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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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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 년의 반복’… 1918년 인플루엔자와 2019년 코로나 바이러스

- 그 장면 전후사의 재인식 -

by 서희원 / 2021.05.17

그 장면 전후사의 재인식은? 영화, 드라마 등 일반시민들에게 익숙한 대중문화콘텐츠를 통해 소개되고 있는 역사 속 특정 장면은 그 앞뒤로 어떤 시대적 상황과 맥락, 역사적 진실과 논란 등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걸까.  역사 전문가들의 친절한 소개와 설명을 통해 그동안 피상적으로 접했던 역사적 사실에 대해 보다 구체적이고 가깝게 다가가는 시간을 가져보고자 한다.



우리들은 2020년 1월부터 한국에서 전파되기 시작한 코로나19의 양상을 목격하였고, 미디어를 통해 제공되는 질병과 감염에 대한 과학적 정보들에 익숙하다. 이 시선으로 본다면, 1919년 11월 18일에 있었던, 소설에서는 12월 18일로 기록된, P목사의 장례식에 운집한 기독교인들의 모습과 통곡, 연설, 슬픔을 동감하는 밀접한 접촉으로 진행된 예식이 낯설지 않을 것이며, 이를 애도의 시선으로만 바라볼 수 없을 것이다.



1919년, 『창조』, 「생명의 봄」



문학과지성사 한국문학전집 전영택 중단편선 화수분

전영택 작가의 소설집 『화수분』. 중편 「생명의 봄」이 실려있다. (이미지 출처: 문학과지성사)



한국 최초의 문예 동인지 『창조』에 1920년 3월부터 7월까지 연재된 전영택의 중편 「생명의 봄」은 평양이라는 구체적 공간을 배경으로 작중 인물들이 경험하는 1919년 12월 18일부터 1920년 1월 1일까지의 2주간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생명의 봄」은 인상적인 첫 장면으로 시작된다. 작중 서술자는 주인공 나영순의 시선을 따라 한겨울의 평양 풍경을 묘사하며, 남산현교회의 예배당으로 독자를 인도한다. 나영순의 내면을 쫓아가는 작중 서술자의 시선에 포착된 평양의 겨울은 쓸쓸하다 못해 참혹하고, 아름다워 보이지만 어딘가 불길함을 잔뜩 내재한 풍경은 곳곳에서 갑작스럽게 터지는 광기 어린 웃음과 혼잣말로 균열을 드러낸다. 대동강 건너로 보이는 문수봉은 “백설로 소복”을 입은 듯하고, 이른 아침이라 사람이 많지 않은 거리엔 “머리 깎은 미친 여인이” “담 모퉁이에 서서 덜덜 떨면서도, 빙글빙글 웃으면서 무어라고 혼잣소리를 중얼거리고 있다.”1)

1) 전영택, 「생명의 봄」, 『화수분-전영택 중단편선-』, 문학과지성사, 2008, 52쪽, 이후 이 책에서의 인용은 구절 옆에 쪽수 병기.



평양 최초의 감리교회였던 남산현교회

평양 최초의 감리교회였던 남산현교회(이미지 출처: 한목기념예배당)



남산현교회는 1896년 건립된 평양 최초의 감리교회로 “평양 내성 서남부 성벽 바로 안쪽” “평양 시내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전망 좋은 언덕”2)에 위치하고 있었다. 나영순이 남산현교회를 찾아가는 이유는 그곳에서 “목사 P○○씨”(53쪽)의 장례식이 거행될 예정이고, 나영순은 조문 낭독의 책무를 맡았기 때문이다. “조선의 예루살렘”3)이라고 불렸던 평양이고, 기독교인이 아니라고 해도 3·1운동에 참여하여 옥사한 P목사의 억울한 죽음을 기꺼이 애도하기 위해 남산현교회를 찾은 사람은 그 수를 정확하게 헤아릴 수 없이 많다. 

2) 이덕주, 『남산재 사람들-독립운동의 요람-』, 그물, 2015, 50쪽. 

3) 「조선의 예루살렘 평양에 노회, 부인회, 각종 대회 개최」, 『동아일보』, 1934. 9. 5.


