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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하나의 테마, 360도 관점

여행이 인생의 쉼표라면, 죽음은 인생의 마침표
여행

여행이 인생의 쉼표라면, 죽음은 인생의 마침표

낯선 여행지에서 만난 낯선 죽음의 방식

by 최미선 / 2018.11.26


‘우물쭈물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다.’


노벨문학상을 받은 아일랜드 극작가 버나드 쇼의 묘비명이다. 요즘 많은 사람들이 버킷리스트 1순위로 꼽는 게 여행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렇게 토를 단다. ‘여유가 있다면…’ 그 ‘여유’라는 건 사실 사람마다 다르다. 그래서 흔히 이런 우스갯소리들을 하기도 한다. ‘젊어선 돈이 없어 못 가고, 중년이 되면 시간이 없어 못 가고, 늙으면 다리가 떨려 못 간다~’고. 가야 할 때 가지 않으면 가려 할 때 갈 수 없게 될지도 모른다. 이래저래 여유를 찾다 시기를 놓쳐 결국 그 마지막 시기를 앗아가는 건 바로 죽음이다. 



죽음, 행복한 세상으로 가는 길

네팔 버그머티 강변의 화장터


여행을 하다 보면 이러저러한 많은 것들을 보게 된다. 그 가운데 10여 년이 지난 지금도 기억에 생생한 건 네팔에서 마주했던 화장터다. 성스러운 강으로 여겨 시바 신을 모신 힌두교 사원이 있는 버그머티(Bagmati) 강변에서 1,000년이 넘도록 자리를 지켜온 화장터는 사원과 가까운 상류 쪽은 고위층 전용이요, 아래쪽은 일반 서민들의 자리로 구분되어 있었다. 살아서 뿐만 아니라 죽어서도 신분으로 인간을 구분하는 카스트의 굴레를 보는 것 같아 마음이 씁쓸했던 곳이다. 


네팔 버그머티 강변의 화장터


시신 태우는 연기가 하루도 끊이질 않는 곳이다 보니 내가 들어선 순간에도 아랫녘에선 두 구의 시신이 연기를 피워내며 이승에서의 마지막 흔적을 지워내고 있었다. ‘있는 집안’ 구역인 위쪽에선 막 화장하려는 듯 나이 든 여인의 시신이 있고 아들로 보이는 두 남자가 하얀 속옷만 입은 채 자신들의 머리와 눈썹을 깔끔하게 밀어내고 있었다. 이어서 그들은 차곡차곡 쌓인 장작이 잘 타도록 버터를 꼼꼼하게 발랐다. 여인을 감싸고 있던 화려한 색상의 옷들이 하나둘 벗겨져 강물에 동동 떠내려갔고 대신 두꺼운 짚단이 시신을 덮었다.


네팔 사람들은 누군가를 떠나보낼 때 울지 않는단다. 인간의 죽음은 고통스러운 세상을 떠나 영원히 행복한 세상으로 가는 길이라 믿기 때문이다. 하지만 짚단에 불이 댕겨지며 장작이 활활 타오르자 쪼그리고 앉아 내내 하늘만 바라보던 두 남자가 두 손으로 연신 눈물을 훔쳐낸다. 그래, 그렇겠지. 이제 영영 볼 수 없는 사람인데……. 생판 알지도 못하는 시신에 불이 댕겨지는 순간 내 가슴도 찡하건만 가족이야 오죽하랴.


네팔 버그머티 강변의 화장터


한쪽에선 죽음의 의식이 치러지는데 바로 앞의 사원에선 보다 나은 삶을 위해 간절히 기원하는 모습이 묘한 대조를 이뤘다. 게다가 시신을 태운 재가 둥둥 떠내려가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목욕하는 이들도 보였다. 성스러운 강물에서 목욕하면 복을 받는다고 하여 정성을 들여 목욕을 하는 것이다. 강물을 휘저으며 뭔가를 열심히 찾는 아이들도 있었는데, 사원에서 소원을 빌며 내던지는 동전을 줍기 위해서였다. 강물 아랫녘에선 장례를 치른 시신의 옷을 건져가는 사람도 있었다. 그들은 네팔의 천민계급 중에서도 가장 밑에 속한 이들이란다.


신분으로 구분된 삶과 장례식이었지만 시신을 태운 연기만큼은 허공에서 서로 뒤섞이고 한 줌 재로 남은 시신의 마지막 흔적도 성스러운 강물 속에선 한데 뒤엉켜 흘러내린다. 세속적인 삶에서는 차별이 있었지만 인간은 모두가 평등하다는 진리를 말해주는 듯했다. 



즐거운 묘지, 유쾌한 묘비명

루마니아 서푼차 마을


그래도 사랑하는 누군가를 떠나보내야 하는 것이요, 사랑하는 이들을 두고 내가 맞아야 할 죽음은 아무래도 슬픈 일이다. 하지만 그 죽음을 유쾌하게 풀어낸 어느 공동묘지는 화장터만큼이나 인상적이었다. 루마니아의 시골 마을인 서푼차에 있는 공동묘지로 이름하여 ‘즐거운 묘지’다. 알록달록 화려하기 그지없는 묘비들이 공동묘지에 대한 음울한 선입견을 한 방에 날려준 이곳에선 유쾌한 묘비명으로 죽은 사람이 산 사람을 웃게 만든다. 하지만, 단순히 웃기기만 한 건 아니었다.


