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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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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드넓은 우주를 향한 끊임없는 도전

거의 모든 것의 역사 - ③우주탐사Ⅰ

by 김일훈 / 2019.10.30


우주탐사의 시작


본격적인 우주 탐사의 역사는 1903년 소련 과학자 콘스탄틴 치올코프스키(Константин Циолковский)가 “반작용 모터를 이용한 우주 공간 탐험(Исследование мировых пространств реактивными приборами)” 이라는 논문을 출간하면서 시작되었다. 이후 미국의 로버트 고다드((Robert Goddard)가 1926년 3월 16일에 최초로 액체 연료 로켓의 발사 실험에 성공했다. 사람의 팔 정도의 크기를 가진 ‘네루’ 로켓은 약 2.5초 동안 비행하여 12.5m의 고도에 도달하였다. 이는 액체 연료 추진의 가능성을 증명한 중요한 실험이었고, 1959년에 설립된 미국 항공우주국(NASA)의 고다드 우주 비행 센터(Goddard Space Flight Censter)는 그를 기념하여 명명되었다. 


제작한 ‘네루’ 로켓과 함께 서 있는 로버트 고다드. ( Credits: NASA )

▲ 제작한 ‘네루’ 로켓과 함께 서 있는 로버트 고다드 ⓒNASA 


나치 독일의 과학자 베르너 폰 브라운(Wernher von Braun)은 고다드의 이론을 응용하여 1934년에 2000m 고도에 도달할 수 있는 A-2 로켓을 개발하였고, 1942년에는 대형 로켓인 A-4 로켓 시험 발사에 성공하였다. 1944년에는 V-2 로켓을 완성하였고, 이를 런던 폭격에 사용하였다(흔히 최종 목적지가 우주인 경우는 로켓, 최종 목적지가 지구인 경우는 미사일로 구분한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날 무렵, 미국과 소련 모두 V-2 로켓 기술과 폰 브라운을 얻기 위해 노력했다. 독일에 먼저 진입한 소련군은 폰 브라운의 로켓 연구소인 ‘페네뮌데’를 점령하고 제조 중이던 V-2 로켓과 부품 등을 입수했다. 이후 세르게이 코롤료프(Сергей Королёв) 등이 독일에서 입수한 부품 등을 이용하여 V-2를 카피하고 업그레이드 하여 세계 최초로 인공위성 궤도에 도달한 로켓인 R-7 개발에 성공했다. 이것으로 소련은 미국과의 우주 탐사 경쟁에서 한발 앞서 나갈 수 있었다. 


페네뮌네 로켓 연구소의 V2 로켓

▲ 페네뮌네 로켓 연구소의 V2 로켓


한편 폰 브라운과 동료 연구자들은 미군을 찾아가 항복했다. 폰 브라운은 이후 미국으로 건너가 로켓 관련 연구를 계속하여 V-2를 개선한 레드스톤 로켓을 그리고 화성 탐사까지 고려한 F-1 로켓을 개발하게 된다. 레드스톤 로켓은 대륙 간 탄도 미사일, 미국 최초의 인공위성 익스플로러 1호, 미국 최초의 유인 우주선 머큐리 계획 등에 사용되었으며, F-1 로켓은 5개를 묶어서 아폴로 계획에 사용된 새턴5에 사용되었다. 


새턴5 로켓 앞에 서 있는 폰 브라운 ( Credits: NASA )

