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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왜 너는 너 다운 너가 되지 않았지?” (feat. 찰스 핸디)

- 욕망 고삐 조이고 더 나은 삶 스스로 물어야 - MZ세대와 함께 하는 철학카페 -

안광복

2022-03-08

MZ세대와 함께 하는 철학 카페는? 불확실한 미래, 지질한 현재, 이불킥을 하게 만드는 과거……. 나는 왜 이리 형편없을까요? 꼬리에 꼬리를 무는 고민들로 나의 일상은 주눅 들고는 합니다. 지금처럼이 아닌, 나답게 잘 사는 방법은 없을까요? 철학의 2,500년 역사는 이 물음에 답을 주는 지혜들로 가득합니다. 개성 강하고 그만큼 고민도 남다른 MZ세대를 위해 다정한 철학 전문가들이 모였습니다. 여러분들이 일상에서 자주 마주하는 삶의 고민과 질문을 부담 없이 들려주시길! 철학의 지혜를 담뿍 전해드리겠습니다.


옛날에 한 랍비가 자신은 재능이 없어서 모세같이 위대한 인물이 되지 못한다며 불평을 늘어놓았다고 해요. 어느 날 신이 나타나 랍비에게 이렇게 말했답니다. “저승에서 나는 너에게 왜 모세가 아니었냐고 묻지 않을 거야. 왜 너다운 너가 아니었냐고 따질 것이야.”......



Q. 왜 성공할수록 허전할까요?


열심히 일하는 모습

열심히 일하는 모습


저는 참 열심히 살았습니다.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라는 말을 저는 굳게 믿어요. 꾸준하고 치열하게 살아서인지 꽤 좋은 학교를 나왔고, 직장도 탄탄하고 봉급도 괜찮은 데 다니고 있어요. 건강 관리도, 취미 활동도 제대로 하려고 애를 씁니다. 저의 별명은 ‘갓생(God生)’인데요, ‘넘사벽’ 수준의 성실함으로 삶을 최고 수준으로 가꾸고 있다는 뜻이랍니다. 부럽다고요? 아니에요. 정작 저는 별로 행복하지 않답니다. 더 뛰어나고 잘난 사람들에 견주면, 저는 아무것도 아닌 듯싶거든요. 어찌 보면 저는 고3 때보다 별로 나아지지 않았어요. 늘 불안하고 초조하기만 해요. 그때는 좋은 대학만 가면 괜찮으리라 생각했지요. 하지만 원하는 학교에 다녔어도 별로 즐겁지 않았어요. 그래서 입학과 동시에 바로 취업 공부에 매달렸지요. 괜찮은 직장만 얻으면 편안해질 줄 알았거든요. 막상 취직하고 보니, 그것도 아니더라고요. 지금은 더 높은 자리에 오르기 위해, 더 많은 돈을 모으기 위해 아득바득 살고 있어요. 가끔 후회와 의심이 찾아들곤 합니다. 과연 열심히만 살면, 더 성공하기만 하면 나는 여유 있고 행복해질까요? 지금까지의 경험에 비추면 꼭 그렇지도 않을 듯싶거든요. 저, 진짜 지쳤습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현실적인 도움말을 부탁드립니다.



A. 마라톤 경주 뛰듯 삶을 가꾸어 보세요



삶은 경마 시합이 아니다



경마

경마



문의자님의 고민, 너무 좋습니다. 아무리 호화롭고 시설이 좋아도 감옥은 감옥일 뿐이지요. 돈 많이 벌고 지위가 높으면 뭐하겠어요? 매일 초조하게 일에 쫓기며 고민과 스트레스로 자신을 갉아먹는 삶을 산다면 노예와 뭐가 다른가요? “모든 문제는 의문을 던지지 않는 데서 시작한다.” 아일랜드의 경영 사상가 찰스 핸디(Charles Handy, 1932~)의 명언입니다.


문의자님은 번 아웃(burn-out)에 빠지기 직전에 제대로 된 물음을 던지셨어요. 삶은 경마 시합이 아니에요. 죽을 둥 살 둥 달려서 1등을 했다 해 봅시다. 그런데 바로 이어서 또 레이스를 뛰라고 하면 어떨 거 같으세요? 나아가, 이번에도 1등 못하면 큰일 난다며 다그침까지 받는다면요? 문의자님의 상황이 딱 이렇답니다. 그러니 지쳐 나가떨어지지 않으려면 당연히 “경기에 또 나가는 것이 과연 맞을까?”라고 스스로 물어야지요. 문의자님은 꼭 필요한 물음을 적절한 때에, 올바르게 던지신 거랍니다. 이제 제대로 된 답만 찾으시면 되겠어요.



늘‘지금보다 돈이 더 있어야’만족!



