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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하나의 테마, 360도 관점

인류 사회/이슈 철학

코로나와 자기 성찰, 그리고 문화의 힘

by 성해영 / 2020.06.04

'새로운 세상에 대처하는 인류의 자세' 기획 칼럼 ③

'새로운 세상에 대처하는 인류의 자세' 기획 칼럼 ②

'새로운 세상에 대처하는 인류의 자세' 기획 칼럼 ①






코로나는 우리를 비춰 보이는 거울


흔히 인문학은 ‘반성(反省)’ 혹은 ‘성찰(省察)’의 학문이라 불린다. 돌이켜 꼼꼼하게 살펴봄으로써 자신과 세계에 대한 보다 깊은 통찰을 얻는다는 취지에서다. 그런데 우리를 성찰로 이끄는 계기는 참으로 다양하다. 가깝게는 동서양의 고전을 살펴보는 것이 대표적이며, 삶의 경험들 역시 우리를 되돌아보게 만드는 소중한 기회가 된다.


인문학(人文學, humanities인간과 인간의 근원문제, 인간과 인간의 문화에 관심을 갖거나 인간의 가치와 인간만이 지닌 자기표현 능력을 바르게 이해하기 위한 과학적인 연구 방법에 관심을 갖는 학문 분야로서 인간의 사상과 문화에 관해 탐구하는 학문이다 ♦ wikipedia



최근 우리를 힘들게 만들고 있는 코로나 역시 그러하다. 코로나는 우리는 누구이며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가라는 물음을 모두에게 던졌다. 그 질문은 개인적인 차원에서 멈추지 않는다. 공동체는 왜 존재하며, 구성원들에게 어떤 의미를 지닐까 하는 것 역시 통렬하게 물었다. 모두의 일상을 정지시켰을 뿐만 아니라, 이처럼 근본적인 질문을 제기했다는 점에서도 미증유의 경험이다. 코로나는 단순히 한 나라의 의료 시스템의 효율성만을 시험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출처가 아직 규명되지 않은 이 기묘한 바이러스는 모든 나라가 치러야 하는 수능 시험과도 같다.



gloves



우리나라는 비교적 이 위기에 잘 대처하는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성공의 원인은 여러 차원에서 지적된다. 민주주의적 투명성, 높은 시민 의식, 수준 높은 과학과 의학, IT 기술을 활용한 정보 공유 시스템, 효율적인 행정 조직 등이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우리가 스스로의 모습을 재발견한다는 사실 역시 주목할 만하다. 외국 언론을 포함해 일본, 미국과 같은 선진국의 대처가 우리를 비추는 거울 역할을 하는 것이다.


1876년 강화도조약을 통해 개항을 한 이후 우리나라는 오랫동안 선진국이 되기를 갈망했다. 식민지배와 6.25의 경험은 그 열망을 더욱 간절하게 만들었다. 그런데 최근의 상황은 우리가 꿈꾸었던 선진국이 무엇인지를 되묻게 한다. 단순히 경제력이나 국민 소득이 선진국의 핵심 요건이 아니라는 점이 드러나고 있다. 미국과 일본이 단적인 사례이다. 미국은 여전히 세계 최강의 국가이지만, 요즘의 여러 모습은 우리가 기대하던 선진국의 위상과는 사뭇 다르다. 일본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닮기를 희망했던 선진국이 자국민을 그다지 행복하게 만들지 못한 것처럼 보인다. 유럽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한편 우리는 발 빠른 질병 관리 정책을 펼친 덕분에 의외로 안심할 수 있는 곳이라는 인식이 국내외에 널리 공유되고 있다.



21세기 대한민국과 후천개벽(後天開闢)



우리가 코로나 위기에 잘 대처하는 이유는 여럿일 것이다. 한국은 근현대에 이르러 식민지배, 전쟁, 경제적 궁핍, 계층과 이념 간의 갈등, 권위주의적 체제 등 쓰라린 경험을 연거푸 해 왔다. 그러나 부단한 노력을 통해 개인의 자유를 존중하는 민주주의 국가로 탈바꿈했다. 또 이 과정에서 경제 발전은 물론, 한류가 입증하듯 문화적인 측면에서도 예전과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높은 기대치에 걸맞게 참으로 많은 것들을 성취해 낸 것이다. 하지만 스스로에 대한 평가는 박했다. 문제가 없는 사회란 존재하지 않음에도 우리는 자신의 성취는 과소평가하고, 약점은 과하게 의식해 왔던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코로나 위기가 이런 흐름을 바꾸고 있다. 코로나가 본격화되기 전에는 ‘K방역’이라는 이름의 대처 방안이 이토록 널리 공유되리라 예견한 사람들은 극히 드물었다. 문화 분야의 한류가 한국의 문화적 역동성을 수출하는 일이었다면, 코로나 대처 방안을 해외에 알리는 일은 인류의 고통을 덜어내는 노력이라는 점에서 한류와는 차별성을 지닌다. 이해관계가 아닌 보편적인 인류애의 실현에 한 걸음 내디딘 것이다. 이런 노력의 일환으로 우리는 70여 년 전 한국 전쟁에 참전했던 해외 노병들에게까지 마스크를 보내고 있다. 곤경에 처한 이웃을 적극적으로 살피고 있는 것이다.