▲ 새턴5 로켓 앞에 서 있는 폰 브라운 ⓒNASA 


1957년 소련은 R-7 로켓을 이용하여 인류 최초의 인공위성인 스푸트니크 1호(Спутник-1)를 발사하여 우주탐사 경쟁의 방아쇠를 당겼다. 또한 스푸트니크의 발사 성공은 소련의 핵탄두를 장착한 미사일이 미국을 공격 할 수도 있다는 이른바 “스푸트니크 쇼크”를 촉발시켰다. 이에 미국은 1958년에 여러 기관에 흩어져 있던 우주 관련 연구 조직을 통합하여 미국항공우주국 (NASA)을 설립한다. 이후 폰 브라운을 중심으로 제작된 익스플로러 1호 발사에 성공하며 미소 간 우주탐사 경쟁이 본격화되었다. 미국의 익스플로러 1호 발사 성공의 기쁨이 채 가시기 전에 소련은 스푸트니크 2호에 '라이카(Lika)'라는 개를 실어 쏘아 올렸다. 라이카는 비록 살아서 돌아오지는 못했지만, 라이카를 통해 생명체가 우주로 나갈 수 있고 무중력 상태를 견딜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하며 또 한발 앞서가게 되었다. 이후 1961년 4월 12일 소련은 최초의 유인 우주선 보스토크 1호(Восток-1) 발사에 성공하게 된다. 보스토크 1호에는 인류 최초의 우주 비행사가 된 유리 가가린(Ю́рий Гага́рин)이 탑승했고, 1시간 46분 동안 우주여행을 한 후 지구로 무사히 귀환하였다. 유리 가가린은 우주에서 “지구는 푸른색이다”라는 말을 남긴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세계 최초 우주 비행사인 유리 가가린

▲ 세계 최초 우주 비행사인 유리 가가린 

(출처 : http://www.armaghplanet.com/blog/yuri-gagarin-first-man-in-space.html )


한편 미국은 1958년부터 유인 우주선 계획인 머큐리 계획을 계속 추진했고, 그 결과로 1961년 1월 31일에 침팬지를 태운 머큐리-레드스톤 2호의 발사에 성공했다. 1961년 5월 5일 미국 해군 중령인 앨런 셰퍼드(Alan Shepard)가 머큐리-레드스톤 3호 로켓에 탑재된 프리덤7 우주선을 타고 탄도 비행에 성공하며 미국 최초의 우주 비행사가 되었다. 유인 우주 비행에 성공한 후 미국 대통령인 존 F. 케네디는 1961년 5월 25일 국회에서 그 유명한 “1960년대 안에 인간을 달에 보내겠다”는 연설을 통해 달 여행 계획 즉 아폴로 계획을 준비하고 있다는 것을 공식적으로 언급했다. 이후 1965년 제미니 6호, 7호 랑데부, 1966년 제미니 8호와 무인 인공위성 아지에너 도킹을 성공시키며 소련과의 격차를 줄이는 데 성공한다. 이를 바탕으로 인류 최초 달 착륙을 위한 아폴로 계획을 시작하게 되었다. 


 한편 미국은 1958년부터 유인 우주선 계획인 머큐리 계획을 계속 추진했고, 그 결과로 1961년 1월 31일에 침팬지를 태운 머큐리-레드스톤 2호의 발사에 성공했다. 1961년 5월 5일 미국 해군 중령인 앨런 셰퍼드(Alan Shepard)가 머큐리-레드스톤 3호 로켓에 탑재된 프리덤7 우주선을 타고 탄도 비행에 성공하며 미국 최초의 우주 비행사가 되었다. 유인 우주 비행에 성공한 후 미국 대통령인 존 F. 케네디는 1961년 5월 25일 국회에서 그 유명한 “1960년대 안에 인간을 달에 보내겠다”는 연설을 통해 달 여행 계획 즉 아폴로 계획을 준비하고 있다는 것을 공식적으로 언급했다. 이후 1965년 제미니 6호, 7호 랑데부, 1966년 제미니 8호와 무인 인공위성 아지에너 도킹을 성공시키며 소련과의 격차를 줄이는 데 성공한다. 이를 바탕으로 인류 최초 달 착륙을 위한 아폴로 계획을 시작하게 되었다.    발사 전의 앨런 세퍼드 ( Credits: NASA )

