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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하나의 테마, 360도 관점

집의 전통적 의미가 변화하고 있다
사회

내일의 집

라이프스타일의 변화가 이끄는 새로운 집

by 전은경 / 2019.09.02


획일적인 아파트 모습



나는 아파트를 좋아한다. 굳이 이웃과 친하게 지내야 한다는 생각을 하지도 않으니 프라이버시 지키기도 좋고, 집에 있는 시간이 많지 않으니 관리에 이것저것 신경 쓸 일이 적어 편리하다. 택시가 잘 잡히고, 아파트 단지 내 공원이나 편의 시설의 유무보다는 집 주변에서 가깝게 갈 수 있는 식당이나 극장 같은 곳이 많은 곳을 더 선호한다. 심지어 이사도 귀찮지 않아 아직까지는 몇 년마다 주거 환경의 ‘리셋’을 감행하는 게 싫지 않고 재미있다. 그래서 좀 더 다양한 형태의 집과 새로운 동네에서 살아보고 싶어서 언제든 쉽게 이사 갈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이렇게 사람들의 취향과 욕망이 다른 것처럼 집에 대한 욕망과 필요도 많이 다를 것이 분명하며, 보통 사람들에겐 가장 비싼 일생의 쇼핑일 텐데 이상하게도 획일화된 주거 환경에 크게 불만을 갖지 않는 아이템이 주택이다. 우리는 오랫동안 주택을 부동산 투기의 대상으로 바라보았고 터무니없는 주택 가격에 놀라 좋은 집, 내가 살고 싶은 집이 무엇인지 생각조차 못 하고 살아왔기 때문이다. 부동산 개발 시대에는 제한된 땅에 얼마나 효율적으로 주거 공간을 만드느냐가 곧 돈이 되었다.


하라 겐야는 <내일의 디자인>에서 살림집을 꾸리는 지혜는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는다면서 이런 얘기를 했다. “집에 대한 사람들의 욕망은 부동산 회사 전단지에 쏠려 있었다. 그런 전단지는 흔히 신문 따위에 끼워져 있어서 자연스레 수많은 사람들의 눈길을 끈다. 우리는 거기에 인쇄된 기호에서 주거 공간의 구성과 의미를 배우고, 아울러 터무니없는 가격을 뇌리에 새겨왔다. 인플레 파도에 떠밀려 그리 넓지도 않은 면적에 천만 엔 단위의 가격이 붙게 된다. 학창 시절 그 가격을 보고 암담한 기분에 빠졌던 기억이 난다.” 부동산으로서의 주택에 대해 아마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와 비슷한 감정과 스트레스를 갖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지난 십 몇 년간 1인 가구를 중심으로 가구와 주거 형태가 빠르게 재편되어왔고, 집을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 역시 급격하게 달라지고 있다. 그럼에도 여전한 부동산 불패의 신화 속에서 도시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라이프스타일과 의식 변화를 주택 시장이 따라잡지 못하고 있는 게 현실인 듯하다. 정말로 집에 대한 새로운 생각과 아이디어가 필요한 때가 온 것이다. 


1인가구가 늘어나고 있다.


다행히 이제는 잘 팔고 사서 차익을 많이 남기거나 부동산 가치로 평가하던 시대가 거의 끝나가면서 주택에 대한 생각도 많이 바뀌고 있다. 무엇보다 가족의 형태가 달라졌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1980년에는 5인 가구가 절반 이상을 차지했으나, 2012년에는 7.2%로 축소되었고 대신 1인 가구의 비율이 무려 25.3%로 늘어났다. 2035년경에는 1인 가구가 34.3%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혼자 산다는 것에 대하여>를 쓴 노명우 교수는 “가족 관계란 말은 함께 거주한다는 의미와 사실상 동일했고, 가족이 아닌 사람들과 함께 사는 주거는 예외적 혹은 일시적 현상에 불과한 것으로 인식됐다. 


하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가족의 해체 경향은 역사상 한 번도 경험하지 못했던 새로운 관계의 틀을 만들어낸다”라며 “공유 주거는 불확실성이 지배하는 현대사회에서 불확실성과의 협력을 통해 대안적 확실성을 만들어내려는 일종의 실험”이라고 강조했다. 1인 가구가 늘면서 공유 주거처럼 따로 또 같이 사는 삶에 대한 다양한 주거 실험도 이어지고 있는 중이다. 또한 평생 은행 대출을 갚으며 하우스 푸어로 사느니 집을 안 사고(못 사고) 대신 좋은 차를 타거나 여행을 다니면서 자신에게 투자하겠다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도 많을 것이다. 


이렇게 가구 구성과 생각의 변화가 일어나다 보니 더는 미룰 수 없는, 부동산으로서의 주택이 아니라 주거에 대한 근원적인 고민과 실험이 바닥부터 시작되고 있다. 한국의 거의 모든 주택이 오로지 내부 면적에만 주의를 기울일 뿐 집 본연의 모습과 기능을 고민하지 않았다는 반성에서 비롯된 일이다. 


