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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하나의 테마, 360도 관점

고독으로 숙성된 아름다움
예술

세상과 단절한 예술가들의 은밀한 이야기

고독으로 숙성된 아름다움

by 박병성 / 2018.09.17


플라톤의 <향연>에서 아리스토파네스는 최초의 인간은 세 가지 유형으로 이루어졌다고 한다. 남자-남자, 여자-여자, 남자-여자. 두 개의 머리와 네 개의 팔다리를 지닌 인간은 완전체로 신의 영역을 넘나들었다. 이를 못마땅하게 여긴 신들의 왕 제우스는 번개를 던져 인간을 반으로 갈라놓는다. 아폴론은 갈라진 인간을 안쪽으로 봉합했다. 봉합의 흔적이 배꼽인데 아폴론은 배꼽을 남겨 인간이 상실한 자신의 반쪽을 기억하도록 했다. 그래서 인간은 선천적으로 외로울 수밖에 없는 숙명을 지녔다. 뮤지컬 <헤드윅>에서는 <향연>의 내용을 기초로 ‘사랑의 기원(The Origin of Love)’이라는 노래를 통해 자신의 반쪽을 찾아 헤매는 헤드윅의 여정을 보여준다.


인간은 선천적인 외로움에 빠질 수밖에 없는 존재이다. 그래서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자신의 존재를 끊임없이 증명받으려 한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모든 관계에서 벗어나 자신의 내면과 만나는 시간을 원한다. 특히 예술가들에게 자신만의 시간은 필수적이다. 사회 참여적인 작품을 만드는 예술가조차도 내면을 성찰하고 사색하는 깊은 고독의 시간이 있어야 작품이 탄생할 수 있다. 그래서인지 예술가들의 전기를 요약해 보면 대부분이 ‘열정’ 또는 ‘고독’으로 정리될 수 있다. 어떤 예술가도 두 단어에서 자유로울 수 없으며 특히 독한 고독을 앓다 간 예술가가 많다.



모순덩어리 피아니스트, 글렌 굴드


고독한 삶을 살아간 예술가라고 하면 무수히 많은 얼굴이 지나간다. 고독을 사랑한 괴짜 피아니스트 글렌 굴드(Glenn Herbert Gould) 또한 그중 한 명이다. 어려서부터 천재로 주목받던 그는 바흐를 새롭게 해석한 <골든 베르크 변주곡> 앨범으로 일약 스타로 떠오른다. 대중들의 관심을 모은 것은 그의 괴벽에 가까운 기행이었다. 날씨와 상관없이 언제나 장갑과 목도리를 착용하고 다녔던 그는 연주를 하기 전 20분간 따뜻한 물에 손을 담그곤 했다. 전성기에는 세계 곳곳을 다니며 연주 활동으로 그의 재능과 명성을 키워나갔지만 글렌은 변수가 많은 콘서트를 좋아하지 않았다. 관객들이 음악을 듣기 위해 온 것이 아니라 실수를 찾아내기 위해 혈안이 된 사람들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몸이 좋지 않다는 이유로 예정된 콘서트를 취소하기 일쑤였다. 그는 관객들 없이 자신이 원하는 환경에서 연주할 수 있는 녹음 앨범 작업을 선호했다. 편집 작업에도 깊이 관여해 원하는 결과물이 나올 때까지 엔지니어를 괴롭혔다. 예술가의 깐깐한 완벽주의로 이해할 수 있는 행동이다. 그러나 막상 녹음 연주에서 그는 자신의 연주에 도취되어 노래를 부르곤 했다. 음반사에서 글렌의 허밍을 완전히 제거하려고 노력했지만 결국 최종 편집본에도 그의 허밍을 완벽하게 없애지는 못했다. 그는 혁신적이고 뛰어난 피아니스트였지만 그의 행동은 이처럼 모순으로 가득 찼다. 비행기 사고를 염려해 ‘연주 여행’을 차로 이동하면서도 과속을 즐기는 것 역시 그의 모순적 성향을 드러내는 행동이다.