길가엔 “팔에 베 헝겊으로 두른 이들이 많이 말도 없이”(52~53쪽) 장례식장으로 향하고 있고, “회당 안에는 흰옷 입은 남녀노소 수천 명이 깜짝 소리 없이 가득히 들어앉았다.”(53쪽) 주례자 M목사의 인사말로 식은 거행되고, 영순은 준비한 조문을 슬픈 목소리로, 아니 “손이 떨리고 발이 떨리고 아니 온몸이 떨리고 따라서 목소리가 떨리”(55쪽)는 비통한 마음으로 읽어나간다. “오호애재통재라, 유시 1919년 12월 15일 오전 아홉 시에 고 목사 P○○씨 엄연 별세하시니 이 어이한 일인고. 이 꿈이 아닌가. 꿈이라면이거니와 참이라면 이 일을 어찌하리오. (중략) 아, 이 장지를 이루기 전에, 이번 ○○○○○○ 사건에 체포되어 입감하시더니, 그 철창의 몹쓸 고초로 인함인지 천만 불행히 병마의 침습을 받아서 마침내 자기 생명을 잃었으니, 이런 절절히 원통하고, 한없이 아픈 일이 어데 있으리오.”(54~55쪽)4)

4) P목사가 연루되어 체포된 “○○○○○○ 사건”은 ‘기미 독립 만세 사건’으로 해석된다. 인용하고 있는 문학과지성사 판본에서는 “○○○○○ 사건”이라고 편집했지만, 원문이 게재된 『창조』 5호에는 총 여섯 글자의 “○○○○○○ 사건”으로 표기되어 있다. 인용은 원문을 참고해 “○○○○○○ 사건”으로 수정하였다. 이에 대한 연구로는 김영민의 「『창조』와 3·1운동」(『한국민족문화』 69호, 부산대학교 한국민족문화연구소, 2018)이 있다. 


나영순의 조문에 상세히 적힌 P목사의 사연과 곡절은 식민지인의 참담한 상황과 억눌린 마음을 상징하는 비극적 사건이 되어 장례식에 참석한 조문객들의 음울한 마음과 깊게 공명한다. “당내에 가득한 수천 명 회중은 모두 목을 놓아 큰 소리로 통곡한다. 이 모퉁이 저 모퉁이에서 엉엉 우는 소리, 흑흑 느끼는 소리는 졸연히 그치지 아니한다.”(55쪽) 장례식의 비감을 더욱 고조시키는 것은 자식을 잃은 “고인의 늙은 아버지의 아픈 울음소리와 절통한 부르짖음”(56쪽)으로 이는 듣는 사람들의 애간장을 녹이는 삶의 끔찍한 비명과도 같다. 비통한 울음과 아픈 사람들의 기침, “여러분 안녕히 계십쇼. 나는 아버지한테로 갑니다”(58쪽)라는 절규와 사람들의 통곡 속에서 진행된 남산현교회의 장례식은 끝이 나고, “고인의 영관은” “남녀 학생들에게 들리어서” 회당을 거쳐 평양의 “서문 거리로 종로로 신작로로 칠성문까지 연달아 나아간다.”(58쪽) 


영순이 파악하기에 이 장례식에 모인 사람은 대략 “삼천 명은 될 듯한데, 성내의 웬만한 교인이 거의 다 온 모양이요, 교인 아닌 신사도 많이”(58쪽) 왔다. 그들은 영관을 따라 평양 시내를 행진하고, 지나가는 고인의 마지막 모습에 “시가의 상인들은 매매를 그치고, 행인은 걸음을 멈추고 P목사의 영에게 경의를 표한다.”(58쪽) 나영순은 이 행렬을 따라 걷다 고인에 대한 애도보다는 “산 사람을 구해야 되겠다”(59쪽)는 자신의 긴박한 사정을 떠올리고는 아내가 수감된 평양 감옥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작가의 실제 생활과 경험을 재현하라!