▲ 발사 전의 앨런 세퍼드 ⓒNASA


지구 궤도에서의 미국과 소련의 우주 개발 경쟁은 이제 달로 향하게 되었다. 누가 먼저 달에 사람을 보내 표면을 걷게 하느냐에 미국과 소련의 모든 관심이 집중되었다. 사람이 달 표면에 닿으려면 먼저 무인 탐사선을 달 궤도에 보내서 사진 촬영 등으로 안전한 착륙지를 선정해야 했다. 무인 달 탐사는 ‘파이어니어 계획’으로 미국이 먼저 시작했지만 발사 과정에서의 폭발 등 실패가 이어졌다. 소련은 ‘루나 계획’으로 무인 달 탐사에 도전했다. 루나 1호는 최초로 달 궤도에 도달했고, 루나 2호는 최초로 달에 충돌했으며, 루나 3호는 최초로 달 뒷면 촬영에 성공했다. 그리고 1966년에 루나 9호를 최초로 달에 착륙시키는 데 성공한다.



달 탐사



소련에게 우주개발과 관련한 모든 ‘인류 최초’ 타이틀을 빼앗긴 미국은 인간을 최초로 달에 보내는 아폴로 계획에 박차를 가하여 마침내 인류 최초로 달에 사람을 착륙시키는 데 성공한다. 미국은 아폴로 계획에 앞서 달 표면을 근접 촬영하는 ‘레인저 계획’, 달 지도를 제작하는 ‘루나 오비터 계획’, 그리고 달에 연착륙하여 달 표면의 경도 및 조성을 탐사하는 ‘서베이어 계획’을 진행했다. 세 계획 모두 유인 우주선이 안전하게 달 궤도에 도달 및 착륙할 수 있는 기술을 수집하기 위한 것이었다. 


달 탐사 소련에게 우주개발과 관련한 모든 ‘인류 최초’ 타이틀을 빼앗긴 미국은 인간을 최초로 달에 보내는 아폴로 계획에 박차를 가하여 마침내 인류 최초로 달에 사람을 착륙시키는 데 성공한다. 미국은 아폴로 계획에 앞서 달 표면을 근접 촬영하는 ‘레인저 계획’, 달 지도를 제작하는 ‘루나 오비터 계획’, 그리고 달에 연착륙하여 달 표면의 경도 및 조성을 탐사하는 ‘서베이어 계획’을 진행했다. 세 계획 모두 유인 우주선이 안전하게 달 궤도에 도달 및 착륙할 수 있는 기술을 수집하기 위한 것이었다.   닐 암스트롱이 촬영한 올드린의 모습 @NASA

▲ 닐 암스트롱이 촬영한 올드린의 모습 ⓒNASA


그렇게 모든 준비 과정을 끝낸 후, UTC(협정 세계시) 기준으로 1969년 7월 20일 20:17:40에 아폴로 11호의 착륙선 이글호가 ‘고요의 바다’에 착륙한다. 선장 닐 암스트롱과 조종사 버즈 올드린은 성조기를 세우고 달의 진동을 측정하는 월진계와 지구-달 사이의 거리를 측정할 수 있는 레이저 반사판을 설치했다. 또한 사고로 세 명의 우주비행사가 사망했던 아폴로 1호의 휘장과 인류 최초의 우주비행사인 유리 가가린의 유품, 그리고 평화의 상징인 월계관 등이 담긴 상자를 달에 남겨 두었다.


인류 최초로 달에 첫발을 내딛게 된 닐 암스트롱은 다음과 같은 유명한 말을 남겼다.

"That's one small step for (a) man, one giant leap for mankind."

(이것은 한 명의 인간에게는 작은 발걸음이지만, 인류에게는 커다란 도약이다.)  


