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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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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콘텐츠로서 과거, 레트로
사회

새로운 콘텐츠로서 과거, 레트로

시간을 거슬러 오리지널리티를 찾아가는 여정

by 전은경 / 2019.07.01


낡은의자 위에 놓인 빈티지 TV



트렌드로서 레트로, 새로운 과거



지금 대중문화 전반에서 가장 인기 있는 콘텐츠는 레트로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이 과거, 레트로는 좀 특별하다. 과거지만 우리가 아는 그 과거가 아닌 것. 사실 복고, 레트로는 트렌드를 말할 때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키워드다. 


지난 몇 년간 레트로가 지향했던 핵심 시기는 1990년대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1990년대에 청소년기를 보낸 세대가 대중문화를 가장 왕성하게 소비하는 3040이었고, 이들이 이 시기를 문화 코드와 트렌드의 중심에 올려둔 까닭도 있다. 물론 자신이 겪은 특정 시점을 복기하게 만드는 향수 산업은 늘 성황을 이루는 법이지만, 지금까지 그것은 재탕 혹은 박제된 과거에 가까웠다. 그러나 지금 대세를 이루는 레트로 현상은 과거의 향수나 노스탤지어가 아니라 겪어보지 못한 새로운 경험이라는 점에서 잊을 만하면 나타나는 복고의 귀환과는 좀 다르다. 그리고 이러한 특별한 과거는 '뉴트로', '영 레트로' 같은 단어로 재정의되고 있다. 


지금의 레트로는 세대마다 다르게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점도 주목해야 하는데, 누군가에게는 레트로지만 누군가에게는 그저 새로운 콘텐츠이자 경험일 뿐이다. 흥미롭게도 이러한 레트로의 융성에는 SNS나 유튜브의 등장이 한몫 했다. 즉, 언제든 누구나 손쉽게 과거를 찾아볼 수 있게 되면서, 도처에 과거가 넘쳐나게 된 것이다. 우리는 지금까지 미래를 위해 과거를 지우면서 전진해 왔지만, 이제는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시대를 살게 된 것이다. 그리고 지금 모두의 관심이 쏠려 있는 것은, 새로운 소비자인 밀레니얼 세대가 즐기는 레트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밀레니얼 세대, 복고에 매혹되다 



한편 밀레니얼 세대나 디지털 네이티브에게 레트로란, 아날로그를 향한 일종의 ‘유기농적 경험’이라는 분석도 있다. 흔히 아날로그와 디지털을 대척점에 놓고 생각하기 쉽지만, 지금의 양상은 조금 다르다. 외형은 레트로의 감성이지만 기능은 편리한 최첨단이라는 식의 접근이 아니라 오히려 디지털이 아날로그의 작동 방식을 그대로 구현한 경우도 있다. 업그레이드된 레트로라고 할 수 있을까? 필름 카메라의 불편함마저 그대로 옮겨 성공을 거둔 구닥 앱이 좋은 예. 작은 뷰 파인더로 24컷을 다 찍고 3일 뒤에 사진을 볼 수 있으며 사진 품질 역시 좋지 않지만, 이 의도된 불편함에 밀레니얼들이 반응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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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트렌드의 최전선에 서 있는 패션의 후진 역시 스포츠, 캐주얼, 럭셔리 영역 전방위에서 나타나고 있는데, 이러한 레트로의 부상을 정확히 이해하고 밀레니얼 세대에게 어마어마한 성공을 거두고 있는 럭셔리 브랜드가 바로 구찌다. 대부분의 럭셔리 브랜드들이 늙어가는 가운데 구찌는 35세 이하의 소비자가 매출의 65%를 차지하는 성과로 보답 받는 중이다. 


지난 몇 년간 꾸준히 상승하고 있는 LP의 인기를 견인하는 것도 밀레니얼 세대다. 2018년, 소니가 29년 만에 LP를 재생산할 예정이라고 발표했는데, LP에 이어 카세트테이프가 다음 주자로 인기를 끌 준비를 하고 있는 상황이다. 카세트가 없는데 어찌 음악을 들을 지는 걱정 안 해도 된다. 디지털 음원을 다운로드할 수 있는 코드가 들어있으니까. 



노스텔지어와 독자성의 경계, 그 어딘가 



어떤 미래학자는 음악산업이 가장 전위적이기 때문에 음악을 보면 미래 트렌드를 예상할 수 있다고 했는데, <레트로 마니아>를 쓴 영국의 대중음악 평론가 사이먼 레이놀즈의 생각은 좀 다른 듯하다. “가까운 과거에 이토록 집착한 사회는 인류사에 없었다.”고 말하는 그는 팝이 레트로에 환장하고 기념에 열광하는 시대라면서, 21세기 대중음악을 지배하는 노스텔지어 산업을 분석하고 우리 시대 독창성과 독자성에 대해 진지하게 자문한다. 


카메라 필름 lamagraphy 800 과 카세트 테이프

 

레트로의 흥행을 두고 너무 빠르게 변화하는 디지털 시대와 소비문화에 지쳐 나타나는 반발 현상이라는 뻔한 분석이 있지만, 레트로는 과거로 돌아가자는 것이 아니라 현재에 과거에서 가져온 문화적 양상에 더해 더욱 풍요롭게 한다는 점에서 그 의미를 찾을 수 있다. 디지털 테크놀로지 덕분에 누구나 과거를 손쉽게 찾아볼 수 있게 되었고, 레트로는 이제 나타났다 사라졌다를 반복하며 특정 계층에 소구하는 추억의 산물이 아니라 언제 어디서든 누구나 선택할 수 있는 취향의 소비로 자리 잡았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오랫동안 고유의 문화적 자산을 산업 발전이라는 명목 하에 버리고 지우기에 급급했다. 그래서 바로 지금 한국에서 인기를 끄는 레트로는 일시적인 유행이 아니라, 어쩌면 우리만의 오리지널러티를 찾아가는 과정 중에 나타난 중요한 현상이라는 생각도 든다. 문화적 자부심이 성숙되는 과정에서 거치게 된 레트로에 대해, 앞으로 더욱 깊이 있는 연구가 필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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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은경
월간 <디자인> 편집장. 16년째 디자인 전문 기자로 일하며 수많은 국내외 디자이너와 경영인, 마케터 등을 인터뷰하고 다양한 디자인 영역과 이벤트, 트렌드에 관한 기사를 쓰고 기획해왔다. 겉과 속이 적절하게 어우러진 것을 좋은 디자인,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상하이 K11아트파운데이션에서 열린 ‘Ticket to Seoul’전과 2013광주디자인비엔날레 ‘농사와 디자인전’ 큐레이터로, 일민미술관 ‘그래픽 디자인, 2005-2015, 서울’ 전 작가로 참여했다. 서울디자인페스티벌과 아우디 디자인 챌린지의 기획 및 진행, iF 어워드, 다이슨 어워드 심사위원 등을 지냈으며 몇 권의 책을 냈다. 일과 삶을 새롭게 디자인하고 싶은 사람들을 위한 콘텐츠 <워크 디자인>을 론칭하기도 했다. 인스타그램@jeon.eunky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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