전국 동학 교당에 게시되어 있는 최제우 공식 영정 ⓒ 추연창

▲ 전국 동학 교당에 게시되어 있는 최제우 공식 연정 ⓒ추연창



일련의 상황은 19세기 민족 종교 지도자들이 역설했던 ‘후천개벽(後天開闢)’의 선언을 떠오르게 만든다. 후천개벽이란 선천(先天)의 시대가 지나가고, 이전과는 전혀 다른 패러다임에 의해 인류가 살아가는 시기를 의미한다. 특히 이전 시대가 무력의 지배에 의한 불평등의 시기였다면, 새로운 시대는 도의(道義)에 입각해 서로를 존중하는 상황이 될 것이라는 종교적 예언이었다. 


후천개벽의 주장은 19세기 조선 말기의 학자였던 일부 김항(一夫 金恒, 1826-1898)에서 시작됐고, 동학(東學)의 창시자 수운 최제우(水雲 崔濟愚, 1824-1864), 원불교 대종사 소태산 박중빈(少太山 朴重彬, 1891-1943)과 같은 민족 종교 지도자에게로 면면히 이어졌다. 이들은 후천의 시대가 도래하면, 한반도가 중심적인 역할을 할 것이라 한 목소리로 예견했다. 하지만 서구 열강과 일제의 침탈로 국운이 위태롭던 무렵, 한반도가 세계의 중심이 되리라는 주장은 기껏해야 냉정한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는 이상주의적 희망이라고 간주되기 십상이었다.

그러나 최근의 상황은 후천개벽의 의미를 다시 살펴볼 것을 요청한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불러 일으킨 위기가 의료 시스템의 효용성만이 아닌 국가의 총체적인 역량과 수준을 시험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다시 말해 민주주의, 경제력, 정보 통신 기술, 사회적 신뢰, 선진적 시민 의식 등이 빠짐없이 유기적으로 결합할 때만 비로소 문제의 돌파구가 찾아진다는 것이다. 실제로 한국의 방역 모델은 위기를 돌파하는 매우 유용한 패러다임으로 떠오르고 있다. 물론 이를 도입하고 적용하는 것이 쉽지 만은 않다는 점도 확인되고 있지만 말이다.


바로 이런 이유로 세계 여러 나라들이 우리를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다. 우리 역시 타인의 눈에 비친 우리 모습을 보면서, 스스로의 정체성을 다시 인식하고 있다. 요컨대 코로나는 우리가 누구이며, 나아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예기치 않았던 방식으로 드러낸 것이다. 그리고 이 과정의 근저에는 인간의 ‘행복’을 최우선에 두는 인본주의가 핵심으로 자리한다.



인본주의(人本主義)의 핵심은 인간의 행복



‘사람을 하늘처럼 섬기라’는 동학의 ‘사인여천(事人如天)’이 대표적이지만, 후천개벽의 선언에는 인간을 존중하라는 인본주의가 근간을 이룬다. ‘사람이 중요하다’, ‘사람이 먼저다’, ‘사람부터 살리자’와 같은 표현은 우리 문화의 저변에 흐르는 인간 중심주의를 보여준다. 이는 건국 신화인 단군의 ‘홍익인간(弘益人間)’ 이념에서 출발해, 삼일 만세 운동, 근현대의 민주화 운동에 이르기까지 우리 역사에 면면히 이어진다. 게다가 우리의 인본주의는 편협한 자민족 중심주의가 아니었다. 공존과 상생의 원칙에 근거해, 우리뿐만 아니라 이웃의 행복 역시 배려하겠다는 보편적 인류애를 뚜렷하게 담고 있었다. 백범 김구(白凡 金九, 1876-1949)가 강조했던 “높은 문화의 힘”으로 우리 자신과 남에게 행복을 주고 싶다는 소망이 대표적이다.



홍익인간

▲ 백범 김구의 휘호 '홍익인간(弘益人間)'(이미지 출처 : 백범김구선생 기념사업협회)



21세기는 그 어느 때보다 개인의 행복이 실현될 가능성이 큰 시대이다. 유행이 된 ‘4차 산업 혁명’이라는 표현은 과학 기술의 발달은 물론 문명의 더 깊은 차원에서 진행되고 있는 이런 흐름을 반영한다. 민주적 가치의 확산, 문맹률의 하락, 다양성의 존중 등과 같은 현상에 힘입어 개인의 존엄성이 강조되는 분위기가 더욱 부각되고 있다. 이제 신분이나 경제력의 차이 때문에 교육의 기회를 포함해 정치 참여에서 배제되는 일은 압도적으로 적어졌다. 소수의 엘리트가 지배하던 시대에서, 대다수의 나라가 민주주의를 바람직한 가치로 선언하는 상황으로 바뀐 것이다.

