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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풀고 당기는 관계의 끈

[관계]풀고 당기는 관계의 끈

관계를 이루고 바꾸는 최소한의 전제 조건

by 박태근 / 2018-02-28

 

변하지 않는 영원한 관계란 없다. 그렇기에 관계에서 생기는 불편과 고통은 그저 감내해야만 하는 것이 아니다. 관계를 지키려는 노력의 의미와 가치 역시 존중받을 수 있어야 한다. 관계는 늘 변하기 때문에 관계에 대해 어떤 물음을 던지든, 어떤 해답을 찾든 그것은 정답일 수 없다. 삶은 정답을 찾고 나면 바로 다음 정답을 찾아야 하는 끝없는 여정이기에 우리는 관계 속에서 성장하며 더 나은 관계를 도모할 수 있다. 좋은 관계란 이를 반복하면서도 지치지 않고, 이 과정에서 서로가 더 나은 사람이 되는 것일 테니, 각자의 삶과 관계는 따로 떼어 생각할 수 없다. 삶을 포기하지 않는 한 관계를 접을 수 없고, 관계를 고민하려면 나로부터 시작할 수밖에 없다는 말이다.

모든 사람을 만족시키려는 노력은 미친 짓이다
나를 중심에 두고 주변의 관계를 놓아보자. 어떤 관계는 시야에서 벗어날 틈도 없이 가까이 있을 테고, 어떤 관계는 희미하게 흔적만 남아 끊어지기 일보 직전일지도 모르겠다. 그다음에는 줄을 당겨 팽팽하게 만들고 싶은 관계와 줄을 풀어 느슨하게 만들고 싶은 관계를 나눠보자. 이렇게 관계마다 적정거리를 찾아 조정할 수 있다면, 혹은 최소한의 안전거리를 확보할 수 있다면 크게 부딪혀 관계가 깨지거나 누군가 다치는 일은 피할 수 있지 않을까.

 
  • 『당신과 나 사이』 김혜남 지음, 메이븐『당신과 나 사이』 김혜남 지음, 메이븐

정신분석 전문의 김혜남은 『당신과 나 사이』에서 서로를 피곤하게 하지 않으면서도 각자가 외롭지 않은 관계의 적정거리를 제시한다. 숫자로 정리하면, 가족이나 연인과 나 사이에 필요한 거리는 0~46cm, 친구와 나 사이에 필요한 거리는 46cm~1.2m, 회사 사람들과 나 사이에 필요한 거리는 1.2~3.6m다. 뭘 그렇게 정색하고 자로 재듯 관계를 말하느냐 싶은 생각도 들겠지만, 앞서 말했듯 이는 최소한의 안전거리다. 이만큼 가까이 혹은 떨어져 있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주목할 점은 저 숫자들 역시 이어져 있다는 점이다. 그러니까 친구와 회사 사람 각각의 안전거리는 알 수 있지만 상대가 친구인지 회사 사람인지, 친구로 지내고 싶은지 회사 사람으로만 지내고 싶은지는 결국 내가 판단해야 한다.
모든 사람을 만족시키는, 그러니까 나를 둘러싼 관계의 완전한 평형 상태를 찾고 유지하는 답을 찾으려는 시도는 실패할 수밖에 없다. 이를 인정하지 않으면 우리의 관계는 늘 실패로 귀결되고 말 것이다. 저자는 “이제 내 인생에 중요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더 이상 소중한 시간과 노력을 할애할 생각이 없다”라고 차갑게 말하는 듯하지만, “소중한 사람들과의 관계를 회복하고 그 관계를 돈독하게 만들기 위해 애쓰는 동안, 오히려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도 편안해졌다”라는 따뜻한 깨달음을 함께 전한다. 앞서 늘어놓은 주변의 관계 가운데 나에게 가장 소중하고 가장 시급한 관계의 거리부터 조정해보자. 그러고 나면 다른 관계의 끈도 함께 당겨지고 풀어지며 새로운 균형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배신은 과거의 중요한 일부분을 빼앗아 간다
관계를 유지하는 데 꼭 필요한 조건이 무엇인지 묻는다면 서로를 속이지 않는 진실함과 투명함이라고 하겠다. 그래야만 안전거리든 적정거리든 가늠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그런데 믿음을 저버리는 행위, 즉 배신은 애써 고민하고 유지해온 거리를 일순간에 무용하게 한다. 홀로 살 수 없는 존재라는 인간의 속성처럼, 배신 역시 인간이 피할 수 없는 숙명인 걸까. 철학자 아비샤이 마갈릿은 『배신: 인간은 왜 믿음을 저버리는가』에서 관계를 훼손하는 다양한 배신의 국면들, 즉 외도, 반역, 변절, 배교 등 역사와 문화 속에서 벌어진 배신의 사례를 살피며, 배신의 속성과 의미 그리고 배신을 거치거나 넘어서 이르게 되는 진실한 관계의 정경을 펼쳐 보인다.