달에 남겨져 있는 닐 암스트롱의 발자국@NASA

▲ 달에 남겨져 있는 닐 암스트롱의 발자국ⓒNASA


이후 아폴로 12호, 14호, 15호, 16호, 17호까지 총 6차례에 걸쳐 12명의 우주비행사가 달에 착륙했고, 382kg의 달 표본을 지구로 운반했다. 한편 사람을 달에 보내는 경쟁에서 미국에 패한 소련은 계속해서 무인 달 탐사선인 루나를 달에 보냈고 루나 16호와 루나 20호 그리고 루나 24호는 달 표본을 가지고 지구로 귀환했다. 소련이 루나 계획으로 지구로 가지고 온 표본은 총 326g(킬로그램이 아니다)이다. 


루나 16호의 모형

▲ 루나 16호의 모형 ⓒRussianspaceweb


아폴로 계획이 끝나갈 무렵인 1972년, 미국의 닉슨 대통령은 재사용이 가능하고 저렴한 우주왕복선 개발 계획을 발표했다. 이로써 아폴로 계획에 사용했던 새턴V 로켓의 생산은 중단된다. 이미 생산된 새턴V 로켓은 소련과의 공동 프로젝트인 아폴로-소유즈 계획과 미국의 우주정거장인 스카이랩에 사용되었다. 아폴로-소유즈 계획은 1972년에 미국과 소련의 합의로 시작되었고, 1975년 7월 17일에 시행되었다. 치열하게 경쟁하던 미국과 소련이 하나의 프로젝트를 위해 각종 난관을 극복하며 힘을 모았던 아폴로-소유즈 계획은 우주 개발 협력의 시작을 알린 사건이다.


아폴로 계획 이후 소련은 샬루트와 미르 우주정거장을 건설하면서 거주 가능한 거대 우주과학실험실을 마련한다. 미르(Мир)는 러시아어로 ‘평화’를 의미하며, 1986년에 발사하여 2001년에 지구 대기로 재진입 하면서 임무를 마쳤다. 


미르는 운용기간 동안 지구를 9만바퀴 이상 순회했다. 러시아 우주인 42명, 미국 우주인이 7명 외에도 각국 우주인 55명이 방문하여 2만여회의 각종 실험을 진행했다. 미국 우주왕복선의 도킹 모듈도 건설되는 등 우주개발의 국제 협력 시대를 열었고, 이후 국제 우주정거장 건설의 기초가 되었다. 


  미르 우주정거장. 도킹을 위해 접근하는 우주왕복선에서 촬영한 사진

▲ 미르 우주정거장. 도킹을 위해 접근하는 우주왕복선에서 촬영한 사진 ⓒNASA



행성 탐사



미국은 달 탐사와 더불어 행성 탐사 계획도 진행했다. 미국의 행성 탐사 계획은 매리너(Mariner program)로 시작되었다. 매리너1호와 2호는 수성과 금성 궤도를, 매리너 3호와 4호는 화성의 궤도 근접 통과(swing by)를 목표로 발사되었다. 1호와 3호는 발사에 실패했지만, 2호는 최초로 지구가 아닌 금성과 수성의 중력을 이용하여 궤도 변경을 하는 스윙 바이에 성공했고, 4호는 화성의 스윙 바이에 성공하였다. 매리너 5호는 금성의 대기가 대부분 이산화탄소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을 확인했고, 매리너 9호는 최초로 화성 궤도를 돌며 표면 사진 촬영에 성공했다. 매리너 계획은 수성의 표면온도를 확인한 10호를 끝으로 보이저 계획으로 연계 되었다.


보이저 계획(Voyager program)은 미국의 외행성 탐사 및 연구를 위해 2개의 탐사선을 쏘아 올린 프로젝트로 목성, 토성, 천왕성, 해왕성을 탐사했다. 1977년 9월 5일에 발사된 보이저1호는 1979년 5월에 목성을, 1980년 11월에 토성을 거쳐 2019년 5월 3일 기준, 지구에서 144.8849 AU(천문단위, 지구-태양간의 평균 거리가 1AU) 떨어진 곳을 항해 중이다. 1977년 8월 20일에 발사된 보이저2호는 1979년 6월에 목성에 도착했고, 1981년 8월에 토성, 1986년 1월에 천왕성, 그리고 1989년 8월에는 해왕성을 거쳐 태양계 끝을 향하고 있다. 보이저 2호는 2019년 5월 3일 기준, 지구에서 120.2827 AU 거리에 있다.


