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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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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을 기억하라... 그리고 삶도
심리

죽음을 기억하라... 그리고 삶도

프로이트 이론과 영화 <메멘토>를 통해 본 기억과 망각

by 홍준기 / 2019.03.25


기억이란 무엇인가? 아마도 정신분석학은 기억에 관한 가장 흥미롭고 중요한 설명을 제시하고 있는 분야일 것이다. 한 마디로 프로이트에 따르면 기억은 인간 존재 그 자체이다. 어떤 의식적, 무의식적 기억을 갖고 있느냐에 따라 타인과의 관계, 삶의 태도, 성격, 사랑과 증오, 원한 등 인간의 근본적인 감정들, 삶의 의미와 목표가 설정된다. 프로이트에서 기억은 인간의 정상성과 병리성, 그리고 더 나아가 궁극적으로 삶과 죽음―자신 또는 타인의 삶과 죽음―조차도 결정하는 인간 존재의 근원적 지위를 획득한다. 그리하여 프로이트는 정신분석의 탄생을 알린 《히스테리 연구》(1895)에서 이미 “히스테리자(者)들은 기억으로 인해 고통받는다”고 쓸 수 있었다.



인간 존재의 ‘병리성’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메멘토>는 아마도 기억에 관한 가장 흥미로운 영화가 아닐까 생각한다. ‘메멘토’는 ‘메멘토 모리(죽음을 생각하라)’라는 격언의 준말이다. 고대 로마에서 메멘토 모리는 ‘지금을 즐겨라’는 의미였지만 기독교 세계를 거치면서 그것은 현세의 허망함을 의미하는 말로 의미 변화가 발생했다. 이러한 의미 전환을 통해 놀란 감독은 <메멘토>에서 죽음에 대한 기억이 만들어내는 가장 비극적 삶을 묘사한다.


주인공(레너드)은 자신의 단기 기억상실증으로 인해 의도치 않게 발생한 아내의 죽음에 대해 커다란 죄책감을 느꼈으며, 그리하여 자신이 죽인 아내의 죽음과 관련된 기억을 왜곡한다. 그리고 죄책감을 떨쳐버리기 위해 망상 속에서 아내의 살인자를 창조해낸다. 아내의 살인자라고 확신한 사람을 살해하지만, 그는 자신이 행한 일에 대한 기록을 모두 없애고 계속해서 새로운 살인자를 만들어낸다. 그리하여 그는 멈출 줄 모르는 살인 기계로 살아간다.


메멘토 포스터, GUY PEARCE CARRIE-ANNE MOSS JOE PANTOLIANO MEMENTO

 

▲ <메멘토 (Memento, 2000)>ⓒ(주)엔케이컨텐츠, (주)팝엔터테인먼트


우리는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이 이 영화(그리고 다른 영화들)를 통해 특히 ‘기억’이 ‘인간의 병리성’, 또는 더 일반적으로 말하면 인간 실존에 미치는 영향을 극적으로 표현하고 싶었을 것이라고 추론할 수 있다.


놀란 감독은 자신의 영화들에서 ‘프로이트’라는 이름을 언급하지 않지만, 필자는 이 영화를 보았을 때 프로이트가 《쥐인간 사례》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강박증에서는 기억이 불확실하다는 속성이 증상을 만드는 데 충분히 이용된다.”


그 사례연구는 아마도 기억, 그리고 기억의 망각이 낳는 비극 또는 코미디를 학문적으로 가장 잘 구현한 최초의 사례 또는 ‘실화소설’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실제로 기억과 망각에 관한 프로이트의 이론이 실제로 수많은 영화를 통해 구현되었다. 그 예로 1984년 나스타샤 킨스키 주연의 <마리아의 연인>은 《쥐인간 사례》와 강박증 이론을 거의 ‘문자적으로’ 활용한 영화다).


프로이트는 기억과 그것의 망각에 관한 자신의 ‘이론’을 강박증만이 아니라 다양한 ‘병리 현상’에 적용해 설명하고자 했다. 인간 존재의 ‘병리성’은 (주로) 고통스러운 기억의 망각, 또는 기억과 사실의 불일치에서 유래한다. 그렇다면 망각한 또는 왜곡된 기억의 복원이 어긋난 자신의 존재를 바로잡는 출발점이 될 것이다. 물론 프로이트는 ‘사실’과 ‘기억’이 결코 ‘완전히 일치 할 수 없다는 것’을 부정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이러한 ‘원칙적 불일치’가 오히려 ‘인간 존재의 역동1을 낳는 근원적 현상임을 또한 강조한다. 이러한 불일치는 ‘환상’을 통해 메워질 분만 아니라 역으로 환상이 생겨나는 이유이기도 하다.