전영택

소설가 전영택(1894~1968)(이미지 출처: 혜문서관)



앞에서 지적한 것처럼 「생명의 봄」은 작중 인물 나영순이 경험하는 1919년 12월 18일부터 1920년 1월 1일까지의 시간과 평양이라는 공간의 체험을 기록하고 있지만, 이는 작가 전영택의 상상력에 기반한 허구의 일들이 아니다. 나영순은 자신을 소개하며 “현재의 직업이 전도사요 교회 학교의 교사”(91쪽)라고 밝히는 동시에 “조선에 하나밖에 없는 (서울서 하는) 순문예잡지 『창작』에 「오동준」이라는 단편소설 한 개를”(93쪽) 발표한 신출내기 소설가라고 적고 있다. 이는 작가 전영택의 전기적 사실과 일치하는 것으로, 1919년 당시 그는 남산현교회의 전도사이며 교회에서 경영하는 광성 학교의 영어 교사로 재직하고 있었고, 『창조』의 동인으로 활동하며 ‘오동준’이란 인물을 주인공으로 한 단편소설 「운명」(『창조』 3호, 1919. 12)을 발표한 전력이 있다. 또한 나영순이 P목사의 장례식에 참석한 직후 평양 감옥에 수감된 아내를 면회하러 가는 것처럼, 전영택의 아내 채혜수 역시 독립운동을 주도한 혐의로 결혼식 다음 날 체포되어 평양 감옥에 수감된 상태였다.



전영택 소설가가 동인으로 활동했던 잡지 『창조』

전영택 소설가가 동인으로 활동했던 잡지 『창조』(이미지 출처: 코베이옥션)



작가의 상상력이란 것이 실제 삶의 경험을 통해 배양되는 것임은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전영택의 소설 작법은 삶의 부분적 참조나 이를 통한 허구의 발아가 아니라 경험의 가감 없는 사실적 소묘에 훨씬 가깝다. 이러한 창작 방법은 일본 유학을 통해 문학을 접한 전영택의 이력과 독서 경험에서 연유를 찾을 수 있다. 전영택은 1912년 일본 도쿄의 청산학원에 편입하며 유학 생활을 시작했고 1919년 1월에 김동인 등과 함께 『창조』를 발간하고 유학생 독립운동에 참여한 후 3월에 귀국하였다. 이 시기 일본 문단의 흐름을 이끌던 것은 다야마 가타이(일본의 소설가, 1871~1930)를 대표로 하는 자연주의이다. 


일본의 자연주의는 상상력을 바탕으로 허구적 서사를 창안하며 이를 통해 인간을 과학적으로 관찰하려는 유럽의 자연주의와는 달리 “작가의 사생활을 소설 속에서 충실하게 객관적으로 재현함으로써 개인의 자아를 탐구하는 것을 ‘제일의(第一義)’로 삼아 무엇보다 중요시”5)하였다. 유학을 통해 문학을 본격적으로 접한 전영택에게 있어 진정한 자아란, 일본의 자연주의자들이 그랬던 것처럼, 실제 경험한 삶에서 탐구되는 것이었고, 이를 충실히 재현하는 것이 소설의 예술적 핵심에 다가가는 길이었던 것이다.

5) 스즈키 토미, 『이야기된 자기-일본 근대성의 형성과 사소설담론-』, 한일문학연구회 옮김, 생각의나무, 2004, 23쪽.


「생명의 봄」은 작가 전영택의 전기적 사실만이 아니라 작품에 나오는 다수의 사건들이 실화인데, 그중 소설의 첫 장면을 장식하는 P목사의 장례식 역시 그렇다. 전영택은 「생명의 봄」을 연재하기 시작한 『창조』 5호의 편집 후기에 이 작품은 “좀 엄숙한 마음으로 읽어”달라고 하며, 그 이유를 “그 중의 P목사의 장식(葬式)은 사실이외다. 12월은 11월로 알아주십쇼”6)라고 밝히고 있다. 

6) 「마금나믄말(교정을 마치고)」, 『창조』5호, 1920. 3, 100쪽. 


전영택이 이후 자신의 문단 생활을 회고한 여러 글에서 밝히고 있는 것―“이 「생명의 봄」은 현역 작가 박영준 씨의 선친 박석훈 목사가 만세 사건으로 옥사하였을 때에 전교회와 시민이 합세하여 눈물로 장례식을 거행하는 광경으로 첫 장면이 시작된 것”7)―처럼 P목사는 1919년 당시 남산현교회의 부담임 목사였던 박석훈이다. 평양 감리교의 선교 활동과 남산현교회의 역사를 탐구한 연구서에는 박석훈 목사가 “독립선언식을 주도한 후 곧바로 경찰에 체포되어 혹독한 고문을 받고 검찰에 이송되었는데, 고문으로 인해 건강을 해쳐 결국 11월 15일에 숨을 거두었다”8)고 기록되어 있다. 

