나를 통제하지 못하는 불쌍한 욕망 기계이므로.
이준익 감독의 <왕의 남자>는 그런 점에서, 역사적 사건을 통해 인간의 불가해함2을 입체적으로 그려낸 작품이다. 연산군은 야사와 드라마, 영화 서사가 무척 사랑했던 소재이다. 유례없는 폭군이었으니 말이다. 대개 평면적인 폭군으로 그려왔던 기존의 이야기들과 달리 <왕의 남자>는 어떤 광대 하나를 “너”로 애칭 했다는 기록의 이면을 찾아 연산군을 입체적인 인물로 그려냈다. 예술은 알았지만 광기로 점철되었던 한 인간으로 <왕의 남자>는 한 줄의 기록 뒤에 숨어 있는 인간의 면모를 찾아낸 셈이다.
2이해할 수 없는, 이해하기 힘든 상태
▲ <왕의 남자(2005)> ⓒ시네마서비스
2019년 아카데미 영화상에서 여우 주연상을 받은 작품 <더 페이버릿: 여왕의 여자>도 그렇다. 영화는 잉글랜드의 마지막 왕이자 그레이트 브리튼 왕국의 첫 번째 왕이었던 ‘앤 여왕’과 앤 여왕 측근의 여자들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앤 여왕은 휘그당과 토리당 사이에서 훌륭하게 균형 정치를 이뤄낸 여왕이지만 영화는 이를 건조한 기록물로 다루지 않는다. 번영을 바탕으로 넘쳐나는 사치와 이를 밟고 더욱 뒤틀려가는 욕망의 세계를 보여줌으로써 결국 인간의 모순과 아이러니를 담아내는 데 집중한다.
결국, 우리는 모두가 다 조금씩 역사적인 인물이다. 한편 그 안에서 나름의 복잡하고도 깊은 내면에 시달리는 불가해한 우주적 존재이기도 하다. 복잡하고도 입체적인 내면을 가진 개인들의 족적, 덩어리 진 기록이 아닌 인간의 흔적이 바로 역사이다. 하루하루가 쌓여 역사가 되고 개인의 삶이 모여 집단의 기록이 된다. 우리는 모두 다 역사적인 존재인 셈이다.
영화평론가, 강남대학교 교수.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살았고 지금도 그렇다. 2005년 조선, 경향,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동시 당선되며 생애 최고의 주목을 받았다. 우연인 줄 알았던 영화평론가의 길이 필연이 된 삶에 감사하며, 취미가 일이 된 것도 다행스럽게 여긴다. 강남대학교에서 최선의 열정을 학생들과 나누며, 매년 한 권 이상 책을 엮겠다는 스스로와의 약속을 지키려 애쓰는 천생 글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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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모두 역사적 존재이다
개인이 만들어가는 역사
강유정
2019-04-29
누구에게나 하루하루의 삶이 있고, 그게 쌓여 역사가 된다. 역사란 국가 단위, 민족 단위의 집단적인 것이기도 하지만 그것은 개인의 삶이 추적된 결과이다. 그러므로 역사란 우리의 것이기도 하지만 결국 누구에게나 ‘나’의 것이기도 하다.
하지만 대개 우리는 스스로를 역사적 존재로 여기며 살아가지 않는다. 아니, 엄밀히 말하자면 역사라는 기록적인 사건 속에 ‘나’를 자리매김하며 살아가지 않는다. 하루하루 시간의 흐름 가운데서 개인은 그저 살아나갈 뿐이다. 1998년 IMF 사태를 견디며 살아 낸 사람이 많았지만 당시 스스로 역사의 한 줄기를 헤쳐나가고 있다고 여긴 사람은 드물 것이다. 다만 급격히 얼어붙은 경제 상황 속에서 하루하루를 버티고 견뎌냈을 뿐.
2017년의 장미대선도 마찬가지이다. 도저히 가만 보고 넘길 수 없었던 정치적 상황에서 많은 이들이 거리로 촛불을 들고 나섰고, 변화를 외쳤다. 그건, ‘역사’를 바꾸려는 움직임이 아니라 더 나은 현실을 위한 참여였다. 그렇게 한 명, 한 명이 살아가는 하루하루를 통해 역사는 만들어져 간다. 결과적으로 만들어지는 것이다. 역사는 돌아보면 이미 정돈된 한 줄의 기록이지만 한 가운데를 살아가는 개인에게는 현실이며 오늘이다. 역사란 수많은 우연한 선택의 결과물인 셈이다.