글렌 굴드

▲ 캐나다에 있는 피아니스트 글렌 굴드(Glenn Herbert Gould)의 동상 ⓒStefan Powell 


그의 주변에 친구들이 없지 않았다. 글렌의 예술적 재능과 위트를 사랑한 가까운 지인들이 언제나 함께했다. 글렌은 아무 때나 친구들에게 전화해서는 하고 싶을 때까지 걱정을 늘어놓고 투정을 부렸다. 그는 심각한 건강염려증 증상이 있어 복용하는 약도 많았으며 몸 상태를 심각하게 살피고 경계했는데 건강의 두려움을 전화로 토로하곤 했다. 글렌의 친구이자 그의 전기를 쓴 정신과 의사 피터 오스왈드(Peter F. Ostwald)는 글렌의 첫 만남에 의미심장한 기록을 남긴다. 콘서트 후 다섯 시간 동안 자리를 옮겨가며 이야기를 나누었던 오스왈드는 글렌이 그 많은 시간 동안 다른 사람에 대해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는 것을 깨닫는다. 글렌은 자기중심적인 독백에 몰두하고 있을 뿐 진정한 대화를 나누지 않았던 것이다. 글렌의 주변에는 그의 재능을 사랑하는 예술가들과 그의 작업을 도와주는 매니저, 엔지니어가 있었지만 언제나 그들과 충만한 인간적 교감을 나누지는 못했다. 그에게는 엄밀히 진정한 친구는 없었다. 전화상으로 친한 친구만이 있었을 뿐이다. 예측하지 못한 상황이 벌어지는 것을 끔찍이도 싫어했고 모든 것을 자기 통제 하에 두려고 했던 글렌에게 첫사랑이자 유일한 친구는 예술뿐이었다. 그의 모든 삶은 예술을 위해 구성되었다.



고독의 벽장에서, 에릭 사티


불멸의 아티스트 17인의 전기적 에세이를 쓴 박명욱 저자는 에릭 사티(Erik Satie)를 소개하는 글에 『너무 낡은 시대에 너무 젊게 이 세상에 오다』라고 제목 붙였다. 에릭 사티는 20세기 음악계의 이단적 존재였다. 거의 독학으로 음악을 배운 그는 서른아홉 살 늦은 나이에 음악대학에 입학했지만, 평생 체제 속에 머물지 않고 괴짜의 길을 걸었다. 몽마르트 카페의 연주자로 생계를 유지하던 그는 말년에 이르러서야 장 콕도가 쓰고 피카소가 무대 장치를 한 <파라드>를 통해 작곡가로서 입지를 굳혔다. 그의 삶과 예술을 관통하여 흐르고 있는 것은 끔찍할 정도의 고독이었다. 스스로를 ‘미스터 가난 씨’라고 자조하며 평생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그는 32살에 파리 교외의 아르쾨유의 전기도 수도도 들어오지 않는 (사람들이 벽장이라고 부르는) 작은 집으로 옮긴 후 누구의 방문도 허용하지 않은 채 마지막 27년을 홀로 가난하고 고독하게 살았다.


에릭 사티

▲ 프랑스의 작곡가이자 피아니스트 에릭 사티(Éric Alfred Leslie Satie) ⓒSonia y natalia


염소 수염에 중절모를 쓰고 늘 우산을 들고 다녔으며 늘 검은색 벨벳 정장을 입었다. 12개의 벨벳 정장을 구입한 후 하나가 닳은 후에야 다른 정장으로 바꿔 입었다. 그가 죽은 후 집에는 아직 입지 않은 여섯 벌의 새 정장이 남아있었다고 한다. 스스로 만든 이단 종교의 유일한 신도이자 교주이기도 했던 그는 4분음표 13개를 840번 반복하는 <벡사시옹(Vexations, 짜증)>을 작곡했다. 평론가를 경멸한 그는 ‘관료적인 소나티네’, ‘바짝 마른 태아’와 같은 악의적인 곡 제목을 붙이기도 했다. 그는 위악적인 태도로 세상과 맞서며 기존 음악계와는 선을 긋는 자신만의 예술 세계를 구축했다. 미니멀한 스타일의 반복된 선율이 묘한 아름다운 잔상을 이끌어내는 피아노곡 <짐노페디>와 <그노시엔>은 여전히 현대적인 감성으로 대중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다. 그의 음악은 드뷔시(Debussy)가 바그너주의에서 이탈하는 데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고, 개념 음악적 접근으로 현대 음악가들에게 대단한 영향을 끼쳤다. 그가 당대 유행하던 음악적 흐름에서 단호히 결연하고 자신만의 음악 세계를 만들어낼 수 있었던 힘은 아마도 벽장 속에서 끊임없이 자신만을 바라봐야 했던 고독이 아니었을까.