7) 전영택, 「문단의 그 시절을 회고함(1950)」, 『늘봄 전영택 전집』 3권, 표언복 엮음, 목원대학교출판부, 1994, 494쪽. 이러한 전영택의 회고는 「『창조』와 『조선문단』과 나」(1955), 「나의 문단 자서전-그 시대의 나의 생활회고기-」(1956) 등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8) 이덕주, 앞의 책, 172쪽.

 

전영택의 말처럼 그는 11월 18일에 거행된 장례식의 시간을 한 달 뒤인 12월 18일로 바꿔 소설에 담아낸 것이다. 그 이유는 주인공 나영순이 경험하는 일련의 사건을 서사적으로 밀접하게 연관시키기 위한 것으로, 그리고 “죽음의 겨울 지나가면 생명의 봄이 돌아오네”(75쪽)라는 소설의 의도된 주제와 기독교적 믿음을 세말과 신년이라는 시간 속에 연속적으로 배치하기 위한 것으로 판단된다.



인플루엔자 그리고 죽음의 풍경



1918년 세계적으로 유행했던 스페인 독감(이미지 출처: 위키피디아)

1918년 세계적으로 유행했던 스페인 독감(이미지 출처: 위키피디아)



하지만 과거를 탐색하는 시야의 초점을 3·1운동과 같은 역사적 사건에 맞추지 않고 당대의 사람들이 살아가던 구체적 삶의 현실로 돌리면 P목사의 장례식은 새로운 민족적, 정치적 광명으로 사람들을 인도하는 ‘겨울’의 종지부가 아니라 아직 끝나지 않은 팬데믹이 다시 발흥하는 비극의 서막과도 같다. P목사의 장례식이 거행되고 며칠 후 영순의 아내 영선은 가출옥으로 감옥에서 출소하지만 그녀는 “그날 밤부터는 감옥에서 들린 유행성 감기로 기침이 나고 호흡이 곤란하고 두통이 나서 앓기를 시작하였다.”(95쪽) 


유행성 감기라고 하면 환절기에 흔히 걸리는 가벼운 질환이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영선이 걸린 감기는 며칠간의 고열과 근육통을 선사하고 사라지는 일반적 독감과는 다른 1918년의 인플루엔자이다. 흔히 ‘스페인 독감’이라고 불렸던 1918년 인플루엔자는 1920년까지 지속된 것으로 기록되어 있는데, 1918년 봄부터 여름까지 가벼운 1차 유행이, 1918년 가을부터 1919년 봄까지 전 지구적인 규모의 심각한 2차 대유행이, 그리고 1919년 가을과 겨울에 2차 대유행만큼은 아니지만 상당한 희생자를 낳은 3차 대유행이 있었다.9) 이 감염병으로 인한 전 세계의 사망자는 적게는 2,000만 명에서 많게는 당시 세계 인구의 5% 이상인 1억 명에 이른다고 한다.10) 

9) 1918년 인플루엔자의 세 번에 걸친 대유행에 대해서는 앨프리드 W. 크로스비의 『인류 최대의 재앙, 1918년 인플루엔자』(김서형 옮김, 서해문집, 2010)를 참고할 것. 

10) 마이크 데이비스, 『조류독감』, 정병선 옮김, 돌베개, 2008, 36~37쪽.


식민지 조선에도 그 피해는 막심했고, 1918년 한해에만 인플루엔자로 인한 사망자가 최소 143,787명에서 최대 203,107명인 것으로 조사되고 있다.11) 「생명의 봄」에 적힌 서사적 시간을 참조하자면 전영택이 기록하고 있는 것은 1918년 인플루엔자의 3차 대유행 시기이고, 그 상황은 그리스 비극의 모든 서사를 압축해 놓은 것처럼 비참하다.

11) 이상원, 『우리나라 신종 인플루엔자 대유행 예측 모델링 및 1918년 대유행에 대한 적용과 분석』, 충북대학교 의학박사논문, 2009, 17~21쪽. 



이때의 유행성 감기는 그 형세가 자못 맹렬하였다. 교회는 앓는 사람으로 출석이 반이나 감해지고 이 집 저 집서 그치지 아니하고 죽어 나간다. 하루에 공동묘지로 나가는 수가 평균 오십 인이 넘는다 한다. 그것도 꼭 젊은이요 그중에서도 젊은 부인이라 한다.