스스로 자처한 고난의 길, 항일 영화 <항거>
최근 한국 영화계에서 주목하고 있는 격동기, 암흑기를 돌아보면 더욱 숙연해지는 까닭도 여기서 멀지 않다. 3·1만세운동과 유관순의 이야기를 다룬 조민호 감독의 <항거>만 해도 그렇다. <항거>의 주인공은 잘 알려져 있다시피, 당시 아우내 장터에서 만세에 참여했던 유관순이다. 유관순은 자유에 대한 순수한 갈망과 우리나라, 우리 정부에 대한 간절한 마음으로 만세를 불렀다.
대가는 처참했다. 보온도 되지 않는 성긴 옷을 입은 그녀는 난방은커녕 모두가 누워서 잠을 청할 수도 없는, 그래서 밤새 서서 방안을 맴돌아야만 하는 그런 방에 감금된다. 혹독한 고문도 뒤따른다. 유관순은 마침내 고문의 후유증으로 서대문형무소에서 목숨을 거둔다. 겨우 열여덟 살이었다.
만세를 부른다는 것은 그처럼 처참한 수감 생활을 가져오는 일임을, 그리고 감방에서도 만세를 또 부른다는 것은 잔혹한 고문을 불러오는 일임을, 그녀, 유관순은 알고 있었다. 그녀는 알면서도 위험을 무릅썼다. 바로 이 점이다. 유관순은 자신의 항거가 어떤 고난을 불러올지 알고 있으면서도 멈추지 않았다. 아무것도 모르고 혈기 왕성한 영웅심에 한 일이 아니라 고초를 예상하면서도 결연히 행한 의지였던 셈이다.
▲ 영화 <항거: 유관순 이야기(2019)> ⓒ디씨지플러스, 조르바필름, 롯데컬처웍스(주)롯데엔터테인먼트
이처럼, 고난과 고통을 알면서도 행하는 일, 그게 과연 쉬운 일일까? 전혀 쉽지 않은 일이다. 100여 년 전 독립 투사들의 선택을 돌아보며 여전히 마음속 깊은 곳이 무겁고 뜨거워지는 까닭은, 그들의 독립 운동은 의지가 없다면 즉, 인간의 뜻이 아니라면 결코 해낼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대개의 평범한 사람들은 적극적으로 친일하지 않았다. 해도 적당히 일본을 모른 척 하며 부왜(附倭)1하며 지냈다. 하루하루를 살기엔 어쩌면 부왜가 더 편했을 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독립 투사들은 그 적당한 하루하루를 포기하고, 적극적 항일의 삶을 살았다. 쉽게 살 길을 두고 어렵지만 가야할 길을 간 사람들, 그게 바로 항일의 의지이다. 하루하루의 삶에 만족하고, 하루하루의 욕구에 순응하고 따르는 삶이라면 결코 마음조차 먹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런 독립 투사들이 만들어 낸 길, 그게 바로 우리 항일의 역사이다.
1 왜국(일제)에 협력함, 또는 협력하는 사람
개인 개인이 바꾼 역사의 흐름, 영화 <1987>
이렇듯, 역사는 평범한 개인의 틈에서 또렷한 의지의 빛을 발하는 사람들의 족적을 따라간다. 그렇다고, 평범한 개인이 역사의 흐름에서 아예 배제된 것은 아니다. 역사의 흐름이 오래된 비유처럼 강물이라면 강물은 말 그대로 물의 흐름이다. 물에는 큰물 작은 물이 없다. 다만 물줄기가 있을 뿐. 역사를 바꾸는 그 변화에 묵묵히 하나의 몫을 보탠 이들은 바로 별다른 기록도 남기지 않은, 수많은 소시민과 개인이다.
영화 <1987>에 그려진 역사적 물줄기의 변화가 그렇다. 장준환 감독의 <1987>에는 정확한 의미에서의 주연이 존재하지 않는다.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이 있었고, 이를 덮으려던 구태의 세력들이 있었다. 하지만 이 사건은 그전의 다른 사건들처럼 묻히거나 왜곡되지 않았고 기사를 통해 세상에 알려졌으며 결국 수많은 사람의 공분을 일으켜 역사적 변화를 가져왔다.
영화 속에서 이 변화는 자기 본분을 지킨 검사, 진실을 외면하지 않은 부검의, 진실의 전파에 매달린 기자, 침묵하지 않았던 대학생들의 연쇄적 참여를 통해 현실이 된다. 누군가 하나 영웅적 인물이 나타나 이끈 게 아니라 세상이 더 이상 잘못되어서는 안 된다는 위기감에 공감한 시민 한 명, 한 명의 참여가 결국 역사의 흐름을 바꾼 것이다.
