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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하나의 테마, 360도 관점

아파트 콘크리트 벽, 명암
역사

빈민구제책에서 주거의 아이콘으로

거의 모든 것의 역사 - ② 아파트

2019.09.30

 

건설중인 초고층 아파트

 

 

아파트 스카이라인을 올려다보며 누군가는 울고, 누군가는 웃습니다. 이 많은 아파트 중에 왜 내가 머물 집은 없을까, 서글픈 의문도 듭니다. 사람이 집을 고르는지 집이 사람을 고르는지 모를 지경입니다. 2011년을 기점으로 전국의 주택보급률은 사상 처음으로 100%를 넘었습니다. 2017년 기준 우리나라 주택보급률은 103.3%를 기록했습니다.(출처 : e-나라지표) 적어도 지표상으로는 집이 부족하지는 않다는 뜻입니다. 


우리나라 주택 중 아파트가 차지하는 비율은 60.1% (출처: ‘한국의 사회동향 2017’, 통계청). 주택 10채 중 여섯 채가 아파트입니다. 사람들이 살고 싶은 집도 아파트가 압도적입니다. 그런데 날이 갈수록 치솟는 아파트 가격이 얄궂습니다. 사람들은 애가 탑니다. 소득을 한 푼도 쓰지 않고 9년을 모아야 서울에서 평균값 하는 아파트를 장만할 수 있으니까요. 그래서일까요? 수많은 젊은 이들은 내 집 장만의 꿈을 일찌감치 포기하고, 일상의 ‘작지만 확실한 행복’만을 꿈꿉니다. 



산업화와 함께 하는 아파트 개발의 역사 



산업화 시대,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 시골에서 서울로 오는 사람들이 폭발적으로 늘어났습니다. 집은 턱없이 부족했습니다. 허가 없이 대충 지은 판자촌이 늘어만 갔습니다. 더 많은 사람들이 살 수 있는 획기적인 주거대책이 필요했습니다. 값싼 시민아파트가 대안으로 떠올랐습니다. 1966년, 서울시는 시장 김현욱을 중심으로 공격적으로 아파트 건설을 추진했습니다. 무허가 판자촌을 허물고 10만 호 아파트를 짓는다는 원대한 계획을 세웠습니다. 더 빨리, 더 많이 짓는 일이 최우선 목표였습니다. 


이 위태로운 계획은 1970년 4월 8일 새벽, 마침내 사달을 내고 맙니다. 당시 ‘와우아파트’라는 이름의 5층짜리 아파트 한 동이 완전히 무너진 것입니다. 수많은 입주민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사건은 건축비를 빼돌린 담당자와 안전불감증에 걸린 건설사가 만든 총체적 인재였습니다. 시장이 물러나고, 시민아파트 사업은 중단되었습니다. 이후 정부는 민간 건설회사에 아파트 건축을 부추겼습니다. 대단지 아파트가 생겨났고, 건물은 하늘 높은 줄 몰랐습니다. 


외국인들이 한국을 방문하면 높게 솟은 아파트의 높이를 보고 놀라고, 아파트 수에 한 번 더 놀랍니다. 1970년대부터 시작된 아파트 건설 붐은 우리나라 대도시 풍경을 바꾸어 놓았습니다. 서울에서 아파트가 없는 풍경은 찾아보기 힘듭니다. 아파트 공화국이라는 별명까지 얻게 된 우리나라의 아파트는 어떤 역사를 품고 있을까요?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아파트는 서대문구 충정로에 있는 충정아파트입니다. 1930년대 일제강점기에 지어진 충정아파트는 8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여러 번 이름이 바뀌면서 아직까지 그 자리를 꿋꿋하게 지키고 있습니다. 

한국인이 지은 최초의 한국식 아파트는 1958년, 성북구 종암동에 세운 종암아파트입니다. 4층짜리 건물 4동에 152가구인 종암아파트는 국내 최초로 수세식 변기를 집안에 들여놓은 것으로 유명합니다. 당시엔 획기적인 주거시설이었죠. 당시에는 생소한 단어였던 ‘아파트먼트 하우스(apartment house)’라는 말을 이때부터 사용했습니다. 그리고 1962년, 단지형 아파트의 효시인 마포아파트가 탄생하면서 아파트 시대가 본격적으로 시작됩니다.


마포아파트는 정부 주도로 주택건설을 추진하는 대한주택공사(현 LH 한국토지주택공사)가 건설했습니다. 통칭 ‘주공’으로 불린 이 기관은 도시화에 따른 주택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대규모 아파트 단지의 건설과 신도시, 신시가지 건설에 앞장섰습니다. 주공을 따라 많은 건설회사가 아파트 건설에 뛰어들었습니다. 지방보다는 인구 밀도가 높은 서울에서 먼저 아파트 단지가 건설되기 시작합니다. 