「생명의 봄」 95쪽


유행성 감기로 입원하는 사람이 너무 많아서 영선은 일등실에를 들어가지 못하고 보통실에 들어가기 때문에 나중에는 한 방의 다른 사람도 같은 병으로 입원한 사람이 많았다. 처음에는 어떤 전도사의 부인이 그 딸의 병으로 입원하였다가 사흘 만에 죽은 아이를 데리고 나갔다. 그 다음에 어떤 모녀 두 사람이 병은 다 나은 것을 한 양생 거리로 들어와 있다가 무사히 나가고, 그 후에 어떤 젊은 부인이 여덟 살 난 아들을 데리고 둘이 인플루엔자로 입원하였다가 이틀 만에 아들을 두어두고 죽어 나갔다. 그는 바로 영선의 누운 침대 옆에 있었다. 영선은 그가 마지막에 “아이 죽겠소. 아이 죽겠소” 야단하는 것과 군소리하고 헛손질하는 것과 벌거벗은 몸으로 뛰어나가는 것을 보았다. 숨이 차차 차차 높아가다가 최후의 괴로운 부르짖음을 발하고 차차 숨소리가 낮아지다가 종내 목숨이 끊어지는 것을 바로 두어 자 사이에 두고 보았다. 아니 보려고 힘썼지만 아니 볼 수가 없었다.


「생명의 봄」 110~111쪽



작중 서술자의 보고는 역사적 기록을 통해서는 쉽게 접할 수 없는 당대의 참담한 상황을 독자들의 눈앞에 펼쳐준다. 교회의 출석자가 절반으로 떨어졌다는 진술에서 알 수 있는 확진의 규모, 공동묘지에 안치되지 못하고 들판에 버려지는 것이 일쑤인 하층민들의 상황을 고려한다면 최소한의 수치인 것이 분명한 매일 50명 이상의 사망자, 사흘이나 이틀이라는 시간의 경과가 알려주는 빠른 병세와 그에 따른 급격한 죽음까지 전영택의 「생명의 봄」은 확진자나 사망자의 숫자로만 기록되어 있는 1918년 인플루엔자에 대한 구체적인 진술을 담고 있으며, 죽어가는 자들의 고통과 비참에 대한 생생한 증언이 기록되어 있다. 


하지만 이보다 주의 깊게 보아야 할 것은 「생명의 봄」의 서사와 그것들의 연결이며, 제시된 장면을 통해 접촉하는 인물들의 양상과 이동 경로, 이를 통해 짐작할 수 있는 감염의 방식이다. 이는 대규모의 집단 감염과 면역이 있었던 1918년 2차 대유행 이후 종식되었다고 판단된 인플루엔자의 3차 대유행이 어떠한 방식으로 다시금 진행되었는지 짐작하게 할 수 있는 단서를 제공하고 있기 때문이다. 

 

「생명의 봄」의 서사를 통해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질병의 대유행이 있기 전에, 취조와 고문에 의해 쇠약해진 P목사가 감옥에서 병에 걸려 사망했다는 사실과 대규모의 인원이 참석한 장례식이 거행되었다는 것, 그리고 나영순의 아내 영선이 감옥에서 걸린 인플루엔자로 인해 가출옥하였다는 점이다. P목사의 경우 “철창의 몹쓸 고초로 인함인지 천만 불행히 병마의 침습을 받아서”(55쪽) 죽음에 이르게 되었다고 기술되어 있어 그 질병이 인플루엔자에 의한 것인지 분명하게 확신할 수 없지만, 영선의 경우 “감옥에서 들린 유행성 감기”(95쪽)라고 명기되어 있기 때문에 P목사를 사망에 이르게 한 질병 역시 인플루엔자와 관련이 있을 확률은 매우 높다고 판단된다. 