루마니아 서푼차 마을


‘여기 우리 장모님 잠들다. 1년만 더 사셨더라면 아마도 내가 누워 있었을지도 모르지만…….’ 은근한 유머로 장모의 죽음을 애도한 짓궂은 사위도 있지만, ‘나는 나쁜 병이 들었는데 의사는 나를 치료할 수 없었네요. 엄마를 잃어 불쌍한 내 딸도, 나의 사위도 슬픔에 젖어 있네요. 가정주부였던 나는 부엌일만 하다 51세의 나이로 이 세상을 떠납니다’라며 딸과 사위 걱정을 하는 장모도 누워 있다.


그런가 하면 ‘Tuica는 독이라네. 그녀는 나를 파멸시켰고 죽음으로 내몰았다네. 결국 Tuica, 너를 너무나 사랑했기에 지금 여기에 묻히게 되었구나’라며 Tuica(도수 높은 루마니아 술)에 절어 살다 죽은 이가 살아 있는 이웃에게 충고하는가 하면, ‘내 이름은 스테판, 나는 사는 동안 술을 참 좋아했어. 아내가 떠났을 때는 너무 슬퍼서 술을 마셨는데 이상하게도 마시면 마실수록 행복해졌지. 술을 같이 마실 친구들이 있어 오히려 좋았지. 근데 이보게, 나 여전히 목이 마르다네. 거기 누구, 나에게 술을 조금만 조금만 갖다 줄 수 있겠나? 하는 망자 앞엔 그의 소원대로 술 한 병을 놓아둔 이웃의 정이 있어 흐뭇했다.


하지만 ‘시비우에서 온 망할 놈의 택시야. 루마니아 땅이 이렇게 넓은데, 하필이면 우리 집 앞을 지나서 나를 치고, 우리 부모님을 슬프게 하냐. 지옥 불에나 들어가라! 1978년 두 살의 나이로 죽다’라는 두 살배기 아이의 묘비 앞에선 가슴이 짠하기도 했다.


어떤 일을 하던 사람인지, 어떤 취미를 가졌는지, 어떤 버릇이 있는지, 그런 사람이 왜 죽었는지…… 고인의 생전 모습이 고스란히 담긴 묘비는 서푼차 마을 사람들의 생생한 역사다. 1935년 목수였던 마을 청년이 망자의 묘비에 애정을 담아 하나하나 새기기 시작했고, 제자가 이어받아 한 편 한 편이 시요, 한 점 한 점이 그림이 된 ‘즐거운 묘지’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 되었다.


루마니아 서푼차 마을


같은 아파트에 살면서도 누가 죽어 나가는지도 모르는 우리와 달리 어릴 적부터 함께 놀며 자란 서푼차 사람들은 칭찬과 핀잔, 익살로 풀어낸 고인의 묘비를 오가며 죽은 이웃을 떠올린다. 죽음은 결국 혼자 가는 길이지만 서푼차에선 따뜻하게 배웅하는 이들이 있어 외롭지 않고 오래도록 기억하는 이웃이 있어 무덤 안의 주인들도 옛 시절을 꿈꾸며 단잠을 잘 수 있을 것만 같다.


행복하게, 되도록 오래오래 살고 싶은 게 인간의 욕망이다. 세상 부러울 것 없던 진시황제도 영생을 꿈꾸며 불로초를 구하느라 애썼다. 지금도 미국과 러시아에선 의술로 죽은 사람을 되살린다는 취지의 인체 냉동보존 회사들이 은밀하게 성업 중이다. 현재 300구가 넘는 신체가 냉동 보관되어 있고 미래의 고객도 2000명이 넘는단다. 진시황의 ‘불로초 구하기’가 헛수고였듯 죽은 인간을 되살리는 건 불가능하다는 회의론도 있긴 하지만 과학의 발전으로 다시 살려낸다고 한들 냉동 인간의 삶이 과연 축복일까?


자연의 일부인 인간은 자연의 순리대로 사는 게 가장 아름다운 모습이다. 여행이 인생의 쉼표라면 죽음은 인생의 마침표다. 마침표를 찍지 못하는 삶은 어쩌면 저주일지도 모른다. 다만 울면서 이 세상에 온 모든 인간들이 웃으면서 가는 행복한 마침표를 찍을 수 있길 바랄 뿐이다. 나 또한 웃으며 저세상에 가길 바라며 훗날 나의 묘비명은 이렇게 써달라 할까나?


‘자신이 좋아하던 길 위에서, 뭐가 그렇게 좋았는지

배를 움켜쥐고 깔깔 웃다가 결국 숨넘어간 여인, 여기 잠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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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신석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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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최미선
최미선
10여 년간 동아일보사에서 기자로 생활을 하는 동안 밤이면 차를 몰로 냅다 강릉으로 달려 커피 한 잔 달랑 마시고 돌아오는 일이 잦아 ‘썰렁한 밤도깨비’라 불렸다. 사주를 보면 늘 빠지지 않는 대목이 역마살. 팔자대로 살아보고자 사직서를 내고 사진작가 남편과 함께 여행하며 책 쓰고 강연하며 살고 있다. <사랑한다면 스페인> <사랑한다면 이탈리아> <사랑한다면 파리> <산티아고 가는 길> <국내여행 버킷리스트 101> 등 20여 권의 책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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