강남 개발 이후 서울은 인구 분산을 위해 대규모 아파트 단지로 구성된 신시가지를 여러 곳에 건설하기 시작했습니다. 1980년대에 만들어진 목동과 상계동의 아파트 단지뿐만 아니라 1990년대 조성된 일산, 분당, 산본 등의 서울 근교 지역은 대부분 아파트촌으로 기획되었습니다. 


우리나라 경제개발계획과 함께 진행된 아파트 개발 역사에는 개발 시대의 명암이 뚜렷하게 교차합니다.

 


대한민국 아파트의 역사    - ‘아파트’의 출현  1930년 미쿠니아파트 일제강점기 시절, 일본인들이 모여 살던 본정통(지금의 충정로)에 경상 미쿠니 상사의 관사로 세워진 3층짜리 공동주택. 주택이 3층인 것, 그리고 여러 세대가 함께 거주하는 ‘공동주택’의 개념은 당시로선 무척 생소하고 이례적이었다.   1932년 충정아파트 지하1층에서 지상 5층 높이의, 대한민국 최초의 아파트. 1930년대 조선의 주택난을 해결하기 위해 세웠다. 미쿠니아파트가 관사로 지어졌다면 충정아파트는 임대 방식에 시설도 처음으로 아파트에 걸맞게 건설되었다.    1956년 한미재단주택 휴전 후 재건을 위해 한미재단이 종로구 행촌동에 지은 공동주택. 2층 연립주택 11동 52가구, 단독주택 11가구와 함께 지은 3층짜리 아파트 3동 48가구의 규모였다.   1957년 종암아파트  해방 이후 최초로, 우리 손으로 지은 아파트. 중앙산업에서 3개 동을 건축했는데 처음으로 수세식 화장실을 도입하였다. ‘아파트먼트 하우스’라는 명칭으로 불린 것도 처음이며, 이후 ‘아파트’라는 말이 정착됐다.    1961년 마포아파트 대한주택공사가 직접 주도해 건설한 6층 10개동 642세대의 대단위 아파트 단지다. 1, 2차로 준공되어, 2차는 최초로 계단식으로 이루어져 복도식의 사생활 침해를 최소화하고 옥외공간을 집 안으로 흡수하는 구조를 제공했다. 대한민국 단지형 아파트의 효시로 상징된다.   - 중앙정원형 아파트  1965년 동대문아파트 국내 최초 중앙정원 방식의 7층짤 고급 아파트. 초기에 연예인이 많이 살아 ‘연예인아파트’라는 별명도 있었다. 서울에 현존하는 아파트 중 두 번째로 오래됐다.   1965년 정동아파트 동대문아파트에 이어 대한주택공사가 정동에 지은 중정형 고급 아파트. 서울미래유산으로 지정되었다.   - 주상복합 아파트  1967년 세운상가 김수근 건축가가 설계한 대한민국 최초의 주상복합아파트. 건립 당시 재력가나 정부 고위 인사 등이 거주하였으며 1970~80년대 이곳의 상가는 전자산업의 메카로 불렸다.   1968년 낙원상가  1968년에 완공된 낙원상가는 아파트와 상가가 있는 주상복합 건물 아래 도로가 이어지는 특이한 구조로 지어졌다. 현재 세계 최대 악기 전문 상가로 기네스북에 등재되었고, 미래유산으로 선정, 문화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 시민아파트와 시범아파트  1970년 와우아파트 1969년 빈민주택, 불법점거 주택단지 등을 정리하기 위해 서울시에서 대대적인 와우시민아파트 건립을 추진했다. 하지만 6개월이라는 짧은 건설 기간의 부실 공사로 16개 동 중 1개 동이 완전히 무너졌고, 30명의 사망자와 44명의 부상자를 냈다. 이후 여러 차례 사고로 결국 철거되었다.   1970년 회현 제2시민아파트 1970년 완공된 국내 마지막 시민아파트. 철거민을 위한 아파트였으나 지리적 위치가 좋아 정부 요원이나 연예인이 거주해, 동대문아파트와 함께 ‘연예인아파트’라는 별명이 붙었다.    1971년 여의도 시범아파트 보통 시범아파트는 시민아파트의 개량형인 것에 반해, 여의도 확장 공사 후 개발 및 주택 보급을 위해 정부 주도로 단지형 고층 시범아파트로 지어졌다. 이후 여의도에는 국회의사당, 방송국, 63빌딩 등이 들어섰다.    - 강남 개발과 주공아파트   1973년 반포 주공아파트 대한주택공사가 건설한 국내 최초 대단지 주공아파트. 3786가구로 지은 대단지로 강남과 더불어 대한민국을



디자인 - ⓒ김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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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일
글을 다듬고 책을 만든다. 요즘은 텍스트에서 이미지로 관심이 확장되어, 종종 사진과 영상을 다룬다. 인문 매거진 <유레카> 미디어콘텐츠팀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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