1 거슬러 움직임



기록을 중심으로 구성된 기억


필자가 주목한 흥미로운 점은 <메멘토>에서처럼, 지각, 의식, 기억에 관한 프로이트의 모든 이론이 ‘기록’을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이다. 플리스(Fließ)에게 보내는 1896년 12월 6일의 편지에서 프로이트는 지각에 대해 언급한다. 지각이란 외적 세계로부터 들어오는 가공되지 않은(raw), 원초적이고 원시적인 인상(impression)으로서, 무의식에 기록되어 무의식의 활동을 촉발하는 역할을 한다. 프로이트는 이러한 지각을 글―기록(Schrift)―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그에 따르면 신경증은, 무의식 속에 존재하는 고통스러운 지각―기록―이 의식 체계 속으로 들어올 수 없기 때문에 생겨난다. 더 정확히 말하면 무의식 속에 기억의 흔적으로 존재하는 고통스러운 기억이 의식 체계 속으로 들어올 수 있도록 번역되어야 하는데, 기억이 너무 고통스럽기 때문에 재기록(번역) 될 수 없어서 의식 체계 속으로 들어오지 못할 때 신경증이 발생한다. 즉 프로이트에 따르면 주체가 ‘아직 번역되지 않은 이전 단계에 속하는 기억의 흔적들에 대해서만 병적인 방어를 하기 때문에 신경증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여기에서 한 가지 질문이 떠오를 수 있다. <메멘토>에서 레너드도 특히 자신의 몸에 사건과 기억, 또는 지각들을 기록하지 않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보통 사람들보다’ 더욱 병리적으로 보이는 이유는 무엇인가? 바로 그것이 신경증과 ‘사이코패스’의 차이점이다. 중요한 점은 레너드가 단기 기억상실증이라는 ‘신경계적’ 증상으로부터 출발했지만, 이러한 증상을 ‘구실로 삼아’ 자신의 진정한 병리성―살인―정당성을 부여한 것은 오히려 그의 ‘심리적, 정신적’ 태도였다는 것이다(그는 단 10분간 지속되는 단기기억 동안에는 적어도 문제의 핵심을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었고,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진실’을 지울 수 있었다). 따라서 그가 몸에 새기는 글자(기록)는 기억을 상기시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기억 자체를 자신으로부터 완전히 ‘배척(Verwerfung)’하는 데 기여한다. 그가 몸에 새긴 기록은 이제 단순히 망각된 기억 또는 왜곡된 기억(사실)이 아니라, 그것과는 완전히 정반대의 다른 사실―망상―에 대한 기록으로 철저히 변형되어, 영원히 지워지지 않은 기록이 된다.


메멘토의 주인공 레너드의 문신 메멘토의 주인공 레너드의 문신

▲ 메멘토의 주인공 레너드는 ‘기억’을 몸에 ‘기록’한다. ⓒ네이버영화, (주)엔케이컨텐츠, (주)팝엔터테인먼트


프로이트에 따르면 신경증자의 망각된 기록은 증상, 꿈, 말실수, 행동들을 통해 주체에게 자신을 기억해달라고 호소하며, 주체는 이러한 호소의 의미를 어렴풋이나마 알고 있다. 그러나 레너드의 기록은 망각되었지만 어렴풋이나마 그 진실을 알게 해주는 신경증자의 기록과는 철저히 다른 어떤 것이다. 프로이트(그리고 멜라니 클라인2)는 이렇듯 기록이 오히려 망각보다 더 깊은, 망각이 되는 비극적이며 역설적인 심리적 현실을 분석할 수 있는 개념들을 제시했던 것이다. 프로이트와 클라인은 이를 억압과는 다른 개념인 투사라는 개념으로 설명했는데, 이는 너무나 충격적이어서, 억압해 무의식에조차 담아둘 수 없는 것들을 처리하는 심리 메커니즘을 의미한다.

2 영국의 정신분석학자 


앞서 언급했듯이 프로이트는 레너드와 같은 인물이 보여준 ‘가장 철저한 망각’ 또는 ‘가장 완벽한 억압’을 ‘배척’이라고 불렀다. 레너드는 아내의 죽음에 대한 (의도했든 그렇지 않든) 기억과 그것으로부터 생겨나는 죄책감을 자신으로부터 완벽하게 지우고 싶었기 때문에 몸에 가상적 살인자에 관한 단서를 끊임없이 기록했다. 그러고 난 후 ‘기계’가 되어 자신의 죄책감을 보복심, 공격성, 원한으로 변형시킴으로써 자신은 기억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워졌다. 필자는 이 기계라는 말을 문자적으로 이해하고 싶다. 그는 정말로 기계가 되었던 것이다. 멜라니 클라인에 따르면, 인격성이란 비록 실패할지라도 어떤 형태로든 죄를 용서받으려는 노력을 행할 뿐 아니라, 그러한 노력과 죄책감 그 자체를 감내할 수 있는 사람에게만 허용되는 것이다(우울적 위치). 불행히도 죄책감과 우울을 직면하기를 거부한 레너드는 살아 있으나 죽은 자, 죽이는 자가 되었다. 삶을 견딜 수 없어 죽음을 망각했지만 그의 삶은 죽음보다 더 깊고 고통스러운 비극적 심연이 되었다. 결국은 삶이 우리를 죽음으로 이끌어간다고 할지라도, 그럼에도 개인적, 사회적 죽음을 기억하는 사람만이 삶을 살아나갈 수 있다는 것, 그것이 기억에 관한 정신분석 이론과 <메멘토>로부터 우리가 배울 수 있는 메시지가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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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홍준기
홍준기
정신분석 이론과 임상, 현대유럽철학 및 정치경제•사회사상 등의 분야에 특히 관심을 갖고 연구해왔다. 대안연구공동체에서 강의하고 있으며 경상대학교 학술연구교수로도 일하고 있다. 『라캉, 클라인, 자아심리학』, 『피케티의 ‘21세기 자본’과 사회적 국가』 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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