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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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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 환경/생태 사회/이슈

인류세는 인류 종말로 귀결할까

- 이달의 답변 -

by 안치용 / 2020.10.08

10월 [이달의 답변] 인류세는 인류 종말로 귀결할까 ④

10월 [이달의 질문] 인류세, 도대체 무엇이고 어떻게 바라봐야 하나요? ③

9월 [이달의 답변] 내버려두면 자칫 적폐가 될 우리 문화현실 ②

9월 [이달의 질문] 전통과 적폐는 어떻게 다른가? ①





인문 쟁점은? 우리 시대가 마주하고 있는 여러 인문학적 과제들을 각 분야 전문가들의 깊은 사색, 허심탄회한 대화 등을 통해 해결의 실마리를 찾고 더 깊은 고민을 나누고자 만든 코너입니다. 매월 국내 인문 분야 전문가 두 사람이 우리들이 한 번쯤 짚어봐야 할만한 인문적인 질문(고민)을 던지고 여기에 진지한 답변을 하는 방식으로 진행합니다.


 

[이달의 질문] 인류세(人類世), 도대체 무엇이고 어떻게 바라봐야 하나요? / 질문자 - 언론인 성일권


Q. 인류세가 대체 무엇일까요? 책을 들춰봐도 이에 대한 논의를 찾기 힘듭니다. 우리 사회의 지속가능과 사회책임 분야에서 독보적인 활동을 해오신 안치용 박사님(지속가능저널 발행인 겸 한국CSR연구소 소장)께 고견을 구합니다.


[이달의 답변] / 답변자 - 평론가 안치용



 

A. 인류세는 인류 종말로 귀결할까



KFC만큼은 아니겠지만 코카콜라 또한 기술화석의 형성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이름이어서, 수백만 년 뒤에는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가 ‘호모 사피엔스 KFC 코카콜라’로 명명되고, 잠시 등장한 인류세 대신 ‘닭세’라는 지질시대를 사용하지 말란 법이 없어 보인다. 여기서 궁금증을 느끼는 건 후대의 이러한 가상의 명명자가 인류세의 명명자와 같은 생명종일 가능성이 얼마나 될까......

 

인류세의 시대를 맞은 지구

▲ 인류세의 시대를 맞은 지구(이미지 출처 : pixabay)



인류세(人類世, Anthropocene)는 지구온난화와 기후위기 시대를 가장 극적으로 표현한 말이다. 전환, 혹은 재앙의 지금 시기를 표현하는 인기 용어이다. 흥미로운 사실은 이 용어가 널리 사용되고 있지만 정확한 정의가 학계에서는 내려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인류가 만든 새로운 지질시대 ‘인류세’



모호한 정의와 달리 인류세에 관한 설명은 간단하다. 1995년 오존층 연구로 노벨화학상을 받은 네덜란드 출신의 대기화학자 폴 크뤼천(Paul Crutzen)이 2000년에 처음 제안한 용어로 말하자면 21세기 개념어이다. 지질시대를 구분할 때 현존 교과서에 나오는 ‘신생대 제4기 충적세(沖積世)’라는 지질시대 최후의 시기이자 현재의 시기에 더하여 크뤼천은 ‘인류세’라는 지질시대를 새롭게 제안하였다. 신생대 제4기의 홍적세(洪積世)에 이은 충적세가 이미 끝났고, 이어서 ‘인류세’라는 새로운 지질시대가 도래하고 있다는 관점을 취한 용어이다. 


인류세란 용어에 ‘인류’가 들어간 것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인류세란 이 지질시대는 46억 년 지구 역사에서 최초로 인간이라는 특정한 생명종이 만든 지질시대이다. 지질시대라는 과학적 구분이 인간에게서 유래했으니, 지질시대에 인간이 들어간 게 대수냐는 반응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인간이 지구를 관찰하여 변화의 분절을 파악한 뒤 이름을 붙이는 행위와 인간 스스로 분절이 가능한 변화를 만들어낸 것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다. 인간이라는 생명종의 힘을 보여주는 용어인 인류세는 동시에 스스로가 가진 힘을 무분별하게 사용한 대가로 인간종이 마지막을 맞게 될 수 있다는 종말론을 내포한다. 2004년 8월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열린 유로사이언스 포럼에 참가한 각 분야 과학자들이 인류세 이론을 지지하였지만 이것이 지질학적 이론이냐는 데에는 반론이 거셌다.  