보이저1호와 2호의 궤도 @

▲ 보이저1호와 2호의 궤도 ⓒNASA 


보이저 금제 음반

▲ 보이저 금제 음반 ⓒNASA


보이저 호에는 금제 음반 (Voyager Golden Record)이 실려 있다. 이 금제 음반은 <코스모스>의 저자인 칼 세이건의 제안으로 만들어졌으며, 지구의 다양한 사진과 과학 수준을 알려 주는 그림, 55개국 언어로 녹음된 인사말과 음악 등이 포함되어 있다.


1976년에 이르러 두 대의 바이킹 호가 처음으로 화성 표면에 착륙했다. 바이킹 호는 많은 컬러 사진을 지구로 전송했고, 1997년 마스 패스파인더가 화성에 착륙하면서 로버(탐사차)인 소저너가 착륙 지점 주변의 환경과 표면을 분석했다. 2004년에는 쌍둥이 로버인 오퍼튜니티와 스피릿이 화성에 물이 존재하는지를 탐사했다. 이 쌍둥이 로버의 계획 수명은 90 화성일이었으나, 스피릿은 착륙 후 5년간 활동을 이어갔고, 오퍼튜니티는 15년 이상 활동을 계속하다가 2019년 2월 13일 임무 완료가 선언되었다. 2012년 8월 6일에 화성에 착륙한 큐리오시티는 화성의 기후와 지질을 조사하고, 화성에 생명체가 존재하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활동을 계속하고 있다. 2018년 11월 26에는 인사이트가 엘리시움 평원(Elysium Planitia)에 착륙하여 화성 내부 구조 탐사를 시작했고, 최초로 화성의 지진을 포착했다.


NASA의 화성 탐사 로버. 왼쪽부터 오퍼튜니티/스피릿, 소저너 그리고 큐리오시티

▲ NASA의 화성 탐사 로버. 왼쪽부터 오퍼튜니티/스피릿, 소저너 그리고 큐리오시티 ⓒNASA


미국이 화성과 달에 집중하는 동안 소련은 금성 탐사에 집중했다. 1961년 2월에 최초의 금성 탐사선인 베네라 1호 발사를 시작으로 1965년 11월에 발사된 베네라 3호는 금성 표면에 낙하하여 최초로 지구 이외의 행성에 도달한 인공 물체라는 기록을 세우게 되었다. 1967년 6월에 발사된 베네라 4호는 금성 대기의 90%가 이산화탄소이며 대기 온도는 최대 500도씨이고 대기압은 약 90기압이라는 것을 확인했다. 1970년 12월 15일에는 베네라 7호가 낙하산을 이용하여 금성 표면에 안착하여 표면 온도와 표면에서의 대기압 등의 자료를 지구로 전송했다. 이후에도 소련은 베네라 시리즈를 계속 금성에 보냈고, 대기의 성분을 분석하고 환경 정보를 종합하여 금성에는 생물이 살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1983년 6월에는 베네라 시리즈의 마지막 탐사선인 15호와 16호가 금성을 선회하며 금성의 전체 지도를 제작하였다. 


베네라 16호의 모형

▲ 베네라 16호의 모형 ⓒRussianspaceweb


미국은 1989년 5월 4일에 우주왕복선 애틀랜티스를 이용하여 마젤란 탐사선을 금성으로 발사했다. 마젤란 탐사선은 레이더를 이용하여 금성의 두꺼운 구름 때문에 볼 수 없었던 금성 표면의 정밀 지도를 완성했고, 금성의 중력장 데이터를 측정했다. 