감옥이라는 공간은 특유의 폐쇄성, 충분한 거리두기가 불가능한 죄수들의 열악한 수감 방식, 각종 질병이 발생하기 쉬운 비위생적 환경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사회적으로 종식되었다고 판단된 질병도 어렵지 않게 배양할 수 있고, 면회나 가출옥, 감염된 시체의 반출 등을 통해 외부로 질병을 확산시킬 수 있다. P목사의 장례식 이후 교회에 출석하는 기독교인의 절반이 인플루엔자에 감염될 만큼 급속도로 병이 확산되었다는 사실은 인플루엔자가 어떠한 장소에서 배양되었고, 어떠한 방식으로 지역 공동체에 퍼져나갔는지에 대한 구체적 추론을 가능하게 한다. 



백 년의 반복, 우리가 마주한 확실한 현실



지구촌의 전무후무한 빛 신천지예수교회 2019년 10개월만에 103,764명 수료! 앞으로도 예수님의 사랑과 진리를 전하는 아름다운 교회 되겠습니다. 신천지예수교 대구교회 성도 일동

코로나19 대구 신천지 교회(이미지 출처: 한국일보)



2021년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은 2020년 1월부터 한국에서 전파되기 시작한 코로나19의 양상을 목격하였고, 미디어를 통해 제공되는 질병과 감염에 대한 과학적 정보들에 익숙하다. 이 시선으로 본다면, 1919년 11월 18일에 있었던, 소설에서는 12월 18일로 기록된, P목사의 장례식에 운집한 기독교인들의 모습과 통곡, 연설, 슬픔을 동감하는 밀접한 접촉으로 진행된 예식이 낯설지 않을 것이며, 이를 애도의 시선으로만 바라볼 수 없을 것이다. 


2019년 12월 중국에서 코로나19로 인한 환자가 처음 보고된 이후 한국에서는 2020년 1월 20일 첫 확진자가 발생하였다. 하지만 2월 18일 31번째 확진자가 나타나면서 상황은 급격하게 악화된다. 신천지 신도로 밝혀진 31번째 확진자는 증상을 숨기고, 예배를 보러 갔음이 확인되었다. 대구 경북 지역은 신천지 교인을 중심으로 대량의 확진자가 발생하기 시작하였다. 신천지 대구교회와 교주인 이만희의 친형 장례식이 있었다는 것이 확인된 청도 대남병원이 코로나19 1차 대유행의 도화선이 된 것이다. 그리고 8월에 있었던 2차 대유행은 서울 성북구에 위치한 사랑제일교회의 방역 수칙을 지키지 않은 예배와 집회에서 촉발되었다. 그로부터 1년이 훨씬 지난 지금도 우리는 코로나19로 인한 고통과 죽음을 직간접적으로 경험하고 있다. 


「생명의 봄」에 기록된 1919년의 3차 대유행과 코로나19로 인해 감염된 2020년의 기억. 이 100년을 사이에 두고 반복되고 있는 동일한 서사와 병리학적 인과가 우리에게 알려주는 것은 무엇일까? 이것은 역사의 지독한 우연을 말하는가, 아니면 끔찍한 필연을 알려주는가. 헤겔은 『역사철학강의』에서 로마의 시저에 대해서 언급하며 이렇게 쓴 바 있다. 


“본래 국가의 대변혁이란 그것이 두 번 되풀이될 때 이른바 사람들에게 올바른 것으로 공인이 되는 것이다. 나폴레옹이 두 번 패배하거나 부르봉 왕조가 두 번 추방되거나 한 것도 그 예이다. 처음에는 단순한 우연 내지 가능성으로 생각되었던 것이 되풀이됨으로써 확실한 현실이 되는 것이다.”12)

12) G.W.F. 헤겔, 권기철 옮김, 『역사철학강의』, 동서문화사, 2008, 306쪽.


그렇다. 전 세계를 배회하는 코로나19는 하나의 유령이나 악몽이 아니다. 우리가 맞이한 확실한 현실이다. 백 년을 사이에 둔 반복이 우리에게 알려줬던 것은 그것이다. 후회처럼 깨달음도, 너무 늦게 온다.



[그 장면 전후사의 재인식] ‘백 년의 반복’… 1918년 인플루엔자와 2019년 코로나 바이러스

[그 장면 전후사의 재인식] 역사적 승리 맞지만, 일본군 규모 전력 등은 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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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희원
서희원
문학평론가, 동국대학교 다르마칼리지 강의초빙교수
2009년 세계일보, 문화일보 평론 신춘문예 당선 2019년 현대문학상 평론 수상 현재 월간 [현대문학] 편집자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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