찰스 핸디(좌)와 록펠러(우) (이미지 출처: cullenscholefield, 위키백과)

찰스 핸디(좌)와 록펠러(우) (이미지 출처: cullenscholefield, 위키백과)



백만장자였던 록펠러(John Davison Rockefeller, 1839~1937)에게 어느 기자가 물었다고 합니다. “당신에게 충분한 재산은 어느 정도입니까?” 록펠러의 답은 이랬데요. “지금보다 돈이 ‘조금 더 있는’ 상태랍니다.” 그는 세계 최고 부자였어요. 그런데도 왜 끝없이 사업을 벌였는지 이해가 되는 답변이네요. 아무리 가진 게 많아도, ‘조금 더 가져야’ 충분한 상태일 터이니, 계속 애쓸 수밖에 없겠지요. 먹을 것, 마실 것은 부족하지만 않으면 늘 충분합니다. 남아봤자 결국 버리게 될 터이니까요. 하지만 돈과 명예, 권력은 달라요. 아무리 많이 거두어도, 그 이상을 끝없이 바라게 되지요. 남과 비교하며 내가 가진 것을 가늠하게 되는 까닭입니다. 오래된 지혜의 말처럼, “욕망은 채울 수 있어도, 탐욕은 채울 길이 없”어요. 그래서 찰스 핸디는 탐욕의 고삐를 꼭 조이라고 충고하는데요, 무엇보다 생활하는데 ‘꼭 필요한 만큼’을 정해 놓고 그 이상을 벌지 않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무슨 말일까요?


실제로 찰스 핸디는 비교적 편안하게 살려면 일 년에 얼마 정도를 벌어야 할지를 미리 가늠했다고 해요. 그런 후, 생활하는 데 꼭 필요한 수입을 얻을 만큼만 일했다고 합니다. 나머지 시간은 ‘충분한 삶’을 누리는 데 썼다고 하네요. 찰스 핸디는 “강제적이 아니라 자신의 의지로 가난해질 수 있다면, 가난도 축복이다.”라고 말합니다. 더 많이 벌고 더 높게 이루고 싶다는 욕심을 내려놓을 수 있게 된다면 삶이 훨씬 풍요로워진다는 거예요.



정말 중요한 것은 숫자로 나타나지 않아



통계

수치



조금 더 자세히 설명해 드릴게요. 봉급이나 성적은 숫자로 딱 부러지게 나타나요. 사람들은 숫자로, 석차로 표시되는 일에 매달립니다. 수치를 보면 누가 더 잘하고 더 결과가 좋은지가 분명하게 보이잖아요? 그렇기에 사람들의 관심은 여기에 온통 사로잡힙니다. “어떻게 하면 더 많은, 더 높은 숫자에 다다르게 될까?” 경쟁으로 가득 찬 우리의 일상을 사로잡는 고민이지요. 그렇지만 찰스 핸디는 한숨을 쉬며 이렇게 말해요. “돈이 성공의 기준이라면 숫자가 너희의 눈빛을 반짝거리게 만들지는 몰라도, 삶과 일의 진정한 목적을 잃어버리게 될 것이다.”


예를 들어볼까요? 학교 다닐 때 숫자로 표시되는 점수와 등수에 목을 매지 않으셨어요? 하지만 졸업한 지금은 어떤 친구가 보고 싶으신가요? 공부 잘했던 아이일까요, 내 말을 잘 들어 주던 따뜻한 급우일까요? 수학 문제 풀이에 매달렸던 시간과 친구와 진심 어린 대화를 나누었던 추억 중 어느 쪽이 더 소중한 기억이라고 생각하세요?


정말 중요한 것은 숫자로 나타나지 않는답니다. 찰스 핸디는 삶의 ‘기회비용’을 잃지 않도록 조심하라고 힘주어 말합니다.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 더 높은 자리에 올라가기 위해, 내 삶에서 포기해야 하는 것들이 생기곤 해요. “일에서의 성공이 삶에서의 실패를 의미”하게 되는 상황은 그래서 벌어지지요. 직업적으로는 큰 성과를 거두었지만 가정은 불행해진 경우가, 세상 사람들은 우러러보지만 정작 자신은 우울함에 시달리는 이들이 얼마나 많은지 떠올려 보세요.


찰스 핸디에 따르면, 세상에는 ‘돈을 벌려고 하는 일’, ‘의무로 하는 일’, ‘재미로 하는 일’, ‘(테니스처럼) 기량을 높이려 하는 일’ 등 여러 가지 활동이 있답니다. 어떠세요, 문의자님? 왜 성공할수록 허전하다고 느끼셨는지 이해되지 않으세요? 문의자님은 ‘돈을 벌려고 하는 일’, ‘의무로 하는 일’에 성실하고 치열하게 매달리셨어요. 이제는 숫자로, 등수로 나타나지 않는 중요한 일들에 신경쓰셔야 합니다. 지금부터는 더 구체적으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들려드리도록 할게요.



