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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과 시

이영광

2020-07-17

 


계와 제도는 늘 '어쩔 수 있는’ 인간을 기른다. 문학은 어느 때 '어쩔 수 없는’ 인간을 기른다. 계산 가능한 수련을 통해 자란 작가, 시인이 계산 불가능한 현실을 잘 다룰 수는 없기 때문이다. 문학은 왜 ‘어쩔 수 없는’ 현실에 끌릴까. 죽음을 앞두고 안티고네는 이렇게......



1. 

 시가 늘 무의식에서 나오지는 않아도 시의 말들이 흔히 '무의식적으로' 발화된다는 건 분명한 듯하다. 그 문장들은 화자 '나'를 지우면서 나타난다. 그러니 그때 자리를 비켜주는 '나'의 의식은 소심한 발표자나 권한 대행 비슷하다. 소월이나 김수영이 시를 쓰나 초등생이 동시를 쓰나 이 점은 마찬가지다. 의식을 잃거나 물리는 건 기실 매우 어려운 일이다. 그것은 막힌 곳에서 오래 견뎌 낯선 말을 맞으려는 시인의 노력과 맞물려 있다.


 정치시도 다르지 않다. 시가 벌써 정치를 품고 있다 해야겠지만 정치적 사안이나 문제를 소화해 시다운 시로 성립시키는 것 또한 쉽지 않은 일이다. 나는 시 창작 수업에서 흔히, 시의 언어가 구호가 되기 전에 억누르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육사의 「청포도」가 정치시가 아니라고 누가 주장할 것인가. 또, 어느 네덜란드 소년에게 문득 나타나서는, 도시의 안전을 지켜주는 대가로 목숨을 가져간 댐의 작은 구멍 같은, 균열의 순간을 잘 포착하라고도 말한다. 정치는 곧 법치이므로 법의 오작동이 일어나는 순간에 예민하게 반응해야 한다는 뜻이다. 이 또한 막힌 곳에서 답답히 견디는 일을 필요로 한다.



2.

 법과 정의의 여신 디케(Dike)는 눈을 감고 있다. 흔히 접하는 '무전유죄'류 판결들을 보면 여신은 법 앞에 선 인간들의 불평등한 관계를 못 보는 듯하다. 하지만 원래 디케가 눈을 감고 있는 건 반대의 불평등 관계, 즉 '유전무죄'의 현실을 안 보기 위해서라 한다. 그이의 '안 봄'에는 정의롭고 공정한 '봄'이 들어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물론 법의 존재 이유와 정의의 원칙에 대한 말이지만 법의 여신은 이상이고 현행법은 구멍 난 현실일 때가 많다.


 우리는 디케의 감은 눈이 어두운 맹목이 되는 걸 자주 봐왔다. 그 눈이 밖으로도 안으로도 떠지지 않는 사태랄까. 그것은 대개 법을 부인하는 외부의 힘이 디케의 감은 눈을 다시 가리는 때다. 권력투쟁이나 특수한 정변의 시간에만이 아니라 나날의 삶에도 오작동은 흔하다. 이를테면 굳센 "합법"이 가녀린 "불법의 머리채를 휘어잡는"(황규관 시, 「불법 점거의 변」) 사건은 거리에 차고 넘친다. 이때 우리는 사회의 어두운 힘이 위법·불법을 저질렀다거나 사법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되지 않는다고도 하지만, 불현듯 법은 대체 어디에 있는가 하고 묻게도 된다. 그것은 악한 정치와 법이 만들어낸 균열의 장에서 또 다른 균열의 순간을 찾는 일이 된다.



2009 용산참사 헌정문집

▲ 2009년 1월 20일에 일어난 용산 참사 헌정 문집(이미지출처 : 실천문학사)



 예컨대 이런 장면이다. ‘용산 참사’의 공판을 참관한 작가 윤이형은 「정의가 우리와 함께하기를」이란 글에서, 법에 대한 상투적 인식 너머의 풍경을 이렇게 ‘낯설게’ 적은 적이 있다.



 그날 나는 줄곧 추상적으로만 받아들이던 어떤 현실을 10미터 거리에서 보았다. 최소한의 인권조차 무시당한 채, 최소한의 보호조차 받지 못한 채, 권력이 한쪽의 증거만 취사선택해 제시하는 부당한 법정에 한 인간이 피고인으로 서 있어도 아무렇지 않은 나라가 있다. 나는 그 나라의 국민이었다. 이제 법이라는 것의 숭고함에 대한 환상도, 가슴속에 남아 있던 정의에 대한 일말의 믿음도, 한낱 추억이 되었다.