우주왕복선 애틀랜티스에서 발사되는 마젤란

▲ 우주왕복선 애틀랜티스에서 발사되는 마젤란 탐사선 ⓒNASA



소행성 탐사



1991년 미국 항공우주국 NASA는 소행성 가스프라에 탐사선을 보냈다. 갈릴레오라 명명된 이 탐사선은 최초의 소행성 탐사선으로 가스프라의 표면 등을 측정했다. 그 이후 NASA를 비롯하여 유럽우주기구(ESA), 일본항공우주기구(JAXA) 등은 계속해서 소행성 탐사를 진행하고 있다. 이렇게 소행성 탐사를 위해 노력하는 이유는 태양계의 기원을 찾고, 생명의 흔적을 찾기 위해서이다.


2003년 5월 일본은 지구 접근 천체인 소행성 이토카와를 탐사할 목적으로 제20호 과학위성을 발사하였다. ‘매’라는 뜻의 하야부사라는 이름으로 유명한 이 탐사선은 이토카와에 착륙하여 샘플을 채취, 지구 근처로 복귀해 샘플을 지구로 투하한 후 다시 다른 소행성을 찾아 탐사를 떠날 계획이었다. 하지만 2003년 11월 4일에 발생한 X28+ 급 태양 플레어(백반의 무리 또는 태양의 흑점군 부근에서 채층의 일부분이 급작스럽게 강한 섬광을 내는 현상. 플레어에서 방출된 복사 에너지와 입자는 지구자기장 또는 이온층과 상호작용하여 전파통신을 방해하거나 오로라를 일으키기도 한다)에 의해 태양전지판에 큰 손상을 입었고 이로 인해 발전량이 감소하고 이온 엔진의 출력이 저하되었다. 또한 전체 4개의 엔진 중 하나가 고장나서 이토카와까지 엔진 세 개로 운행을 해야했고, 세개의 자세제어장치 중 두개가 망가져 비행을 위한 자세를 잡는 것도 어려운 상태였다. 탐사선에 큰 손상을 입었고 여러차례 통신 두절도 겪었지만 연료 분사 등을 통해 자세를 잡아 가며 2년간 태양을 두 바퀴 돌아 2005년 6월에 소행성 이토카와에 도착하였다. 


이토카와에 도착한 하야부사는 11월 20일 첫 시도에서 소행성 샘플 채집에 실패한다. 하야부사는 두 번째 시도에서 소형 착륙선인 미네르바를 이토카와로 보냈으나, 오작동하여 미네르바를 잃어버리게 되었다. 시료 채취를 위한 최후의 방법으로 하야부사가 이토카와에 착륙하고 이때 발생한 표면의 샘플을 수집한 것으로 가정하고 이토카와에서 이륙하여 지구로 귀환을 시작했다. 그러나 태양 플레어에 의해 이미 기체 손상을 입은 데다, 착륙 과정에서 추가로 이온 엔진 등의 손상이 발생했고, 설상가상으로 자세제어용 화학 엔진에서 연료가 새는 사고까지 발생했다. 이로 인해 하야부사는 자세 제어에 실패했고, 중심을 잃고 빙글빙글 돌면서 궤도를 이탈해 통신마저 두절되었다. 


