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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음악가에게 변화는 생명

안정된 길이 아닌 새로운 길을 걷다

임진모

2018-03-20

 

내면에서 피어나는 변화에 대한 갈망

 

 

아직 물밑에서 권토중래를 꾀하는 무명과 달리 성공한 예술가에게는 하나의 고민이자 갈림길이 있다. 그들은 자신의 작품이 어떻게, 무엇 때문에 대중의 호응을 얻 게 되었으며 무슨 요소가 어필했는지 분명히 혹은 어렴풋하게라도 안다. 그 방식을 다시 한번 동원해도 괜찮고 유효하다는 것 또한 안다. 그렇지만 예술가에게는 항상 전에 하지 않은, 새로 운 쪽으로 도전하고 실천해야 한다는 강박감이 존재한다. 안전하게 성공방식을 따를 것이냐, 아 니면 실패를 각오하고라도 변화를 추구하느냐.


 역사를 수놓은 전설들, 위대한 음악가들은 후자의 범주에 속해있다. 그런 뮤지션들의 실험과 도전에 의해 음악의 스타일과 외연, 미학은 확장되고 다양하게 뻗어 나온 것이다. 혁명적 풍운아 서태지를 보자. 그는 용맹하게 우리말로 된 랩으로 데뷔해, 역사상 유례를 찾을 수 없는 거대한 평지풍파를 일으켰다. 1992년 ‘난 알아요’ 같은 음악은 변화를 주지 않고 한 차례 더 반복해도 뭐라 시비 걸 사람은 없었다.


하지만 그는 이듬해 다음 앨범에서 자신의 유전자인 메탈음악을 꺼내 랩을 섞었고, 거기에 태평소를 앞세운 사물놀이를 끌어들인 곡 ‘하여가’를 내놓았다. 일각에서는 득의양양한 국악 퓨전이라고 했다. ‘난 알아요’와는 달랐기에 나온 말이었다. 3집에서는 당시 유행이었던 얼터너티브 록을 강력한 X 세대의식으로 엮어냈다. 음악계는 ‘교실 이데아’에 또다시 깜짝 놀랐다. ‘컴백 홈’이 속한 4집에서도 이전과 다르게 가려는 시도는 계속되었다. 그의 키워드는 ‘변화’였다. 

 

 

 서태지와 아이들 1집 <난 알아요> 앨범

서태지와 아이들 1집 <난 알아요>

 

 

 

 

 

루스벨트 전 미국 대통령은 언젠가 변화란 미지의 세계를 의미한다고 했다. 낯설고 어색한 환경으로 들어가는 것은 쾌감을 자극하기도 하지만 고통을 수반하기도 한다. 바로 이 고통이 변화를 낳는 생명수 아닐까. ‘고통이 없으면 얻는 것도 없다!’라는 격언을 가장 격하게 실천하는 사람들이 음악가, 예술가다. 다시 돌아오긴 했지만 1996년 서태지와 아이들이 은퇴를 선언했을 때 서태지가 내건 이유가 ‘창작의 고통’이었다. 미지의 세계가 변화와 동격이라면 변화는 창작의 기반이다. 그리고 창작은 바로 고통을 먹고 자란다.


 

 1985년 전성기 시절에 조용필이 발표한 7집에는 ‘여행을 떠나요’ ‘그대여’ ‘어제 오늘 그리고’ 외에 아예 ‘미지의 세계’라고 제목을 붙인 곡이 있다. 록 기타가 불을 뿜고 키보드가 멜로디를 살리는 가운데 박자 조절로 대중적 흡수력을 높인 이 명곡은 그의 음악적 이상을 상징한다. ‘머물 곳을 찾아서/ 낯선 곳을 찾아가서/ 미래를 만드는 우리들의 푸른 꿈…’ 조용필은 결코 전에 했던 것을 재탕 삼탕하는 성공지상주의자일 수가 없다.

 

 

 변화는 물질적인 게 아니라 관점, 신념, 기대 등 우리 내면에서 출발한다. 조용필은 시대와 상황에 맞게 새로운 자세와 접근으로 앨범마다 변전(變轉)을 심었다. 그는 가요역사에서 앨범의 미학을 확립한 인물로 고평 된다. 다시 말해 앨범을 잘 만들려는 음악가의 사명을 조용필이 시범하고 뿌리내렸다는 것이다.

 

 

조용필 7집 앨범 

조용필 7집 앨범


 

 

 

더 넓은 세계로의 확장

 

 

 ‘힙합 아이돌’이라고 불리는 지코는 근래 들어 자신과 자신이 속해 있던 그룹 ‘블락비’에 붙어 있는 힙합이라는 딱지를 떼어내려고 한다. 그가 요구하는 수식은 너무 정체성이 확실한 힙합이 아니라 더 크고 무한한 우주, 바로 ‘음악’이다.