 법의 오작동으로 인한 공권력의 과잉 행사와 무고한 인간의 죽음은 물론, 국민의 인간적 존엄과 가치를 지키기 위한 기본권이 수시로 파괴되는 현상도, 사실 자체로는 시라 할 수 없다. 생존을 위해 망루에 올랐다 내려온 그들에게는 변호인이 없었다. 위에 그려진 황량한 법정의 현실에 더해 "그렇다면 돌아앉게 해주십시오. 나는 변호인이 없습니다……. 나는 보호받지 못하고 있습니다"라는 피고인의 목소리는, 국가권력과 법의 파열을 의미한다는 점에서 어떤 시적인 순간을 현시한다. 이 참혹한 장면은, 지속적인 위법적 절차들의 고통 가운데서 작가의 첨예한 시선에 의해 발견되고 변형된 시적 발화이고 이미지다.



안티고네 Antigone 소포클레스 작 / 강태경 역 홍문각

▲ 고대 그리스의 비극시인 소포클레스가 쓴 「안티고네」(이미지출처 : 홍문각)



 문학이 상상한 ‘다른 법정’의 대표적 사례를 소포클레스의 안티고네에서 찾을 수 있다. 국법을 어기고 죽은 오빠의 시신을 매장한 안티고네는 이를 꾸짖는 국왕 크레온에 대항해 ‘신의 법’을 내세운다. 신의 법은 인륜, 즉 도덕이다. 죽은 자는 그가 누구든 저승의 신 하데스의 품으로 보내야 한다. 그것을 막는 인간의 법 앞에서 안티고네의 선택은 분명하고 태도는 결연하다. 산 사람보다 죽은 이에게 더 착실히 도리를 다해야 한다는 것. 갖가지 삶의 길을 다 놔두고 오직 한 길 죽음을 향하는 안티고네의 선택은 그 자체로 시적 전율을 선사한다.


 시인들은 드물지 않게 현행법의 무능 한가운데에, 즉 법 없는 인간의 법정에 신의 법을 소환하려 애써 왔다. 진은영의 시 「오래된 이야기」는 판이한 두 개의 살인사건을 견주어 보여준다. 살인은 용서할 수 없는 범죄지만 먼 옛날의 어떤 사적 살인에는 이해할 만한 "원한"과 "사연"이 있었던 반면, 오늘의 공적 살인은 권력과 자본의 횡포로 저질러지고, 옛날의 살인자는 세상 끝까지 달아나야 했지만, 오늘날의 살인자는 공권력을 틀어쥐고 오히려 떵떵거린다는 것이다. 시의 후반부는 이렇다.



그건 오래된 이야기

옛날에 살인자는 용감한 병정들로 살인의 장소를 지키게 하지 않았다.

그건 오래된 이야기

옛날에 살인자는 아홉 개의 산, 들, 강을 지나

달아났다

흰 밥알처럼 흩어지며 달아났다

 

그건 정말 오래된 이야기

달빛 아래 가슴처럼 부풀어 오르며 이어지는 환한 언덕 위로

   나라도,

      법도, 무너진 집들도 씌어진 적 없었던 옛적에



 오늘날의 ‘살인자=권력’이 적반하장을 일삼는 곳에 법치는 없다. 시인은 이 살인사건을 신의 법정에 회부하기 위해 인류의 유년기라 할 상상의 시공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했다. 달아나는 살인자와 용인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금기의 위반이 초래한 공동체의 위기와 그 수습에 대한 참조 사례다. 물론 여기 깃든 인식과 감정은 도덕의 기초이다. 이 시의 마지막 연은 취한 발걸음처럼 몹시 더듬거린다. 국가도 법도 철거민도 없는 무명의 세계에 대한 상상이 이렇게 절실하다. 시인은 소리 없는 통곡의 벽 앞에 모두를 불러 세우는 걸로 말을 그치고, 시는 시인도 모르는 새 비틀거림과 더듬거림 속에서 불현듯 얼굴을 내비친다.


 이 밖에도 ‘용산 참사’와 ‘천안함 사건’과 ‘세월호 참사’와 같은 집단적 죽음을 두고 많은 시들이 씌었다. 안티고네는 왜 산 자보다 죽은 자에게 더 도리를 다해야 한다 말하고 시인들은 왜 죽은 혼의 부름에서 벗어나지 않으려 하는 걸까. ‘신의 법’이 지닌 현실 구속성 때문일 것이다. 안티고네는 죽음으로써 인간의 도리를 다하고 죽음 너머에서 혈육과 더불어 영원히 살려고 한다. 시인들은 삶의 이편에서 망자들과 더불어 기억으로 오래 살려고 한다. 두 경우 모두에 죽음을 외면하고선 온전히 살 수 없다는 윤리의 명령이 배어 있다. 그 내용적 핵심은 아마 '인간은 결코 죽지 않는다'가 될 것이다.