모두가 우주의 미아가 되었다고 생각했지만 JAXA는 포기 하지 않고 계속 전파를 발사해 통신을 시도했고, 약 50일만에 교신에 성공해서 하야부사의 궤도를 바로 잡을 수 있었다. 천신만고 끝에 하야부사는 결국 지구로 귀환했다. 2010년 6월 13일, 당초 예정보다 3년이나 늦은 시점이었다. 항행 거리도 두배 이상 늘어났지만 하야부사는 소행성 이토카와의 토양 샘플을 담은 캡슐을 분리해 호주 우메라 사막으로 보내고 본체는 대기권에 진입하며 불타버렸다. 일본과 세계 여려 나라의 연구진들은 하야부사가 지구로 가지고 온 이토카와의 샘플을 분석하여 45억년 전 태양계 탄생 당시의 생성 과정을 이해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하야부사는 출력이 낮지만 수명이 긴 이온 엔진으로 우주를 장시간 탐사 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증명했다. 사상 최초로 소행성의 시료를 지구로 운반하는 데도 성공했다. 또한 7년 동안 60억km를 비행하였고, 우주 미아 상태에 빠졌던 탐사선을 기적적으로 귀환시켜 우주탐사에는 실패에 굴하지 않는 인내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소행성 이토카와로 접근하고 있는 하야부사 탐사선의 상상도

▲ 소행성 이토카와로 접근하고 있는 하야부사 탐사선의 상상도 ⓒJAXA


탐사선 하야부사의 마지막 임무였던 지구 사진. 심하게 훼손되어 있다.

▲ 탐사선 하야부사의 마지막 임무였던 지구 사진. 

얼마나 만신창이가 된 상태로 귀환했는지를 알 수 있다. ⓒJAXA


NASA 에서 2007년에 발사한 무인 소행성 탐사선 던(Dawn)은 NASA 탐사선 중 최초로 이온 엔진을 사용하여 궤도에 진입하는 임무를 수행했다. 탐사 목표는 소행성대에 있는 가장 큰 천체이며 차갑게 얼어붙은 습한 왜소행성인 세레스와 소행성대에 있는 두번째로 큰 천체이며 건조한 암석 덩어리 소행성인 베스타였다. 2007년에 발사 된 던은 2009년에 화성 근처를 통과하며 화성의 중력을 이용하여 소행성 베스타의 궤도에 진입했다. 2011년 7월에 베스타에 도착한 던은 여러차례 궤도를 변경해 가며 베스타 탐사를 수행하였다. 2012년 9월 베스타 탐사를 마친 던은 왜소행성 세레스를 향해 비행했고, 약 4년뒤인 2015년 3월에 세레스 궤도에 진입했다. 2018년 10월까지 탐사를 수행한 던의 모든 연료를 소진되면서 더이상 지구와 교신을 할 수 없게 되었다. 


던은 지구와 교신은 끊어 졌지만, NASA는 세레스에 생명체가 존재할 수도 있고, 또 현재 형성하고 있는 세레스와의 궤도가 안정적인 상태이기 때문에 세레스에 추락시키지 않고 계속해서 세레스 궤도를 돌게 할 것이라고 밝혔다. 


Dawn 의 궤도

▲ Dawn 의 궤도 ⓒNASA 


  Dawn 이 촬영한 소행성 베스타

▲ Dawn 이 촬영한 소행성 베스타 ⓒNASA 

 

던이 촬영한 왜소행성 세레스

▲ 던이 촬영한 왜소행성 세레스 ⓒNASA


던에 이어 NASA는 소행성 베누(Bennu)에 오시리스-렉스(OSRIS-Rex)를 보내 탐사를 진행하고 있으며 소행성 샘플을 채취해 지구로 귀환을 시킬 예정이다. 또한 2021년에는 루시(Lucy : 인류의 시초인 호스트랄로피테쿠스 아파렌시스 명칭을 딴)를 발사하여 6개의 트로이 소행성군의 소행성과 1개의 소행성대 소행성을 동시에 탐사할 계획도 추진중이다. 


NASA 에서 발사 예정인 Lucy 의 예상 궤도

▲ NASA 에서 발사 예정인 Lucy 의 예상 궤도 ⓒNA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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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훈
김일훈
경희대학교 우주과학과 이학박사. 다파장 편광관측을 통한 달 표토 특성 연구, 달 탐사 및 관측 기기 개발, 경희대학교 천문대 운영, 중앙대학교 우주의 이해 강의, 현 에스엘랩 부설연구소 연구소장 ⓒ김일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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