모두가 자신의 존엄과 가치를 더 보호받게 되었다. 다양한 가치관을 지닌 공동체의 구성원들이 함께 공존하면서, 각자의 행복을 추구하는 방식이 지배적인 원칙이 될 수밖에 없다. 그 점에서 선진국이란 타인의 가치를 존중하면서도, 자기 삶의 행복을 현실에서 적극적으로 찾아나가는 기회가 최대한 보장되는 곳임에 다름 아니다. 코로나 위기는 국가의 최종 목적은 구성원들의 행복을 구현시키는 것이라는 근본적인 진실을 새삼 확인시키고 있다. 한국이 다른 나라에 비해 성공적으로 대처했다고 평가받았던 주된 이유는 국민들이 자유로우면서도, 동시에 안전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도록 만들었다는 것, 즉 위기 상황에서 덜 불행해했다는 것이다. 결국 선진국에 대한 최종적인 판단 기준은 공동체 구성원들의 ‘행복’이다.



높은 ‘문화의 힘’과 우리의 소명



한편 미래 사회의 행복은 개인이 평등하게 대우받는 것만으로 충족될 수는 없다. 한발 더 나아가 인간의 잠재력인 상상력과 창조성을 발휘함으로써, 자신이 누구인지를 다양하게 표현하는 보다 적극적인 활동이 필수적이다. 평범한 사람들이 다채로운 문화 활동의 주역으로 등장하고 있는 현실이 이를 증언한다. 이것이 21세기가 요청하는 문화의 힘이다.

요컨대 인문학을 필두로 한 문화 전체는 인간의 본질적인 가치와 잠재력을 최대한 구현하는 것을 목적으로 삼아야 한다. 4차 산업 혁명으로 요약되는 최근의 변화는 우리 모두가 문화의 향유자이자 생산자로서 창조의 기쁨을 누릴 수 있음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그러니 문화는 먹고 사는 일에 뒤따르는 부차적인 것이 아니라, 인류의 존재론적 가능성을 실현시키는 핵심적인 가치로 평가받고 있다. 더욱이 우리나라의 문화적 역동성은 백범이 갈망했던 높은 “문화의 힘”을 통해 우리뿐만 아니라, 전 세계인이 기쁨을 느끼게 돕는 것이어야 한다.



문화의힘

▲ 백범 김구가 갈망한 높은 '문화의 힘'(이미지 출처 : 장흥신문)



미래 사회가 폭력이 아닌 존중과 상생의 정신에 근거해 개인과 집단의 공존을 도모할 것이라 예상된다면, 우리나라가 중요한 역할을 수행할 충분한 이유와 소명이 있다. 남북 분단은 인간이 만들어낸 이념의 차이가 도리어 인류를 질곡으로 빠트릴 수 있음을 보여준 매우 큰 비극이다. 그러므로 남북이 평화로운 통일을 이루는 것은 반드시 성취해야 할 과제임과 동시에 인류사의 갈등과 긴장을 승화시키는 상징적인 사건이 될 수 있다. 예컨대 비무장 지대(Demilitarized Zone, DMZ)가 남북의 평화통일을 거쳐 ‘영구적인 평화 지대(Permanent Peace Zone)’로 변모한다면, 선조들이 꿈꾸었던 후천개벽의 패러다임이 한반도에서 출현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이러한 인류사적 소명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노력이 더욱 필요하다. 우리 사회는 급격한 변화와 빠른 성장으로 인해 계층, 세대, 남녀, 지역, 이념이라는 여러 차원에서 농도 짙은 갈등을 겪고 있다. 높은 자살율과 세계 최저의 출산율은 우리가 치루는 사회적 스트레스와 비용을 증언한다. 또 이 과제를 해결하는 것이 결코 쉽지 않으리라는 점을 확인시킨다. 그러나 코로나 위기에 대한 우리의 대처와 세계의 평가, 그리고 이로 인해 스스로를 재발견하고 있는 오늘의 상황은 희망의 씨앗이 한반도에서 움터날 수 있는 징조가 아닐까. 엄혹한 시기에 누구보다 앞서 후천개벽의 새로운 질서를 꿈꾸었던 우리 선조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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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학교 종교학과 교수
성해영
성해영(成海英)

종교학자. 현재 서울대학교 종교학과 교수로 재직중. 종교심리학과 신비주의의 비교연구가 세부 전공이며, 인간의 종교 체험과 변형 의식 상태에 관심이 매우 많다.
저서로 "종교, 이제는 깨달음이다", "수운 최제우의 종교 체험과 신비주의"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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