그래서 <1987>은 그 역사적 시기의 한 명 한 명 개인을 따라간다. 역사책의 기록에 남지 않았을, 한 명의, 익명의 여성 대학생의 시선을 쫓아 마지막까지 따라간 이유도 여기에 있다. 1987년은 그런 여대생 한 명, 한 명의 시선과 참여를 통해 만날 수 있었던 기념비적인 해였다. 그러므로, 그 역사는 누구 하나의 성과가 아니라 하루하루를 살아냈던 ‘우리’의 성과인 셈이다.
▲ 영화 <1987(2017)> ⓒ우정필름, CJ 엔터테인먼트
정사(正史) 밖 개인의 욕망을 다루다
역사는 이렇듯 모든 개인에게 영향을 미친다. 1987년에 태어나지 않았던 사람들조차 그 영향권 아래에 살고 있다. 하지만 때로 역사는 한 개인의 내밀한 욕망을 통해 조망될 수도 있다. 대단한 능력을 지니고 있기도 하지만 충분히 삶을 망가뜨릴 수도 있는 힘, 그게 바로 인간의 내면 아래 똬리를 틀고 있는 욕망이다. 역사를 바탕으로 한 영화들 중 많은 작품이 역사라는 기록보다 그 연대기를 거쳤던 욕망하는 인간을 들여다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인간은 언제나 그렇듯 자신의 내면 하나를 통제하지 못하는 불쌍한 욕망 기계이므로.
이준익 감독의 <왕의 남자>는 그런 점에서, 역사적 사건을 통해 인간의 불가해함2을 입체적으로 그려낸 작품이다. 연산군은 야사와 드라마, 영화 서사가 무척 사랑했던 소재이다. 유례없는 폭군이었으니 말이다. 대개 평면적인 폭군으로 그려왔던 기존의 이야기들과 달리 <왕의 남자>는 어떤 광대 하나를 “너”로 애칭 했다는 기록의 이면을 찾아 연산군을 입체적인 인물로 그려냈다. 예술은 알았지만 광기로 점철되었던 한 인간으로 <왕의 남자>는 한 줄의 기록 뒤에 숨어 있는 인간의 면모를 찾아낸 셈이다.
2 이해할 수 없는, 이해하기 힘든 상태
▲ <왕의 남자(2005)> ⓒ시네마서비스
2019년 아카데미 영화상에서 여우 주연상을 받은 작품 <더 페이버릿: 여왕의 여자>도 그렇다. 영화는 잉글랜드의 마지막 왕이자 그레이트 브리튼 왕국의 첫 번째 왕이었던 ‘앤 여왕’과 앤 여왕 측근의 여자들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앤 여왕은 휘그당과 토리당 사이에서 훌륭하게 균형 정치를 이뤄낸 여왕이지만 영화는 이를 건조한 기록물로 다루지 않는다. 번영을 바탕으로 넘쳐나는 사치와 이를 밟고 더욱 뒤틀려가는 욕망의 세계를 보여줌으로써 결국 인간의 모순과 아이러니를 담아내는 데 집중한다.
결국, 우리는 모두가 다 조금씩 역사적인 인물이다. 한편 그 안에서 나름의 복잡하고도 깊은 내면에 시달리는 불가해한 우주적 존재이기도 하다. 복잡하고도 입체적인 내면을 가진 개인들의 족적, 덩어리 진 기록이 아닌 인간의 흔적이 바로 역사이다. 하루하루가 쌓여 역사가 되고 개인의 삶이 모여 집단의 기록이 된다. 우리는 모두 다 역사적인 존재인 셈이다.
영화평론가, 강남대학교 교수.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살았고 지금도 그렇다. 2005년 조선, 경향,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동시 당선되며 생애 최고의 주목을 받았다. 우연인 줄 알았던 영화평론가의 길이 필연이 된 삶에 감사하며, 취미가 일이 된 것도 다행스럽게 여긴다. 강남대학교에서 최선의 열정을 학생들과 나누며, 매년 한 권 이상 책을 엮겠다는 스스로와의 약속을 지키려 애쓰는 천생 글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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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보유한 '우리는 모두 역사적 존재이다' 저작물은 "공공누리" 출처표시-상업적이용금지-변경금지 조건에 따라 이용 할 수 있습니다. 단, 디자인 작품(이미지, 사진 등)의 경우 사용에 제한이 있을 수 있사오니 문의 후 이용 부탁드립니다.
기억은 우리를 존재하게 만든다
강유정
한국 영화가 포착한 디아스포라의 삶
정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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