이제 어떤 곳에서 어떻게 살 것인가를 고민하는 동시대 사람들을 위한 솔루션은 크게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는데 첫째, 아파트가 주거 형태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도시에서 대안이 될 만한 협소 주택의 등장이다. 초소형 주거를 말하는 협소 주택은 단순히 작은 공간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핵심은 면적이 아니라 작아도 있을 건 다 있고, 작아도 충분하다는 느낌을 줄 수 있도록 내부 공간을 어떻게 구성하느냐에 있다. 오히려 맞춤형 주거의 가능성이 높은 영역이다. 단독주택, 다세대 건물, 원룸 등이 밀집한 주거 형태에 관심을 기울이고 건축가와 디자이너가 나서서 변화를 이끌어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둘째, 2013년 19개에 불과했던 것이 5년 만에 489개로 20배 이상 빠른 속도로 확산되고 있는 공유 주거의 부상이다. 사지 않고 빌리고, 공유하는 일에 익숙한 밀레니얼 세대를 중심으로 공유 주거는 사적인 공간을 유지하면서도 집의 일부를 공유해 주거비를 아끼는 형태에서 더 나아가 코리빙co-living으로 개념이 확장되고 있는 중이다. 특히 최근에 선보이는 코리빙은 1인 가구의 라이프스타일과 불편을 고려한 각종 서비스를 포함하고 있다. 이는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서 주택이라는 하드웨어보다는 커뮤니티 형성과 다양한 서비스 프로그램 등 콘텐츠에 더욱 신경 쓴 것으로, 단순히 주거비를 아끼기 위해 공간을 공유한다는 개념을 넘어 오히려 충분한 휴식과 총체적인 서비스를 받고 싶은 사람들을 위한 선택지가 될 만하다. 


공유 공간, 주택의 개념이 늘어나고 있다


셋째, 적은 비용으로 언제 어디서나 집을 만들고 옮길 수 있는 스마트 모듈 플랫폼의 등장이다. 주택이나 오피스 등을 레고처럼 쌓아 올려 만들기에 공사비와 유지비 등이 줄어드는 모듈러 건축은 최근 IoT 등과 접목하면서 성장하는 중이다. 아파트 광고가 불러일으키는 욕망이 아니라 사람들의 다양한 욕망과 취향에 따라 고를 수 있는 집은 앞으로 더욱 많아져야만 한다. 


몇 년 전에 만난, 홍콩에서 근무하는 어떤 글로벌 기업 CEO는 일주일에 4일은 회사에서 5분 거리에 있는 호텔에서 지내고, 3일은 가족이 있는 서울에서 보낸다고 했다. 호텔을 집 삼는 것은 내가 한번 해보고 싶은 건데, 그래도 일주일에 한 번씩 반복적으로 집을 차렸다 접었다 하는 게 피곤하진 않을까 싶었다. “차라리 홍콩에 집을 구하시는 게 낫지 않나요?” “물론 생각을 안 한 것은 아닌데, 그랬다가는 정말 홍콩이 집이 되고 서울이 잠시 머무는 곳이 될 것 같더라고요.” 혼자 머무는 호텔과 가족이 있는 집이 국경을 가로지르며 공존했을 때 생길 수 있는 심리적인 애로사항이 느껴졌다. 

 

비싼 임대료에 열악하고 좁은 집에 사는 뉴요커가 더 넓고 쾌적한 집에 사는 뉴저지 거주자보다 라이프스타일의 만족도가 더 높다고 대답했다는 자료를 봤다. 그것은 아마도 센트럴 파크 같은 녹지나 뮤지엄, 카페 등 집밖을 나가서 누릴 수 있는 다양한 공공 시설과 문화적 수준 때문일 것이다. 그런 걸 보면 또 좋은 집이란 반드시 물리적 공간의 품질 그 자체만으로 결정되는 것은 아닌 듯하다. 물리적 공간으로서의 집은 늘 한계가 있게 마련이므로 결국 그 틈을 메우는 것은 따로 또 같이, 함께 사는 사람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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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은경
월간 <디자인> 편집장. 16년째 디자인 전문 기자로 일하며 수많은 국내외 디자이너와 경영인, 마케터 등을 인터뷰하고 다양한 디자인 영역과 이벤트, 트렌드에 관한 기사를 쓰고 기획해왔다. 겉과 속이 적절하게 어우러진 것을 좋은 디자인,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상하이 K11아트파운데이션에서 열린 ‘Ticket to Seoul’전과 2013광주디자인비엔날레 ‘농사와 디자인전’ 큐레이터로, 일민미술관 ‘그래픽 디자인, 2005-2015, 서울’ 전 작가로 참여했다. 서울디자인페스티벌과 아우디 디자인 챌린지의 기획 및 진행, iF 어워드, 다이슨 어워드 심사위원 등을 지냈으며 몇 권의 책을 냈다. 일과 삶을 새롭게 디자인하고 싶은 사람들을 위한 콘텐츠 <워크 디자인>을 론칭하기도 했다. 인스타그램@jeon.eunky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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