삶은 자아를 발견해가는 여정이다



산책

산책



찰스 핸디는 아침을 먹기 전, 40분을 오롯이 산책한다고 해요. 그는 “일만 하고 놀지 않으면 바보가 된다.(All work and no play makes Jack a dull boy.)”는 영어 속담으로 자기가 왜 꾸준히 산책하는지를 설명합니다. 그에 따르면, 해야 할 일에서 놓여난 느슨한 순간이 중요하다고 해요. 느릿느릿 걸으면서 생각을 정리해 보세요. “무엇이 중요한데?”라며 자신에게 되물으면서 말이지요. 찰스 핸디는 무엇을 할 것인가 만큼이나, 내가 어떤 사람이 될 것인가라는 물음이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합니다. ‘더욱 크고 많은’ 삶뿐 아니라, ‘더욱 좋은 삶’은 무엇인지를 늘 생각하도록 하세요. 좋은 삶을 만들기 위해 나는 구체적으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요?


마지막으로 찰스 핸디의 책 『텅 빈 레인코트』에 나오는 혜안이 담긴 이야기를 전해드릴게요. 옛날에 한 랍비가 자신은 재능이 없어서 모세같이 위대한 인물이 되지 못한다며 불평을 늘어놓았다고 해요. 어느 날 신이 나타나 랍비에게 이렇게 말했답니다. “저승에서 나는 너에게 왜 모세가 아니었냐고 묻지 않을 거야. 왜 너다운 너가 아니었냐고 따질 것이야.”


인생은 자아를 발견해 가는 여정입니다. 문의자님은 어떤 사람이 되어가고 계시나요? 수치로 나타나는 것들을 내려놓고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를 떠올려 보세요. 중요한 것은 숫자로 보여 주기 어렵답니다. 지금까지의 삶이 1등을 차지하려는 경주마 같았다면, 이제는 마라톤 뛰는 사람처럼 호흡을 고르며 천천히, 꾸준하게 자신을 가꾸어 보세요. 문의자님의 멋진 문제의식, 그리고 건강한 미래를 응원합니다!




◆ 목마른 당신을 위한 〈인생 비타민🍊〉 ◆


CHARLES HANDY 『텅 빈 레인코트: 왜 우리는 성공할수록 허전해지는가』 찰스핸디 / 『삶이 던지는 질문은 언제나 같다: 시대의 지성 핸디가 전하는 삶의 철학』 찰스 핸디 지음|강주현 옮김

책 『텅 빈 레인코트』(좌)와 책 『삶이 던지는 물음은 언제나 같다』(우) 표지 (이미지 출처: 알라딘)


①찰스 핸디 지음, 강혜정 옮김, 『텅 빈 레인코트』, 21세기북스, 2007년

기업의 평균 수명은 40년 정도라고 합니다. 그래서 찰스 핸디는 좋은 회사란 ‘살아남은 기업’이라고 합니다. 단기간 놀라운 성과를 거두는 곳보다, 지속가능하게 일을 해나가는 기업이 결국 위대하다는 뜻입니다. 자본주의를 사는 우리는 이 점을 자주 잊어버리곤 합니다. 그래서 성과를 위해 무리를 하다 결국 엎어지고 말지요. 겉은 화려하나 속은 비어버린 ‘텅 빈 레인코트’는 경쟁에서 성공을 거두고 있지만 허전함과 무의미 속에서 삶이 스러지는 우리 인생을 상징합니다. 이 책을 읽으면, 내 삶이 왜 번아웃되고 있는지, 여기에서 벗어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지혜를 얻을 수 있으실 거예요.


②찰스 핸디 지음, 강주헌 옮김, 『삶이 던지는 물음은 언제나 같다』, 인플루엔셜, 2022년

찰스 핸디가 손주들에게 보낸 편지를 모은 책입니다. 삶의 만년에 다다른 경영 사상가가 깨달은 삶의 지혜가 오롯이 담겨 있습니다. 그는 좋은 삶을 살려면 “의문을 제기하는 데서 시작하고 불확실한 것을 즐기는 철학”이 꼭 필요하고 강조합니다. 그리고 사과가 느닷없이 우리 무릎 위에 떨어지는 상황을 맞고 싶다면, 무엇보다 과수원에 있어야 한다고 말하는데요, 우리는 행복해지고 싶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다시피 합니다. 그러나 과연 우리는 자신을 행복해질 만한 상황에 놓아 두고 있을까요? 깊은 지혜를 담은 책입니다. 꼭 읽어 보세요

 



[MZ 세대와 함께 하는 철학 카페] 9. “왜 너는 너 다운 너가 되지 않았지?” (feat. 찰스 핸디)

- 지난 글: [MZ 세대와 함께 하는 철학 카페] 8. 후회하지 않고 휴식을 즐기려면? (feat. 버트런드 러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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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광복
안광복

철학 교사. 인문360° 기획위원
중동고 철학 교사, 철학 박사. 서강대학교 철학과에서 『소크라테스 대화법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일상 속에서 강연과 집필, 철학 상담 등을 통해 철학함을 펼치는 임상(臨床)철학자이기도 하다. 『서툰 인생을 위한 철학 수업』, 『도서관 옆 철학 카페』, 『처음 읽는 서양 철학사』, 『철학 역사를 만나다』, 『우리가 매혹된 사상들』, 『열일곱 살의 인생론』, 『나는 이 질문이 불편하다』, 『철학으로 휴식하라』 『식탁은 에피쿠로스처럼』 등의 책들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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