"남들이 봤을 때 블락비를 보고 힙합이라고 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블락비는 좋은 음악을 만들고 다양한 모습과 콘셉트를 보여주는 보이밴드일 뿐이죠. 그리고 저 역시 랩만 하는 게 아니라 음악을 합니다"

 

 능란한 래핑을 구사해서 지명도를 획득했지만 그는 얼마 전부터 랩 하는 것보다 부쩍 노래 부르기(Singing)에 집중하고 있다. ‘너는 나, 나는 너’와 ‘She's a baby’와 같은 곡들이 그러한 모습을 잘 보여준다. 후자의 경우는 “노래를 잘 부르기 위해 꽤 고생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지난해 사랑받은 곡 ‘아티스트’도 멜로디 훅이 돋보인다. 래퍼에서 가수로의 변화랄까. 이유는 말할 것도 없이 자아의 확장과 표현영역의 다양화를 위해서다. 랩으로 성공해서 의리 없이 랩을 배신했다는 일각의 손가락질이 있지만 그는 괘념치 않는다.

 

"자신을 한 프레임에 가두는 경우가 많습니다. 힙합은 그렇습니다. 저는 다양하게 움직이고 표현하고 싶어요. 그러기 위해서 절대 스스로의 한계를 정하고 싶지 않아요. 더군다나 그걸 음악 안에서의 태도로 가둬두기는 더욱 싫은 거죠. 이렇게 저 자신을 가두지 않는 것 자체가 제 애티튜드인 것 같아요."

 

 지코는 래퍼에서 싱어로, 다시 작곡자로, 또 프로듀서로 계속해서 변화와 확장을 거듭하고 있다.

 

 

지코 ‘너는 나 나는 너’ 수록 앨범

지코 ‘너는 나 나는 너’ 수록 앨범

 

 

 

변화에 대한 믿음

 

 

자신의 변화는 사회의 변화를 향한 거름 역할을 한다. 변화는 또 다른 변화를 마련한다고 하지 않는가. 현실에 안주하는 사람은 오히려 변화를 꺼린다. 위대한 흑인 소울가수 샘 쿡(Sam Cooke)은 1950~60년대에 잇단 차트정복과 성공으로 아프로 아메리칸 중에서는 당대 제1의 위치에 오른 인물이다. 그는 자신이 유명한 가수 샘 쿡이라는 점을 자랑스러워했다.


 

그러다가 어처구니없는 사건이 터졌다. 1963년, 그는 미국 남부 루이지애나주 공연 도중 숙소에 머물기 위해 ‘홀리데이 인’ 호텔에 예약했지만 막상 가보니 빈방이 없다며 돌아가라는 말을 들어야 했다. 실은 백인 전용 호텔로, 남부지역의 고질적이고 악명 높은 인종차별을 당한 것이었다. 격분한 그가 소리치자 아내는 “조용히 해요. 그들이 당신을 죽일 거예요”라며 그를 달랬다. “그들은 날 죽이지 못해. 나는 샘 쿡이니까!” 숙소를 찾아 다른 호텔로 이동했지만 연락을 받은 경찰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샘 쿡과 그의 곡 ‘A change is gonna come’ 수록 앨범 

샘 쿡과 그의 곡 ‘A change is gonna come’ 수록 앨범


 

 

샘 쿡은 소란을 일으켰다는 이유로 체포됐고 구류 처분을 받아 유치장 신세를 지게 되었다. 인종 불평등과 차별을 뜬 눈으로 목도하고, 그것도 최고 스타인 자신이 당하자 그는 흑인의 차가운 현실에 눈을 떴다. 그의 의식과 시선의 변화는 곧 미국 사회의 변화에 대한 기대와 열망으로 이어졌다. 그는 변화를 주제로 노래를 만들어야겠다고 다짐했다. 게다가 막 나온 밥 딜런의 반전과 인권에 대한 찬가 ‘바람만이 아는 대답’(Blowin' in the world)은 그를 자극했다. “나도 이런 곡을 만들 수 있어!”


그 산물이 바로 ‘변화가 찾아올 거야’(A change is gonna come)라는 곡이었다. 비록 발표할 때는 싱글의 B면에 위치했고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지만 결국은 자신 이력의 정점으로, 인종주의에 대한 환기와 아프로 아메리칸의 자각을 일깨우는 기념비적인 작품으로, 소울의 명작으로 역사 속에서 찬란히 빛을 발하고 있다. ‘영화를 보러 시내에 나갔지/ 누군가 나더러 계속 어슬렁거리지 말라고 하더군/ 형제에게 갔지/ 날 좀 도와줄 수 없느냐고/ 하지만 그는 나를 때리면서/ 무릎을 꿇리게 했어/ 나도 버티지 못할 거라고 생각한 때가 있었지/ 하지만 난 이제 해낼 수 있어/ 참으로 오랜 시간이 흘렀지/ 하지만 나는 변화가 찾아올 거라는 걸 알아, 그래 올 거야...’ 


샘 쿡이 갈망한 변화는 곡이 나온 지 55년이 흐른 지금도 아직 오지 않았다. 하지만 언젠가는 온다. 사람이 살고 있는 사회적 기반은 여러 변동에 의해 끊임없이 변화하고야 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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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임진모
임진모

대중음악 평론가 겸 방송인. 1986년 대중음악 평론가로 입문한 후 평론, 방송, 라디오, 강연 등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대한민국 최고의 음악 평론가이자 해설자다. 음악의 아름다움을 전달하기 위해 평론가가 되었고, 대중과 가까이 호흡하는 음악평론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저서로 『팝 리얼리즘 팝 아티스트』 『시대를 빛낸 정상의 앨범』 『팝, 경제를 노래하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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