이러한 난관은 인류세란 용어가 세상에 나올 때 이미 예상됐다. 인류세의 대표적 주창자로 꼽히는 크뤼천은 지질학자가 아니다. 인류세가 지질시대를 뜻하는 만큼 이 용어는 지질학자 또는 지층학자의 권위에 의거해 확정되어야 했지만 크뤼천을 비롯하여 처음 이 개념을 주장한 이들은 그러한 학문적 권위를 갖지 못했다. 그럼에도 2016년 케이프타운에서 열린 세계지질학대회의 결론은 “인류세를 지질학적 시대들에 포함해야 한다”라는 것이었다.  


논란은 끝나지 않았는데, ‘인류세 워킹그룹’의 검토를 받아들인 이 결론은 권고사항이었고 인류세를 공식적인 지질학적 시대로 인준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모든 논란은 인류세라는 용어 자체가 과학보다는 정치에 기댄 의미를 내포한 데서 유래하였다고 봐야 한다. 이 용어의 이면에는 지구상 최상위 포식자인 인간이라는 종의 자기반성과 나아가 규탄이 자리한다. 일각에서는 그러므로 인류세를 자기파괴적 용어로 받아들이기도 한다. 



환경파괴와 오염이 주범, 닭뼈 화석 가능성도



전 세계에서 인간 1인당 연간 평균 10마리에 가까운 닭은 소비한다

▲ 전 세계에서 인간 1인당 연간 평균 10마리에 가까운 닭을 소비한다(이미지 출처 : pixabay)



인류세의 가장 큰 특징으로는 ‘자연환경 파괴와 환경오염’이 대표적으로 거론된다. 온실가스 배출로 인한 범지구적 위기는 사람들에게 인류세란 규정을 쉽게 수긍하게 만든다. 인류세의 표지 중에 가장 많이 거론된 것은 닭뼈다. 세월이 한참 흘러 20세기를 전후한 시기의 지층을 발굴하면 상상을 초월할 규모의 닭뼈 화석이 출토될 것이란 농반진반의 예측이었다. 


현생 인류인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가 먹어 치우는 닭의 양은 어마어마하다. 전 세계에서 인간 1인당 연간 평균 10마리에 가까운 닭을 소비한다. 인간이 먹고 버린 켄터키 프라이드 치킨의 뼈가 긴 시간이 지나 화석으로 대거 출토될테니 이것이 선취한 인류세의 증거라는 전망이 턱없는 것은 아닌 셈이다. 닭뼈 말고도 플라스틱, 알루미늄, 콘크리트 등이 인류세의 화석으로 분류될 것으로 예상되지만 닭뼈만큼 흔한 화석은 없을 것이다. 2016년 케이프타운 세계지질학대회에서 ‘인류세 워킹그룹’ 의장을 맡은 얀 잘라시에비치 영국 레스터대학 교수는 인류에 의해 창조된 이런 물질들의 화석을 ‘기술화석’(technofossil)이라고 정의했다. KFC만큼은 아니겠지만 코카콜라 또한 기술화석의 형성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이름이어서, 수백만 년 뒤에는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가 ‘호모 사피엔스 KFC 코카콜라’로 명명되고, 잠시 등장한 인류세 대신 ‘닭세’라는 지질시대를 사용하지 말란 법이 없어 보인다. 여기서 궁금증을 느끼는 건 후대의 이러한 가상의 명명자가 인류세의 명명자와 같은 생명종일 가능성이 얼마나 될까이다. 수백 년 뒤를 장담하지 못하는데 수백만 년 뒤를 상상했으니 의미 없는 짓 같다. 


다시 닭으로 돌아와서, 이 정도로 많은 닭을 먹기 위해선 공장식 양계가 가능해야 했으며, 이를 통한 대량생산과 기업식 유통과 상품화를 거친 대량소비는 자본주의 시스템, 그것도 글로벌하게 작동하는 자본주의 없이는 불가능했다고 할 때 인류세는 자본주의 생산과 소비, 문화와 이념 등 현 인류의 총괄적 삶과 생존의 체계를 확고하게 반영한다는 사실을 적시해야 하겠다.  


그리하여 세계생태학연구네트워크(WERN) 조정관이자 미국 빙엄턴 대학 사회학과 교수인 제이슨 W. 무어는 “인류세라는 개념이 자본주의로 인한 문제의 책임을 인류 전체로 돌린 부르주아적인 구습을 강화하는 것은 아닐지 우려가 크다”라는 입장에서 인류세 대신 ‘자본세’라는 명명법을 주장한다. 