균열을 뚫고 기어코 땅 위에 모습을 드러낸 싹

▲ 균열을 뚫고 기어코 땅 위에 모습을 드러낸 싹(이미지출처 : pixabay)



 이 윤리적 정념이, 상상력이 지휘하는 시의 세계를 만들어낸다. 정치와 법의 균열 속에서 솟아나는 시의 목소리는 의외의 색조를 띠고 의외의 지점에서 불현듯 들려오는 것 같다. ‘용산 참사’ 현장에서 다급히 울리던 경찰지휘관의, "지금 이게 기름이기 때문에 물로는 소화가 안 됩니다. 소방이 지원을 해야 합니다" 같은 말. 또는 저 '세월호'의 현장에서 전해진 "가만히 있으세요"처럼, 너무나 평범한 한국어지만 너무나 부조리한 어떤 말. 이 말들은 사태를 사태 자체로 인화하여 사회 곳곳에 타전한다.


 시는 도처에 존재하지만 예리하게 숨어 있다. 정치시는 법이 무너지거나 일어서는 자리를 가리지 않고, 시인의 상상력과 직관이 경주되는 곳이라면 어디서나, 아프고 힘차게 얼굴을 드러낸다. 참사나 재난이 열어젖힌 어두운 구멍 속에서도 시는 저에게 괴롭고 불가피한 말들을 서글픈 전율로 찾아낸다. 가령 "구명조끼를 입고 있다는데 그렇게 발견하기가 힘듭니까" 같은 말. 이 말은 그 사태의 순간과 가장 멀리서 발화된 것이라는 점에서, 역설적으로 사태의 발생, 수습, 해결의 과정을 가로지르는 ‘어두운 시’다.



화제가 됐던 이정미 재판관 헤어롤 사진(연합뉴스 2017년 3월 10일)

▲ 화제가 됐던 이정미 전 헌법재판관의 헤어 롤(이미지출처 : 연합뉴스)



 이정미 재판관의 '헤어 롤'은 이와 반대의 자리에서 출현한 시적 이미지였다. 대통령 탄핵 심판일 아침에 그는 헤어 롤을 문득 잊었다. 그래서 그 '사자 머리'의 뒷부분에 그것은 돋아났던 것이다. 거기엔 아마 "역사의 법정에 당사자로 선" 사람의 긴장과 두려움, 소명의식과 불안이 스며 있었을 것이다. 그의 정신이 가야 할 곳으로 정신없이 가고 있는 동안 무언가 더 깊은 것이, 헤어 롤의 모습으로 나타난 것이다. 시는 이 진실의 이미지와 분리되지 않는다.



3. 

 지난 십여 년간 국가적 재난, 통치 시스템의 마비, 법의 실종 등은 유행어가 되었다. 이것이 초래한 건 고통과 분노와 슬픔의 증가였지만, 이들 또한 시간이 지나면서 대중의 뇌리에서 점차 희석돼 간다. 시는 희석과 망각이라는 더 두려운 사태에 저항하려는 말과 크게 다르지 않다. 김수영은 "기성 육법전서를 기준으로 하고/ 혁명을 바라는 자는 바보"이며 "혁명의 육법전서는 '혁명'밖에는 없"(「육법전서와 혁명」)다고 적었다. 현실과 상상의 막힌 자리에서 오래 견디며 한 마디의 시, 한 조각의 이미지를 발명하려는 시의 모험은, 김수영식 혁명의 근본주의와 궤를 같이한다.



장미 

(이미지출처 : pixabay)

 



 체계와 제도는 늘 '어쩔 수 있는’ 인간을 기른다. 문학은 어느 때 '어쩔 수 없는’ 인간을 기른다. 계산 가능한 수련을 통해 자란 작가, 시인이 계산 불가능한 현실을 잘 다룰 수는 없기 때문이다. 문학은 왜 ‘어쩔 수 없는’ 현실에 끌릴까. 죽음을 목전에 두고 안티고네는 이렇게 말한다. "증오는 제 천성에 맞지 않아요. 사랑만이 제 천성에 맞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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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광
이영광

시인. 1998년 「문예중앙」으로 등단. 시집으로 「그늘과 사귀다」 「아픈 천국」 「나무는 간다」 「끝없는 사람」 「깨끗하게 더러워지지 않는다」 등이 있다. 연구서로 「미당 시의 무속적 연구」 「시름과 경이」를 내었다. 고려대 미디어문예창작과에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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