 
  • 『배신: 인간은 왜 믿음을 저버리는가』 아비샤이 마갈릿 지음, 을유문화사『배신: 인간은 왜 믿음을 저버리는가』 아비샤이 마갈릿 지음, 을유문화사

배신이냐 아니냐를 판단하는 근거는 의도다. 의도가 분명한 배신과 의도하지 않았으나 배신처럼 보이는 행위 사이에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저자의 설명을 들어보자. “배신과 의도치 않은 이별 사이에는 어떤 차이가 있는가? 이 질문에 대해 짧게 답하자면 관계의 의미라고 할 수 있다. 배신은 관계의 의미를 훼손한다. 의도치 않은 이별과 달리 배신은 과거에 색을 덧칠한다. 의도치 않은 이별은 관계의 미래에 영향을 미치지만 과거의 관계가 갖는 의미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하지만 배신은 과거의 중요한 일부분을 빼앗아 간다. 배신당한 사람에게는 이제 과거의 관계가 텅 빈 껍질처럼 보인다. 의도치 않은 이별은 그렇지 않다. 과거의 기억은 그대로 남기 때문이다.” 눈물 흘리며 힘겹게 돌아서는 이별 장면과 치를 떨며 다시는 돌아보지 않을 상반된 이별 장면의 이유가 이해되는 설명이다.
국가에 대한 이적 행위, 조직의 잘못을 알리는 내부고발 등 다채로운 배신의 사례를 읽다 보면 결국 배신은 피할 수 없는, 때로는 필요한 숙명이라는 생각에 이른다. 배신은 나쁜 짓이며 피해야 할 행위라고 단죄하기에는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가 그리 단순하지 않다. 그렇다고 배신이 관계에 필연적이라 이해하고 살아가기에도 여전히 마음이 편치 않다. 이어지는 저자의 설명이 위로가 될지 모르겠으나, 배신을 이해하는 하나의 방법은 되겠다. “내가 보기에 인간관계의 투명성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단순히 진실이 아니다. 그 진실이 과거에 대한 것이든 현재에 대한 것이든 마찬가지다. 문제가 되는 것은 ‘진실의 전체’다. 투명성이 언제 어디서나 진실 전체를 요구한다면 문명 생활과 어울리기 힘들다. 배신이 문명 생활에 필요한 은폐의 대가로 치러야 하는 비용이라면 치를 만한 가치가 있는 비용이다.”

거울 앞에서 내가 웃으면 거울 속의 상대도 웃는다
한국사회에서 가장 복잡한 관계를 찾는다면 단연 남북 관계라 하겠다. 앞서 제시한 적정거리와 안전거리를 찾기가 어려워 휴전선을 그어놓았고, 배신에 배신을 거듭하며 쌓아온 70년의 관계이니 말이다. 남과 북의 관계를 들여다보고 이곳에서 관계의 해법을 찾아낸다면, 그간 풀리지 않던 온갖 관계의 해법을 찾아낼 수 있지 않을까 싶을 정도다. 북한 및 남북관계 분야의 손꼽히는 전문가 김연철 교수가 정리한 남북관계사 『70년의 대화』에서 대결, 타협, 화해로 이어지는 관계의 단계적 발전과 이를 만들어낼 건강한 태도를 찾아보자.

 
  • 『70년의 대화』 김연철 지음, 창비『70년의 대화』 김연철 지음, 창비

그가 제시하는 건강한 태도는 능동적 접근이다. 우리는 할 만큼 했으니 이제 공은 북한으로 넘어갔다는 언론 보도는 상황을 잘못 이해한 말이라 지적한다. 남북관계는 북한이 대결하자면 대결하고, 대화하자면 대화하는 식으로 흘러오지 않았다는 설명이다. “수동적 접근은 주로 남북관계가 악화된 시기에, 능동적 접근은 남북관계가 개선된 시기에 등장”하는데, 남북관계의 주요한 장면이라 할 1972년 7•4 남북공동성명, 1991~1992년 남북기본합의서, 2000년과 2007년 두 번의 정상회담 모두 “북한이 먼저 제안한 것이 아니라 남한이 환경을 만들고 북한을 설득해 이뤄냈다”는 분석이다.
남과 북은 그간 “서로 주먹을 들고 거울 앞에 서서, 거울을 향해 왜 도발하느냐며 화를냈”는데, “거울 앞에서 내가 웃으면 거울 속의 상대도 웃고, 내가 주먹을 들면 상대도 주먹을 든다”는 상식을 바탕으로 생각하면, “거울 속 상대가 나를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내가 거울 속 상대를 움직인다”는 당연한 깨달음을 얻게 되고, “북한의 변화를 원한다면 우리가 먼저 변해야 하고, 남북관계가 움직이길 바란다면 우리가 먼저 움직여야 한다”라는 현실적 결론에 이르게 된다. 물론 이러한 태도 변화는 남한에게만 주어진 건 아니다. 북한도 변화를 원한다면 마찬가지로 능동적 태도를 보여야만 할 것이다. 이처럼 상대가 나를 비추는 거울이라는 최소한의 신뢰와 전제만 있다면, 관계는 언제든 변할 수 있다. 그것이 세계든, 국가든, 친구든, 연인이든, 가족이든 말이다.

 

 

2월 관계 박태근 안전거리 배신 투명성 남북관계 능동적태도
필자 박태근
박태근

<알라딘> 인문 MD. 일명 ‘바갈라딘’으로 불린다. 출판사에서 편집자로 일했으며, 현재는 온라인서점 알라딘에서 인문 MD로 일하고 있다. 편집자를 위한 실험실 연구원으로 출판계에 필요한 목소리를 전하며, 여러 매체에서 책을 소개하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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