인류세가 다소 자학적인 뉘앙스를 담은 것이 사실이라고 할 때 ‘자본세’란 용어는 분명 죄책감을 어느 정도 덜어주긴 한다. 지금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기후위기 시대의 본질을 잘 파악한 용어이기도 하다. 한데 자본세란 말로는 더는 지질학 용어로 사용할 수 없다는 게 난점이다. 자본세는 전면적인 정치적 명명법이다. 하긴 인류세 또한 지질학을 빙자한 정치적 명명인 만큼 인류세로 쓰나 자본세로 쓰나 내용이 다르지는 않다. 무어가 지적한 대로 죄책감을 약간이라도 덜 수 있어서인지 자본세는 호응을 얻지 못했고 인류세가 지질시대로든 인간 역사로든 대세가 된 듯하다. 



인류세 시작이 언제냐고 묻는 것은 무의미



인류세라는 명명법의 제안은 20세기가 끝나는 시점에 이루어졌고 이것이 21세기 개념어이긴 하지만 현실 적합성을 떠나서 인류세란 말을 사용하고자 한다면 대략적인 출발점을 정해야 한다. 크뤼천은 인류세의 시작을 1784년 제임스 와트의 증기기관 발명으로 대표되는 열기관 산업혁명이 발생한 18세기 말로 잡고 있다. 그때 이후 현재까지 지구 전체에 메탄과 이산화탄소의 함량이 눈에 띄게 증가했다. 온실가스와 지구온난화를 설명할 때 산업혁명으로 인한 온실가스 급증으로 지구 표면의 평균온도가 산업혁명 이후 약 100여 년에 0.85℃ 올랐다는 통계를 흔히 인용하는데, 크뤼천의 인류세 역시 이러한 견해와 같은 맥락에 위치한다. 19세기 탄생한 석탄ㆍ석유와 긴밀하게 연결된 이른바 ‘열-산업 자본주의(Thermo-industrial capitalism)’가 인류세의 후경(後景)이 된다. 


인류세의 개념이 채택된 후 생태계의 결정적인 변화와 생물 다양성의 상실을 근거로 인류세 시점을 1950년대로 잡으려는 입장도 있다. 그러나 인류세 시점이 언제냐는 논의는 큰 의미가 없다. 하나의 지질시대라는 것은 명백히 구분되는 특정 연도에 출발한다기보다는 점진적으로 이어지다가 변화가 생기며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동시에 앞서 지적하였듯 인류세라는 시기 구분이 과학보다는 정치에 힘입은 바가 크다고 할 때 특정 연도에서 시작을 찾으려는 시도는 덧없다고 하겠다.



끝내 인간이 승리를... ‘좋은 인류세’라는 허상



반면 과학이 아니라 정치라는 이야기는 인류세가 개념의 유희가 아니라 엄혹한 현실이란 뜻이 된다. 현실과 정치와 연결되면 더 극명하게 입장 차이가 드러난다. 이미 살펴본 대로 인류세가 엄연히 자기반성의 용어임에도 ‘좋은’ 인류세라는 전래의 근대성의 해법을 들고 나오는 이들이 존재한다. ‘좋은 인류세’란 모순어법을 굳이 감수하는 이들은 기후 위기의 위험성을 결코 과소평가하지 않지만, 근대 이래 인류가 그랬듯 인간은 이 위기 또한 극복하여 운명과 삶의 조건을 개선하는 기회로 삼을 수 있을 것이라고 호언한다. 


근대주의 혹은 계몽주의 정신을 계승한 이 부류는 낙관적인 솔루셔니스트와 예언자적 인문주의자로 크게 나뉜다고 하겠다. 두 진영 사이에는 연결과 경쟁의 다양한 서사와 상상이 펼쳐지지만, 결국 우리는 길을 찾아낼 것이란 긍정의 신화가 ‘좋은 인류세’라는 개념 뒤에 숨어 있다. 


그런 인류세가 과연 가능할까. 솔루셔니스트는 결국 기술애호가와 같은 관점을 취하며 지금이라도, 또는 조금 더 뒤라도 인류는 공동의 위기에 맞서 공동의 해법을 찾아낼 것이라고 믿는다. 그리하여 장차 인류세로 기록될 지질시대에서 닭뼈 화석이 대량으로 출토되기는 하겠지만 기후위기로 인류가 가까운 수백 년 안에 종말을 맞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이들이 기대를 거는 솔루션의 대표적 예는 디지털 경제이다. 그러나 디지털 경제는 양날의 칼이지 완벽한 해법이 아니다. 예를 들어 전기자동차는 지구온난화와 기후 위기를 해결하지 못한다. 전기를 만든 1차 에너지가 여전히 석탄과 석유라면, 전기자동차는 위기의 심각성을 가리는 착시를 불러올 뿐이다. 위기를 벗어날 수 있는 근본적인 전환은 눈에 보이는 곳과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동시에 일어나야 한다. 눈에 보이는 곳이 극적으로 과장되면 눈에 보이지 않는 곳이 더 시야에서 멀어지게 된다. 