혼자 걸어가는 은둔자, 파트리크 쥐스킨트


에릭 사티만큼 세상과 단절된 삶을 살고 있는 작가로 <좀머 씨 이야기>의 파트리크 쥐스킨트(Patrick Suskind)가 떠오른다. 콘트라베이스 연주자의 모노극으로 쓴 <콘트라베이스>로 자신의 존재를 세상에 알린 파트리크 쥐스킨트는 <향수>를 발표하며 세계적인 작가의 반열에 오른다. <향수>의 주인공 그르누이는 모든 욕망이 거세되었지만 후각만은 신의 경지에 이른 괴물 같은 아이였다. 이제껏 보지 못한 캐릭터를 창조해내고 매력적인 이야기를 선보인 <향수>는 30여 개 언어로 번역되어 전 세계에서 큰 판매고를 올렸다. 이후 영화로도 제작된다. 파트리크 쥐스킨트는 대표적인 현대 독일어권 작가였지만 많은 문학상의 수상을 거부하고 일체 인터뷰나 사진 촬영에 응하지 않았다. 파트리크 역시 글렌 굴드나 에릭 사티만큼 기행(奇行)으로 유명하다. 유행에 뒤떨어진 스웨터를 입고 다니는 그는 개를 몹시 무서워하고, 비위생적이라는 생각에 악수를 꺼리며 다른 사람이 운전하는 차에서는 몹시 긴장한다고 한다. 좁은 집에서 햇빛을 피해 사는 그는 사람들의 왕래를 피하며 소수의 지인과의 연락을 맺고 생활하고 있다. 사람들과의 접촉을 극도로 피하는 천재 작가에 대한 독자들의 호기심은 당연히 높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지인 중 자신에 대해 발설하는 사람이라면 그가 누구라도 단호히 절연했다. 그에 대한 정보가 적은 이유이다.


좀머씨이야기, 향수

▲ 은둔 작가 파그리크 쥐스킨트의 작품 좀머 씨 이야기, 향수


세상과 단절하고 자신만의 길을 묵묵히 걷는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고독한 삶은 그의 작품 속 인물의 캐릭터로 녹아든다. 무엇보다도 어디로, 왜, 얼마나 걷는지 모르지만 무엇으로부터 쫓기듯 걷기만 하는 <좀머 씨 이야기>의 좀머 씨야말로 파트리크를 잘 보여주는 인물이다. 세상 사람들의 시선으로부터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만의 길을 걷는 좀머 씨는 파트리크 쥐스킨트를 비롯한 많은 고독한 예술가를 떠올리게 한다. “제발 나를 내버려 둬”라고 외치며 고독한 걸음을 옮기는 좀머 씨들이 있어 우리는 기성의 관습을 넘어선 아름다운 연주와 음악과, 소설을 만나게 된다. 예술가들의 고독은 아름다움을 익어가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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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박병성
박병성
공연 칼럼니스트.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연극학을 전공하고, 뮤지컬 전문지 <더뮤지컬> 편집장을 역임했으며 현재는 국장으로 있다. 음악으로 극을 이끌어가는 방식에 관심이 많다. 160여 년간 발전시켜온 브로드웨이 뮤지컬의 극과 음악의 유기적인 결합 방식을 존중하면서도 새로운 방식을 실험하는 작품을 좋아한다. 판소리를 세계적이고 모던한 예술이라고 생각하며 이를 활용한 극에 관심이 많다. 공연을 보고 함께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하고 각종 매체에 공연 관련 글을 기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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