디지털 자본주의는 산업혁명과 함께 시작된 지구 괴롭힘의 역사 속 궤적을 계속 이어가고 있다. 지금도 중국, 인도 등 세계 전역의 석탄 사용량은 절대로 줄어들지 않고 있으며 전 세계 에너지 소비는 계속 증가하고 있을 뿐이다. 생산되는 에너지의 기반 대부분은 여전히 석탄과 석유이다. 



기대주 ‘디지털 경제’ 역시 상황을 더 나쁘게...



인터넷으로 모든 시스템과 삶이 연결된 현대도시

▲ 인터넷으로 모든 시스템과 삶이 연결된 현대도시(이미지 출처 : pixabay)



디지털 경제는 암담한 상황을 개선하는 데 이바지하지 않고 있다. 오히려 상황을 더 악화하는 데 한몫한다. 디지털 경제는 전 세계 1차 에너지 소비의 4% 이상을 차지하며, 개발도상국들이 디지털 설비를 확충하고 이용도를 높이면서 매년 9%씩 소비량이 증가하고 있다. 당장 쉽게 떠올릴 수 있는 것 몇 가지만 살펴보자. 예를 들어 단말기와 인터넷망 설비를 만드는 데에 가장 많은 에너지가 들고, 각종 인터넷 장비ㆍ인터넷망ㆍ데이터센터를 가동하는 데에도 적지 않은 에너지가 소요된다. 대표적으로 노트북 1대를 생산하기까지 약 330kg의 이산화탄소가 배출되며, 팔라듐ㆍ코발트 등 금속이나 희토류 같은 원자재, 물이 대규모로 사용된다. 


사람들은 이제 침대에서 누워 있거나 전철을 타고 이동하는 등의 모든 생활에서 핸드폰을 달고 살며 하루에 몇 시간씩 동영상을 시청한다. 유튜브는 동영상을 만들고 저장하고 진열하여 전달하고 작동하는 모든 과정에서 온실가스를 배출한다. 그러나 사람들이 유튜브를 보면서 스스로가 온실가스를 배출하고 있다고 자각하기는 힘들다. 그린피스 보고서에 따르면 전 세계 인터넷 트래픽의 70%가량이 거쳐 가는 미국 버지니아주 아마존의 대형 데이터센터에서 재생 에너지를 사용하는 비중은 12%에 불과하다고 한다. 또한 인근 애팔래치아 산맥의 산봉우리들에 폭발물을 써서 터뜨리며 채굴한 석탄으로 전기를 생산해 데이터센터를 움직인다. 중국도 사정이 마찬가지다. 중국의 데이터센터가 소비하는 에너지의 73%는 석탄으로 생산한 에너지다. 4차산업혁명과 코로나19로 언택트(Untact) 경향의 강화로 사물인터넷(IOT)이 더욱 확산되고 정보유통량이 급증한다면 ‘좋은 삶’은 가능할지 모르지만 ‘좋은 인류세’는 영영 물 건너가게 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든다. 



진실 파헤치고 새로운 출발점에 서야



우리는 비록 형용모순이라 할지라도 ‘좋은 인류세’를 바란다. 그러므로 진실을 끝까지 파고들지 않는다면 좋은 인류세는 꿈도 꾸지 못하게 된다. 진실을 파고들면 무엇을 알게 될까. 아마 좋은 인류세는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며 이 원천적 불가능이 인류의 새로운 출발점이어야 한다는 정도가 아닐까. 이 출발점에서 예언자적 인문주의자들은 다시 갈린다. 희망이 없지만 그래도 존엄을 위해 희망을 얘기하는 그룹과 절망 가운데서 악착같이 희망의 흔적을 얘기하는 그룹으로. 인류가 만든 거대한 자승자박의 위기 가운데서 낙관하고 비관하는, 또 자학하거나 회피하는, 나아가 인간의 의미를 구명(究明)하기 바라는 무수한 노력과 관점이 인류세라는 용어에서 교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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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치용
안치용
평론가. 지속가능성과 SR(사회책임) 의제에 관심이 많고 정책화·제도화에 힘을 보탠다. 이 주제로 대학생·청소년을 만나 대화하는 삶을 산다. 영화·문학·신학을 공부하고 관련한 글을 쓴다. 한국CSR연구소장으로, 지속가능청년협동조합 바람 이사장 직을 함께 수행한다. 경영학 박사. 영화평론가협회 회원. 전 경향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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